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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04월 행복은 발생시키는 것 (차동엽 신부)

차동엽 신부의 세 번째 글
가장 오래된 질문이지만 아직도 똑 부러지는 답변을 얻지 못한 물음 가운데 하나가 ‘행복’에 관한 것이 아닐까. “행복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 얼마나 쉬운 물음인가! 하지만 그 응답은 천차만별이며 많은 경우 핵심에서 비껴 있기 일쑤다.

한 기자가 미국 최대 부호로 꼽히던 록펠러의 딸에게 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모든 여성이 부러워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행복하십니까?”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이렇게 답했단다. “행복하다고요? 누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나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 중에는 돈의 힘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많아요. 나는 행복하지 못해요. 당신은 나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세요.”

재미있는 사실은 이미 부를 누리는 사람은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 강변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이 말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통계에 드러난 진실이다. 실제로 황상민 교수는 조선일보와 한국갤럽, 글로벌마켓인사이트의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인은 ‘돈=행복’이라는 공식의 포로가 되어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돈과 행복이 무관하다”고 답한 비율도 우리나라 사람은 비교 국가들 중에서 가장 낮은 7.2%였다는 사실이다. 통계에 나타난 한국인의 행복관은 비극에 가깝다.

돈과 행복이 전혀 무관하다고 보는 것도 좀 무리는 있겠으나 이처럼 자신의 행복을 몽땅 돈에다 걸어놓으면, 우리의 행복은 경기의 흐름에 따라서 롤러코스터를 타게 마련이다. 일시적으로 행복하다가도 언제 다시 불행의 골짜기로 곤두박질칠지 모르는 위태위태한 행복이라니!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어쩌지 못할 노릇이다.

어쨌든 한국인은 ‘행복=돈’이라는 공식, 바꿔 말해 ‘성공하면 행복할 것이다’라는 가설을 세워놓고 산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이 행복해질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러므로 이제 ‘행복하면 성공할 것이다’로 발상을 바꿔보면 어떨까. 통계조사에 따르면 행복한 사람이 성공할 확률은 매우 높다. 그러니 행복을 먼저 선택하는 지혜를 가진 자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셈이다.

<무지개 원리>라는 밀리언셀러의 작가로, ‘인생 해설가’라는 별칭이 붙은 강연가로 널리 알려진 까닭에 많은 이가 나에게 ‘행복의 비결’을 물어온다. 그때마다 나는 행복의 비결이 영어 단어 ‘Happiness’에 함축되어 있다고 역설한다. 행복을 뜻하는 이 단어의 어원은 ‘발생한다’는 의미의 ‘Happen’이다. 이는 “행복은 발생하는 것이지 쟁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행복은 쟁취하거나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행복의 이 어원적 의미는 우리에게 엄청난 영감을 준다. 고백하거니와 나에게는 행복의 신대륙을 발견한 듯한 깨달음이었다. 이를 통해 단박에 “행복은 이제 내 손안에 있소이다!”를 선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획득하기는 어려워도 발생하는 건 쉽다. 그냥 웃고, 그냥 행복한 척하는 것이다. 그러면 행복의 감정이 발생한다. 우리의 뇌에서는 거짓으로 행복한 척해도 실제 행복할 때와 같이 도파민, 엔도르핀 같은 행복 호르몬이 분비된다고 하지 않는가.

일례를 들어보자. 아인슈타인은 훗날 학자로 유명해지기 전까지 상당히 궁핍한 삶을 살았는데, 하루는 친구가 그의 초라한 식사를 보고 입을 열었다. “고작 빵 한 조각과 물 한 잔이 자네 식사의 전부란 말인가? 자네가 이 정도로 어렵게 사는 줄 미처 몰랐네.”

이 말에 아인슈타인은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나는 지금 만찬을 즐기는 중이라고! 자, 보게나. 소금, 설탕, 밀가루, 베이킹파우더, 달걀에 물까지 곁들여 식사하고 있네. 그뿐 아니라 지금 잔잔하게 음악도 흐르지 않나. 이만하면 훌륭한 만찬 아닌가?”

그는 이렇게 빵에 들어간 재료를 나열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모두들 그의 처지를 두고 ‘어려운 상황’이라며 측은히 여겼지만, 정작 본인은 생각의 힘으로 부유한 자의 여유를 즐길 줄 알았다. 그는 탄력 있는 발상으로 행복을 발생시켰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얼마나 신나게 무임승차를 하며 살고 있는지요. 차동엽 신부처럼 삶을 깊숙이, 천천히,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성찰한 이들의 값진 철학을 글 한 줄로 얻어낼 수 있는 걸 보면. 사제로서 사람을 ‘사랑하고’ ‘살리는’ 일에 힘쓰는 차동엽 신부가 발견한 행복은 바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발생시키는 것’이랍니다. 무슨 뜻인지 찬찬히 곱씹어 보면 무릎을 탁! 치거나 가슴이 쿵! 내려앉을 겁니다. 행복해지는 건 그리 힘든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삶의 용기가 부쩍 샘솟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