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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지숙경 씨 오늘도 잘 살았습니다!
그는 그릇 빚는 도공으로 자연에 기대어 산다. 취미는 나무와 꽃이 있는 정원을 야생처럼 가꾸기요, 특기는 텃밭에서 캐온 것들로 음식 만들기다. 더불어 그가 빚는 도자기, 그가 만드는 음식, 그가 머무는 공간에는 둥글둥글한 자연의 섭리가 깃들어 있다. 도예가 지숙경 씨가 자연과 더불어 유연하게 사는 법.


13년 세월에 벽돌도 담쟁이넝쿨로 뒤덮였다. 집 안은 주방, 작업실, 사무실, 사적인 공간으로 구성했는데, 도예가 지숙경 씨가 작업하고 밥 먹고 사유하는 곳임을 보여준다.

주방 한편에는 지숙경 작가의 작품이 놓인 그릇장과 그루터기가 그림처럼 놓여 있다. 그의 작품도 자연을 닮아 모나지 않고 유연하다.

질감과 색감, 모양이 자연을 닮은 접시.

작업실 한쪽에 놓인 물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지숙경 씨는 도예가이자 정원사이자 농부라는 것을.

아일랜드 식탁의 철제와 콘크리트의 믹스 매치가 돋보인다. 앞판을 이루는 철판의 녹슨 듯한 질감을 내는 데만 한 달 반이 걸렸으니 작품이나 다름없다.

서재를 사무 공간으로 바꾸고, 창호를 간 날 세상이 환해졌다. 칠현산이 풍경화처럼 펼쳐지니 13년 만에 경치를 찾은 셈. 커다란 창 앞에 책상을 배치해 작업을 하면서도 정원의 기운을 느끼도록 했다.


10년이면 강산만 변하는 줄 아나. 타샤 할머니 말마따나 10년을 묵으면 아무리 사람 손을 탄 정원도 저다워진다는데, 하물며 사람은 어떠하겠는가. 도예가 지숙경 씨의 경우에는 유연해졌다. 전원에서 자신만의 작업을 온전하게 하고 싶은 오래된 갈망에 이른바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으로 ‘다 가진 여자’이던 그가 서울을 떠나 경기도 안성의 끝자락 죽산면 칠장리에 터를 잡은 지도 어언 13년째다. 나무와 숲길을 통과하는 것만으로도 속세의 먼지를 털어낼 수 있다는데, 여기선 유현한 기운이 품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런 기운 덕에 인간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긴장이 이완되는 법이니 이 정도 세월이면 그이야말로 그다워졌을 터. 워낙에 타고난 성정이 시쳇말로 ‘가오’ 잡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지라 이곳에 오면서 가마터 이외에 갖고 싶은 것이 자연에 어우러지는 정원이었다. 그래서 이처럼 멋진 정원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는 이가 도예가 지숙경 씨다. 마치 숲 속에 들어온 듯 자연스럽고 편안한 느낌이 나도록 가꾸었다. 그야말로 자연의 미학이라고나 할까. 아늑한 풍광과 자연에 기댄 삶을 목격한 이들의 소감은 이렇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단 말인가!”


사람 손이 안 간 듯 자연스러운 정원. 조선 작약, 겹작약, 보라붓꽃, 노랑붓꽃, 데이지, 양귀비 등 봄꽃이 만개하는 5월 말경이 가장 화려하다.

신축한 지요의 갤러리. 가로로 길게 난 창밖으로 칠현산 능선이 바라보여 산수화 한 폭이 따로 없다.

1 초벌구이 후 물 작업을 하는 지숙경 작가. 그는 손물레로 하나하나 빚어서 작업을 하는데, 장마철엔 쉰다. 습기가 많으면 기물이 늘어져 좋은 작품이 나오기 어렵기 때문.
2 도자기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정리해놓은 장.
3 집 안 구석구석에서 그의 감각이 돋보인다.
4 노란 쑥갓꽃을 넣은 샐러드. 그릇은 지숙경 작가의 작품으로 지요.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다 애면글면하는 세상살이를 뒤로하고 목가적인 삶을 선택한 지숙경 씨. 미국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해 영자 경제 전문지 기자로 일하다 유명 광고 대행사와 공연 기획사에서 굵직한 프로젝트와 공연을 기획하기도 한 잘나가는 커리어우먼이던 그가 도예가로 삶을 전환하고 아늑한 마을에 나무와 꽃으로 둘러싸인 프로방스풍의 집을 지은 것이 2000년 겨울의 일이다(<행복> 2004년 11월호 ‘자연이 가득한 집’ 칼럼에 소개되었다).

“사회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건 다 누려봤어요. 그래서 미련 없이 털어내고 심산유곡 산골짜기로 들어올 수 있었던 거죠. 자연스러운 게 가장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하니 집에서도 삶에서도 자연스럽지 않은 인공적인 것들은 아예 들이려 하지 않았어요. 도자기 작업을 할 때도 자연미가 없는 것은 눈에 거슬려 깨버리니까요.” 그의 이런 성정은 이 집의 몸통을 이루는 벽돌과 관련한 에피소드만 봐도 잘 드러난다. 집을 지을 때 해방 전부터 있던 인천의 제재소를 허문다는 소식을 듣고 한달음에 달려가 벽돌을 모두 공수해왔는데, 옛날 방식으로 만든 벽돌이 요즘 공장에서 찍어내는 벽돌보다 훨씬 견고하고 수분을 많이 흡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데 막상 가져와보니 상태가 너무 깨끗했단다. 세월의 흔적이 배어 있기는커녕 귀퉁이가 잘려 나가지도 않고 지나치게 말짱해 결국 2만 장 정도 들여온 벽돌의 귀퉁이를 일일이 망치와 끌로 잘라내고 긁어냈다. 한 1만여 장정도 하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인부 아저씨들이 자신들이 깨면서 할 테니까 들어가 쉬라고 어깨를 토닥여주더란다. 그랬던 그가 작년 가을 분당에 있던 갤러리를 정리하고 이곳 집에 갤러리를 증축해 지으면서 그와 ‘절대’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콘크리트와 철제를 들였다. 그런데 이 인공적인 소재들도 그의 손길을 거치니 마치 자연물 같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는 거 같아요. 나는 나무가 최선인 줄 알았거든요. 콘크리트나 철제 같은 소재는 나와는 절대 섞일 수 없는 인공적인 것이니까요. 처음에는 갤러리와 계단만 새로 지었는데, 집에 콘크리트 건물 하나를 던져놓은 것 같아서 영 거슬리더라고요. 그래서 집 앞 화단을 밀고 장독을 둘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내친김에 집 안도 불편했던 부분을 약간 고쳤죠. 뭐든지 그렇지만 집도 안팎이 어우러져야 균형이 맞으니까요.”

문과 창문이 나무라 운치는 있었지만 많이 낡아서 떨어지고, 겨울이면 바람이 새어 들어와 여간 추운 게 아니어서 그 부분을 손보고 나니 공간의 밸런스가 또 눈에 거슬렸다. 이왕 하는 것, 손댈 때 아일랜드 식탁과 선반을 철제로 새로 만들고 조리대 위는 콘크리트를 얹어 균형을 맞췄다. 그런데 사람이 어디 그리 쉽게 변하나. 예전에 집을 설계할 때도 토목공과 미장이들을 종일 쫓아다녔고, 가구나 소품도 일일이 직접 디자인해 만든 그이니 아일랜드 식탁의 앞판인 철제에 인공미를 덜어내고자 작업에 착수한 것. 조각하는 친구가 철제는 구두약을 바르면 자연스러워진다기에 열심히 발랐지만 성에 차지 않아서 다시 닦아내고, 어떤 분은 콜라를 뿌리라고 하고, 또 어떤 분은 소금물을 뿌리라기에 결국 두 가지를 다 뿌렸더니 너무 많이 부식돼서 다시 닦아내고…. 아무튼 이러 저러한 노고 끝에 한 달간의 공정을 거쳐서 탄생한 ‘작품’이 바로 이 집의 명물인 아일랜드 식탁이다. “사람이 가진 것 중 가장 믿지 못할 것이 눈인 것 같아요. 저는 참 변화가 없는 편인데 눈은 변하더군요. 작업실의 선반도 나무에서 철로 바꾸었더니 철이 주는 무게감 때문에 작품이 더 살고요. 자연스러운 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은 진리이지만, 인공적인 것도 어떻게 연출하고 풀어내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제가 자연에 기대어 살아서 많이 유연해진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 ‘짓다’라는 말은 참 아름답다. 집을 짓고, 옷을 짓고, 밥을 짓고…. 우리의 의식주를 이루는 것은 모두 이 ‘짓다’라는 말에서 생겨난다. 그는 갤러리를 지으면서, 집을 고쳤다. 아니, 고쳐 지었다. 고쳐 지으면서 부족한 부분은 채워졌으니 다시 한 번 심기일전할 기회를 맞았을 터. 이 집은 그가 자연에서 배운 지혜와 삶을 대하는 용기로 지은 특별한 집이다.


갤러리 옥상은 텃밭으로 꾸몄다. 옥상 텃밭이라는 것이 흙 높이가 얼마 안 돼서 작물의 키가 30cm보다 작아야 한다고. 이곳에선 주로 쌈 채소와 허브를 재배한다.

1 텃밭에서 거둔 채소로 차린 밥상. 지숙경 작가는 요리 솜씨도 출중해 그에게 도예를 배우는 회원들에게 요리사 역할도 한다.
2 조선 작약이 필 때 정원이 가장 아름답다.
3 자연에 잘 어우러져서 ‘야생 정원’ 같지만 그의 정원이 아름다운 것은 그가 ‘적당히’ 관리하기 때문. 
4 가마터 옆 토방은 손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 흙집이라 안에서 쉬다 보면 어느새 숙면을 취해 몸이 개운해진다고.

4월 말과 10월 말에 바빠지는 가마지만 그렇다고 요즘 그가 한가한 것은 아니다. 작업 준비도 해야 하고, 숲도 정리해야 하고, 유약도 만들어놓아야 하고, 디자인도 준비해야 하고…. 자연에 기대어 사는 도예가도 치열하게 작업한다. 단,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면서.

경계수인 감나무 아래에서 식사하는 장면이 머릿속에 그려져 이 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추밭이던 땅을 일부러 매입했다. 그 덕분에 그와 가족, 지인들이 풍류를 즐기는 장소가 탄생했다고. 왼쪽 아래부터 민봉기ㆍ민하연ㆍ홍선일ㆍ지숙경ㆍ한인식ㆍ이숙자 씨.


정원이라는 게 10년은 늙어야 한다 헤르만 헤세도 말하지 않았나. “정원은 혼란스러운 세계에서 물러나 영혼의 평화를 지키는 장소”라고. 나무와 꽃과 교감하면 사람도 아름답게 나이 들어간다. 그래서 나무와 숲, 꽃이 있는 정원을 집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가내구원家內救援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지숙경 씨가 집 앞 정원에 공을 들인 이유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그는 자신이 빚은 도자기 ‘지요池窯’를 찾아 먼 길 마다 않고 오는 이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어 갔으면 했다.

“처음 정원을 만들 때는 나무도 죄다 직접 산에서 캐다가 심었어요. 돌길이며 돌탑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눈에 띄는 고운 돌을 주워다가 만들었고요. 자연에 어우러지는 정원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사람이 손을 안 댄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길에 난 잡풀도 잘 안 뽑아요. 통행에 지장을 주는 것만 솎아내죠.” 처음에는 꽃보다 풀이 많아서 정원 일이 바빴다. 주와 부가 바뀌어 도자기 빚는 일보다 바깥에서 나무 전지하고, 풀 뽑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게 10년쯤 묵으니까 정원이 자리를 잡아 정원다워졌다. 저희끼리 알아서 상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땅에 맞지 않는 꽃들은 퇴화하고, 맞는 꽃들은 번성하고. 그가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10년 세월이 걸린 것이다.

“정원의 나무와 꽃만큼이나 텃밭도 여기저기에 꾸려 채소밭도 엄청 많았어요. 오이며 가지, 딸기, 감자, 고구마…. 그런데 1천7백여 평을 혼자 꾸리려니 힘에 부치더라고요. 이곳으로 처음 들어올 때는 ‘내가 여기서 의식주를 다 해결하리라’ 하며 자연인을 꿈꿨거든요. 그런데 살다 보니 그것도 욕심이더라구요. 그렇게 자연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텃밭도 지금은 많이 줄여서 내가 먹을 양보다 조금 더 심어요. 오이 하나도 이게 진짜배기인데, 지요를 찾는 분들에게 이걸 먹이고 싶거든요.” 자연 속에서 살면 자연이 더 그리워지는 법이다. 그래서 그가 빚는 그릇도 점점 자연의 형상을 닮아간다. 앞으로 그가 빚는 도자기를 좀 더 유심히 볼 것 같다. 그가 빚는 그릇은 그가 자연 속에서 잘 살아낸 오늘의 반영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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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신민주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