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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장 조일상 씨의 한옥 오래된 것에 대한 존경
“옛집이 없는 마을은 추억이 없는 사람과 같다.” 일본의 한 화가가 남긴 이 말을 불씨로 추억을 지펴본다. 산딸기 먹으며 생일잔치하던 친구네 한옥도, 바깥에 있는 화장실 가는 게 영 귀찮던 할머니의 단층집도 연기처럼 사라졌으니 그야말로 추억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 서글픔을 위로하는 곳, 부산 기장군에 자리한 조일상 씨의 시골 한옥이었다.


어느새 마이애미 해변처럼 변해버린 호사스러운 해운대를 벗어나 자동차로 20~30분 달려 도착하는 기장군의 작은 마을. 이곳엔 옛집이 자리하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수집한 도구, 조형물 등 사람의 추억이 쌓인 물건들이 문간부터 서까래까지 가득 놓인 이곳은 부산시립미술관 조일상 관장이 15년간 다듬고 있는 작품 ‘시골집’이다.


1 참나무로 만든 대패. 취미로 모은 골동품이다.
2 조일상, ‘이야기들ʼ, 24×30×31cm, 나무, 돌, 2010.

갤러리에서 옛 도구를 감상하는 조일상 관장. 이 공간은 너른 통창과 천창이 있어 마치 마당에 앉아 있는 것처럼 밤낮으로 햇살과 별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옛 도구와 작품은 물론 눈앞의 한옥 내부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다.

목공예가의 작품이 된 한옥 다른 지역에서 토지 공사를 하느라 허문 한옥을 어느 목수가 옮겨 지은 작은 집. 목수는 방 두 개, 좁다란 대청 마루와 부엌이 있는 작은 한옥에 시멘트를 바르고 장판을 깔고 살았다. 몇 해 후 목수가 이 낡은 한옥을 매물로 내놓아도 나서는 이가 없었지만, 종종 마을을 지나다니던 ‘목공예가 조일상’의 눈에는 이 집이 달라 보였다. ‘버리면 사라지는 옛것을 깨워 다시 숨 쉬게 만들면 예술이 된다!’ 조일상 관장은 이 미학을 30년 전, 홍익대 미대 재학 시절 은사이던 故 이대원 화백의 작업실 벽에 걸린 대패 세 개를 보며 깨달은 덕분이다. 촌부의 손때가 묻은 대패 세 개를 작품으로 내건 이대원 화백의 발상도 파격적이었고, 새하얀 벽과 낡은 도구가 조화를 이룬 예술적 숭고함도 파격적이었다. 그 놀라운 감상을 은사께 전하자 “자네는 목공예를 하니, 대패를 모아라”는 덕담이 돌아왔다. 그 후 30년, 부산 동아대학교 미대에 경상남도 최초의 공예과를 만들고 미대 학장, 해운대에 위치한 부산시립미술관의 관장으로 직이 바뀔 때에도 목공예와 오래된 도구 수집이라는 업을 한결같이 지켜왔다. “진주, 안동, 순천, 강원도까지 여행할 때마다 대장간에 가고 시장에 가서 30년간 모았습니다. 대패, 망치, 낫, 소 방울 등 기계가 도구를 대신할 때까지 오랜 세월 깎고 다듬고 두드려 만든 도구는 무척 아름답습니다. 기능에 가치를 두었을 때 미처 발견할 수 없었던 ‘형태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발견하는 것이지요.”

옛 대장간에서 공짜로, 혹은 시골 상점에서 5천 원, 1만 원을 치르며 30년간 모은 도구에 예술의 손길을 더해 작품을 만드는 그에게 기장의 이 한옥은 작품을 위한 오브제다. 아니 작품 그 자체다. 설계사를 고용하고 완벽한 계획을 세워 한옥을 단번에 고치는 게 아니라, 서서히 느리게 작가의 손으로 고쳐온 15년의 세월이 곧 예술 작업 자체다. 시멘트와 장판을 떼내고 단단한 고목의 아름다움을 드러나게 하는 데만 수년이 걸렸다. 한옥을 잘 아는 목수나 장인이 드문 데다 종종 일을 도와주던 목수마저 세상을 뜬 후론 부부가 어깨너머로 배우고 익힌 깜냥으로 부산과 기장을 오가며 ‘시골집 고치기’라는 예술 활동을 했다.
“조금씩 고치니 시행착오를 겪고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들었지요. 그러나 앞으로 또 어떻게 더 다듬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집은 공예가가 완성하는 작품이니까요. 도시를 개발할수록 한옥의 조형을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도시 발전에 이롭고 중요합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곳의 한옥도 좋지만 양옆에 공장을 세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한옥. 이 역발상이 예술을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덕목이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각입니다.”

갤러리에서 디딤돌 하나만 올라서면 옛 정취를 오롯이 간직한 방과 툇마루, 주방으로 구성된 소박한 한옥이 펼쳐진다.

한옥과 갤러리 공간의 오른쪽 측면을 연결해 꾸민 작업실. 수집한 도구를 전시하고 조일상 관장이 작업하는 곳이다.

미국에서 교환교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올 때 선물 받은 앤티크 난로. 세월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이 난로는 고즈넉한 한옥에 세월과 전통의 온기를 불어넣는 또 하나의 특별한 오브제다.

한옥 툇마루의 문을 열면 갤러리의 통창 밖으로 한적한 마당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갤러리에서 바라본 한옥 내부. 생활 공간과 감상 공간이 자연스레 이어지고 조화를 이룬다.

소 방울을 문틀에 달았더니 모빌 같기도 하고 풍경 같기도 하다.

증측한 공간의 모든 문은 자연 그대로의 나무로 만들었고, 형태미가 느껴지는 나뭇가지로 만든 손잡이로 시각적 아름다움을 더했다.

마당에서 본 갤러리와 한옥.

1
조일상, ‘이야기들’, 46.5×19.5×10.3cm, 브론즈, 2007.
2 조일상, ‘이야기들’, 17.5×7.5×23.5cm, 브론즈, 2009.

가족의 고전이 된 시골집
한옥 내부를 고유한 모습으로 되살리고 방 한편엔 미국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 선물 받은 앤티크 난로를 놓았다. 처마 너머로 지붕을 연장하고 디딤돌 아래에는 보일러가 들어오는 바닥을 만들었다. 연장된 지붕에 하늘을 향해 작은 천창까지 내니 한옥 마당은 종일 빛이 드는 아늑한 실내로 바뀌었다. 현대식 실내 공간과 옛 한옥 공간이 서로 간섭하지 않고 반절로 접은 종이처럼 접지해 파격적인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 공간에 그가 30년간 모은 도구와 골동품, 이를 오브제로 만든 작품을 전시한다. 오래된 것을 존경하는 마음이 가득한 ‘시골집’ 전체가 운치 있는 작품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 시골집은 특히 그가 부산시립미술관의 관장을 맡은 요 몇 해 동안에는 민간 외교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나마 경복궁과 한옥 마을이 남아 있는 서울과 달리 부산에는 우리 전통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 극히 드물다. 외국에서 작가나 손님이 와도 우리의 옛것을 보여줄 곳이 없다. 그럴 때 손님을 시골집에 데려와 소박한 차 한잔을 대접한다. 햇살 드는 갤러리에 앉아 툇마루 너머 이어지는 한옥과 오래된 도구를 감상하며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고 감격해하던 많은 손님을 보며 조일상 관장 부부는 이 집에 애정이 더욱 깊어졌다. 호텔이나 공연장이 아닌 시골의 여염집이 가장 고급스럽고 가장 예술적인 사교 공간이 될 줄 15년 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지만, 소박해서 더 아름다운 복숭아꽃처럼 세월이 갈수록 아름다움을 더욱 은근하게 드러내니 시골집을 극진히 사랑할 수밖에.
툇마루 위 현판의 ‘석원재石垣齋’라는 한자는 올해 아흔일곱 되신 부친이 직접 쓰셨다. “돌담이 있는 집이라는 뜻이지요. 사람이 큰 담은 아니더라도 작은 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호와 경계가 되는 삶을 일컫는 것이지요. 흔히 큰 집이 좋아 보여도 사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작아야 좋아요. 부부가 직접 가꿀 수 있으니까요. 갖고 있는 골동품을 다 내놓고 볼 수 없어서 그게 아쉽죠. 하지만 갤러리의 골동품을 자주 바꾸고, 보고 싶은 것이 있으면 꺼내어 보면 됩니다. 이제는 지난 30년간 모은 것을 정리해서 사회와 나누어야 할 나이가 된 듯합니다.”

갤러리와 한옥이 맞닿은 측면은 미술관의 수장이기 전에 대한민국 국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예술가이자 대학교수인 그의 작업실이다. 그 반대편 공간엔 연장과 나무를 보관하고 아궁이와 무쇠솥을 놓았다. 아흔일곱과 아흔셋 되신 양친과 서울에 사는 네 자녀, 그리고 강아지 같은 네 손주가 석원재로 모이면 조일상 관장의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무쇠솥에 물을 펄펄 끓여 토종닭을 삶는다. 사위는 마당에서 고기를 굽고 그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 손주에게 줄 토실토실 살이 오른 대봉을 한가득 따온다. 깔깔깔깔 호호호호, 오래된 사람과 새로 태어난 사람이 세대를 뛰어넘어 이룬 화목한 기운이 시골집에 가득 찬다. 도시에 없는 고전, 핵가족에 없는 고풍이 작품으로 정으로 피어나는 시골집에서 대가족은 ‘추억’을 쌓는다. 도구를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며, 사람을 보듬고 어루만지며 사람이나 물건이나 오래된 것을 존경하는 마음을 깨우친다. 추억이 사라져버린 요즘 세상에서 더 이상 옛것이 밀려나지 않도록 작은 담이라도 되어 옛것을 지키려는 조일상 관장. 그의 30년 노력 덕분에 우리 사회는 추억을 얻는다. 손으로 도구를 만들어 쓰던 옛사람의 추억, 아끼고 보살피는 가족의 추억, 그리고 전통이 곧 예술이라는 감탄과 감동의 추억이 석원재의 담을 넘어 세상으로 세월로 흘러가는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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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정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