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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 합포구 주택 대대손손 살아갈 집
모든 건축가의 바람은 아마도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간직한 건물을 짓는 것일 터. 그런 점에서 마산 주택은 건축가의 바람과 건축주의 요구가 딱 들어맞아 태어난 곳이다. 건축주가 바란 건 명확했다. 1백 년 이상 갈 수 있는 집. 부부의 소망이 담긴 이 집은 앞마당에 심은 소나무와 함께 50년, 1백 년 우직하게 자리를 지킬 것이다.

15년 전부터 조금씩 땅을 구입해온 노승철・권민자 부부는 자신들의 자녀 그리고 그들의 아이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튼튼한 집을 짓는 것이 꿈이었다. 2층 넓은 거실은 가족 행사가 많은 이 집 주인이 가장 신경 쓴 공간.
대문 안에 들어서자 매콤한 양념과 찌릿한 젓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오늘은 이 집의 김장 마지막 날이다(이 취재는 지난 12월 10일에 진행했다). 노승철・권민자 부부는 나흘 동안 김치를 5백20포기 정도 담갔다고 한다. 친인척과 학교 동기, 후배 그리고 전국 곳곳의 고마운 사람들에게 보내려고 계산해보니 5백 포기가 훌쩍 넘었다. 자녀 둘을 둔 가정집에서 담그는 것치고는 많아도 너무 많은 양. 대문 안 바로 옆에는 김치를 저장하는 창고가 15~20m 정도 길이로 이어져 있다. 이런 시설까지 구비해놓고 매년 평균 5백 포기씩 김치를 담근다고 하니, 보통 가족은 아니구나 싶었다. 건물 입구로 향하는 창고 겸 주차장 옆길을 걸어 올라가니 기둥 사이사이로 드넓은 정원이 펼쳐졌다. 범상치 않은 고태의 소나무들과 커다란 돌하르방이 시야에 들어오자 노승철・권민자 부부가 살고 있는 3층짜리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1 한쪽만 고정하고 다른 한쪽은 공중에 띄운 캔틸레버 구조에 납작한 벽 기둥을 만들어 받쳤다. 이 공간은 야외 테라스로 사용한다. 기둥과 벽돌 벽 마감은 공사 기간 동안 노승철 씨가 가장 세심하게 신경 쓴 부분. 
2 2층 복도 오른쪽 끝에 주방이 자리한다. 유병안 대표는 자신이 설계한 집의 공사가 끝나면 항상 원목 식탁을 만들어 선물한다. 
3 1층 현관 바로 오른쪽에 있는 부부 침실. 노승철 씨가 퇴근 후 가장 먼저 찾는 공간이기 때문에 현관에서 가장 가까이 위치한다. 
4 부부 침실 반대편에는 부부만의 거실이 있다. 2층 거실과 달리 가구를 새로 구입하지 않고 부모님이 물려준 앤티크 가구를 그대로 사용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하며 지은 집
부부는 오랜 세월 마산에서 살았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이 일대가 산과 농장이었어요. 학교에서 친구들과 이곳으로 소풍을 왔죠.” 남편 노승철 씨가 커다란 통창으로 내려다보이는 언덕 아래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릴 때부터 항상 아버지께서 큰아들은 땅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야 자손이 널리 번창한다고요. 저기 바로 옆에 보이는 산봉우리가 학봉이라고 하는데, 마산에서는 매년 정월에 저곳에서 굿을 합니다. 그만큼 풍수지리적으로 좋다고 해 15년 전부터 이곳 땅을 조금씩 샀습니다.”

열아홉 살 때부터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배운 그는 지금은 가업을 이어 마산에서 항업港業을 하고 있다. 그는 1960년대에 설립한 회사를 마산에서 손꼽히는 회사로 키워낸 주인공이나 다름없다. 장손이라 알게 모르게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짊어지고 살았을 터. 집을 짓겠다는 것도 장손으로서 책임감에서 비롯되었다.

15년 전 부부는 이곳 땅을 사고 집을 지었다. 2년 동안 땅을 평평하게 일구는 토목공사를 한 후 호박돌로 집을 지었고, 마당 한쪽에는 황토집도 만들었다. 그런데 10년쯤 지났을까, 집에 전기 누전과 배관 문제가 생겼다. 다시 새 집을 짓기로 결심한 부부는 지인의 소개로 건축집단 엠에이 MA의 유병안 대표를 만났다. 건축 사무소가 프로젝트 진행 여부를 결정할 때 시간과 비용은 둘째 치더라도 건축적 철학과 스타일이 맞는지 가 가장 중요하다. 유병안 대표가 부부의 집을 지어야겠다고 결심한 건 바로 그 점이 맞았기 때문이다. 미팅을 하고 헤어질 때쯤 남편 노승철 씨가 던진 한마디가 유 대표의 마음을 움직였다. “1백 년도 더 갈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습니다. 내가 아니라 내 자식, 손자, 증손자, 고손자… 대대로 물려줄 수 있는 집요.”

‘시간을 거스르는 건축(The architecture that transcends time)’을 일종의 슬로건으로 내세워온 유병안 대표는 그 말을 듣고 부부의 집을 꼭 지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외형이 화려한 것보다는 몇십 년 후 무심코 지나치다가 이집 참 괜찮구나 할 수 있는 집, 내부에 들어섰을 때는 공간적으로 재미가 있는 집, 그런 집을 짓고 싶었습니다.”

1 주방과 넓은 거실을 이어주는 2층 복도.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 오른쪽으로 두 자녀의 공간이 나온다. 
2 산 중턱에 위치한 이 집은 시원 한 전망을 자랑한다. 거실에 있는 바에서는 마산 항구가 내려다보인다. 
3 유병안 대표는 벽돌과 콘크리트 등 마감재를 달리해 공간을 구 분했다. 

설계는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에 시작했다. 설계에 앞서 건축주는 마당에 있는 황토집을 허물고 그 자리에 한옥을 지었다. 한옥에서 생활하면서 집이 지어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기 위해서다. 공사 기간은 1년이 훌쩍 넘었다. 부지가 워낙 넓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1백 년 가는 집을 짓고 싶은 건축주의 신중함과 꼼꼼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사무실이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어 건축주는 하루에도 서너 번은 올라와 공사 과정을 살펴보았다. 벽돌 간 간격, 외장재 질감, 타일 크기 등 세세한 부분까 지 직접 신경 썼다. 한번은 1층 외부에 벽돌을 쌓았는데, 완성된 벽을 본 그가 벽돌 간격이 조금씩 다르다며 처음부터 다시 쌓게 했다. 또 1층 외부 기둥의 마감재 질감이 더 거칠면 좋겠다고 해서 인부 여럿이 둘러서서 기둥에 붓질을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집이 완공된 후에는 마산에서 차로 4~5시간 거리인 서울과 경기 일대를 직접 돌아다니며 집 안에 놓을 가구를 고르고 또 골랐다. 그만큼 그는 온 정성을 쏟아부어 집을 지었다.

“15년 전에는 제가 살 집을 지었다면 이번엔 후세를 위한 집을 지은 거예요.” 공사 과정을 지켜보며 그가 그렇게 까다롭게 군 이유다. 지금은 부부와 독신인 자녀 둘이 전부지만 자녀가 결혼한 후 두세 가족이 함께 오래 살수 있는 집이어야 했다. 또 종손이라서 집안 행사가 많다는 것도 집을 짓는 데 고려해야 할 부분이었다. 유병안 대표는 1층은 부부가 살고 3층은 부부의 자녀가 살 곳으로 만들고, 2층 거실과 주방은 각자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면서 위・아래층에 사는 가족이 모이는 공간으로 정했다. “아들은 외국에, 딸은 서울에 살기 때문에 이 집에는 실제로 건축주인 부부만 살아요. 그래서 부부 침실과 부부가 손님을 대접할 작은 거실을 1층 입구 바로 앞에 두고, 집안 행사로 좀 더 많은 손님이 올 때 사용할 넓은 거실과 주방은 마산항이 내려다보이는 2층에 마련했어요. 그리고 가장 높은 3층에는 가끔씩 집에 오는 아들과 딸의 방이 있고요.”

4 3층에 있는 아들 공간의 침실. 
5
 대중목욕탕을 연상케 하는 2층 목욕탕은 친척 여럿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6 소나무와 돌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노승철 씨는 강릉, 고성 등 전국 각지에서 소나무와 바위를 구입해 정원 곳곳에 심어놓았다. 1년에 두 번씩 서울에서 소나무 전문가가 내려와 관리한다. 

집 속의 집
이 집은 하나의 건물이지만 가족이 쓰는 프라이빗한 공간과 외부 손님이 사용하는 공간 등 두 덩어리로 구분해 설계했다. 가족 공간이 있는 건물은 주택의 전형적 재료인 벽돌로 쌓았고, 외부 손님을 맞이하는 2층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를 사용했다. 3층짜리 사각형 건물 중간에 또 다른 사각형을 비스듬하게 꽂은 형태다. 건물 한쪽만 고정되고 다른 한쪽은 공중에 뜬 캔틸레버cantilever 구조를 의도했지만, 구조상 기둥이 필요해 납작한 벽 기둥이 2층 건물을 받치고 있다. 중간에 떠 있는 이 건물 내부가 거실과 주방에 해당하고, 2층 건물 밖 아래 공간은 야외 테라스로 사용한다. 1층과 3층은 남향으로 앉혔지만 2층은 전망을 위해 틀었다. 그래서 천고가 3400mm인 2층에서는 큰 창으로 무악산의 학봉과 마산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건축주가 요구한 다른 하나는 자녀가 결혼하면 배우자와 함께 살 수 있는 집이다. 그래서 3층에 있는 아들과 딸 공간은 각각 거실, 침실, 드레스룸, 욕실 등을 모두 갖추었다. 한마디로 집 안의 작은 집이다. 유병안 대표는 각 방의 거실 밖으로 넓은 야외 테라스를 만들어 나중에 아들과 딸 가족이 넉넉하게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가장 주안점을 둔 것은 집에서도 외기外氣를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건물 하나가 비스듬하게 틀어지면서 돌출된 부분을 모두 발코니로 만들었어요. 내부와 외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면서도 환기나 채광이 효과적이죠.”

남편 노승철 씨는 장손이라 가족 행사가 한번 열리면 일가친척 20~30명이 모인다. 그러니 매년 김장 김치를 5백 포기씩 담그는 것도 의아한 일이 아니다. 집이4 완공되기 전까지 건축주가 묵은 한옥은 이제 게스트 하우스로 사용할 생각이다. 또 집 안 현관은 신발을 스무 켤레 이상 벗어놓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만들었고, 작은 공용 목욕탕을 만들어 방문한 친척 여럿이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산과 밭이 대부분이던 마산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서일까, 노승철 씨는 소나무와 돌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정원에는 10년 전부터 강릉, 고성 등 전국 각지를 돌며 구입한 소나무와 바위가 곳곳에 놓여 있다. 제주에서 가져온 사람키만 한 돌하르방, 거북이 등껍질같이 쩍쩍 갈라진 홍송과 허리가 굽어 자란 늙은 소나무 10여 그루가 있다. 흡사 소나무 박물관을 연상케 한다. 1년에 두 번씩 서울에서 소나무 전문가를 불러 관리할 정도로 그에게 소나무는 자신의 생명만큼이나 귀한 존재다. 인터뷰가 끝난 후 사업상 급히 외출해야 한다면서도 그는 정원을 둘러보며 이곳저곳 꼼꼼히 살폈다. 아마도 그는 이 낙락장송을 가문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여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기개가 높아지는 소나무처럼 이 가족의 집도 세월과 함께 가지를 뻗어 풍성해지고 깊이를 더해갈 것이다.


건축가 유병안은 건축집단 엠에이의 대표다. 건축집단 엠에이는 유행을 따르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좋아지는 공간, 시간을 초월하는 건축을 추구한다. 대표작으로는 울산 인보성당, 송암천문대, 갤러리 시몬, 호텔 사월과 소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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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민서 기자 | 사진 김동오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