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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텔지어 힐로재 예술은 생활 속에서 시작한다
누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생활 속 미감과 흉내 낼 수 없는 디테일의 합. 노스텔지어의 한옥 호텔 중 길연에서 디자인한 힐로재는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공예품이다.

북촌 7경에 자리한 힐로재. ‘Hillo’는 ‘Hello’의 고어로, 환영과 언덕 위에 자리한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았다. 위채의 대청은 반침이 있던 벽을 확장한 뒤 통창으로 바꾸고, 수납장과 디스플레이 장을 구성했다. 통창 너머로 바라보이는 옆집 담장까지 근사한 아트월 역할을 한다.
이헌정 작가의 세라믹 테이블, 삼베로 마감한 주방 가구 등 서로 다른 질감이 모던한 조화를 이루는 다이닝룸. 옆집과 맞닿은 벽은 모두 이중 새시로 마감해 소음 걱정 없이 파티를 즐길 수 있다.
누린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것이 남의 집 구경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분명한 조건이 있다. 사는(만든) 이의 취향과 공간의 콘셉트가 확실하면서도 디테일 하나하나에 풍성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야 한다. 노스텔지어의 한옥 호텔 중 길연에서 디자인한 힐로재는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복작당 최고의 스폿으로 꼽힌다.

북촌팔경 중 으뜸인 7경에 자리 잡은 힐로재는 지은 지 10년 정도 된 개량 한옥을 개조한 한옥 스테이다. 40평 남짓한 한옥은 위채와 아래채 두 채로 구성되었다. 디자인을 맡은 길연의 이길연 대표(@kilyeon76)와 권용석·김근태 디자이너는 웅장하고 멋지다는 느낌보다 편안하고 포근한, 묵고 싶은 집 같은 느낌을 주는 데 집중했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생활 속 예술’이다.


위채는 외관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레이아웃을 손봤고, 아래채는 외관 내부 모두 모던 한옥으로 과감하게 바꿨다.
위채 대청에 자리 잡은 허명욱 작가의 롱 테이블, 수작업 흔적이 돋보이는 이헌정 작가의 세라믹 테이블, 탄화목으로 만든 임정주 작가의 스툴, 빛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박원민 작가의 레진 협탁, 박찬우 작가의 사진과 이은 작가의 부조 모두 쟁쟁한 작품이지만 마치 풍경처럼 공간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권은영 작가의 다과함, 류연희 작가의 쓰레받기와 주전자 그리고 이윤정 작가의 수건 걸이 등 작은 기물까지 기성품은 하나도 없다. 한옥 지붕과 나무 아래 툭툭 놓은 이헌정 작가의 도자 꽃을 마주하는 순간 절로 탄성이 쏟아진다. 디자이너 스스로 아트&공예 애호 가이면서 사용자이기에 가능한 디테일이다.

“고이 모셔두기만 하는 작품이라면 소장하는 의미가 있을까요? 실생활에서 써야 예술도 내 것이 됩니다. 주거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아트 퍼니처를 실제 사용하는 가구로 많이 제안하는데, 아끼고 모셔둘 거라면 절대 사지 말라고 조언하죠.”


위채로 들어서면서 바라보이는 메인 침실. 그릇장을 형상화한 박찬우 작가의 사진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때로는 어떤 용도로 만들었는지 정확한 답을 주는 ‘제품’ 보다 은유적 공예 ‘작품’을 통해 얻는 감각과 영감이 더 의미 있게 여겨질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허명욱 작가의 롱 테이블은 돌인지 바위인지, 테이블인지 벤치인지 모호해서 더 좋다. 앉아도 되고 누워도 되고, 차도 마실 수 있는 융통성 있는 돌! 그림 하나 보면서도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끌어내는 것이 바로 예술이 지닌 선기능 아닌가. 가족, 친구들이 둘러앉아 아트와 공예를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대청으로 향하다 침실의 열린 문 너머로 박찬우 작가의 사진 작품을 보면 순간 멈칫해요. 벽 너머로 낯선 깊이감이 느껴지거든요. 가까이 들여다보면 익숙한 그릇장 풍경이에요. 예술이 너무 무겁거나 추앙의 대상이 아니길 바랐어요. 그냥 생활의 한 장면으로 편안하게 즐기고 써보자, 사진도 찍고, 만져보기도 하고요. 하룻밤은 이 공간의 주인이니까요.”


우물을 연상케 하는 괴석 세면대와 쪽창 너머의 기와지붕이 힐로재의 관전 포인트. 세면대는 칠링 포트로 활용할 수도 있다.


감성과 정성이 빚어낸 디테일
여행자가 한옥 스테이에서 경험하고 싶은 것은 불편함을 감내하고 정숙을 요하는 ‘전통 한옥 체험’은 아니다. 하루를 묵든 한 달을 묵든 편리한 공간 구성은 물론, 혼자 오롯이 즐기는 휴식부터 친구들과 즐기는 시끌벅적한 파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힐로재는 위채를 침실, 아래채를 다이닝 공간으로 구분해 휴식과 어울림의 기능을 분리했다. 위채의 침실은 대청을 사이에 두고 양쪽 끝으로 배치해 두 가족이나 두 세대가 와도 불편하지 않다.

“다실, 반신 욕조 등 한옥 호텔에 있음 직한 요소를 최대한 덜어내고 아래채는 다이닝 공간(파티룸)에 집중했어요. 가회동 한옥은 이웃집과 밀집된 구조가 대부분이라 소음이 늘 걱정인데, 다이닝 공간은 외부와 맞닿는 창과 문 모두 이중 새시로 교체해 방음을 해결했어요. 음악을 듣거나, 친구들이 모여 늦은 시간까지 즐기기에 걱정이 없죠.”


침실, 대청, 다이닝룸 등 어떤 공간도 소외되지 않고 마당의 고즈넉한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침실과 욕실 사이 벽에 널찍한 세면대를 구성, 이은 작가의 세라믹 부조를 상부장처럼 매치했다. 작품을 생활 속에서 즐기는 디자이너의 감각이 돋보인다.
아래채는 위채와 대비되도록 블랙&화이트로 마감했다. 서까래를 흰색으로 칠하고 주방 가구 역시 삼베로 감싼 뒤 흰색 페인트로 도장, 구로 철판 마감과 블랙으로 도장한 기둥이 마치 단색화의 한 장면처럼 모던한 조화를 이룬다.

“공간을 디자인하면서 그곳에 딱 맞는 단 하나의 작품이나 제품이 떠오를 때가 있어요. 힐로재의 돌 세면대가 바로 그런 제품이에요. 우물처럼 우직하게 자리를 지키는 돌 세면대는 주물럭주물럭 손으로 빚은 세라믹 테이블을 품은 것은 물론, 돌멩이 형태의 롱 테이블까지 불러 모았죠. 고요할 때는 돌과 부딪치는 물소리가 폭포 소리처럼 청량감을 전해주죠. 아울러 샴페인이나 와인 칠링 버킷 역할도 하고요.”

두 번째 ‘와우 포인트’는 길연의 시그너처이기도 한 삼베 마감이다. 15년 전 자신의 집을 고치면서 삼베로 문짝을 마감하고 다양한 주거 프로젝트에 삼베 마감을 적용한 이길연 대표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좀 더 다양한 방식으로 삼베를 적용, 페인팅과 먹물 마감으로 발전시켰다. 위채 대청의 디스플레이 장은 삼베에 먹물을 입혀 조명이 은은하게 투과되는 느낌을 배가한 것이 특징이다.


‘생활 속에서 즐기는 예술’을 모토로 힐로재를 디자인한 길연의 이길연 대표.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한옥을 거스르지 않고 가구와 공예 작품은 물론 소품, 마감의 디테일과 텍스처까지 공간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섬세하게 조율했다.
보이는 곳을 시원하게 오픈 마감한 것 역시 관전 포인트다. 대청은 반침이 있던 벽을 바깥쪽으로 40cm 정도 확장한 뒤 통창으로 마감해 개방감을 더한 것은 물론, 옆집의 담벼락이 근사한 아트월 역할을 한다.

“비가 오면 옆집 담벼락으로 빗물이 떨어지는 장면도 상상했어요. 온돌처럼 뜨끈뜨끈한 바닥을 즐길 수 있도록 대청마루에도 타일을 깔았고요. 상업 시설이지만 실제 거주 할 때 고민의 공력을 똑같이 쏟아부었죠. 위채와 아래채를 오르내리는 데 불편함은 없을까, 아이들이 어디 부딪쳐서 다치지는 않을까…. 오히려 불특정 다수가 묵으니 더 많이 신경 쓴 것 같아요. 자식 키워 보내는 것처럼 이 집도 사랑 듬뿍 받고 잘 살면 좋겠어요.(웃음)”

한옥은 그 자체로 완성이자, 하나의 거대한 공예 작품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덧붙이는 것도, 힘을 빼는 것도 쉽지않다. 행복작당 기간 중 힐로재를 여러 차례 찾았는데, 매번 아늑하고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집과 기물은 보는 각도에 따라, 그날그날의 기분과 무드에 따라 새로운 감각과 경험을 일깨워주는 것은 물론이다. 힐로재를 찾은 많은 사람은 하나같이 아트와 공예, 한옥이 지닌 고유한 느낌이 편안하고 세련되게 잘 어우러졌다는 평을 남겼다. 서울에서 이토록 조용히, 근사하게 숨어 들어갈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된다.

디자인 및 시공 길연(WWW.길연.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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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