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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노그래퍼 한진국 창조적 영혼이 춤추는 나의 무대, 집
육지에서 섬으로, 섬 반대편으로, 바다를 건너 더 작은 섬으로 향하는 여정은 끝날 것 같지 않았다. 계획과 달리 더딘 속도에 이내 마음이 조급해졌다. 여름의 끝자락을 잡기 위해 선착장을 가득 메운 관광객들을 헤치고 배에 오르자 비로소 파도가, 눈부신 햇살이 눈에 들어온다. 하늘을 보는 순간, 오늘 아침까지 육지에서 아등바등했던 일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하늘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만 다 같은 하늘이 아니었다. 어디부터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고 평온한 마을에 그림같이 서 있는 집. 무대 시각 디자이너로 활동하는 세노그래퍼 한진국의 제주 우도 집을 찾았다.

세노그래퍼(무대 시각 디자이너) 한진국 부부가 손수 고친 제주 우도 집. 재료와 디자인은 최대한 자연에 가까운 걸 선택하고, 컬러로 확실한 포인트를 주었다. 남편이 지은 집의 이름은 인디언의 인삿말 ‘미타쿠예 오야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제주를 사랑하고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은 언제나 환영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이렇게 뒷마당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삶이 꽤 살 만한 것으로 느껴져요.”

섬 속의 섬, 제주 우도의 작은 농가 주택을 손수 고쳐 그야말로 자연과 벗하며 살고 있는 세노그래퍼 한진국. 세노는 라틴어로 무대, 그래퍼는 디자인이란 뜻. 세노그래퍼scenographer를 우리말로 풀면 ‘무대를 디자인하는 사람’으로 단순한 세트 디자인보다는 공간을 시각화하는 일을 총칭한다고 보면 된다. 연출가가 배우를 상대로, 안무가가 무용수를 상대로 작품을 이끌어간다면 세노그래퍼는 공간 전체의 개념을 연출한다. 한진국 씨는 여기에 의상 연출까지 맡는다. 연극과 패션, 건축, 심리학까지 섭렵하고 작품의 콘셉트는 물론 배우의 감정선까지 파악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의 어릴 적 꿈은 무용수였다. 한국무용이라는 걸 처음 봤는데 옷이 얼마나 화려한지 그날로 춤을 추겠다고 결심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연극반에서도 활동했다. 원하는 대학 무용과에 입학했을 때는 꿈을 다 이룬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춤이 아니라 무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저는 생각의 전개가 빠르고, 스스로 장점과 한계를 정확히 알아요. 군무를 하기엔 개성이 강했고(튀어 오르고 싶었고), 빼어난 무용수가 되기엔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니었죠. 그리고 무대가 보였어요. 외국 무용단의 공연과 우리 공연을 비교했을 때 부족한 점이 뭘까, 무대 밖으로 나오니 오히려 무대가 객관적으로 보이더라고요.”

빨간색과 파란색의 시각적 대비가 인상적이다. 부엌과 AV룸 사이 벽면, 자투리 나무에 색색의 원단을 씌워 장식했다. 우도에서 영감받은 색과 패턴으로 하나씩 천천히 작업 중이다. 
지도 교수는 이제 더 이상 춤을 추지 않고 무대 디자인을 공부하겠다는 제자에게 역정은커녕 격려와 기회를 주었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는 무대 위에 서는 것과 기획을 같이 맡았고, 대학교 4학년 때는 김정옥 선생의 극단에서 연극을 배우며 슬로바키아 연극제에 배우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리고 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프랑스의 무대예술학교로 유학을 갔다. 세노그래피와 영화 세트, 실내 건축을 가르치는 전문 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귀국 후 세노그래퍼로 활동하며 의상까지 영역을 넓혔다. <심청> <에클립스> 등 새로운 무대 연출로 화제를 모으는 것은 물론, 지난 2002년 월드컵 개막식 공연의 의상을 연출했으며, 2004년 아프리카 축구선수권 대회, 2005년 인천 아시아 육상 경기 선수권 대회 개・폐막식 의상 감독을 했다. 최근에는 12월 10일 국립극장에서 시작하는 레퍼토리 마당놀이 <춘향이 온다> 공연의 의상 디자인을 맡아 진행 중이다. “춤을 추고 연기도 해봤으니 확실한 강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단순히 시각적으로 구성하는 것을 넘어 무용수가 무대에 섰을 때의 동선을 같이 생각하다 보니 가려운 곳을 잘 긁어줬달까요?” 무대 디자이너는 시인이자 화가이자 건축가라는 말도 덧붙였다.

왼쪽 입식 주방의 바닥을 메워 건식 욕실을 만들었다. 바깥으로 통하는 문을 막고 문 자리에 파란색 ‘문’을 그린 뒤 앞쪽에 고양이발 욕조를 두었다. 바닥은 북미산 하드우드를 시공. 난방이 되므로 겨울에도 따뜻하게 쓸 수 있다.
오른쪽 침실은 평상처럼 전체적으로 바닥을 한 단 높인 뒤 침대에 캐노피를 제작해 아늑하게 연출했다.

“무대는 극장에 들어온 관객이 마주하는 작품의 첫 얼굴이에요. 막이 오른 뒤 색색의 조명과 배우를 만나 무대가 깨어나면 비로소 이야기가 시작되죠. 작품을 생각하지 않고 너무 시각적으로 큰 장면이 이어진다면 이는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없어요. 배우들의 감정선을 방해하거나 동선을 흐트러뜨리는 구성도 좋지 않고요. 집이 딱 그래요. 우도 집은 우리 부부에게 딱 맞는 무대죠.”

우도에서 2년만 살아볼까?
바닷가에서 주워온 돌과 자갈을 깔고 기존 집에 있던 항아리를 재활용해 꾸민 앞마당을 지나 노란 문을 열면 가운데 거실(마루)이 있고, 양쪽으로 방이 두 개씩 있는 전형적 제주 겹집 구조다. 왼쪽은 침실과 욕실, 오른쪽은 AV룸과 부엌으로 사용. 욕실은 원래 입식 부엌이 있던 자리인데, 바닥을 메워 건식 욕실을 만들었다. 집의 원형을 지키고 싶다는 고집으로, 화장실은 여전히 밖에 두었다. 건식 욕실 뒤로는 세탁기 등을 둔 다용도 공간이 자리한다. 욕실과 부엌 사이에 현관문과 같은 노란색의 나무 문이 하나 더 있다. 그 문을 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시선을 거스르는 것 하나 없이 쭉 뻗은 파란 하늘과 낮은 돌담 그리고 자연스러운 초록 들판(마치 다른 세상과 통할 것 같은 문이다!).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자란 잡초 사이 에 오솔길처럼 연출한 하얀 덱을 지나면 돌담 아래 자그마한 ‘무대’가 펼쳐진다.

그가 우도행을 택한 것은 제주에 대한 막연한 판타지나 전원생활의 로망 때문은 아니었다. “남편이 제주 올레길 여행을 갔다가 우도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에 반한 거예요. 우도봉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는데 양평 집에서도 볼 수 없던 원초적이고 선명한 색이 보이더래요. 그때만 해도 가구 수가 1천이 채 안 될 때였으니까요.”

왼쪽 현관에 들어서면 거실을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있는 겹집 구조. 한진국 씨가 앉아 있는 좌식 테이블의 색색 다리가 바로 남은 목재에 색칠한 후 이어 붙여 만든 것으로 과감한 컬러 매치가 돋보인다.
오른쪽 목공 창고 옆 게스트룸. 천장을 털어내 박공 라인을 살리고 메자닌 구조로 다락방을 만들어 공간의 효율성을 높였다. 다락이 침실이요, 이층 침대에 소파까지 일체형으로 제작해 편리하다. 

부부는 그림 그리는 작업실로 사용할 요량으로 작은 농가 주택을 알아봤다. 미대 입시를 포기하고 다른 집 아들처럼 무난한 학과에 진학해 평생 직장 생활을 한 남편은 늘 미술 공부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미국 연수 시절 단기 미술 수업을 받으며 언젠가는 꼭 그림을 그리겠다는 꿈도 조금씩 구체화한 그였다. 처음에는 도배, 장판 등 기본적인 것만 보수하고 지낼 계획으로 집도 보지 않고 소개받아 구입한 농가 주택. 집은 고팡, 입식 부엌, 삼나무 마감 등 1960~1970년대 제주 가옥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해 잘 드는 앞마당 그리고 낮은 하늘이 끝없이 펼쳐지는 뒷마당까지 천혜의 자연이 받쳐주니 잘 고치면 산토리니 부럽지 않은 멋진 집이 탄생할 것 같았다.

“도시 생활이 싫어 10년 전부터 양평 전원주택에 살았어요. 하지만 전원주택도 사실 위치만 근교일 뿐이지 실내는 아파트와 똑같이 찍어낸 집이니 손맛이 난다거나 취향을 오롯이 반영했다고 볼 수는 없어요. 입주하고 시간이 꽤 지나니 곳곳이 노후되고 마감재가 틀어지는 등 손봐야 할 게 많았죠. 그래서 목공을 배워 집을 싹 고친 터였어요. 이 집도 직접 고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제주 가옥의 특징인 고팡(다락)이 이 집의 확실한 개성을 드러낸다. 고팡 테두리는 붉은색 페인트를 칠하고 문짝은 블루 컬러로 도장했다. 작은 고팡엔 책을 수납하고 큰 고팡은 매트와 쿠션을 넣어 영화 관람 전용석으로 이용한다. 
개조의 원칙은 간단했다. ‘개성 있는 집을 만들자’는 대전제 아래 첫째는 친환경, 둘째는 재활용, 셋째는 되든 안 되든 완벽한 DIY로 하자. 또 가능하면 제주와 우도의 특징을 없애지 않고 재생하고 싶었다. 꼭 근사한 한옥이나 돌집만이 우리의 고유한 문화인가. 살아온 과정 자체가 빈티지요, 새것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시간의 깊이가 더해져 그 자체로 새로운 문화가 될 테니. 예를 들면 제주에는 고팡이라는 벽장 문화가 있다. 이 집에도 방마다 고팡이 남아 있었는데 모두 그대로 살렸다. 부엌 고팡은 안에 선반을 짜 넣어 찬장으로, AV룸 고팡은 매트와 쿠션을 넣어 영화 보는 자리로 활용한다. 손님이 오면 AV룸의 다락에 앉는 걸 좋아한다.

의상의 기본은 원단, 집의 기본은 마감재

“업자에게 맡기면 일을 편하게 하려고 표준화한 것들을 이용하죠. 맞춤이라고 하지만 완벽한 맞춤이 아니에요. 어쨌든 살 사람이 직접 하면 재료는 좋은 것만 쓸 테니 안심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대로 하니 그야말로 맞춤 집이죠. 비용도 3분의 1밖에 들지 않고요.”

거실 정면 뒷문을 열면 드라마틱하게 펼쳐지는 야생초 정원. 낮은 스카이라인과 하얀 덱이 어우러지며 이국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오솔길처럼 산책을 즐기기 좋은 덱은 땅에서 약간 띄워 시공한 것. 맨발로 다닐 수 있도록 부드러운 원목 패널에 친환경 페인트를 칠해 제작했다.
남편 김우진 씨는 침실 마루조차 바닥재를 사다 직접 시공했다. 타일도 마찬가지다. 바닥에 붙이는 타일은 압착 시멘트로 밑작업하고 들쑥날쑥 불규칙한 느낌을 살려서 손맛을 냈다. 직접 하되, 재료는 무조건 좋은 걸 쓰자는 명확한 원칙이 있었다. 페인트와 스테인은 친환경 제품만 사용했고, 가구를 제작할 때도 MDF나 플라스틱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전문가의 손을 빌린 작업인 내부 벽 마감은 생태 건축을 하는 전문가를 찾아서 안에 단열재를 넣고 겉은 벽지 대신 친환경 생석회로 마감했다.

“직업 때문에 화려한 걸 좋아할 것 같지만, 반대예요. 프랑스에서 건축 수업을 하면 대부분 도회적이고 세련된 설계를 그리며 근사한 콘셉트를 설명하죠. 하지만 늘 ‘나라면’이라는 단서가 붙어요. 멋지긴 하지만 살고 싶지는 않다고요. 첫눈엔 디자인적 시선을 끌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냥 편한 게 좋더라고요.”

왼쪽 파란색과 노란색의 대비가 경쾌한 대문은 전통 제주식으로 만들었다.
오른쪽 뒷마당에서 햇살을 즐기는 부부. 

거실 바닥과 벽면 삼나무 패널은 기존에 있는 것을 그대로 재활용했다. 천연 원목으로 마감하고 남은 것들을 조각보처럼 이어 가구를 지은 아이디어도 재밌다. 나뭇조각을 색칠한 후 연결해 좌식 테이블의 다리로 사용하는가 하면 목욕탕에 깔고 남은 북미산 집성목을 높이를 달리해 단면으로 붙여 월 데커레이션을 완성했다(한진국 씨는 의상 제작 후 남은 천들로 나무토막을 패치워크하는 중이다. 주제는 ‘우도’). 그전에는 새로운 가구가 필요하면 어디서 고를까 고민했는데, 이제는 만들어진 가구에 내 마음을 맞출 필요가 없어 좋다. 대신 어떻게 하면 좀 더 공간에 어울리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게스트룸 다락까지 직접 시공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창고 옆 게스트룸의 박공지붕을 살리고 나니 다락방을 시공하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고(한진국 씨의 의견이다), 남편은 다락을 만들기 위해 무려 3개월간 연구했단다.

“뒷마당 테이블 같은 경우도 나무의 옹이를 피해 칠하면 느낌이 좋아지거든요. 세 번을 덧칠해야 하는데, 혼자 작업하다 보니 무척 오래 걸려요. 뒷마당 역시 오솔길 같은 덱을 만들기 위해 나무 아래 모두 폐경계석을 깔았어요. 제가 밑작업을 하면 아내는 멀찌감치 서서 팔을 저으며 위치만 잡아요. 이렇게 놔봐라, 저렇게 놔봐라….” 툴툴대는 듯하지만 그는 사실 아내가 무엇이 필요하다고 하면 몇 달이 걸려도 꼭 해내고 마는 자상한 동반자다. 테이블, 조명등, 의자는 기본, 안방 침대, 모든 덧문, 굴뚝까지 모두 손으로 만든 것들이다. 2년만 살자고 했는데, 고치는 데 2년이 걸렸다.

왼쪽 식물을 심을 수 있는 아웃도어 벤치. 돌담은 이 집에서 유일한 전문가 솜씨로 담 높이를 낮추기 위해 겹담으로 쌓았다.
오른쪽 노란 덧창과 널찍한 라운지 체어 모두 남편 김우진 씨가 천천히 하나씩 만든 가구다.

천천히 그리고 불편하게
무엇보다 이 집은 색이 예술이다. 아니, ‘칠’이 예술이다. 침실은 옐로, 욕실은 블루, 주방은 레드 등 방마다 컬러 주제를 달리한 것. 자칫 부딪칠 수 있는 컬러를 과감하게 사용한 것도 특징이다. 붉은색에 로열 블루를 매치하거나 로열 블루에 노란색, 노란색에 짙은 갈색을 매치하는 식이다. 대신 모든 베이스 컬러는 화이트가 아닌 카푸치노 화이트 컬러다. 카푸치노 컬러는 다른 컬러를 조금씩만 칠해도 중간색이 만들어지고 또 원색을 중화하는 역할을 한다. “유럽의 실내 건축이 발달한 이유가 단순히 인테리어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죠. 외피를 유지하면서 안을 쓰임에 맞게 고치려니 더 어려울 수밖에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며 만들어지는 시간의 층위는 새것이 결코 따라갈 수 없어요. 이 집에 저희 이야기를 얹으면 또 다른 깊이의 스토리가 나오겠죠.”

집은 적당히 불편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불편할수록 조심하고 시간과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이불 빨래를 해서 다듬이로 정성껏 두들긴 후 잠자리를 챙기던 기억, 큰 살림이라 장 담그고 김치 담그는 게 일상이던 기억…. 어릴 때는 짜증스러웠을 때도 있었지만 그 과정을 거쳤기에 지금의 불편함도 참을 수 있는 거라고, 노지에서 키운 유기농 귤에 붙은 벌레가 징그럽기는커녕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왼쪽 지붕 아래 랜턴이 매달린 풍경 또한 감성적이다.
중앙 고재 느낌을 내기 위해 중간 중간 글라인더로 갈아내며 몇번을 칠해 완성한 좌식 테이블. 뚜겅을 열면 안쪽에 수납할 수 있다.
오른쪽 빨간색을 테마로 꾸민 부엌. 구석 작은 선반조차 예사롭지 않다.

“저희 집엔 TV가 없어요. 그래서 아침에 눈떠서부터 잠잘 때까지 할게 참 많지요. 그리고 둘이 온종일 붙어 있으니 예민해지거나 의견이 부딪치는 일도 있지만 그럴 때도 그냥 참자, 해요. 불편한 생활을 하는 만큼 느리게 가는 게 익숙하고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뒷마당의 잡초를 죄다 뽑았어요. 허브나 꽃을 심으려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런 게 바로 야생화, 야생초 아닌가 싶더라고요. 수세기를 살아왔을 이곳만의 토종 야생초지요.”

새벽 비행기로 제주에 내려가 성산항에 가서 배를 타고 또 우도로 이동하면서,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으냐며 투덜거렸다. 제주 시내 차가 막히는 것도, 배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도, 줄 서는 것도 모두 불만이었다. 마지막 배를 놓치기 전에 부랴부랴 촬영을 마쳐야 한다는 조급함에 야생의 총천연색과 조우한다는 우도봉도, 산호 바다도 보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하늘, 같은 시간 부부는 바람 앞에 여유로웠고, 가끔 하늘을 봤으며, 나란히 앉아 햇살을 즐기며 커피 한잔 즐기는 일상을 행복해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이들처럼 제 힘으로 집 한번 고쳐보시길. 너무 완벽하게 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할 만하다고, 또 그 시간을 마지막까지 천천히 즐기시길. 살면서 하나씩 고치는 재미 또한 어여쁜 집과 더불어 오래오래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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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