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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디자이너 황민혁의 건축일지 나는 B급 감성이 좋다
비스트럭처B structure 황민혁 디자이너와 처음 만난 건 작년 겨울이다.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인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서 자신이 깎고 다듬은 가구를 대중에게 처음 선보인 것. 그 후 친구의 집을 소개하는 한 TV 프로그램에서 외국인 친구가 살고 있는 한옥의 가구를 만든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렸다. 그는 넌지시 집을 짓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고, 그의 가구가 집 안을 속속들이 채울 때까지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의 집을 방문했다.

2층에 자리한 집에서 계단을 오르면 공간의 가장자리를 빙 둘러 감싸는 형태의 복층 공간이 나타난다. 황민혁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흔들의자와 책상 등으로 구성한 복층은 천장이 낮아 다락방처럼 아늑한 느낌이다.
집과 작업실을 철저히 분리했다. 자신만의 B급 감성을 담아 수종, 디자인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작업을 펼치는 황민혁 디자이너의 비스트럭처 가구는 모두 이곳에서 탄생한다. 
“집은 살아가면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새 신발이 처음에는 맞지 않아 뒤꿈치가 쓸리고 발볼이 아프지만 시간이 흐르면 내 발에 편하게 맞춰지듯 집도 그러하다고 생각합니다. 담장, 덱, 붙박이 가구 등 직접 만들어서 추가해야 하는 것 외에도 텃밭에 심은 채소와 나무들이 자라면서 집이 완성되어가겠지요. 완성이라 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한참 남은 듯합니다.”

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한 그는 생활하는 내내 나무라는 물성에 매료되었다. 짧지만 한옥 짓는 일이나 시공 현장에서 경험을 쌓으며 결국 나무를 다루는 가구 디자이너가 되었고, 서울과 파주 작업실을 오가며 작업을 하다 작년 겨울에 소신 있는 젊은 목수로서 이름을 알렸다.



밑그림 그리기: 땅이 급하면 체한다
가구도 그러하지만, 집을 짓는 일 또한 스케치에서 시작한다. 학생 때부터 틈틈이, 그리고 무수히 그려온 집의 모습이었다. 당시 작업실이 있던 파주 근방의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어머니를 모시고 살 계획이었기에 시내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마을과 조금은 분리되어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위치를 찾았다. “꼭 맞는 대지를 찾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대개는 너무 크거나 작았고, 사람이 사는 ‘집’을 짓기에 합당치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땅이 급하면 체한다는 말이 있죠? 혼자서 땅을 돌아보다 보니 계약을 번복하는 일도 있었어요. 결국 건축 사무소에 검토를 의뢰했죠.” 돌이켜보면 몰랐기에 용감할 수 있었다는 디자이너 황민혁은 대지를 고를 때는 대략적인 위치만 정한 뒤 건축가와 함께 토지나 건축법 등을 함께 검토하는 것이 실수를 막는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위치나 면적, 건폐율뿐 아니라 대지로 접근하는 도로의 소유주, 상하수도 배관, 난방 등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지를 정한 뒤부터는 낮에는 집을 짓고 밤에는 남은 공간의 도면을 그리며 정신없이 보냈다. 대지를 결정하고 집을 준공하는 모든 과정을 넉 달 안에 마무리한 것이다. 집의 콘셉트는 간단히 세 가지로 정리했다. 합리적 예산, 손쉬운작업, 높은 내구성. 무엇보다 그가 실현하고 싶은 공간은 동굴처럼 아지트와 집의 중간 단계였다. 어릴 때부터 이사를 많이 다니면서 다양한 형태의 집에서 생활한 터라, ‘집’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외장재는 전체를 징크 패널로 마감하고, 내부는 오픈형으로 연출했다. 모름지기 집이란 최소한의 벽과 공간으로 구성될수록 살기 편리할 뿐 아니라, 가족 구성원이 단절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그의 생각이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1 황민혁 디자이너와 어머니가 생활하는 2층 내부. 거실과 주방이 자리한 2층과 황민혁 씨의 개인 공간을 마련한 복층으로 분리되어 있다. 2, 3 부엌 가구는 어머니를 위해 그가 직접 디자인한 것. 조리대와 작업대, 상부장은 모두 발크로맷으로 제작했다. 나무 상판을 올린 아일랜드 식탁은 바 스툴과 함께 구성했는데, 금속과 나무를 조형적으로 믹스 매치했다.
4 반려견을 위해 쉼터를 선물했다. 발크로맷에 패브릭을 직조 형태로 결한한 흔들의자는 반려견 세 마리가 가장 좋아하는 스폿이다. 5 비스트럭처의 최신작 중 하나. 에이치빔에 나무를 더해 조형미를 강조했으며, 가구가 완료될 때마다 새긴다는 금속 라벨도 아래쪽에 달았다. 6 추억의 TV장을 떠올리며 만든 거실 가구. 다리가 있는 형태로 제작해 따로 AV장을 두지 않아도 실용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며, 스피커를 공중에 달아 포인트를 주었다.


가구 채우기: 주류를 벗어난 신선함으로!
이곳은 크게 집과 일터로 나뉜다. 그래서 입구도 두 개다. 1층은 비스트럭처 가구를 만드는 작업실로, 다양한 가구와 기계가 빼곡히 들어찬 자유로운 공간, 2층은 황민혁 디자이너와 어머니가 생활하는 곳으로 거실과 부엌을 배치했다. 거실에서 계단을 오르면 집의 한쪽 면을 빙 둘러싸는 복층이 있는데, 삼각형 지붕 모양을 따라 천장이 기울어져 있다. 2층에는 어머니 방이, 복층에는 자신의 방이 있지만 한집에서 가족 구성원이 문을 닫고 지내며 단절되는 느낌이 싫었던 터라 따로 문을 달지는 않았다. 벽보다는 가구나 천장의 높이로 공간을 분할해 가족이 한 공간에 있다고 느끼도록 했다.

“제 가구가 아직은 장인이나 대가의 것과 견주었을 때 A급이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주류를 좇는 과정과 시간 또한 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지요. 그래서 주류에 조금은 못 미치더라도 내가 좋아하고 재미있는 작업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그래서 비스트럭처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B급 영화나 사진, 포스터 등은 기존에 보던 결과물과는 다른, 나름의 신선함을 지니고 있지요. 비스트럭처가 지향하고자 하는 방향도 그러합니다. 조금 더 새롭고 흥미로운 작업물을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집을 완공한 후, 집 안에 가구를 하나하나 채워가며 자신의 손과 발에 꼭 맞도록 다듬어가는 중이라는 황민혁 씨는 브랜드명처럼 수종과 디자인을 고집하지 않고 공간에 녹아들고 자신의 손에 익어가는 가구를 만들었다. 우선 현관문을 여는 순간 보이는 건 신발장. 수납장처럼 연출하고 싶어 미닫이문을 덧달았다. 그리고 최근 신제품인 에이치빔 벤치를 두었는데, 다른 가구와 달리 에이치빔이라는 건축자재의 물성에 매료되어 디자인한 제품이라, 나무와의 매치가 무척 마음에 든다. 계단을 한 층 오르면 구유를 활용해 만든 화분대 겸 콘솔을, 한 층 더 오르면 그가 제일 처음 작업한 바 테이블과 스툴을 놓아두었다.

2층 주방 가구는 자신이 좋아하는 소재 중 하나인 발크로맷을 사용했다. 집내부를 전체적으로 밝게 마감했기에 주방 쪽은 무게감 있는 컬러와 소재로 힘주고 싶었다. 어머니의 생활 동선에 맞춰 작업대와 조리대, 그리고 거실을 바라볼 수 있는 오픈형 아일랜드로 ㄷ자형 주방을 만들었고, 각각에 적지 않은 수납공간을 숨겨놓았다. 발크로맷(친환경 컬러 MDF)으로 한결 세련된 느낌을 자아내는 주방과 이어지는 거실의 포인트는 TV장. 어릴 때 집에서 사용하던 것을 떠올리며 문짝이 있는 형태로 완성했다. 화이트 오크에 발색해 독특한 느낌을 냈으며, 레트로한 분위기의 스피커를 TV장과 나란히 공중에 매달아 포인트를 주었다. 소파 테이블은 리모컨이나 볼펜, 잡지 등을 인테리어 소품처럼 자연스럽게 어질러놓을 수 있도록 트레이 형태로 작업했다. 복층의 책상은 뷰박스처럼 상판 아래에서 빛이 나는 제품인데, 도면이나 세세한 작업 스케치를 볼 때에 유용하며 저녁에는 조명등 대신 간접 조명등 역할을 한다. 새삼 자신이 필요해서 만든 디자인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단 코너마다 자신의 가구를 전시해두었다.계단 밑의 책상과 스툴은 황민혁 디자이너의 첫 작품이다. 
집에 적응하기: 집 짓기를 통해 나를 돌아보다
좋아하는 일을 더욱 가까이 즐길 수 있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소감. 막연히 전원생활을 꿈꾸어 실현했지만, 도시와 아파트 생활이 주는 편리함도 깨달았다고 했다. 또 일터와 집이 가까워 생활과 작업이 뒤섞이는 일도 다반사다. 오늘은 쉬어야지 마음먹더라도 1층에 잠깐 물건이라도 가지러 갈 참이면 홀린 듯 일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는 것. “혼자 집 짓기에 열중하다 보면 의외로 너무 당연한 것에 신경을 못 쓰는 경우가 많아요. 이럴 때면 전문가의 손길이 그리워지죠. 꿈에 그리던 대로 완벽하게 정리된 집은 디테일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주택에는 창고의 비중이 적은데, 보기 싫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넣을 수 있는 창고 역할의 다락방을 집 안 곳곳에 배치하면 생활에 유용한 공간이 됩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설계해 완성한 집이지만, 자신의 몸과 생활을 온전히 녹여내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황민혁 디자이너. 늘 처음 하는 일은 아쉬움이 남는 만큼 다시 집을 짓는다면 한 박자 쉬어 가며 천천히 지금의 장단점을 조절해 짓고 싶다고 했다. 주거 공간을 2층으로 몰았기에 땅을 바로 밟을 수 없는 점도 보완하고, 에어컨과 보안 기기 배선까지 더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싶다는 것. 집 뒤편에 어머니가 만든 작은 텃밭과 함께 바비큐를 즐길 수 있는 마당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뚜렷한 주관대로 자신만의 디자인을 구축하고 주저 없이 B급을 외치는 그는 오늘도 자신의 디자인을 끌어들인 ‘동굴’ 닮은 집에서 그만의 스타일을 밀고 나갈 것이다.

1 왼쪽이 집으로 통하는 문, 오른쪽이 작업실로 통하는 문이다. 마치 장난감처럼 디자이너의 상상 속 ‛집’ 모습을 실현한 외관. 2 집과 작업실 그리고 가구까지 모두 자신의 손으로 마련한 황민혁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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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손지연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