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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어정쩡한 게 좋아

얼마 전 글쓰기 강좌를 개강했다.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 ‘왜 글쓰기를 배우는지’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스물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다 보니 그 내용도 제각각이다. “올해는 꼭 책을 내고 싶다” “남에게 관심받는 게 좋아서 쓴다” “몸이 아팠던 경험을 정리해보고 싶다” “글 쓰는 게 제일 돈이 안 들고 재밌다” 등등 새 학기를 맞는 신입생처럼 다 큰 어른들은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던 중 한명이 유독 더듬더듬 입을 뗐다. “제가 돈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글은 뭘 쓰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사는 게 그냥 다 어정쩡해요.” 
 

아, 어정쩡함! 그건 오래 걸친 외투처럼 내겐 너무도 친근한 말이 아닌가? 한번은 아들 녀석이 물었다. 엄마를 무슨 작가라고 소개해야 돼? 엄마가 글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묻는단다. 소설가냐, 시인이냐, 드라마 작가냐. 난 아이에게 엄마는 인터뷰하고 칼럼 쓰고 산문도 쓴다고 설명했지만, 말하면서도 뭔가 잡다하고 애매했다. 오랜 질문이다. 나는 무슨 글을 쓰는 사람인가.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반듯한 명함도 없고 내세울 만한 대표작이 있는 것도 아니나 어쨌든 매일 글을 써서 먹고살았다. 그런데도 내가 하는일을 설명할 말은 늘 궁했다. 종일 컴퓨터 앞에서 자판을 두드리지만, 그건 한 편의 글로 완성되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닌 게 되기도 한다. 그럼 난 그날 일을 한 건가 논 건가, 헷갈렸다. 
 

그렇게 불확실한 날을 10년쯤 보내고서야 문득 깨달았다. 그 어정쩡함이 글쓰기의 동력이었음을. 글 쓰는 일은 질문하는 일이다.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고 혼란스러워야 사유가 발생한다. 좋은 글이란 무엇인지, 아이가 잘 큰다는 게, 좋은 엄마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온통 혼란스러웠고 그럴 때마다 하나씩 붙잡고 검토하며 써나갔다. 쓰는 과정에서 모호함은 섬세함으로, 속상함은 담담함으로 바뀌었다. 물론 글쓰기로 정리한 생각들은 다른 삶의 국면에서 금세 헝클어지고 말았지만, 그렇기에 거듭 써야 했다. 어차피 더러워질 걸 알면서도 또 청소하듯이 말이다. 그날 수업 시간에 자기소개를 마치고 나는 말했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는 니체의 말대로, 불확실한 삶의 긴장 상태는 글쓰기 좋은 조건”이라고. 우리는 또 대부분 그렇게 산다. 주변을 봐도 고시 합격생보다 준비생이 많다. 고액 연봉에 승승장구하는 사람보다 비정규직이나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다수다. 연인 관계도 팽팽한 사랑 감정을 느낄 때보다 지리멸렬하고 느슨해서 친구인지 가족인지 헷갈리는 시기가 길다. 그러니 어정쩡한 상태를 삶의 실패나 무능으로 여기지 말자고 했다. 
 

나도 20~30대엔 애매함을 배척하고 확실함을 동경했다. 돈 걱정 없이 원하는 글을 쓰는 안정된 집필 환경을 꿈꾸었고, 내 이름으로 된 책이라도 낸다면 존재 증명이 수월하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책상과 고요가 확보된다고 글이 싹 바뀌지 않았고, 책이 나온다고 삶이 확 달라지진 않았다. 아이가 기저귀만 떼면 엄마 노릇이 수월할 줄 알았는데, 걸으면 넘어질까 걱정, 취학하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할까 걱정… 성장할수록 근심의 층위도 깊어갔다. 이만큼 떠밀려오고 나서야 짐작한다. 인간이 명료함을 갈구하는 존재라는 건 삶의 본질이 어정쩡함에 있다는 뜻이겠구나. 
 

이제 나는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다. 확실함으로 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 40대 후반이면 그걸 두려워해야 할 나이다. 글쓰기는 이런 거야, 사는 건 원래 그래,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쩐지 서글프다. 언제 잊었는지도 모르는 첫사랑처럼 순간 멀어진 그것, 무수한 사유의 새순을 피워 올리는 단어, 어정쩡함이란 말을 이 봄에 다시 내 것으로 삼는다.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건 어쩐지 서글프다.” 가슴에 남는 문장입니다. 불확실한 나날 속에서 길어 올린 빛나는 사유를 통해 작가 은유는 ‘어정쩡함’의 가치를 새롭게 밝힙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불확실한 앞날 앞에서 불안하기도 오래지만, 이 글을 통해 새봄을 맞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지셨기를. 작가 은유는 자신을 ‘글 쓰는 사람’이라 소개합니다. 자기 경험에 근거해 읽고 쓰고 말하며 자기 언어를 만들고 자기 삶을 재구성하는 작업에 뜻을 두고 있습니다. 에세이집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쓰기의 말들> <글쓰기의 최전선>과 인터뷰집 <폭력과 존엄 사이> <도시 기획자들>을 펴냈습니다.


글 은유 | 담당 정규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