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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식물학자인 내가 평생 가장 많이 들어보았고, 지금도 내 마음과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질문이 있다. “이 꽃 이름이 뭐예요?” 결과적으로는 이 물음으로 새로운 꽃의 이름을 알아가는 내 삶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 당혹스러우며 때로 나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어릴 때 우리 집 마당엔 조촐한 정원이 있었다. 꽃을 정말 좋아하신 어머니는 매년 봄이면 지난 가을에 받아둔 채송화나 분꽃, 화초호박 같은 식물의 씨앗을 심으셨다. 베란다 퍼걸러엔 능소화가 올라가며 크고 있었는데, 그 덩굴나무가 피워낸 주홍빛 꽃송이들이 얼마나 탐스럽던지 우리 집을 찾는 많은 이의 감탄을 자아냈다. 수선화 꽃향기가 얼마나 매혹적인지 느낀 것도 그때였으며, 다른 친구들이 모르던 꽃 이름을 떡하니 말할 땐 으쓱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에 진학해 산림자원학과에서 숲을 공부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서울 토박이가 어쭙잖게 알던 꽃 이름은, 산과 들로 뛰어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삶 속에 스며든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식물분류학이나 수목학 같은 과목을 수강할 때에는 식물 이름 시험까지 쳐야 했으니, 이때부터 내게 식물 이름 알기는 의무와 부담이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해 식물분류학을 전공하며 식물 이름과의 본격적 씨름이 시작되었다. 공부하며 내가 알아가는 꽃 이름은 나날이 많아졌지만, 그와 비례해 주변 사람들이 내게 꽃 이름을 물어보는 일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식물을 조사할 때나 연구할 때에는 당연히 알아야 할 일이지만, 내가 근무하는 기관의 인터넷 게시판에는 “이 꽃 이름이 뭐예요?” 하는 질문이 끊이지 않고 올라왔다. 핸드폰으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인터넷으로 이미지 전송이 간편해진 뒤에는 질문 개수가 훨씬 늘어났다. 문제는 직접 보지 않고 사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왕벚나무와 벚나무를 구분하려면 암술대의 털을 봐야 하는데 꽃 이름이 궁금해 찍은 사진에 이런 부분이 나올 리 없다. 내가 전공한 식물분류학은 식물의 계통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식물을 식별하는 능력과 학문적 깊이는 비례하지 않지만, 식물학자는 어떤 꽃 이름이든 알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정확하지 않은 것을 대충 답할 수도 없는 결벽증이 더해 언젠가부터 꽃 이름 알기는 내게 커다란 스트레스가 되어버렸다.

오랜 시간 나를 괴롭혀온 꽃 이름에 대한 스트레스는 이전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절정에 달했다. 앱 개발에 대한 요구였다. 정부와 국민은 우리나라에서 식물 정보를 가장 많이 보유한 국립수목원에 꽃과 식물을 카메라로 찍기만 하면 이를 인식해 그 이름을 알려주는 앱을 개발할 것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하지만 구성 요소가 일정한 사람의 지문이나 홍채와 달리, 자연의 변이 폭은 상상 이상인 데다가 사진 찍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기계가 형태로 인식해 정확한 이름을 찾아내는 일은 당시엔 불가능에 가까웠다. 수년간 이 문제와 씨름하다 지쳐 포기할 즈음 완전히 새로운 접근의 해결 방안이 출현했는데, 바로 집단 지성 방식이다. ‘모야모Moyamo’라는 앱은 스마트폰으로 꽃을 찍어 올리면 누군가 이름을 알려준다. 간혹 틀릴 때도 있지만, 이 앱을 즐겨 사용하는 재야의 고수들이 갑론을박하다 보면 금세 정확한 답변이 올라오곤 한다. 최근 또 다른 강자가 출현했는데 ‘다음Daum 꽃 검색’ 앱이다. 이세돌과 대국한 알파고처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인공지능 방식으로, 꽃 사진을 올리면 알아서 분석해 형태가 비슷한 꽃을 찾아 그 확률까지 알려준다. 아직까지는 바둑과는 달리 집단 지성 모야모가 인공지능보다 정확성에서 우위에 있지만, 다음 꽃 검색 앱에 정보가 많이 쌓이면 앞으로 역전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덕분에 요즘 내게 꽃 이름을 묻는 문자와 게시판 문의가 한결 줄어들었다. 고마운 일이다. 내 마음도 한층 성숙해 잘 모르는 식물을 모른다고 말하고, 같은 분야를 전공한 후배에게 물어보는 일도 전혀 부끄럽지 않다. 세상도 나도 바뀌었음을 절감한다. 이제 나의 바람이 있다면 나 자신에게 “이 꽃 이름이 뭐예요?” 하는 물음을 놓지 않는, 평생 공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기분 좋게 걷다 문득 길가에 핀 아름다운 꽃과 싱그러운 풀, 듬직한 나무의 이름이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식물학자인 국립수목원 이유미 원장에겐 그런 질문과 사람들의 기대가 오랜 스트레스였답니다. 하지만 집단 지성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스마트폰 앱이 그 부담을 덜어주었다는군요. 흔히 과학기술은 자연의 반대말처럼 쓰이곤 하지만, 과학기술 발전의 시작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더 잘 알고 싶은 호기심이었을 겁니다. 이유미 원장은 서울대학교 산림자원학과에서 식물분류학을 공부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1994년 삼림청 임업연구사로 공직에 첫발을 디딘 후 국립수목원 연구관을 거쳐 지금은 국립수목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저서로 <우리 나무 백 가지> <쉽게 찾는 우리 나무> <한국의 야생화>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