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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좋아서 하는 일

“너는 행복하냐? 그렇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사니까 행복해?” 2001년 개봉한 임순례 감독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오는 대사다. 그저 영화 대사일 뿐인데, 들을 때마다 눈가가 뜨끈해진다. 누구나 맞닥뜨릴 수 있는 질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잠시 잊고 있던 저 대사를 다시 호출한 이는 배우 박정민이다. 계기는 인터뷰였다. 당시 나는 ‘배우의 사적인 공간’을 방문하는 콘셉트로 기획한 인터뷰집 <배우의 방>을 진행 중이었는데, 박정민이 자신의 공간이라며 나를 초대한 곳은 분당의 한 극장이었다. 

 

그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고 배우의 꿈을 꾸게 된 극장이었다. 그날 우린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는 것’에 대해 꽤 오래 대화를 나눴다. 가장 좋아하는 일이 ‘연기’라는 박정민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 해서 늘 행복한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또 “치유를 가장 많이 받는 것도 ‘이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은 비관론자에 가까워서 열등감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그것이 성장하는 동력이 된다고 믿는다는 말이 특히나 마음에 와닿았다. 그런 그를 보며 생각했다. 혹자는 좋아하는 일이 직업이 되면 더는 즐길 수 없기에 괴롭다고 말하는데, 꼭 그런 건 아니라고. 즐길 수 없어서 괴로운 게 아니라, 너무 사랑해서 괴로운 거라고. 너무 사랑하니까 더 잘하고 싶고, 자신과 더 싸우게 되고, 더 아파하게 되는 거라고. 흥미롭게도, 마음껏 아파하고 마음껏 싸우고 고민한 시간이 한 사람을 성장시킨다는 것을 배우 박정민을 통해 알았다. 

 

박정민이 품고 있는 그 고민은 <배우의 방>을 통해 만난 배우들의 공통된 화두이기도 했다. “연기할 때 제가 가장 밉고, 연기할 때 제가 가장 좋습니다”라고 말한 이제훈. 복싱과 비유하며 “패배할 때도 맞지만, 설령 이긴다 해도 결국 맞으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게 연기”라고 한 변요한. “연기는 살아내는 거야”라고 되뇌이던 고두심. 연기라는 분야에 자신의 인장을 오롯이 새긴 배우들이라고 해서 타고난 재능이나 소위 말하는 ‘운빨’로 하루아침에 대중이 인정하는 연기자가 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이들에게서 발견한 건 불투명한 시기를 통과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꾸준히 고민하고, 자기만의 근성으로 불안을 뚫고 나가려 한 자세였다. 

 

이런 자세의 바탕에는 ‘좋아하는 일을 향한 힘’이 있음도 알았다. 수많은 오디션에서 낙방한 경험이 있는 오정세는 “오디션에 합격하고 합격하고 합격한 게 쌓여서 지금의 오정세가 된 게 아니라, 떨어지고 떨어지고 수백 번 떨어진 게 지금의 저를 이렇게 만든 거잖아요”라고 말했다. 그를 만난 후 성공보다는 실패를 대하는 태도가 한 사람의 인생을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밑바탕에 있는 것 역시 ‘좋아하는 일에 대한 믿음’이었다. 

 

다시 반문해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까? 매 순간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의 선택에 의심이 들 때도 있고, 번아웃이 찾아오기도 하고, 실패에 눈물 삼키는 일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아서 하는 마음’이 그 어둠의 터널을 통과하는 등불이 될 수 있음을, 자기만의 길을 묵묵히 걷는 배우들을 통해 가슴 깊이 배웠다. 

 

정시우 작가가 천우희, 안재홍, 변요한, 주지훈, 유태오 등 배우 열 명에게 “연기가 끝나면 당신은 어디로 갑니까?”라고 묻고, 그 답을 모아 펴낸 인터뷰집 <배우의 방>. 캐릭터에 빠져 살던 배우가 ‘자신’으로 돌아가는 공간은 어디인지 들여다보자, 자연스레 그 배우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알 수 있더랍니다. “자신으로 돌아가는 공간, 당신만의 공간은 어디인가요?” 여러분도 스스로에게 질문해보세요.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산다고 해서 늘 행복한 건 아니”라 했다는 한 배우의 이야기도 곱씹어보시고요. 정시우 작가는 매체 소속 영화 기자를 거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로 여러 매체에 칼럼과 인터뷰를 기고하는 중입니다. 인터뷰를 통해 인터뷰이의 매력이 드러나고, 그의 매력이 대중에 영감을 줄 때 무한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글 정시우(작가)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