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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동 일곱 집 프로젝트 한 지붕 다섯 가족
한 건물의 도면을 받았다. 지상 2층 규모에 큐브 타입으로 평범하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니 보통의 건물과는 사뭇 다른 구수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작은 집, 다세대주택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개화동 일곱 집 프로젝트.

최찬석ㆍ최별 부녀는 35년간 살아온 개화동 골목길에 다세대 주택을 짓고 새로운 가족을 맞이했다. 왼쪽부터 집을 설계한 건축가 윤민환ㆍ최윤미 부부(4호), 건축주 최찬석ㆍ최별 부녀(7호), 별 씨 친구 염지윤(6호), 작가 김소월(2호), 지윤 씨 동생 윤미(6호), 요리하는 김승윤(5호), 지윤 씨 어머니 설호임 씨(6호).
김포공항을 지나 개화역에 도착했다. 사시사철 꽃이 피는 개화산 자락에 있다고 해서 개화동이라 불린 마을은 행정구역으로는 서울이지만, 1970~1980 년대의 전원 풍경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나지막한 산등성과 마을로 진입하는 굴다리, 논과 밭이 교차하는 도로 등 시간이 멈춘 듯한 표정이다. 이곳 주민 대다수는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젊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외지로 나가면서 원주민 대부분은 옛날 사람, 노인이 됐다. 옆집 마당에 무슨 꽃이 피고, 윗집 딸이 언제 시집을 갔으며, 아랫집 손주가 식성이 어떤지 서로의 사연을 속속들이 안다. 이런 마을에 최대의 스캔들이 발생했다. 35년 전에 이사 왔던 한 꼬맹이가 어른이 되어 아버지가 살던 이층집을 부수고 새로 집을 지은 것이다. 네모반듯, 새하얀 ‘신식’ 옷을 입은 집은 대문이 무려 일곱 개다!


1 최별 씨가 운영하는 외주 제작사의 김소월 작가가 거주하는 2호 원룸 세대. 2 원룸 두 개를 합쳐 만든 3호 사무 공간. 최별 씨가 오픈한 외주 제작사로 일의 특성상 사무실에 있는 시간이 많아 집처럼 주방, 거실 등을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작은 공간을 알뜰살뜰 활용했는데 특히 벽면을 활용한 수납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3 이 집을 설계한 건축가 윤민환ㆍ최윤미 부부가 사는 4호. 주인 세대인 7호와 부부가 임대한 4호는 다락방 옆으로 야외 테라스가 구성되어 아웃도어 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 4 7호 2층(계단실이 1층) 최별 씨의 방. 수납공간 위에 매트리스를 둔 아이디어가 재밌다. 드라마 작가로 활동하던 어머니의 원고, 철지난 옷이나 이불 등을 수납한다. 5 4호의 생활 공간. 계단을 올라 바로 주방이 나오는 구조로 주방 맞은편이 침실, 위층 다락방을 서재로 사용한다. 오른편 가로 창 너머로 보이는 산세와 동네 풍경에 반해 입주를 결정했다.

평균 면적 13평, 작지만 큰 행복
“아버지가 35년 전, 결혼한 후 처음 장만한 집이에요. 이 골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다 교육 문제로 서울 아파트로 이사를 했죠. 대학 졸업 후에는 직장 때문에 또 독립해 살다 보니 집에 올 기회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어느 날, 아버지가 ‘관리하기 힘들다’며 집을 처분하고 시골로 내려갈까 고민하시더라고요. 도시 생활의 번잡함에 지쳐서일까요? 10년 동안 나가 살면서 동네나 집이 그리웠던 적이 별로 없었는데, 이상하게 허전했어요. 시골 정서를 간직한 이곳이 소중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죠.”

딸 최별 씨는 관리하기 힘든 낡은 단독주택 대신 사용하기 편리하고 아버지 노후에도 보탬이 되는 집을 고민하다 신축 다세대주택을 짓기로 했다. 대지 면적 80평에 용적률 50%, 2층의 고도 제한이 있는 1종 전용 주거 지역. 은퇴 후 노후 생활을 위해 월세 세대를 두고, 일부는 전세를 둬 건축비에 보탤 계획을 세우니 총 일곱 세대라는 계산이 나왔다. 평균 면적으로 나눠보니 겨우 10평 남짓. 한정된 예산으로 작은 집을 짜임새 있게 설계할 수 있는 건축가가 필요했다. 윤민환 소장은 일본에서 활동한 경험으로 무엇보다 강소 주택에 대한 이해가 남다르다. 그는 건축비와 직결되는 외부 면적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정육면체 박스 형태로 기초 설계를 잡았다. 대지 가운데에 주택을 배치하고 주변을 주차장, 정원, 통로 등 거주자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공동주택에 일반적인 공용 현관, 공용 계단 대신 각 세대가 따로 외부 출입문을 두는 방법을 고민했다. 전체 면적을 6등분한 뒤 두 가구(5호, 6호) 는 다락층을 포함한 세 개 층으로, 두 가구(4호, 7호)는 다락층을 포함한 두 개 층으로, 나머지 1층 면적은 원룸 두 개(1호, 2호)와 원룸 2개를 합친 공간(3호)으로 구성했다. 두 개 층, 세 개 층 복층 공간은 14평 남짓한 크기지만 바닥 면적에 포함하지 않는 다락층이 있어 20평 정도의 실면적을 사용할 수 있다(다락층은 층고가 1.8m 이내일 경우 바닥 면적에 포함하지 않아 지하를 파는 것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한정된 예산 안에서 집을 지을 때는 재료를 최소한으로 통일하는 것이 중요하다. 앞서 설명했듯 전체 면적을 균등하게 6등분으로 나눠 설계 시 발생하는 시간을 줄이고, 실내 마감 천장고를 2.3m로 통일해 마감 재료의 로스율을 줄였다. 또 집을 지을 때는 세금 감면 혜택 등의 정보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이 집의 경우 일곱 세대 중 네 세대는 사업자 등록을 해서 취득세와 재산세를 일부 면제받았다. “공사비를 줄이려면 외부 표면적을 줄여야 하고, 그러다 보니 모든 계단을 안으로 넣어야 했어요. 실내 면적을 계단으로 사용하려니 건축주 입장에서는 아까웠을 거예요. 하지만 집 안에 계단이 생기면 한결 입체적 구성이 가능하고 계단 아래에는 특색 있는 수납공간을 만들 수도 있죠.”

윤민환 소장의 조언대로 일곱 집 사람들은 계단 아래를 저마다의 특색 있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최별 씨는 계단 아래 반려견 효리의 책장을 짜 넣었고, 5호와 6호는 TV장을 두었다. 다락방의 쓰임도 재밌다. 다락방까지 두 개 층을 쓰는 7호는 테라스와 연결되는 다락방이 아버지 최찬석 씨 공간이다. 만화가라는 직업 특성상 작업하면서 야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테라스와 연결되는 다락층을 사용한 것. 1층에서 2층, 2층에서 다락방까지 매일 계단을 오르내리니 자연스레 운동이 된다며 만족해하신다고.

“이 동네 집들은 모두 남쪽에 마당을 둔 똑같은 구조예요. 그러다 보니 봄이되면 서로서로 마당을 예쁘게 꾸미려고 경쟁하죠. 아버지도 처음에는 널찍한 앞마당이 없어지는 걸 많이 서운해하셨어요. 하지만 지금은 테라스와 현관 앞처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소소한 기쁨을 주는 작은 정원에 만족하세요. 무엇보다 마당을 각 세대에 나눠준 것을 뿌듯해하시고요.”


최별 씨의 오랜 친구가 사는 6호. 1층은 주방 겸 거실, 2층 원룸, 다락방으로 구성.

이웃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가족
무엇보다 이 집은 입주민의 스토리가 재미있다. 골목길에서 바라봤을 때 정면 2층에 자리한 4호는 집을 설계한 윤민환ㆍ최윤미 부부의 집. 건축가인 남편이 설계한 집에서 살고 싶은 바람이 컸다는 아내는 4호실의 가로 쪽창 너머 목련나무 풍경에 반해 남편을 설득해 이곳으로 이사했다. 한 층은 침실과 주방 겸 거실의 살림 공간으로, 다락층은 윤 소장의 서재로 활용한다. 20평 남짓한 작은 규모지만 공간이 수직으로 나뉜 덕분에 작게 느껴지지 않고 지루할 틈이 없다. 화가인 최윤미 씨는 집과 가까운 외부 작업실이 필요했는데, 마침 1호 원룸이 비어 있어 작업실로 꾸몄다. 작업과 생활 공간을 가까이에 두면서 서로 분리해 편리한 것은 물론, 전원에 온 듯 평온한 동네 풍경에 작업도 술술 잘된단다.

집을 지으면서 ‘눈길’이라는 외주 제작사를 독립 오픈한 최별 씨는 원룸 두 개를 붙인 3호 사무실로 사용한다. 2호 원룸은 함께 일하는 김소월 작가에게 임대했고, 6호에는 최별 씨의 오랜 친구 염지윤 씨가 산다. 직장 때문에 도심 한복판에 살면서 늘 높은 오피스텔 월세와 관리비를 고민하던 두 사람에게 ‘안정된’ 주거를 권했더니 흔쾌히 이웃사촌이 되었단다. 5호와 6호는 땅콩집처럼 똑같은 구조가 특징. 같은 집 다른 쓰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벽체는 35cm 두께의 콘크리트 구조로 층간ㆍ벽간 소음도 걱정 없다.

“5호에는 셰프가 살아요. 이 집을 임대하고 싶다고 했을 때 종종 맛있는 음식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사심도 작용했죠. 하지만 알고 보니 요리보다 인테리어에 더 관심 많은 남자였어요.”

입주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부쩍 친해진 또래 친구들은 서로의 집을 구경하며, 특히 5호의 인테리어를 부러워하곤 한다. 평소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다는 김승윤 씨는 무엇보다 깔끔하게 마감한 공간에 가구와 소품을 더해 집을 꾸밀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어 이 집을 선택했다. 빈 몸으로 이사 와서 필요한 물건을 하나씩 장만하는 딱 요즘 세대다.

“대학생에서 사회인이 되면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이 있잖아요. ‘집다운 집’에는 형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여러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그중 하 나가 바로 가족이에요. 2호나 5호 같은 싱글 세대에게 가족은 출퇴근길에 정답게 인사하며 가끔 함께 밥도 먹는 이웃이 아닐까요. 오늘처럼 촬영으로 바쁜 날에는 이렇게 고구마를 쪄서 나눠 먹기도 하고 주말에는 한 집에 모여 간단하게 짜장 라면 파티를 열기도 하고요.”

최별 씨의 말처럼 일곱 집에는 이웃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가족이 산다. 마당에 세 명만 모이면 금세 파티가 벌어지는 집. 무엇보다 혼자 적적하게 지내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밝아져서 뿌듯하다. 최별 씨는 요즘 재미난 동네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하얀 벽에 프로젝트를 쏴 골목 영화제를 해도 재밌을 것 같고, 동네 소꿉친구들과 무인 카페를 열까도 생각 중이다.

건축주가 과잉 설계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젊고 실력 있는 건축가들이 동네 건축으로 눈을 돌린다면 우리나라도 이처럼 충분히 다양한 형태의 집을 기대할 수 있을 터. 개화동 ‘대문 많은 집’은 작은 집, 다세대주택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 7 집 꾸미기를 좋아하는 요리하는 남자 승윤 씨가 사는 5호. 1층은 거실과 주방, 2층은 침실, 3층은 만화방으로 꾸몄다. 계단 아래에 TV를 둔 공간 활용이 돋보이다. 2 3호 최별 씨의 외주 제작사 ‘눈길’ 사무실. 사무실로 사용할 것을 계획한 뒤 바닥재는 에폭시로 도장했다. 3 작은 집이지만 욕조를 포기할 수 없었다는 최별 씨. 욕조와 원목 세면장, 타일 등 욕실은 7호 인테리어에서 가장 힘준 부분이다. 4 1호는 4호 입주자인 윤미 씨가 그림 작업실로 사용한다. 6평 남짓한 크기로 일과 생활 공간이 나뉘면서도 집과 가까워 작업하기 편리하다. 5 계단 아래는 반려견 효리의 집. 6 너른 마당 대신 이웃과 어우러진 삶을 택한 건축주 최찬석 씨. 작은 마당이지만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는 정원을 꾸며 동네에서 인기가 좋다. 마당에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 하나 두고 티타임을 즐긴다. 

설계를 맡은 건축가 윤민환은 경기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후 원오원건축에서 실무를 쌓았다. 와세다 대학 건축학 석사 및 동 대학원 박사 과정을 수료, 2014년 studio S.A.M을 설립하고 현재 동 대학원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 중이다. 주요 작업으로는 Folding Screen House(2009), 남매의 집(2011), 산청프로젝트 (2012) 등이 있으며, 일본 신인 건축가의 등용문인 SD review 2009, 아름지기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로젝트 2에서 헤리티지 투모로우 프라이즈(1위), 와세다 학생 문화상(2011, 2012) 등을 수상했다.



설계 윤민환(studio S. A.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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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지현 기자 | 사진 박찬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