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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6월 "일 년 시집살이 못하는 사람 없고..." (양창순 박사)

양창순 박사의 두 번째 글
나는 우리 속담에 관심이 많다. 언젠가는 속담과 심리를 엮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을 정도다. 상담을 할 때면 각기 상황에 맞는 속담을 하나씩 정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사람들의 반응도 좋다. 어렵게 느껴지던 문제들이 쉽고 재미있게 이해된다는 것이다. 새삼 우리 선조들의 현명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일 년 시집살이 못하는 사람 없고 벼 한 섬 못 메는 사람 없다”는 속담을 심리로 풀어보자. 이 속담은 시집살이나 농사짓는 일이 고되지만 잠깐 동안은 할 만하므로 조금 힘든 일을 했다고 생색내지도 말고 남들이 하는 일을 우습게 보지도 말라는 뜻을 담고 있다.

어느 시어머니에게 두 며느리가 있었다. 시어머니는 큰며느리와 살고 있는데 어느 날 작은며느리가 찾아왔다. 그런데 이 며느리가 보니 형님은 외출하고 없고 시어머니 혼자 찬밥을 들고 계신 게 아닌가. 평소 경박하고 촐싹대길 좋아하는 그녀인지라 가만히 있기가 어려웠다. “아니, 어머니! 어떻게 혼자서 찬밥을 들고 계세요. 제가 당장 더운밥 지어드릴게요. 어쩌면 형님은 어머니께 그럴 수가 있담” 하며 수선을 피웠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시어머니가 잠자코 방에 들어가더니 주섬주섬 옷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며느리가 “어머니 어디 가세요?” 하고 묻자 시어머니가 대답했다. “매번 따뜻한 밥 해주는 너희 집에 가서 살려고 그런다.” 어쩌다 한 번 얼굴 삐죽 내미는 게 고작인 작은며느리가 큰며느리 헐뜯는 걸 보고 괘씸하게 생각한 시어머니가 쐐기를 박은 것이다.

그런데 얄궂은 게 사람 마음이라, 우리 모두 자칫 이 작은며느리처럼 굴 때가 적지 않다. 남이 하는 일은 다 우습게 보이고, 내가 하는 일은 다 힘들고 생색내고 싶어 하는 심리가 조금씩 다 있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병적으로 커지면 문제가 생긴다. 자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잘못을 저지르면서 남한테만 잘하라고 요구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합리화에 무척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자신이 실수하면 어쩔 수 없는 거고 또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이 실수하면 절대 그렇게 넘어가지 않는다. 작은 실수도 큰일 난 것처럼 호들갑을 떨거나 아니면 무식해서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나온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으면 결국 주변 사람들만 화나고 피곤해지게 마련이다.

그런 심리는 정신의학적으로 나르시시즘과 연관되어 있다. 나르시시즘이라 하면 흔히 자기도취, 자기만족의 개념을 생각하지만 그런 뜻만 있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옳고, 나만 선택된 사람이고, 내가 하는 일은 남들이 다 이해해줘야 하고, 남들은 내가 원하는 걸 다 만족시켜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자기 합리화의 개념까지도 포함한다.

내 인생에 비극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다가 뭔가 잘못되면 “내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느냐”고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불쌍하다고 여기는 자기 연민의 감정, 심지어 불행조차도 내가 가진 것이 최악이라고 여기는 것도 다 나르시시즘에서 연유한다.

하지만 내가 불쌍하면 남도 불쌍하고, 내가 옳으면 남도 옳고, 내가 실수하면 남도 실수할 수 있고, 남에게 슬픔이 찾아오면 나한테도 똑같은 슬픔이 찾아올 수 있는 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남들이 잘못한 일을 두고 크게 나무라지도 말아야 하고, 내가 잘한 일이 있다고 크게 생색을 내서도 안 되는 것이다. 내가 잘나간다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폄하해서도 곤란하다. 물론 우리 모두 인간인지라 그렇게 사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부부 사이에도 “난 당신한테 이런저런 걸 다 해줬는데 당신은 겨우 그 정도 갖고 생색을 내느냐”며 싸우게 되는 것이지만.

좀 더 심각한 건 다른 사람이 정말 공들여 해놓은 일을 무 자르듯 단칼에 폄하하는 경우다. 상대방이 상처 입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도 않은 채. 그런 사람들에겐 똑같은 조건을 주고 그 일을 해내라고 시켜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다. 십중팔구 제대로 못 해낼 게 분명하므로. 그런 다음엔 바로 이렇게 말해주면 어떨까.

“일 년 시집살이 못하는 사람 없고, 벼 한 섬 못 메는 사람 없다우. 그러니 웬만하면 자중하며 살아가심이 어떨지.”

그의 저서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요즘 한층 관심을 받고 있는 양창순 박사는 정신과ㆍ신경과 전문의로 연세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주역과 정신의학을 접목한 논문으로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군요. 현재 양창순신경정신과ㆍ대인관계클리닉 원장으로 있고, 연세대 정신과 외래 교수입니다. SBS <양창순의 라디오 카페>, CBS <양창순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각 기업체와 조직의 리더들에게 ‘마음 경영’이란 주제로 강의를 해오고 있습니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이 왜 두려운가> 등의 책을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