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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과거는 저 앞에

이 노래 아세요? 너무나 옛날 노래인지라… 젊은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제목이 ‘과거는 흘러갔다’. 중학교 때 음악 시간도 아니었는데 친구가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라는 선생님의 지목을 받고 이 노래를 불렀지요.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그 시절에도 이 노래는 좀 오래된 노래였어요. 친구가 노래 부르고 있는 중간에 선생님이 친구의 뒤통수를 치면서 “네 나이가 몇인데 그런 노래를 부르냐”고 야단을 치셨습니다. 그때는 선생님이 학생 머리통 후려치는 정도는 예사인 시절이긴 했지만, 감정 넣어 노래 부르다 순간에 흥취가 깨진 그 친구의 얼떨떨한 모습과 시켜놓고 왜 때리느냐는 우리의 말 없는 항변이 교차했습니다. 유행가라서? 너무 오래전 유행가라서? 그것보다는 선생님의 야단 속에서 알아챈 것은 가사 때문이었습니다. 과거가 생기지도 않은 어린 학생이 이 노래를 부른다는 게 정말 선생님으로서는 어이가 없었던 거지요.

우리는 노래하다 맞은 친구를 둘러싸고 위로해주다가 그 친구의 집안이 노래를 즐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 친구네 집은 가끔 엄마, 아버지 그리고 고모까지 온갖 감정을 넣어서 노래 부르기 시합을 한다네요. 이 노래는 고모의 십팔번이라고요. 우리는 그가 아는 온갖 유행가 제목의 수만큼 그 집안을 부러워했습니다. 노래 부르는 집안이라… 우리 집은? 속으로 이렇게 묻는 질문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TV에 나와서 어린 꼬마가 트로트 부르는 것을 보면 저런 노래 저 나이에 해도 되나? 그 친구와 과거가 뭔지나 아냐고 야단치던 선생님이 생각나요. 그래도 그렇지, 뒤통수 느닷없이 때리는 건 너무했고요. 정말이지 열렬하고도 서글픈 듯한 재미난 과거가 흘러갔습니다. 인문학은 생각의 힘을 키우는 학문이라고 정의하는 표현이 저는 참 좋습니다. 적정기술이 있듯이 적정 인문학도 정의되면 좋겠습니다. 크고 넓은 길보다 오솔길이 오히려 마음의 피로를 씻어주는 법, 이런 작은 기억을 위한 행동을 만드는 것이 적정 인문학이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평상시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은 꿈속에서 먹는 식사와 같답니다. 그런 것들이 우리를 키우고 만드니까요. ‘내 마음 보고서’라는 심리 검사를 하려고 체크하는 질문지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항목이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가정에 대한 것입니다. 평생을 살아가는 마음 자세가 어디서 비롯되었고,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었고, 스스로를 지켜주는 힘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과거를 묻고 있었는데, 이는 역사가 미래의 거울인 이치와 같을 것입니다. 지금 가장 힘 있는 말 중 하나인 ‘지속 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형용사의 본질은 예전부터 앞으로 계속이라는 뜻일 터입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개인과 사물을 연결해놓고 무엇을 어떻게 해주면 좋은지 개개인에 맞추어 해결해주겠다는 시대입니다. 이는 우리가 누구인가를 여실히 묻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하고 싫어한 것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어온 것입니다. 미래의 나는 지금이라는 시간적 되감기를 작동할 때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과거는 흘러간 것이 아니고, 저 앞에 있는 거네요. 

제각각 자기 생각에 빠져 있으면서 그래도 조금이나마 부자연한 곳이 없는 이 가족의 조화와 통일을 나는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 것인가. 위대한 것을 바라지 않고 유순한 가족들이 모여서 죄 없는 말을 주고받는 좁아도 좋고 넓어도 좋은 방 안에서….  김수영 ‘나의 가족’ 


추신 <행복이가득한집>이 창간 30주년을 맞았습니다. 과거 1987년부터 시작해왔기에 그만큼 탄탄하고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라이프스타일 잡지로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지켜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행복이가득한집> 발행인 이영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