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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반노니의 집 수력 터빈 공장에서 자라나는 가족의 꿈
마지스의 봄보 체어, 알레시의 지로톤도시리즈 등 세계적 베스트셀러를 디자인한 이탈리아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반노니Stefano Giovannoni. 그의 집이 새로운 디자인 전시의 메카이자 밀라노디자인위크의 핫 플레이스인 초나 토르토나Zona tortona에 있다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과거 산업 시대의 수력 터빈 공장을 3년간 손수 개조해 정성껏 완성한 공간. 일과 생활, 취미 활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시간을 이 건물에서 보내는 조반노니 가족에게 ‘집’은 행복이 자라는 놀이터요, 꿈의 공장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산업 디자이너 스테파노 조반노니와 아내 엘리사 조반노니.


책과 소품이 어우러진 가족의 서가. 천장까지 꽉 채우는 전면 책장의 붉은색 도장이 인상적 이다.

새로운 디자인 전시의 메카이자 이른바 뜨는 주거 단지로 꼽히는 초나 토르토 나의 비아 스텐달Via Stendhal 35. 스테파노 조반노니가 초나 토르토나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한 14년 전만 해도 이곳은 그저 삭막한 공장 지대였을 뿐 한창 뛰놀기 좋아하는 아이들에게 적당한 주거 단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스테파노 조반노니는 붉은색 벽돌로 감싼 시로니풍(이탈리아 미술가 ‘마리오 시로니’의 신고전주의 건축 사조)의 건물을 보는 순간 한눈에 매료되었고, 망설임 없이 가족이 평생을 뿌리내릴 보금자리이자 업무 공간으로 꾸미기로 결심했다.

스테파노 조반노니는 마지스Magis의 봄보 체어Bombo Chair와 알레시 Alessi의 지로톤도Girotondo 시리즈 등 ‘세계에서 가장 많은 카피를 만들어낸 제품을 디자인한 디자이너’라는 흥미로운 기록의 소유자이기도하다. 피렌체 폴리테크니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가 레모 부티에게 사사를 받은 그에게 창의적이면서 실용적인 제품 디자인을 선보이는 원동력은 바로 건축, 공감각적 성찰. 10m이상 천장이 꼭대기까지 뻥 뚫린 구조가 인상적인 이 건물을 보자마자 한눈에 반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디자이너 출신인 그의 아내 엘리사Elisa도 그의 선택에 흔쾌히 동의했고, 장장 3년에 걸쳐 대대적으로 공사를 진행했다.

우선 건물 1층에 가득하던 물을 퍼내고, 아찔하게 높은 천장은 층을 나눠 1층은 전시 공간, 2층은 디자인 스튜디오, 3층은 주거 공간으로 계획했다. 외벽을 다듬어 복원하고 옥상 테라스에 정원을 꾸미자 삭막한 산업 시대의 유물은 어느새 개성 넘치는 주거 공간으로 변모했다. 건축가 출신이기도 한 그는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면서도 최대한 건물의 원형을존중했다. 창문이 길게 나열된 기존 건축물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회랑 (corridor: 중정을 둘러싼 복도)식으로 벽체를 공간 중앙에 배치했다. 굴뚝을 유지하면서 생긴 자투리 공간은 게스트룸과 취미 공간(스테파노의 개인 주방)으로 꾸몄고, 건물 지하에 마련한 가족 전용 수영장은 수력 터빈 공장의 시설을 그대로 활용해 재미를 더했다.


1 거실. 넓은 실내 공간이기에 에드라의 온 더 록스On the rocks 소파와 카펠리니의 PO/9815 조명등처럼 일반 주거 공간에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가구들이 잘 어우러진다. 천장과 벽, 바닥을 흰색으로 칠해 가구와 소품이 더욱 두드러진다.
2 부부의 침실. 거대한 중세 프레스코화와 점묘 기법이 돋보이는 카펠리니의 프로스트 체어, 모로코에서 구입한 1달러짜리 플라스틱 화분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스테파노가 설계를 맡았다면 아내 엘리사는 인테리어와 데커레이션을 진행했다. 엘리사는 제품 디자이너인 남편이 디자인한 가구와 제품 그리고 그의 컬렉션이 눈에 띄도록 벽과 바닥을 모두 흰색으로 마감했고, 회랑식벽 속에 수납공간을 짜 넣어 공간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주방은 녹색, 서재는 빨간색, 아이들 방은 파란색 등으로 테마 컬러를 정해 부실별 특색을 살린 것이 특징. 또한 모로코에서 구입한 1달러짜리 플라스틱 소품부터 억대를 호가하는 에토레 소트사스Ettore Sottsass의 아트 퍼니처 등 중세 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동양과 서양, 고전과 키치 등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다채로운 컬렉션을 총망라한 주거 공간은 흡사 디자인 미술관을 방불케 해 방문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언뜻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이들 요소들은 디자이너 부부의 탁월한 큐레이팅을 통해 아주 근사하게 어우러지는데, 거실 한편에 놓인 인도 사원의 처마와 그 앞에 제단처럼 둔 멤피스의 가구는 마치 원래 짝인 듯 멋스럽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아이템들이 만들어내는 부조화 속 조화가 더욱 생동감 넘치는 흥미로운 공간을 완성한다. 오죽하면 매년 이 집에서 열리는 파티에서 만난 디자인 관련 기업의 CEO와 디자이너들이 하나같이 이 부부의 재기 발랄한 센스에 매료되어 청소라도 해주며 이 집에 살아보고 싶다고 너스레를 떨겠는가.


베니스 유리 장인이 만든 은세공 유리 탁자가 에메코의 스틸 의자, 알루미늄 주방 가구와 어우러진 주방. 내추럴한 그린 컬러로 도장한 벽과 자연 채광이 들어오는 중정이 연결되어 한결 이채로운 느낌이 든다.


로코와 바스코 두 아들은 어린 시절부터 사이좋게 한방에서 생활하며 자랐다. 집중력을 높여주는 파란색을 주조색으로 선택. 컬러와 패턴이 돋보이는 멤피스의 아트 퍼니처와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를 표현한 카펫의 패턴이 공간에 생동감을 준다.


1 스테파노 조반노니가 디자인한 마지스의 봄보 체어.
2 터키색 벽과 목조로 된 욕조가 인상적인 욕실. 이국적 소품이 공간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



가족의 행복과 함께해온 지중해풍 주방 처음 만난 사람과 정치, 연예계 가십이 아닌 ‘요리’ 얘기로 수시간을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식도락의 나라 이탈리아. 지중해 문화권에서 나고 자란 스테파노 역시 촬영팀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자마자 요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에게 요리는 취미를 넘어선 행복이자 가족 간의 정을 돈독하게 해주는 따뜻한 매개체다. 유네스코가 보호 지역으로 지정한 청정 바다 친퀘테레Cinque Terre의 라스페치아 출신인 그는 특히 생선 요리에 일가견이 있다. 스무명이 족히 앉을 만한 커다란 테이블을 두고 생선 요리를 위한 1m 크기의 대형 도마, 싱크대, 대형 냉장고 등을 갖춘 보조 주방은 전문가의 주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아들 역시 엄마가 만든 요리보다 아버지의 지중해식 해산물 요리를 더 좋아할 정도. 능숙하게 회를 뜨는 한편, 일본 셰프 노부 마쓰히사와도 요리를 즐기는 등 그의 요리 실력은 프로에 가깝다.

해외 출장 중에도 틈틈이 그 지역의 재래시장과 수산 시장을 방문해좋은 식자재를 구입하는 ‘쇼핑’을 즐긴다니 요리에 쏟는 열정과 관심은 디자인 못지않다. 2006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새벽 6시에 홀로 수산 시장을 다녀와 일행들이 놀랐다는 에피소드도 전한다. “얼마 후 마스터 셰프 이탈리아에 참가해요. 디자이너 바르나바 포르나 세티, 야코포 포지니, 마리오 벨리니 그리고 이탈리아 디자이너와 조명등 회사 슬램프Slamp의 CEO 로베르토 질리아니 등과 함께 출연하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참치 요리를 선보일 계획이에요.” 요리에 쏟는 그의 열정은 주거 공간의 배치에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주방과 옥상 정원, 테라스까지 뚫린 보이드식 중정이 주거 공간 중심에 자리하고, 주방 한가운데에는 부부가 가장 아끼는 베네치안 무라노 유리 테이블을 둔 것. 이들 부부도 가끔 가구나 소품을 고를 때 이견을 보이기도하는데, 이 은도금 빈티지 테이블만큼은 한 치의 의견 차이도 없이 동시에 ‘이거다’ 싶었단다. “이탈리아는 가족 모임이나 모든 사교 활동을 주방에서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난 10년간 우리 가족이 가장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낸 곳이 바로 이 식탁이라 할 수 있죠.”


출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실 전경. 필리핀에서 공수해온 대형 원목 탁자와 가족의 친구인 디자이너 야코포 포지니가 선물한 해파리 형태의 샹들리에가 멋지게 어울린다. 거실 곳곳에 있는 조명등도 역시 가족의 친구인 톰 딕슨이 직접 선물한 것이다. 또한 다양한 시대와 문화적 아이템들이 섞여 있지만 모던함을 잊지 않은 것이 특징. 중세 시대의 초상화를 포토샵 작업으로 미니멀하게 변화시킨 액자와 중세 시대 프레스코화를 나란히 연출했다.


1 계단실에 놓인 로봇. 스테파노와 두 아들은 일본 만화 캐릭터와 로봇을 좋아해 피겨를 주거 공간 곳곳에 두었다.
2 주방과 거실, 옥상 정원과 연결된 보이드 중정.
3 외모도 취미도 비슷한 작은아들 바스코(왼쪽)와 큰아들 로코 형제.



취향을 공유하며 같은 꿈을 꾸는 가족 입주 전 장난꾸러기 소년이던 두 아들은 어느새 훌쩍 자라 건장한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되었다. 디자이너 부부의 예술적 취향과 디자인 안목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걸까? 큰아들 로코는 미술ㆍ음악ㆍ디자인 등 예술 분야에, 둘째 바스코는 건축에 관심이 많다. 스테파노는 이탈리아의 록 음악가인 프란체스코 렌가나 티모리아 등 지인들을 불러 옥상 정원에서 자그마한 음악회를 열곤 하는데, 그래서인지 로코는 특히 음악을 대하는 열정이 남다르다.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블랙 키즈를 가장 존경하고, 영국의 록 문화에 깊이 감동받은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영국 세인트 마틴의 아트 커뮤니케이션학과에 입학했다. 보컬 수업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록 스타든, 디자이너든 예술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며 눈을 반짝인다. 방학 동안 미국으로 음악 관련 서머 스쿨을 다녀올 계획이라고. 외향적이고 사교적인 로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얌전한 바스코는 어린 시절부터 쭉 건축가의 꿈을 키워나가고 있다.

열한 살 때 건축 프로그램 캐드CAD를 처음 배워 이 건물을 3D로 완벽하게 그려내 아버지를 놀라게 한 그는 자하 하디드 같은 건축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스테파노는 로코와 음악을 공유하고, 바스코와 건축물 관련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큰 기쁨이라고 말한다. 진로에 대해 어떤 주관적 조언을 하지 않고 아이들 스스로 소질과 관심을 키워가길 바라는 부부. 그러면서도 내심 아이들이 디자이너로 자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는데, 이제 곧 꿈이 실현될 듯하다. 이탈리아 디자인사에 큰 획을 그은 에토레 소트사스 부자, 카스틸리오니 형제처럼 유독 같은 취미와 꿈을 키워온 조반노니 가족 아닌가! 머지않아 ‘조반노니 패밀리’라는 이름의 메이드 인 이탈리아 가구나 소품을 찾아볼 수 있을 듯. 이탈리아 초기 산업의 흔적이 역력 하던 터빈 공장이 조반노니 가족의 손길과 온기가 스며들면서 어느덧 온 가족의 꿈이 자라는 ‘꿈의 공장’으로 변모했다.


옥상 정원 테라스. 스테파노 가족이 자주 파티를 여는 장소로 많은 사교 활동과 음악 공연이 벌어진다. 바실리코, 로즈메리, 민트 등 요리에 쓰는 각종 향료와 채소도 직접 재배한다.


거실 복도에서 바라본 부부 침실. 두 아들의 어린 시절 사진이 놓여 있다. 미니멀리스트 건축의 영향을 받은 스테파노는 개성 넘치는 형태와 강렬한 색상이 돋보이는 소품으로 주거 공간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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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여미영 | 사진 Santi Caleca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