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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레지던스 ‘고이’ 쉬다 가시옵소서
느리게 산다는 건 과거와 현재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삶의 모습이 아닐까. 공장에서 찍어낸 똑같은 제품과 한 번 그냥 버리는 소모품이 아니라 작은 물건 하나라도 오래 사용하며 음미할 수 있는 삶. 가회동에 꽃피운 한옥 레지던스 ‘고이’는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앞마당에서 바라본 침실. 
2 입식과 좌식을 섞은 거실에는 그라브의 두 디자이너가 짠 서랍장과 소파를 놓았다.

인사동 곳곳마다 외국 여행객을 위한 기념품 판매점이 ‘한국 전통 공예’란 이름을 내걸고 줄지어 있다. 하지만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국적도, 만든 사람도 알 수 없이 단순히 전통 문양을 새겨 넣거나 겉모습만 따라 한 물건이 대부분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대부분의 한국인조차 막연하게 알고 있는 전통의 수준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 다행히 최근 전통 공예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늘고 있다. 무늬나 형태같이 누구나 흉내 낼 수 있는 전통의 단면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가치에 공감하고 눈을 뜬 것이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
가회동 30번지 초입, 좁은 골목길에 자리한 ‘고이goi’라 적힌 한옥. 몇 년 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근무한 정진아 씨가 운영하는 이곳은 일상 속 전통 가치를 널리 공유하고 싶은 바람이 담긴 한옥 레지던스다. 그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친구에게 자신 있게 소개해줄 숙박 시설이 마땅찮아 직접 그런 공간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단순히 전통 문양이 들어간 이불을 깔아놓거나 선반 위에 백자를 올려놓은 그런 공간은 아니었다. 한국의 과거와 현재가 좀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일상생활에 스며든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미술관에서 일하는 동안 국내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고 차근차근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온 그는 가회동 골목을 뒤져 조그마한 한옥을 찾아냈다.

 
3 침실에는 아씨방의 두툼한 목화솜 이불을 깔았다. 구석에 걸어놓은 담요는 코흔 제품. 
4 문을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부엌. 최소한의 것만 두었다. 

‘만약 우리나라가 빠르게 산업화되지 않고 좀 더 준비된 상태에서 서서히 발전했다면 서울의 라이프스타일은 지금과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진아 대표는 이런 질문을 던졌고, 고이는 질문의 대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고이를 준비하면서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났다. 현대미술을 전공한 탓에 전통 공예에는 거의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주변의 조언을 얻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가장 먼저 평소 알고 지낸 포스트포에스틱 조완 디렉터에게 로고를 부탁하고,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인 그라브의 남궁교・이병익 실장을 소개받았다. 정진아 대표는 두 디자이너에게 고이가 추구하는 공간 철학을 열심히 설명했고, 대학에서 공예를 공부한 그들은 정 대표의 뜻에 공감해 적은 예산에도 기꺼이 동참했다.

2004년에 증축한 한옥을 새롭게 꾸며 완성한 고이는 21.87㎡ (약 6.6평)라는, 면적으로만 따지면 혼자 살기에 적당한 크기다. 하지만 살림이 쌓여 있을 땐 본래 크기보다 더 좁고 답답해 보였다. 좁은 공간을 어떻게 숨이 틔게 할 것인가가 레노베이션의 관건이었다. 주방, 거실, 침실로 나눈 실내에는 키가 큰 가구를 들이지 않아 공간을 최대한 확보했고, 디자인이 단순한 서랍장과 가구를 짜 넣었다. 작은 앞마당에는 돌을 깔고 빨래를 겨우 널 정도로 좁은 뒤뜰도 말끔하게 정리했다. “주방, 거실, 침실로 세 공간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입식 생활이 자연스레 좌식으로 변화하도록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방과 침실 사이에 있는 거실에는 입식과 좌식이 혼재하도록 했습니다.”

1 거실에 놓은 가구와 조명등은 그라브에서 직접 디자인해 제작했다. 
2 국내 브랜드 코흔이 제작한 코스터와 도예가 권나리의 화병, 조원석의 머그잔 등 국내 디자이너와 공예가의 작품을 사용하도록 구비했다. 
3 거실 서랍장 위에는 전주에서 사온 빗자루, 아피스 볼펜, 도루코 칼, 프레임 향초 등을 비치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로 채워가는 서울 사람 집
고이는 순우리말로 ‘정성을 다하여’라는 뜻이다. 정진아 대표는 그 이름에 걸맞도록 소품 하나도 정성을 다해 준비했다. 서울이 이렇게 초고속으로 발전하지 않았다면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낸 제품이 아니라, 시간이 조금 걸리더라도 우리 문화의 정신이 녹아든 공예품을 지금보다 더 가까이 두고 살았을 것이라 상상했다. 그래서 고이에는 누구나 알 만한 해외 유명 브랜드가 아니라 되도록 국내에서 제작한 제품을 찾아 비치했다.

“주방에서 화장실까지 모든 물품을 차근 차근 준비했습니다. 오디오나 테이블 조명 등 같은 가전제품을 제외하고는 우리 나라 지역 특산품이나 공예가, 디자이너가 만든 작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렇지 않은 것은 앞으로 하나씩 바꿔가려고 합니다.”

여주에 있는 도자기 공장 도성도요에서 백자 반상기 세트를 주문했고, 전주에서 바구니를, 담양에서 나무젓가락을 구했다. 한국에는 가업을 대대로 이어가는 일이 거의 드물어서 오랜 세월 동안 품질을 인증받은 제품을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그는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열심히 발품을 팔아야 했다.

4 고이의 정진아 대표와 그라브의 남궁교・이병익 실장. 
5 여주 도성도요에서 구입한 백자 반상기 세트와 담양에서 구입한 나무젓가락.

거실 서랍장 안에는 오래전부터 만년필을 만들어온 국내 제조업체 ‘국제아피스공업사’의 볼펜과 국내 면도기업체 ‘도루코 DOROC’의 칼을 구비해놓았다. 50여 년 동안 한 제품만 생산해 온 회사의 제품을 사용해 한국 근대 문화의 향수를 전하려고 한 것. 침실에는 침대 대신 두툼한 요를 깔고 남대문에서 40년 동안 목화솜을 다룬 ‘아씨방’의 100% 목화솜 이불을 덮었다. 목화솜 이불은 햇볕에 자주 말려서 숨을 살려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지만, 관리만 잘하면 대를 이어서 쓸 수 있어서 고이가 추구하는 철학과 잘 맞아떨어진다. 담요나 코스터 같은 패브릭은 ‘코흔Cohn’이라는 국내 텍스타일 디자이너 브랜드의 것이고, 비누와 샴푸・린스 등은 고이만을 위해 제작한 ‘프레임’ 제품이다. 선반과 테이블 위에는 도예가 권나리와 윤상혁, 디자이너 최정유 등 작가 정신이 깃든 화병과 그릇을 두었다.

사실 공방에 앉아 자신의 손끝에 의지해 작업하는 공예가는 대부분 마케팅이나 홍보에 밝지 않아 정진아 대표 같은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생산자와 소비자를 이어주는 중간 매개자 역할을 자처한 그는 고이를 준비하면서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고 한다. 요즘엔 다행히 롱 라이프스타일(지속성 있는 생활 방식)을 추구하는 브랜드를 개발하는 사람이나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라 주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고이는 작은 오디오 외에 텔레비전 같은 엔터테인먼트용 전자기기를 구비하지 않았다. 고이의 또 다른 뜻인 ‘편안하고 순탄하게’처럼 이곳에서 머무는 시간만큼은 좋은 생각만 하고 제대로 휴식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고이를 2호점, 3호점 계속 늘려갈 계획이다. 고이가 처음 안착한 가회동 골목의 시간처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뜻을 이어갈 것이다.


촬영 협조 고이(070-4116-8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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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서 기자 | 사진 이우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