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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림 같은 정원으로 초대합니다
편리한 아파트에 살지만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좋아 정원을 집 안으로 들였다. 베란다에 연못을 만들고, 이어지는 집 앞 야외 정원에는 수국과 능소화를 심었다. 아파트에서는 꿈꾸기 힘든 마당과 정원이 있는 최순기•박덕자 부부의 집을 찾았다.

툇마루 옆 큰 나무 도마에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는 부부. 왼편에 놓인 가구는 여기저기 쥐가 파먹어 구멍이 난 옛날 반찬장이다. 
5년 전, 슬하의 아이들도 다 컸으니 호젓한 양평 변두리 마을에 전원주택이나 한 채 지어 살자던 최순기•박덕자 부부의 바람은 185㎡(56평) 아파트로 바뀌어 돌아왔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도 1층에 정원을 갖춘 집이 있는 줄 모르다가 우연히 소개받아 그 첫 만남이 더욱 특별하다고 했다. “아파트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어요. 베란다 앞으로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 데다 바로 앞에 펼쳐진 산이 집 안으로 들어온 듯했지요. 1층 이기에 가능한 정원까지 보고 나니 전원주택 대신 이곳을 선택할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부유한 집안의 무남독녀로 태어난 집 주인은 부모님께 원예 솜씨와 고가구를 물려받았다. 워낙 손재주가 좋은 데다 취향이 분명하기에 집 인테리어는 물론 베란다 정원과 야외 정원까지도 전문가 도움 없이 직접 손보았다.

1 안방에서 테라스를 통해 바라본 풍경이 한 편의 동양화 같다. 평상에 앉아 차 한잔 마시며 감상하면 더 운치있다. 
2 베란다 정원을 뒤덮은 풍로초와 벽을 타고 천장까지 오른 아이비가 야외 정원과 잘 어우러진다. 맷돌로 길을 놓고 돌절구로는 작은 못을 만들었다. 

마음에 위로를 주는 베란다 정원
여느 아파트와 달리 이 집의 가장 큰 특징은 베란다에 있다. 마당에나 있을 법한 정원을 아예 베란다로 통째 옮겨놓은 것이다. 어느덧 5~6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꽃과 풀이 제자리를 잡아 정성껏 잘 가꾼 티가 난다. “아버지가 그 시절 원예학과 교수였는데, 창경궁 그러니까 그 당시에는 창경원을 관리하는 원장이 셨거든요. 어릴 때부터 보고 자라서 그런지 정원 가꾸는 것이나 흙 만지는 일이 자연스러워요.”

박덕자 씨는 이사 온 뒤 처음 베란다를 정원으로 만들 때 흙을 한 트럭 쏟아부었다고 한다. 돌절구를 옮겨다 작은 못을 만들고 흙과 자갈 사이사이에는 맷돌을 깔아 길을 만들었다. 조명등은 낮 동안의 태양열을 축적해 사용하는 친환경 태양열 조명등을 설치했다. 베란다 초입에는 벽돌을 허리춤까지 쌓아 올려 깨진 기왓장을 포갠 뒤 돌나물을 심었는데 마치 궁에 있는 연통을 연상케 한다. 이 외에도 베란다에 심은 것은 모두 살아 있는 식물이다. 바닥에 예쁘게 핀 보랏빛 꽃은 물만 잘 챙겨주면 1년 내내 꽃이 피고 지는 풍로초이고, 천장을 뒤덮은 것은 아이비다.

“지금 천장과 벽을 타고 오른 아이비는 두 종류가 한데 섞여 있어요. 우리나라 아이비는 겨울에는 노랗게 져 있다가 3월 말쯤부터 싹을 틔우기 시작하는데, 서양 아이비는 1년 내내 파릇하게 살아 있답니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아침에 눈을 뜨면 정원부터 찾아요. 밤에 잠이 안 올 때에도 이곳에 앉아 연못 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면 어느새 마음이 편안해지지요.” 부모가 자식 자랑하듯 베란다 정원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데 여념이 없는 그에게 이곳은 자식보다 가까이에서 기쁨을 주는 공간인 셈이다.

3 선물 받은 기성품 연에 들기름을 먹여 집 안 가구와 잘 어우러지는 멋스러운 색을 만들어냈다. 
4 수박 하나를 낼 때에도 집주인의 감각이 묻어난다. 정갈하게 자른 수박을 대나무 꼬치에 끼우고 정원에서 딴 꽃을 함께 냈다.

가구에 깃든 추억으로 채운 방
집의 거실 분위기는 중앙에 놓은 툇마루가 묵직하게 잡고 있다. 한옥의 대청마루를 떠올리며 부부는 거실 바닥 대신 이 툇마루에 앉아 빨래도 개고 낮잠도 청한다. 그러다 손님이 방문할 때면 널찍한 초대상으로도 쓰는데 최근에는 아들이 결혼하기 전 사돈댁과 상견례할 때 사용하기도 했다. 집 꾸미는 것이 취미라 무슨 일이든 사람들을 집으로 불러 즐기는 일이 잦다. 그래서인지 요리 실력도 뛰어난데, 몇 가지 음식을 손수 만들어 레스토랑 못지않은 근사한 상견례를 치른 것이다. 툇마루 앞쪽에 놓은 낮은 테이블은 옛날에 떡이나 칼국수를 만들던 큰 나무 도마, 그 옆으로 베란다를 마주 보는 데에는 가마 틀을 얹어놓았다.

“거실에는 TV를 놓은 일이 없어요. TV 볼 시간이 없거든요. 툇 마루와 나무 도마를 오가며 베란다 정원과 자연을 즐기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라요.” 거실 분위기를 고즈넉하게 만드는 데에는 불빛을 은은하게 투과하는 주방 미닫이문도 한몫한다. 거실과 이어지는 주방을 휑하게 드러내는 유리문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아 직접 을지로에 가서 창호지를 사다 붙였다. 이 집에 있는 고가구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거실 한편에 놓은 돈궤.

다 같은 함처럼 보이지만 위쪽 판이 열리는 위닫이 형태가 돈궤, 앞면을 반으로 나누어 한쪽 면만 여닫도록 한 것이 반닫이다. 돈 대신 제기 세트를 보관해두었다는 돈궤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반질반질한데, 이는 집주인이 이틀에 한 번꼴로 마른걸레질을 하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주기적으로 닦아내고 관리하는 것이 고가구를 오래된(古) 가구가 아닌 최고의(高) 가구처럼 쓰는 그의 노하우다.

5 제주도식 반닫이에 시집올 때 해 온 긴 원앙침을 반으로 잘라 장식품처럼 올려두었다. 
6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찬장을 놓은 다실 모습. 다실에 앉으면 창문 너머 능소화가 보이는데, 꽃가지가 길게 늘어져 마치 커튼을 드리운 듯하다. 

그는 젊을 때 정식으로 다도를 배운 뒤 잊지 않기 위해 다실을 따로 꾸몄다. 특히 이곳에는 그가 가장 아끼는 가구가 있는데, 바로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일본식 찬장이다. 그릇 닳는 것이 아까워 상에 잘 내지는 않지만 미로처럼 이어지는 작은 선반마다 어머니가 쓰던 그릇을 넣어두고 꺼내어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침실로 가는 길목에는 커다란 방패연을 걸었다. 색이나 모양새가 범상치 않아 사연이 있는 물건인지 물었더니 기성품 연을 집 분위기와 잘 어우러지게 만들기 위해 들기름을 한 병이나 먹여 색을 냈다고.

좋은 물건을 알아보는 눈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아끼고 관리하는 데에도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으리라. 바닥에는 다듬잇돌 위로 오래된 경첩을 조르르 모아두고, 방 스위치에는 항아리를 일 때 머리에 받치는 똬리를 덮었다. 한편 안방에서 눈에 띄는 것은 먹감나무로 만든 충청도식 반닫이. 먹감나무라는 수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감나무의 심재가 오래되어 자연스레 검은색으로 물든 것을 말하는데 오래된 나무일수록 그 무늬가 크고 까맣다. 먹감 나무 반닫이와 나란히 놓은 제주도식 반닫이 위에는 시집올 때 해 온 원앙침과 오래되어 침이 움직이지 않는 시계, 아버지가 쓰던 주판을 올렸다.

옷, 화장품 대신 그릇 욕심이 많은 집주인은 그릇 취향이 확고하다. 손님 초대를 즐기다 보니 그릇 종류가 많은 것이 아닌, 구성을 제대로 갖춘 하나의 라인을 넉넉하게 구비하고 있는 것. 또 그릇에 담기는 음식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무늬가 현란한 것은 가급적 피한다. 왼쪽 그릇장에는 양식기와 한식기를 보관하고 오른쪽에는 머그와 커피용품을 나눠 보관하는데, 문고리 대신 떡살을 더한 것이 재미있다.
꽃으로 이야기하고 향기를 나누는 집
아파트 단지 내에서도 유난히 정원이 예쁘다고 소문난 집이기에 모르는 사람들이 하루에 몇 번씩 정원을 구경하러 온다. 대부분은 정원을 구경하다 집 안까지 이어지는 베란다 정원에 놀라 거실까지 들어오곤 한다. “정원 덕분에 친해진 사람이 많아요. 제가 가꾼 꽃을 보며 한마디씩 칭찬을 하고 그러다 보면 함께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게 돼요. 정원 꾸미기에 관심 있는 사람을 만나면 제가 시행착오 끝에 얻은 노하우도 전해주고요.” 시멘트로 쌓아 올린 아파트 담벼락 사이로 부부의 정원이 더욱 빛나는 것은 정원 가꾸기를 자기만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봄이면 꽃을 혼자 보는 것이 아까워 사람들을 초대하고, 꽃이 지면 정원에서 딴 국화로 차를 만들어 나눈다. 사람들은 그 마음에 보답하려 다시 꽃을 선물하고, 또다시 꽃이 피면 이 집에는 사람이 모인다. 정원은 삶의 활력소이자 즐거운 제2의 인생이라는 부부. 정원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어 오늘도 행복하다. 얼마 전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이메일 한 통을 받았습니다. <행복>의 오랜 독자인 어머니의 집을 소개하는 딸의 메일이었습니다. 아파트 베란다까지 정원을 들여 마치 자연의 한가운데에 앉아 있는 느낌을 주는 데다,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고가구로 꾸며 멋이 있는 집이니 <행복>에 꼭 소개하고 싶다고요. 딸이 인정한 어머니의 솜씨이니 이보다 더 진심 가득할 수는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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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지연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