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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애호가의 다실 '하우스 보트' 복잡한 것과 결별하라
도미니크 로로는 저서 <심플하게 산다>에서 “심플한 삶이란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낭비하지 않으며, 좋은 것들을 골라서 취하고 자신을 귀하게 여기며 존중하는 삶이다. 편히 쉴 수 있는 쾌적한 방과 더 손댈 것 없이 깔끔한 집도 결국 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언제까지 물건으로 가득 찬 ‘좁은’ 집에 머물면서 ‘넓은’ 집을 갈망할 것인가? 18평이라는 넓이와 시내 한복판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고 넉넉한 다실, 하우스 보트를 만나니 물건이 아닌 경험에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달았다.


 1 양쪽 평상 가운데 빈 공간에 나무 패널을 끼우고 베란다 쪽 문을 닫으면 완벽한 다실로 변신한다.아파트를 개조한 다실 ‘하우스 보트’. 배의 선실을 모티프로, 방 양쪽 끝에 평상처럼 단을 만들고 다락방을 구성했다
최근 정리 정돈,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자기 계발서가 쏟아지고 있다. 작고 단순한 것에서 화사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려는 사람들, 심플하고 작아지려는 흐름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은 것. 해운대 한복판에 자리한 하우스 보트House Boat 역시 미니멀리즘의 패러다임을 오롯이 품은 공간이다.

‘차 애호가를 위한 다실’이라는 목적이 분명한 공간은 막연히 상상한 것과는 모습이 사뭇 달랐다. 우선 18평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쪼개고 또 쪼갰다. 통창 너머 바다 풍경이 시원하게 펼쳐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베란다 창문은 갤러리 도어로 한 번 더 막았고, 전통 모티프를 접목했으리라 짐작한 인테리어는 느닷없이 빨간 벽을 마주하고야 이 또한 고정관념이었음을 깨달았다.

셀프 인테리어로 다실을 완성한 집주인은 개성 없이 똑같이 사는 모습을 꼬집었다. 이 집의 목적은 차를 마시는 공간이지만, 궁극적으로 작은 집도, 아파트 얼마든지 다른 모습으로 재미나게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고 싶었단다. “주거 공간은 무조건 따뜻하고 편해야 합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는 순간 에너지가 충전되는 집이 있는 반면,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까지 방전되는 집이 있어요. 에너지 소진형 집에서 에너지 충전형 집으로 바뀌려면 먼저 ‘비움’을 실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일은 피하고, 내 인생에 가치를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 되레 기를 빼앗는 것에서 해방되어야 하죠. 공간에서 물건을 비우면 그 자리에는 ‘경험’이 채워집니다. 거실의 주인공이 책이 되어선 안 되고, 좋은 물건일수록 장식장의 박제처럼 두지 말고 꺼내써야 해요.

왼쪽 주방에서 바라본 거실. 조리대를 없애고 부분 문으로 막아 거실과 주방을 분리했다. 
주방에 꼭 아일랜드 조리대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강박이에요. 요즘 TV를 틀면 죄다 먹는 프로그램이잖아요? 가족 여행을 가서도 전투적으로 먹습니다. 그 에너지를 책을 읽거나 차를 마시는 등 문화생활을 하는 데 쓰면 어떨까요? 레노베이션은 아일랜드 조리대를 없애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1 다실 왼쪽 평상에서 바라본 오른쪽 평상과 다락방. 가운데 패널을 끼우고 찻상을 올리면 또 하나의 완벽한 방이 된다. 손님이 오면 게스트룸으로 사용하기에도 제격. 2 거실에서 바라본 주방. 선반 위아래로 여닫이 문을 달아 차(음식)를 내거나 허리를 숙여 이동하는 쪽문으로 활용할 수 있다. 
성聖과 속俗, 빛과 어둠의 교차
18평 오피스텔은 공간 분할이 재밌다. 작은 복도를 지나 왼편은 다실, 오른편은 ‘요견실堯見室’이라 이름 붙인 다용도 거실과 부엌이 자리한다. 가운데 떡하니 자리한 아일랜드 조리대를 없애고 부분 창으로 막아 거실과 주방을 분리했으며, 복도 쪽으로 한식 여닫이문을 달아 완벽한 방으로 독립할 수 있다. 자고로 차를 마시는 공간은 편안하고 마음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화려한 붉은색 벽지를 사용한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네 주거 공간을 보면 흰색 아니면 무채색 마감이 대부분이에요. 일상의 공간은 더더욱 그렇지만, 명상의 공간도 차갑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성당이나 사원에 가서 우리가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공간 전체를 휩싸고 있는 아늑한 감도지요. 붉은색은 평소에 산뜻한 기분을 느끼게 하면서도 해 뜰 때, 한낮, 오후로 넘어가면서 빛과 어둠의 정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풍성한 표정을 만들어냅니다.

3 배의 선실을 모티프로 한 공간 곳곳에는 배 모양 도자 오브제, 랜턴 조명등, 현창 형태의 거울 등 배를 연상케 하는 소품이 많다. 철제 빈티지 수납장과 장식장, 틴케이스 등 다양한 소품은 모두 여행 가서 하나 둘 구입한 것. 4 새하얀 다실과 콘트라스트를 이루는 붉은 다락방. 건장한 남성이 앉았을 때 정수리가 아슬아슬 닿는 높이로 홀로 명상하거나 쉬기에 최적의 장소다. 
집주인은 어떤 공간이 주어졌을 때 “이 공간을 어떻게 꾸밀까?” 가 아닌 “이 공간에서 무엇을 할까?”를 먼저 생각한다고 한다. 해 뜰 무렵에는 차를 마시면서 책을 읽으면 좋겠다, 한낮에는 바느질을 해볼까, 석양을 즐기며 와인을 마실 수도 있지 등 다양한 경험을 떠올리면 굳이 어떻게 꾸미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 사용하기 편한 테이블, 좌탁 하나만 있으면 충분할지니 요견실, 즉 ‘명상으로 희망이 열리면 먼 세계가 보인다’는 뜻의 의미를 알것 같다. “차를 마시면 우리의 의식주 전체가 바뀝니다. 거실에 소파, 벽걸이 TV를 없애고 그 대신 다실을 만들어보세요. 식구들이 같이 다실에서 차를 마시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더 깊은 얘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다실 왼쪽의 평상은 쪽문을 구성, 무릎을 꿇고 들어서는 일본 다법을 즐길 수 있다. 
그럼에도 반전은 필요하다
‘cabin(선실)’이라는 금속 장식이 붙은 방문을 열고 들어서면 이 집의 백미인 다실이 등장한다. 다실은 변신이 가능하다. 캐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다실로 변신하기 전에는 꼭 배의 객실이 떠오른다. 방을 3등분 해 양쪽 가장자리에 평상처럼 단을 만들고 오른쪽 단 위에는 다락방을 추가했다. 왼편과 오른편 단 끝부분에는 홈이 있고, 홈위에 일곱 쪽의 패널을 나란히 올리면 평상은 하나의 방으로 변신한다. 방으로 들어서는 문, 베란다로 나가는 문, 에어컨 바람이 들어오는 쪽창, 다락방의 작은 창을 모두 닫으면 그 자체로 완벽하게 독립한 다실이 된다. 실제 다실에 앉아 가운데 덩그러니 놓인 찻상과 천장 라인을 가로지르는 대나무봉, 골동 향로, 창호문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멈춘 듯 고요하다. 

“차를 마시면 우리의 의식주 전체가 바뀝니다. 거실에 소파, 벽걸이 TV를 없애고 그 대신 다실을 만들어보세요. 식구들이 같이 다실에서 차를 마시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더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습니다.”

사실 부산에서 다도는 일상의 문화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다른 지역보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워 상류층 부인들은 일본의 다도에 매료되어 다실을 만들고 다회를 열었다. 일본 다도를 통해 일찌감치 차에 눈을 뜬 부산 사람들의 다도 문화는 지금껏 활발하게 명맥을 잇고 있는데, 이 집에서도 그런 면면을 볼 수 있다. 방문 옆에 쪽문이 하나 있는데, 무릎을 꿇고 들어서는 일본식 다법을 행할 수도 있다. “국적에 상관없이 차 마시는 행위는 그 자체가 참선이지요. 물을 끓이는 것만 해도 끓는 소리 자체에 의식을 집중해야 하고, 차를 마신 뒤에는 차 자리를 단정하면서도 윤기 나게 정리해야 합니다. 그뿐인가요. 차실에 거는 액자도 있을 거고, 잘 빚은 향로도 옆에 두고…. 차를 마시는 것은 단순히 다법을 익히는 것을 넘어 일종의 종합예술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선실’이라 쓰인 족자와 대나무 봉이 절제된 감각을 전한다. 
‘선실船室’이라고 쓰인 족자는 석종 스님의 작품으로 우연히 ‘배’가 콘셉트인 이 공간에 맞아 걸어두었다. 다락방은 집주인만의 은밀한 휴식 공간으로 하얀 다실로 들어서는 문 옆에 다락방으로 오르는 좁은 계단실을 구성했다. 작은 계단 안쪽에 장식한 현판 ‘조도현로鳥道玄路(새가 다니는 그윽한 길)’, 즉 정해진 길은 없다는 뜻이 인상적이다. 또 하나 다실에서 주의 깊게 보아야 할 소품이 있는데 바로 쇳덩어리다. 현창 형태의 거울, 랜턴 조명등 등 배를 연상케 하는 소품들과 조화를 이루며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포인트를 준다.

이 집의 또 하나 숨은 기능은 바로 바다 수영을 위한 베이스캠프라는 것. 집주인은 수영복을 입고 바로 나갈 수 있는 해운대 앞바다에서 바다 수영을 즐긴다. 한겨울에는 해운대부터 달맞이고개까지 걷기 운동을 한다. 차를 마시고, 헤엄을 치고, 걷다 보면 마음을 어지럽히는 생각들이 하나 둘 정리되고 생각의 조각들이 융합해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예를 들어 라투르네 수도원처럼 지친 사람들이 머물다 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하는! 목적지를 잊어버린 채 파도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정작 하려던 일을 잊어버린다. 단순하게 살수록 인생의 본질이 또렷해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하우스 보트. 더 큰 것을 욕망하고 쉴 새 없이 소비하는 시대에 ‘작은 것’이야말로 귀중한 가치라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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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