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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소통이 어려운 이유

전화가 걸려왔다. 문자언어적 인간인 나는 음성언어 소통을 오래 하면 피로감을 느낀다. 좋지 않은 호흡기 탓에 지구력이 떨어져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중요한 용건이면 문자나 메일을 남기겠거니, 모르는 번호는 잘 받지 않는데 어쩐지 받아야 할 것 같았다. 원고 청탁이었다. 코너 이름이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라고 했다. 이야기를 불러일으키는 이름이었다. 우리는 왜 ‘정말’로 이야기가 하고 싶을까? 외부와 끊임없이 이어지고 싶어서 그렇다. 우주와 자연, 다른 생물, 특히 다른 인간과 연결되고 싶어 한다. 알고 싶고, 알리고 싶어 한다. 그렇게 호기심을 갖고 교감하며 소통한다. 인간은 외부로부터 감각신경을 통해 자극을 입력받고, 그 자극과 정보를 처리하며, 운동신경을 통해 의사를 출력한다. 이 입력 기관과 출력 기관에 불편이 생기면 갑갑함에 고통을 받는다. 극단적 예가 스티븐 호킹 박사가 겪는 루게릭병이다. 의식은 생생한데 이를 외부에 전달하지 못하니 마치 육체의 감옥에 갇힌 듯 느끼는 이 병을 ‘감금증후군’이라고도 부른다. 

뇌 과학 도서들을 읽어보면 인간이란 ‘외부와 이어지고자 하는 소통의 정념으로 똘똘 뭉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신경과학자 이대열의 <지능의 탄생>에 따르면, 인간은 혼자 있을 때조차도 타인의 생각에 내 생각을 연결시키는 사회적 활동을 멈추지 않는다. 혼자 있기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SNS를 하고, 이메일을 확인하며, 책을 읽고, 영화나 TV를 보며 나와 타인을 끊임없이 이어간다.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조차 인간의 뇌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있었던 일을 복기하거나 일어날 일을 시뮬레이션한다. 인간人間이라는 단어에는 ‘사이(間)’가 들어간다. 우리 언어에 담긴 통찰은 이토록 감탄스럽다. 개체와 개체를 연결하는 ‘사이’야말로 인류의 생태임을 이해한 단어인 것이다. 인간은 개체로 고립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든 서로 이어지고자 한다. 직접 닿지 못하는 타인과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 문자를 낳았고,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인쇄술을 발전시켰다. 좀 더 정련한 표현으로 닿고자 문학을 쌓아 올렸으며, 타인의 눈을 배려하고 글자로 더 멋지게 표현하고 싶은 마음이 타이포그래피 영역을 구축해왔다.

인간관계 속의 모든 소통은 사실 어렵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은 여러 갈래의 학문과 전문 분야로 발달해왔다. 가끔 인간과 인간이 연결되는 ‘관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항으로 존재하는 인격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딱히 잘못하지 않아도 이 관계라는 녀석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물론 둘 중 한 명 혹은 둘 다 뚜렷한 잘못이나 애매한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도 많지만, 이 관계항 자체에 혐의를 돌려야 간신히 문제가 풀릴 때가 있다. 인간의 내면으로 찍혀 들어가는 것이 인상(impression)이고, 인간이 외부로 찍어 내보내는 것이 표현(expression)이다. 그 동사형인 입력하다(im-press)와 발화하다(ex-press)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단어 프레스press는 찍어낸다는 뜻으로, 인쇄와 언론을 의미하기도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그것을 상대방의 마음에 찍으려(press) 할 때, 내가 발화하는(express) 표현의 메커니즘과 상대가 이를 받아들이는(impress) 수용의 메커니즘은 완전히 다르게 돌아간다. 입력과 출력의 프로세스가 불일치한다는 이야기다. 내가 말하는 것이 상대에게 곧이곧대로 수용되리라 믿는 것은 많은 사람에게 일어나는 착각이고 환상이다. 타이포그래피 수업에서도 이 차이가 얼마나 크고 극복하기 어려운지를 가르친다. 그래서 소통이란 어렵다. 내 마음을 그대로 전달하기는 어렵다. 받는 사람의 인지와 수용 기제를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소통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 발화와 입력의 메커니즘이 각각 다르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일치시키기 어렵다는 것. 누군가에게 서운한 맘이 들거들랑, 이 사실만 떠올리더라도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질 것이다. 내 잘못도 네 잘못도 아니라, 그저 그 자체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을 다들 이해하면 좋겠다. 이것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연결과 소통을 바라지만, 한편으로 그런 욕망은 일상적으로 겪는 스트레스의 주된 원인이기도 합니다.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유지원은 “소통의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곧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다”라고 말합니다. 발화와 수용, 인상과 표현을 뜻하는 영단어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프레스press를 통해 소통이 어려운 이유를 말하는 필자의 글쓰기가 무척 흥미롭습니다. 책과 글자를 좋아하는 디자이너 유지원은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민음사에서 북 디자이너로 일했습니다. 라이프치히 그래픽서적예술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를 전공한 그는 서울대학교, 홍익대학교 등에서 타이포그래피와 편집 디자인을 가르치며 타이포그래피 연구와 전시, 북 디자인, 저술, 번역 등의 일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