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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다

<행복이 가득한 집>이 탄생한 지 올해로 32년이라고 한다.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겠지만, 서른두 해를 버텨왔다는 것만으로도 축복받을 일이다. 내가 <행복이 가득한 집>을 축하하는 데는 세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잡지의 제목이다. 이 잡지를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가득해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둘째는 손에 들고 다니기 좋은 책의 크기다. 들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다. 세 번째는 이 잡지를 펼치면 구석구석 행복을 주는 글이 가득하니 책 제목이 맞다. 그래서 참 좋은 책이다. 행복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선현들이 남긴 행복론은 수없이 많지만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정의는 그렇게 많지 않다. 국어사전에서 행복은 “복된 좋은 운수”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하거나 그러한 상태”라고 설명한다. 그 뜻을 종합해보면 복과 운인 것 같다. 그리고 객관적 조건보다는 주관적 느낌인 것 같다.

 

유교 문화권에서 오래 살아왔기에 중국 유교의 5대 경전 중 하나인 <서경書經>의 오복五福을 살펴보자. 첫째는 천수를 누리다가 가는 장수의 복, 둘째는 살아가는 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풍요로운 부의 복, 셋째는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깨끗한 상태에서 편안하게 사는 복을 말했다. 넷째는 남에게 많은 것을 베풀고 돕는 선행과 덕을 쌓는 복을 말했고, 마지막 다섯째는 일생을 건강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평안하게 생을 마칠 수 있는 죽음의 복을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지금은 공자 시대가 아니다. 어느 날 친구가 ‘현대인이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글을 보내왔다. 건강한 몸을 가지는 복, 서로 아끼면서 지내는 배우자를 가지는 복, 자식에게 손을 안 벌려도 될 만큼의 재산을 가지는 복, 생활의 리듬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적당한 일거리를 갖는 복, 마지막으로 나를 알아주는 참된 친구를 가지는 복. 이것이 그 글에 적힌 오복이었다. 내가 신혼살림을 차린 곳은 자그마한 월세방 한 칸이었다. 몇 번의 사글셋방 생활을 거친 끝에 방이 두 개인 독채 전세를 얻어 이사했을 때, 이삿짐을 풀고 마루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며 ‘내 평생 이만한 집을 내 명의로 가질 수 있다면 더는 욕심내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 집에서 나는 엄청난 행복감을 느끼면서 살았다. 나중에 내 명의의 집을 가진 후 문득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어떤 집이기에 내가 그런 행복감을 느꼈던가. 궁금해서 찾아가보았다. 블록으로 지은 판잣집 수준이었다. 객관적으로는 내가 행복해야 할 집은 아니지만, 그땐 정말 행복감을 만끽했다. 정말 행복이란 주관적 느낌이라 객관적으로 집이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 짧은 소견으로는 행복이란 재미에서 시작하는 것 같다. 재밌으면 즐겁고, 즐거우면 만족스럽다. 비생산적인 즐거움 말고 생산적인 즐거움이라야 진정한 행복일 것 같다. 우리 모두에게 행복은 있지만, 그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행복은 누구에게나 있다.  

 

‘현대인의 오복’ 중 어떤 복을 누리고 사나요? 아니, 최근 ‘행복’이란 단어를 떠올린 적 있나요? 연못 물처럼 잔잔한 어조로 행복을 읽어준 올해 나이 여든다섯의 이근후 교수. 50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환자를 돌보고, 이화여대 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굴곡 없는 삶 같지만 4·19혁명과 5·16 반대 시위로 감옥살이 후 네 아이를 키우며 지독한 생활고를 겪었고, 왼쪽 눈의 시력을 잃었으며, 일곱 가지 병과 함께 살아왔습니다. 이런 시련도 일상의 작은 기쁨들로 회복됨을 깨닫고, 이를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등의 베스트셀러에 담았습니다. 

 

글 이근후(이화여대 명예교수) | 담당 최혜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