지역 주민과 예술가가 사이좋게 어울려 사는 마을에 일상의 문화를 위한 대학이 들어선다면 어떤 모습일까? ‘카페성수’, 초여름 성수동의 골목길 한 귀퉁이에 화사한 모습으로 문을 연 이 정겨운 이름의 카페는 동네 주민과 지역 예술가, 도시 곳곳에서 시민이 찾아와 차를 마시고 음악을 듣는 공간이라는 점은 여느 카페와 비슷하다. 20년이 넘게 금형 공장으로 사용하던 성수동 공장 거리의 낡은 주택을 테라스와 미술 작품을 갖춘 멋스러운 카페로 단장해 테라스나 실내에 앉아 대도시 속 정겨운 골목의 햇살을 느끼며 차 한잔 하는 것만으로 유쾌하고 편안한 기분을 선사한다.
서가와 너른 테이블, 스타일이 다른 멋스러운 테이블 세트 등으로 꾸민 1층은 다양한 문화 활동과 세미나가 펼쳐지는 곳. 책 낭독회, 음악회 등 카페성수가 준비하는 테마 문화 프로그램이 열리고, 카페성수와 문화적 연대를 이룰 수 있는 주변 예술가나 모임에는 대관도 해주는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의 숨은 매력은 예술가들이 대화하며 새로운 문화 사조를 만들어 내던 파리의 카페처럼, 명망 있는 신사들만 출입하며 새로운 사회와 문화를 탐구하던 런던의 프라이빗 클럽처럼, 지식인이 저택 거실에 앉아 사상과 철학을 논하던 제네바의 살롱처럼 문화적 관심이 상통하는 사람이 모이는 문화 커뮤니티 공간이라는 점이다. 카페성수에서는 직장인부터 예술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모인 북클럽 회원이 둘러앉아 한 권의 책을 소리 내 읽는 책 낭독회와 어쿠스틱 음악회, 쿠킹 클래스와 프라이빗 다이닝 등 자발적이고 다채로운 커뮤니티 문화 활동에 참여할 수 있어 커피 한잔의 여유보다 더 깊은 문화적 즐거움을 음미할 수 있다. 이처럼 스무 살 풋내기 대학 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인문학의 가치와 일상으로 들어온 문화&예술 감상을 누구나 카페에 앉아 즐기듯 탐구하듯, 흡수하는 카페. 만약 미래의 작은 마을에 주민을 위한 자유로운 문화 대학이 들어선다면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책 한 권을 몇 구절씩 나누어 소리 내어 읽는 책 낭독 모임. 텍스트를 눈뿐 아니라 옆 사람의 목소리로도 체득할 수 있어 일상에 즐거움과 문화적 영감을 한껏 안겨주는 문화 활동이다.
공감각으로 음미하는 문화 공간
예술가들의 실험적 공간이 자리를 잡아 문화 거리로 부상하는가 싶더니 득달같이 쫓아오는 자본 세력에 밀려 예술가와 주민이 오히려 밀려난 가로수길, 홍대 앞, 연남동 등의 골목과 달리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상생할 수 있도록 서로 연대해 골목을 지키는 속 깊은 동네 성수동. 경기도 이천의 숲 속에서 만화, 게임, 요리사 등 실용 예술가를 양성하는 학교로 이름 높은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이수형 이사장과 에이징 연구소 팀은 몇 해 전 가을에 낡은 성수동 거리를 지나가다 우연히 젊은이들이 모여 골목에서 벌이는 가을의 꽃 잔치를 보았다. 그즈음은 마침 “젊은이는 갈수록 줄고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어 대학 무용론까지 거론되는 이 시대에 인생이 한층 길어진 많은 사람이 평생 틈틈이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미래 자유 대학은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고 궁리하던 터였다. 그러려면 기존 학교보다 프로그램과 학습 내용이 좀 더 유연한 모듈을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카페성수의 시그너처 메뉴인 플라워 팟 브레드 세트.
하지만 아무리 남보다 앞선 문화적 시도를 하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라고 해도 기존 교육제도의 틀 속에 있는 한계 때문에 교내에서 TF팀을 꾸리고 브레인 스토밍을 열심히 해도 마음만큼 시원하게 상상력의 문이 열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몸을 움직여보자는 생각에 춤을 추고 동작을 취하면서 상상력을 깨우는 워크숍을 했는데, 그 프로그램이 이수형 이사장을 비롯한 에이징 연구소 팀에 가져다준 경험은 기대 이상으로 신선했다. 내 몸을 깨우고 주변 사람과 자연스럽게 몸을 부딪치면서 우리가 까맣게 잊고 있던 공감각으로 문화와 예술을 느낀다면 우리의 긴 인생이 얼마나 다채롭고 풍성해지겠는가!
쿠킹 클래스 후 식사를 즐길 수 있는 2층의 특별한 다이닝 공간.
미래 자유 대학은 그런 배움을 주는 곳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학교 밖에 상상력을 테스트하는 공간을 만들어보려고 우연히 들른 성수동. 이곳에서 주민과 젊은 예술가가 모여 꽃 잔치를 벌이는 흐뭇한 풍경을 보았고, 이런 사연이 배경이 되어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도심 속 새로운 문화 연구소가 카페가로수길, 카페연남동이 아닌 ‘카페성수’라는 정겨운 이름으로 태동했다.
카페성수의 인디 서적.
카페에서 즐기는 프라이빗 BYOB
합리적 가격으로 특별한 식음료를 맛보는 공간, 문화 산업 교육 콘텐츠를 개발하는 실습장, 주민과 예술가의 다양한 문화 소통이 일어나는 공간을 꿈꾸는 카페성수. 문화 대학에서 운영하는 카페답게 이곳에서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교수진이 특별 파견되어 오감을 이용해 음미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골목의 소박한 풍경 속 1층 테라스 공간.
예를 들어 카페에는 커뮤니티 사람들과 미래를 위한 씨앗을 뿌리고 문화적 향기를 전한다는 의미를 담아서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교수이자 베이커리 명장인 이영식 교수가 작은 화분에 빵을 구워내는 시그너처 메뉴 플라워 팟 브레드와 당근 케이크 등 이색 메뉴를 선보인다. 마침 싱그러운 서울숲도 가까이 있어 여러 의미를 담아 플라워 팟 브레드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커피 원두를 절묘하게 블렌딩한 아메리카노는 ‘카페성수聖水’로 이름 지을 만큼 자부심을 담았고 합리적 가격으로 식음료를 제공해 서울숲 나들이객에게도 인기다.
가로수길이나 홍대 앞 등 예술가들이 둥지를 틀고 있던 거리가 자본에 잠식되고 지역 주민과 예술가들이 떠나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요즘, 이런 세태를 안타까워하는 성수동 사람들은 지역 주민과 새로 이주하는 예술가들이 상생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방법을 탐구하고 문화 활동과 축제를 열어 서로 어울리며 골목을 지킨다. 카페성수는 20년 넘게 금형 공장으로 사용한 낡은 주택의 내부를 감각적으로 개조해 골목 풍경에 어울리는 다목적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최석운 화가의 위트 있는 그림과 멋스러운 조명등으로 장식한 이 지하 1층의 카페 공간은 최소 하루 전에 신청하면 합리적 비용으로 파인 다이닝을 즐길수 있는 BYOB(Bring Your Own Bottle) 예약제 팝업 레스토랑으로도 변신한다. 집에 있는 와인을 가지고 오면 네 명에서 열네 명까지 특급 호텔 레스토랑 셰프 출신의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신재근 교수가 요리하는 디너 코스를 각자 2만 7천 원~5만 원으로 즐길 수 있는 특별한 혜택이다. 대관이 가능한 1층은 지역 사회와 문화적 상생을 꿈꾸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다양한 테마 문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쿠킹 클래스 참여자가 전용으로 사용하며 프라이빗 다이닝을 즐기는 2층 전경.
함께 또는 프라이빗하게 즐기는 문화 경험
문화다방 봄봄의 김보경 대표와 함께 소리 내어 한 구절 한 구절 읽으며 책 한 권을 소화하는 책 낭독회 ‘문화 커뮤니티-성수 낭독’이 매주 한 번씩 열리고, 토요일에는 유명 만화가와 함께 동네 풍경을 그리는 스케치 프로그램, 웹툰 작가의 강좌 등이 기다린다. 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어쿠스틱 뮤지션이 자연 친화적인 감성의 감미로운 음악으로 귓가를 울리는 ‘성수 음악회’가, 매월 마지막 주는 커피를 마시며 뮤지컬 배우, 예술가 등과 대화하는 소통과 공감의 정기 공연도 이어간다. 또 이 공간 한편에는 책과 서점이 사라져가는 시대를 아쉬워하며 카페성수가 품고 있는 작은 출판사 겸 서점인 책 가판대를 마련했다. 주로 문화, 만화, 일러스트, 그림책 분야의 작가주의 독립 출판물을 선보이는데 매년 50여 종의 새로운 책을 출판하고 전시회를 열며 ‘작가와의 만남’ 이벤트도 진행될 예정.
미술 작품과 에스닉한 빈티지 가구를 감각적으로 배치한 지하 1층 카페.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른 형태의 문화 공간이 기다린다. 최대 여섯 명이 요리 수업을 받을 수 있는 요리 스튜디오와 여유롭게 요리를 시식할 수 있는 다이닝룸, 그리고 휴식하며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리빙룸이 마치 누군가의 저택처럼 숨어 있다. “매일 비슷한 음식 대신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족과 이야기가 있는 요리를 배워보지 않겠습니까?”라고 질문을 건네는 이 공간에서는 베이커리, 프렌치 비스트로, 일본 요리, 이탤리언 파스타 등 스타 셰프인 청강문화산업 대학교의 교수 5인이 남녀 불문 초보 과정부터 솜씨 과정까지 각 4회 과정으로 테마별 요리 수업을 진행한다. 1회만 수강할 수도 있고, 원하는 강좌를 배운 후 함께 식사할 수 있어 요리와 식사를 겸한 프라이빗 파티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다. 교통 카드처럼 카드에 금액을 충전하고 원하는 와인에 터치해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종류의 와인을 즐길 수 있는 기기까지 갖춘 2층의 거실 또한 시식 후 와인을 즐기며 파티의 여운을 이어나갈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2층의 주방에서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의 교수진에게 직접 요리를 배우는 쿠킹 클래스가 열린다.
이처럼 지역 사회를 위한 열린 공간과 특별한 문화 학습을 원하는 사람을 위한 프라이빗 공간이 잘 어우러지는 카페성수의 유연한 분위기는 매주 토요일에 카페 앞마당에서 열리는 ‘꽃장’으로 절정을 맞는다. 처음에는 청강문화산 업대학교 푸드스쿨의 창작팀과 동아리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잼과 피클, 쿠키와 파이 등 직접 만든 식재료를 판매하려고 벌인 주말 장터였는데, 동네 주민이 구경 오고 주변 예술가들이 참여하길 원하면서 이제는 청강문화산업대학교 패션스쿨 학생들의 작품은 물론 성수동 골목 예술가들의 다채로운 작품까지 만날 수 있는 지역의 주말 축제로 꽃처럼 피어나고 있다.
철제와 벽돌, 유리라는 상반된 텍스처를 매치해 절제된 멋을 드러내는 2층 계단. 카페성수의 디자인은 건축 집단 MA가 맡았다.
Interview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이수형 이사장
“또 찾아가고 싶은 문화 공간을 상상합니다”
성수동은 고故 이연호 남양알로에 회장이 기업의 첫발을 내디딘 곳. 이연호 회장이 1996년 세운 청강문화산업대학교는 대한민국 최초의 문화 산업 특성화 대학으로, 이른 나이에 아버지에게서 학교 운영을 이어받은 이수형 이사장은 콘텐츠스쿨, 푸드스쿨, 패션스쿨, 뮤지컬스쿨, 모바일스쿨 등 교육과정을 진행해나가는 한편 카페성수를 무대로 향후 전 연령에게 문화적 교육 기회를 제공하는 미래 자유 대학으로 변화를 상상하고 있다.
카페성수의 첫 상상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우연히 문화다방 봄봄이라는 곳에 갔다가 대여섯 명이 둘러앉아 책 낭독 모임을 하는 것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직장인 아저씨와 풋풋한 청년 등 나이에 관계없이 앉아 목소리로 책 읽는 모습을 보며 ‘퇴근 후에 술집에 안 가고 여기 오는 이유가 뭘까?’ 하고 내 자신에게 질문했어요. 보통 북클럽은 자기 사유를 내세워야 해서 부담스러운데, 이런 낭독 모임은 친근한 분위기니 해보고 싶었어요. 우리 학교는 이천에 있으니, 이런 활동을 위해서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서울에 만들어야겠다는 필요를 느꼈습니다.
카페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나요?
우리는 청강의 미래를 위해서 성수카페를 운영하므로 우리와 문화적 공감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대관해주려고 합니다. 또 토요일에 만화로 골목 풍경을 그리는 프로그램 같은 테마 프로그램을 단 두 명이 오더라도 폐강하지 않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려고 하지요. 성수동 골목에 이 지역을 지키면서 주민과 문화 예술적으로 상생하려는 젊은 예술가들이 꾸준히 모여드니 뭔가 좋은 일이 계속 일어날 것 같아요. 우리 학교 학생들도 이곳에서 실습과 체험을 하고 교수님들도 이곳에서 더 넓은 세상과 만나니 모두 함께 문화적으로 발전하는 공간이 될 거라 믿습니다.
카페성수가 꿈꾸는 미래는 무엇인가요?
고령화 사회로 갈수록 사람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력보다 같이 어울리며 즐겁게 지내는 동네 문화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학교 인근 부지에 작은 집을 여러 채 지어 노인과 학생이 독립적으로 살되 마을 곳곳에 노인과 청년이 어울리며 제 솜씨를 이용해 빵을 구워서 팔고, 그림을 그리고, 다양한 문화 교감을 하는 미래의 마을을 만드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런 마을에서는 누구든 인생이 외롭지 않을 테고 세대 간의 장벽도 줄어들 테니까요. 카페성수는 그런 꿈을 시험해보는 문화 공간입니다. 이곳에선 커피 한 잔이든, 문화 프로그램이든, 음악 한 곡이든 다른 데서 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어 또 가고 싶고, 그래서 늘 좋은 사람들이 모이고 어울리는 문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취재 협조 카페성수(02-465-1077)
- 성수동 골목에 문을 연 일상의 문화 대학 카페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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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의 여유, 책 낭독회, 만화를 그리며 하는 동네 산책, 요리교실과 프라이빗 다이닝, 어쿠스틱 음악 연주회 감상. 이처럼 다채로운 문화 활동을 위해 사람이 모이고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작은 마을. 초여름 성수동에 새롭게 문을 연 카페성수가 상상하는 미래 사회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