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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모든 나이는 눈부신 꽃이다 (문정희 시인)

시인 문정희 씨의 세 번째 글


발레리가 괴테를 찬양하는 글에서 괴테가 천재가 될 수 있었던 여러 조건 가운데 으뜸으로 그의 장수를 꼽았던 것을 읽은 기억이 있다. 괴테는 1세기에 해당하는 시기를 살면서 그것도 인류의 정신사 가운데 가장 중요한 전환기를 살면서 온갖 역사적 자양을 유유자적하게 종합할 수 있었는데, 그것은 순전히 그가 살았던 긴 생애 자체가 바로 그 내용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예술에서는 흔히 요절한 천재에 대한 동경이 많지만, 뜻밖에도 대문호나 거장을 보면 장수를 누리면서 그의 업적을 산맥처럼 쌓아 올린 사람이 참 많다. 장수는 생명이 누려야 할 축복 가운데 가장 큰 축복임이 분명하다. 위대한 예술가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오래오래 지상의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런 의미에서 평균수명이 늘어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생명 가진 존재로서 더할 수 없는 행운의 시대를 살고 있는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어이없지만 나는 30세가 되면서부터 내가 조금 늙었다고 생각했다.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유명한 수필 ‘삼십 세’에도 그런 구절이 있긴 하다. 30세가 되면 늙었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젊다고 우기기에도 어딘가 자신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40세에도 그랬다. 40은 불혹 不惑이라는데 나는 불혹은커녕 사방에 유혹이 넘쳐 있어 당혹한 나머지 어정쩡한 모습으로 40대를 살았다. 다만 혹 惑 앞에서 조금 당황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며 젊지도 늙지도 않은 40대를 보낸 것이다.
50세는 콩떡 같았다. 뷔페 상 위에 놓인 콩떡은 말랑하고 구수하고 정겹지만 선뜻 누구도 손을 내밀려고 하지 않는다. “진종일 돌아다녀도 개들조차 슬슬 피해가는/ 이것은 나이가 아니라 초가을이다”라고 나는 ‘오십 세’라는 시에서 탄식했다.
하지만 요컨대 나이란 나이일 뿐인 것이었다.한마디로 인간에게 있어 시간은 언제나 새것이었다.

최근 옆구리를 둔도로 치는 것 같은 작은 충격을 준 한 여성이 있었다. 젊은 날 뉴욕 유학 시절부터 가까이 지낸 무용가 한 분이 결혼을 한다고 알려온 것이다. 신랑이 누구냐고 묻는 나의 질문에 그녀는 한 살 연하라고 대답했다. 가만있자… 그러니까 신랑은 69세다. 그녀의 결혼 기사는 신문에도 났고, 텔레비전에도 소개되었다. 연일 그녀와 신랑의 나이가 화제로 대두되었다. 70세 신부라니….
그녀는 말했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퓨리파이 purify(정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70세 신부인 그녀를 축하하다 말고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나이만 생각하다가 그만 두 사람의 사랑을 못 볼 뻔한 것이다. 신랑의 나라인 독일을 한달간 다녀왔다는 70세 신부의 얘기를 듣다 보니 노년의 사랑이 생각보다 뜨겁고 자유롭고 거침없다는 것을 알았다.
며칠 전, 또 한 분의 할머니가 나를 일으켰다. 99세 할머니가 낸 첫 시집(시바타 도요가 낸 <약해지지 마>)이 70만 부나 팔려서 지금 일본 열도를 흔든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문학을 논하기에 앞서 시적 詩的 요소가 깨소금처럼 박힌 아주 소
박하고 자연스러운 가락이었다.

천재 괴테를 만든 것이 그의 장수였고 또한 그가 살아온 역사적 전환기가 대문호를 만든 일대 자양이었다면, 99세 할머니 시인의 시적 자양은 넘치도록 충분한 것이다. 일찍이 겪은 첫 남편과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또 한 번의 결혼과 아이를 낳아 기르며 겪은 인생의 온갖 곡절들이 그것이었다. 그녀는 1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사는 동안 누구보다 풍성한 삶의 경험을 비축한 것이다. 당연히 그것을 시로 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어느 땅에 늙은 꽃이 있으랴
꽃의 생애는 순간이다.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아는 종족의 자존심으로
꽃은 어떤 색으로 피든
필 때 다 써버린다.
_졸시 ‘늙은 꽃’ 중

최근 나의 시집 <다산의 처녀> 맨 첫 장에 나는 이 시를 놓았다. 또 한 해가 가고 있다.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목숨이란 순간을 피우는 눈부신 꽃이다.

글을 읽은 후 가슴팍으로 뜨듯한 무언가가 차오르는 느낌, 그래서 “허어” 한숨을 내쉬어야 하는 느낌, 아실 겁니다. 이 글이 그렇습니다. 늙는 게 죄악시되는 요즘 세상에서 이렇게 담담히 나이 듦이 축복이라고 말해줘서 감사했습니다. ‘인간에게 있어 시간은 언제나 새것이었다’라는, 한세상 잘 견뎌낸 어른이 건네는 이야기. 문정희 선생<행복> 독자에게 마지막으로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또다시 무언가 뜨듯하게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99세에 첫 시집을 냈다는 일본 할머니 시바타 도요의 시를 덧붙입니다. “나 말야,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주면/ 마음속에 저금해두고 있어/ 외롭다고 느낄 때/ 그걸 꺼내/ 힘을 내는 거야/당신도 지금부터/ 저금해봐/ 연금보다/ 나을테니까.”(<약해지지 마> 중 ‘저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