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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띠 헤이모넨&힐까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 부부 핀란드식 삶이란 단순함과 실용성
2012년 한국에 부임한 마띠 헤이모넨 주한 핀란드 대사와 그의 아내 힐까 헤이모넨 여사는 대사가 아닌 ‘핀란드 사람’이라고만 소개해도 사람들이 환한 미소로 대해주는 점을 한국 생활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꼽는다. 핀란드식 라이프스타일에 호감을 보이는 한국인에게 화답하며 최근 새롭게 단장한 성북동의 대사관저로 <행복>을 초대했다.

마띠 헤이모넨 핀란드 대사와 힐까 헤이모넨 대사 부인이 최근 새롭게 단장한 대사관저에서 커피 타임을 즐기고 있다. 화이트 페이퍼와 메탈 소재로 만든 스탠드 램프는 핀란드 디자이너 일카 수파넨Ilkka Suppanen의 제품. 소파와 암체어, 따로 또 같이 사용할 수 있어 유용하고 멋스러운 커피 테이블은 모두 핀란드 디자이너들의 작품이다. 

핀란드의 작은 도시 세이나요키Seinäjoki. 한국의 대도시와 비교하면 작은 마을 같은 그곳에서 청년 마띠 헤이모넨Matti Heimonen은 동네 친구와 마을 중앙에 자리한 65m 높이의 시계탑이 있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지붕에 올라서면 멀리 숲과 들판이 훤히 내다보이는 이 교회는 핀란드의 국민 건축가이자 세계적 건축 거장인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건축물로, 교회 옆에 위치한 시청, 극장, 경찰서, 도서관까지 모두 그의 작품이다. 덕분에 헬싱키에서 자동차로 다섯 시간이나 달려야 도착하는 이 작은 마을은 자연의 곡선과 직선, 공간과 여백을 활용하는 핀란드 디자인의 정수를 감상하려고 지구 곳곳에서 특히 일본에서 많은 사람이 건축 여행을 떠나오는 곳이기도 하다.

“건물이 높지 않고 대지가 평평하기 때문에 멀리까지 아름다운 전망을 즐길 수 있는 교회였지요. 지금도 어머니는 여전히 그곳에 사십니다. 저는 그곳에서 태어났고 아내는 두 살 때부터 그곳에서 살았어요.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멋진 장면으로 기억된 결혼식도 마을 교회에서 했으니 오랫동안 외국에서 생활하는 우리에게 세이나요키는 고향 핀란드를 상징하는 노스탤지어입니다.” 마띠 헤이모넨 핀란드 대사 가족은 그가 외교관이 된 후 지난 20여 년을 외국에서 살았다.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독일, 일본, 중국 등을 거쳐 한국 대사로 부임하기까지 해외 이사만 열다섯 번가량 했으니 그의 아내는 ‘집 구하기’ 전문가가 되었고, 그의 가족은 핀란드 밖에서 ‘핀란드식으 로 살기’ 전문가가 되었다.

1 다이닝룸의 햇살을 살포시 가려주는 커튼은 흰 종이 실을 손뜨개질 해서 만든 우드노트 Woodnotes사의 ‘라이트 노르딕 베일’이다. 
2 거실 입구에서 방문객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LED 램프는 천장에 반사되는 빛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시나무로 만든 이 램프는 디자이너 키르스티 타이비올라Kirsti Taiviola의 작품이다. 

핀란드식 자녀 교육은 실용 교육
“유치원 교사로 일한 아내가 외국에서도 핀란드식으로 두 딸을 잘 교육해주어 나는 참 행운아지요. 자연을 즐기는 것은 핀란드 문화에서 아주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는 외국에서도 숲 속에서 휴가를 보냈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핀란드에 가서 숲속 캠프에 참가하도록 했어요.”

헤이모넨 대사 부부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모국어 교육이라고 믿었다. 모국어를 잘해야 다른 외국어도 수월하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모든 부모는 교육은 학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에게 학교 숙제를 했느냐고 묻지 않는다. 그 모든 것을 공교육이 책임지고 관리하기 때문이다. 대신 짧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충분한 자유 시간을 누린다. 외국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자녀들에게 헤이모넨 부인은 바느질, 세탁, 요리, 가구 만들기, 공구 사용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3 벽난로가 있는 거실 한쪽은 알바 알토가 디자인한 1930년대의 가구를 놓았다. 자작나무를 휘어서 만든 아르텍 401 암체어와 테이블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핀란드의 대표적 디자인 제품이다. 벽난로 위에 걸린 독특한 세라믹 작품은 타이스토 카시넨Taisto Kaasinen이 디자인한 아라비아사의 제품이다. 
4 다이닝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우든사의 멋스러운 원목 테이블. 북유럽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다양한 길이의 조명등은 수산 엘로Susan Elo가 디자인했고, 벽에 걸린 작품은 핀란드 신진 여류 작가 안나 레툴라이넨Anna Retulainen 작품이다.

“핀란드에서는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이런 생활 기술을 배웁니다. 그런데 외국의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요. 그래서 우리는 핀란드식으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실용 기술을 집에서 가르쳤습니다. 우리 작은딸은 네 살 때부터 자기 연장 상자가 있었어요. 핀란드의 부모들은 아이가 장난감으로 부엌 놀이를 할 게 아니라 실제로 부엌 일을 해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부모가 없을 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를 미리 알고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또 부부는 자녀들을 가능한 한 많은 곳에 데리고 다녔다. 극장, 공연장, 지역 시설 등 지역 사람, 지역 아이들을 만날 수 있는 곳에 두루 다녔다. 모국어나 실용 기술을 익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모든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자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위해 자녀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부부는 핀란드에 있는 자녀들에게 스카이프로 물었더니, 두 딸 역시 부모에게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인종이나 계층과 상관없이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하는 것이었다고 의견을 보내왔다. 누구든 사람을 존중하고 공손하게 대하도록 아이를 키우는 것, 그것이 핀란드식 자녀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지하층의 사우나룸과 연결되는 대사 부부의 휴식 공간. 알바 알토의 클래식한 가구와 독특한 문양의 페이퍼 커튼으로 단장했다. 

단순과 실용, 핀란드 인테리어 원칙
수년 전 헤이모넨 대사 부부가 일본에 부임했을 때부터 자녀들은 독립해 핀란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터라 이제는 부부만 남은 단출한 가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부임지가 바뀔 때마다 여전히 집 구하기는 헤이모넨 여사에게 숙제 같은 일이었다. 그동안 15여 개국 중 오직 한국 대사관저만 지정되어 있었으니 낯선 외국에서 가족이 살 가장 좋은 집을 발견하는 안목을 갖추게 되었고, 지금도 은퇴 후 핀란드로 돌아가 부부가 여생을 보낼 최적의 집을 찾고 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집을 골랐어요. 빛이 가장 중요합니다. 빛이 가득 드는 창문이 충분히 많아야 하고, 최대한 자연 채광을 만끽할 수 있는 남향, 밖과 연결된 공간, 정원과 발코니, 어느 코너든 낭비가 없는 실용적 공간 조건을 두루 만족하는 집을 찾는 것이지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때는 집의 위치와 함께 가족의 성격에 맞는 방의 위치와 충분한 가족 공동 공간도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1 헤이모넨 대사가 가장 좋아하는 휴식 공간. 나무와 가죽으로 만들어 천장에 매단 이 의자는 디자이너 사물리 나만카Samuli Naamanka의 작품. 
2 단순하고 자연적인 노르딕 스타일로 만든 사우나룸. 
3 대사 부부의 개인 공간에 장식한 가족사진. 

이러한 것은 핀란드인을 비롯한 스칸디나비아인이 집 고르는 조건이어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스웨덴, 노르웨이 할 것 없이 생활 문화가 비슷한 스칸디나비아 사람끼리 모여 살았다. 그 단지 안에서는 어느 집을 방문해도 빛이 환하게 들어오는 창문 사이로 단순하고 기능적 공간 구성과 장식이 있는 인테리어가 비슷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핀란드인의 집은 금방 눈치챌 수가 있다며 헤이모넨 대사는 말한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의 가정에는 없는 사우나와 핀란드식 식기 건조 캐비닛이 집에 있고, 공간과 가구 배치와 디자인이 그 어느 나라의 스타일보다 심플하고 기능적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물건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딱 맞게 있는 것이 핀란드식 인테리어고, 가구나 가전제품의 디자인에도 ‘단순함(simpl)과 기능(function)’이라는 원칙이 적용된다.

“핀란드인은 불필요한 말을 별로 하지 않아요. 간혹 어떤 사람들은 상대가 말이 없으면 불편하다고 하는데, 핀란드인이 말이 없는 건 무례하거나 화가 나서가 아니에요. 말 없는 시간도 즐기는 것이죠. 말을 할 때도 간단하게 직설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핀란드인이 하는 말은 그대로 믿어도 좋습니다. 말에 전략이나 함정이 없으니까요. 핀란드인의 이러한 성향이 인테리어에도 반영되어 핀란드식 인테리어에는 많은 말이나 소란스러움이 없지요.”

4, 5 정원 테이블은 마리메꼬의 테이블보로 장식했고, 잔디 위에는 에로 아르니오의 새 모양 램프를 놓았다.

여백과 정적을 즐기는 삶
보통 대사관저는 손님을 맞기 위해 많은 장식을 하지만, 핀란드 대사관저의 인테리어에는 각 물건이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필요하다. 용도가 없는 물건으로 공간을 꾸미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장식을 위한 꽃병을 두지 않는 식이다. 꽃병은 꽃을 꽂는 용도이니 꽃이 없을 때는 꽃병을 치워 공간의 여백을 즐긴다. “작품이 많아도 다 걸지 않아요. 계절이나 분위기에 맞는 것을 바꾸어가며 꼭 있어야 할 자리에 걸지요. 우리는 비어 있는 공간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백이 있는 공간도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요. 많은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정적과 빈 공간도 즐깁니다.”

이러한 정적과 여백은 핀란드식 라이프스타일에도 적용된다. 사우나에서 아기를 낳고, 국회의원이 사우나에서 회의를 하는 핀란드는 사우나가 삶 자체다. 핀란드에는 어느 가정이나 전기 사우나가 있다. 그리고 대기업의 CEO든 공장의 노동자든 모든 사람이 숲 속에 자신의 심플한 여름 오두막이 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숲 속 집으로 가서 장작을 패어 직접 사우나를 짓고 사우나를 하고 낚시를 하고 새소리 듣고 호수에서 목욕하는 것이 핀란드인이 평생 추구하는 삶의 낙이자 온전한 휴식법이다. 그래서 핀란드에서는 숲에서 누구든 모든 열매(베리)와 버섯을 따 먹을 수 있게 허락한다. 외국인도 어느 숲에서든 각종 베리와 버섯을 따 먹으며 자유롭게 캠핑할 수 있다.

헤이모넨 대사 부부의 다음 집 고르기 역시 태어나고 자란 핀란드에 대한 이러한 노스탤지어가 가득 담겨 있다. 가족과 함께 작은 집에서 사우나 하고 숲 속에서 베리를 따 먹으며 사는 간소한 삶, 불필요한 말을 하지 않지만 세상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공손히 대하는 삶, 핀란드식 식기 건조 캐비닛에 설거지한 그릇을 정리하고 아르헨티나 탱고보다 신나는 핀란드 탱고를 추는 삶, 겨울에는 산타클로스를 기다리고 여름에는 숲속 오두막에 가서 사우나를 짓고 즐기는 삶을 위해 부부는 그 어느 때보다 설레는 마음으로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 핀란드의 집을 꼼꼼히 고르고 있다. 숲 속에서 여백과 정적까지도 즐기는 핀란드식 삶으로 되돌아가는 그날을 위해 부부의 집 고르기는 오늘도 차분히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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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정 수석기자 | 사진 이우경 수석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