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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5월 내가 결정하는 나의 인생

예부터 인간의 삶에서 다섯 가지 복을 중요하다고 꼽아왔다. 오복의 첫 번째는 장수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부를 누리는 것이며, 세 번째는 건강한 것이다. 네 번째는 남을 돕고 베풀어 덕을 쌓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고종명考終命으로 죽음을 편안하고 깨끗이 맞이하는 것이다. 이 오복 중에 첫째, 셋째, 다섯째 염원은 서로 이어져 있다. ‘건강하게 오래 살고 깨끗이 죽고 싶다’는 희망이다. 요샛말로 ‘건강, 장수, 웰다잉well-dying’이다. 이 중에 현대인이 소홀히 여기는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고종명이다. 웰다잉 운동은 우리 사회가 외면해온 죽음의 문제를 삶의 한가운데로 꺼내놓고 함께 생각해보고 결정하고 실천해보자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은 대부분 집에서 죽음을 맞기를 원하지만, 실제로는 77%가 병원에서 죽는다. 왜 많은 사람이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걸까? 인생에서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빌리지 않아도, “세상에서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겨우살이는 준비하면서도 죽음은 준비하지 않는다”라는 톨스토이의 경구를 인용하지 않아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쳐오게 마련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죽음을 애써 외면하며 살고 있다. 

 

죽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잘 준비하는 게 지혜로운 인생의 마무리다.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 작성, 유언장 쓰기, 장기 기증 서약 등을 통해 내 삶을 정리하다 보면 삶의 자세가 달라질 것이다.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우리는 항상 준비하고 결정해야 한다. 진학, 취업, 결혼 모든 것이 마찬가지다. 미리 준비하면 당황하지 않고 내 뜻대로 잘 이뤄갈 수 있다. 죽음은 가장 확실한 우리의 미래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준비를 기피하는 이유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두려운 것일수록 더욱 준비해야 한다. 내 재산을 어떻게 정리할지,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연명 치료를 받을지, 후견인을 정할지 모두 내가 결정할 일이다. 내가 결정하지 않으면 병원이, 가족이, 법이 결정하게 된다. 

 

유언장을 쓰는 사람이 미국은 56%에 달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0.5%도 되지 않는다. 미국에선 많은 사람이 쓰니까 나도 쓰는 것이고, 우리는 아무도 안 쓰니까 나도 안 쓰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내 삶의 주인으로서 생명, 재산, 사후 절차 등 삶의 마무리에 관한 일을 내가 결정하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웰다잉 운동이다. 몇 년 전부터 이혼 소송 건수보다 상속 소송 건수가 훨씬 많아졌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모은 귀한 재산인데 내가 세상을 떠날 때 어떻게 정리할지 결정해놓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유언장 쓰기가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상당한 재산을 축적한 세대가 노년기에 접어들었고, 죽음을 맞이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기부 문화의 선진국인 영국에서는 지난 세기말부터 유산의 10%를 기부하는 ‘Legacy 10’ 운동이 활성화되어 기부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표적 자선단체들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함께 유언장 쓰기 문화 조성과 유산 기부 활성화를 위한 캠페인에 적극 나서고 있다. 

 

유언장 쓰기는 내 재산을 내 뜻대로 잘 정리하는 것만이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나의 사회적 관계를 마무리하는 의미도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했다 말하고, 고맙고 미안한 사람들에게 그 뜻을 남기는 일은 정말 소중한 내 삶의 정리이다. 내 삶의 결산서를 한번 작성해본 사람에게 다가오는 삶의 의미는 이전과는 다른 무엇이 될 것이다. 노년 인구 1천만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1천만의 노인이 아무 생각 없이 “이러다 죽는 거지!” 체념하고 살아가는 사회와, 내 삶의 주인으로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사회의 품격과 활력이 같을 수 없지 않겠는가? “생각하면서 살아라. 아니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라는 경구는 우리 삶이 아름답듯이 그 삶의 마무리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쓸모 있는 조언이 될 것이다. 


‘가정의 달, 5월’이라는 한시적 이벤트라도 있으니 이런 깨우침을 나눠볼 생각도 할 수 있는 것이겠지요. 몇 년 전부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존엄한 죽음’과 ‘재산 5~10%를 사회에 환원하는 품위 있는 선택’을 이야기한다는 원혜영 전 의원.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 故 원경선 선생의 아들로 태어나 30세에 풀무원 식품을 창업하고, 이후 정치인으로 살아온 그가 2020년 총선 불출마 선언 후 ‘웰다잉’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국회의원 시절 연명의료결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삶의 주인으로서 죽음에서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 품위 있는 죽음은 개인 의지만으로 불가능하니 국가와 사회 차원의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그를 이끌었다고 합니다. “우리 삶이 아름답듯이 그 삶의 마무리도 아름답게”라는 그의 마지막 문장, 5월이니 더 오래 곱씹어보십시오.

 

 

글 원혜영(전 국회의원, 웰다잉문화운동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