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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봄을 적극적으로 맞는 방법

봄이 온다. 봄은 땅에서 뭔가 맹렬히 돋아나는 계절이지만, 반대로 땅이 입을 벌려 씨앗을 맹렬히 삼키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무라면 꼬챙이만 꽂아둬도 물이 오르고, 씨앗이라면 땅바닥에 굴러떨어지기만 해도 싹이 돋는다. 우주가 약동한다. 모든 길짐승, 날짐승의 피톨과 핏줄이 바쁘게 요동친다. 땅에 뭔가를 심지 않으면 안 된다. 봄에 씨앗을 땅에 묻어본 사람은 그 짓을 안 하는 봄을 견딜 수 없다. 한 톨 씨앗이 싹을 틔워 꽃이 피고 한들거리다 수백 배의 알곡으로 여무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는 가을이 무슨 소용 있으랴. 봄에 씨앗을 묻는 이의 1년은 암만 빨리 흘러도 허망하지 않다. 진작 내 인생의 봄날에 깨우쳤어야 할 진리이건만 늘 그렇듯 알고 나면 너무 늦다. 대신 봄이 오면 나는 회한을 곱씹으며 땅을 파고, 은유가 아닌 글자 그대로의 씨앗을 굴려 넣는다. 그럴 때 가장 재미나는 씨앗이 콩이다. 꼬챙이로 구멍이나 숭숭 뚫고 두어 알 굴려 넣기만 해도 콩은 자란다. 1년 내내 거름 한 번 주지 않아도 가을이면 수십 개의 콩꼬투리가 볕살 아래 하얗게 제 배를 뒤집어 보인다. 콩은 우리 곡식이다. 밀이 유럽의 풍토에 알맞고 벼가 동남아시아의 작물이라면 만주와 한반도는 단연 콩의 땅이다. 간장과 된장과 콩나물과 두부, 그것 없이 우리가 숱한 기근과 전쟁을 어찌 견뎠으랴. 흔한 알곡이니 콩을 두고 유난히 궁리가 많았으리라. 싹 틔워 먹고 갈아 먹고 띄워 먹고 삶아 먹고 우려먹는 방법들을 하나씩 찾아냈으리라.

이 땅 어디에서나 콩은 자란다. 마당 귀퉁이 거름 더미 곁에 어쩌다 저절로 튕겨져 자라는 쥐눈이콩, 배나무나 감나무를 감고 올라가는 양대 넝쿨,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강낭콩, 못자리를 한 후 심심파적으로 찔러 넣어둔 논두렁콩 등 뿌리 내릴 땅만 만나면 콩은 어디서든 싹이 난다. 자존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까다롭지 않아서다. 박토에 뿌리 내려 제 덕성을 나눠주기 위함이다. 어릴 적 우리 고방엔 콩가루 바가지란 게 있었다. 추수한 콩을 빻은 날콩가루를 담아둔 바가지였다. 요즘 부엌에선 구경하기 어려운 물건이다. 어디다 쓰냐고? 다용도였다. 우선 국 끓일 때 썼다. 무도 배추도 일단 콩가루 바가지에 한 번 넣었다가 빼서 국을 끓였다. 말린 시래기는 물론이고 봄에 돋는 냉이나 쑥도 콩가루에 굴렸다가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 콩가루가 들어가면 국 맛은 순하고 선해졌다. 거친 시래기도 약 오른 들풀들도 자극적으로 제 주장을 내세우기를 삼갔다(물론 콩가루 대신 콩을 띄워 만든 된장을 풀기도 했다). 두 번째는 국수를 만들 때 썼다. 밀가루와 콩가루를 얼추 반반씩 넣어 치댄다. 국수 빛깔은 희지 않고 노랬다. 밀은 빻으면 흰 속살이 나오지만 콩의 살빛은 연노랑이다. 내 입맛엔 지금도 누런빛이 도는 콩가루 국수가 훨씬 구수하고 달다. 세 번째는 콩장을 ‘저을’ 때 썼다. 이것도 물론 일종의 국이긴 하다. 국 끓일 마땅한 채소가 없을 때 우리 엄마는 콩장을 저었다. 밥그릇 옆에 국그릇을 비워놓고 상을 차리는 건 여인의 법도가 아니었기에! 콩장은 끓는 물에 콩가루를 넣고 저어 후루룩 끓여내는 건데, 우리 집 말고 다른 곳에서는 구경해본 적이 없다. 콩가루 들어간 다른 음식처럼 편하고 구수했다. 콩장은 불 조절을 잘하지 않으면 거짓말처럼 솥 안의 내용물이 넘쳐버린다. “콩장 저을 때는 꼭 불 옆에 붙어 서 있그라. 정신을 딴 데 팔면 냄비에 국이 흔적도 없이 어데로 가버린다”며 엄마는 날 가르쳤다. 물론 나는 엄마 말을 귓등으로 흘려들었다. 누가 콩장 같은 걸 저어 먹어? 그러나 엄마 돌아가신 후 나는 문득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같은 콩장을 그리워하게 됐다. 아파트에 사는 도시인에겐 내 땅이 없다. 봄이 와도 씨앗을 묻지 못한다. 그래도 콩을 심자. 큰 화분이나 ‘어스백’(흙을 담은 포대)을 마련하고 콩 몇 알을 묻어보자. 넝쿨이 벋고 꽃이 피고 꼬투리가 생기고 마침내 그 안에 열매 맺는 콩, 콩과 함께 보내는 1년은 절대로 허망하지 않으리라.

“봄에 씨앗을 땅에 묻어본 사람은 그 짓을 안 하는 봄을 견딜 수 없다.” 이 얼마나 멋진 문장인지요. 당장이라도 폭신한 흙에 꼬챙이로 구멍 숭숭 뚫고 콩알 두어 알 굴려 넣고 싶어집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은유가 아니라 글자 그대로의’ 봄이 온 것 같습니다! 글을 쓴 칼럼니스트 김서령은 ‘오래된 이야기 연구소 대표’라는 재미난 직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살았던 집과 먹었던 음식, 입었던 옷의 기억을 통해 자아를 재발견하고 치유하는 글쓰기 실험실입니다. 저서로 <김서령의 가家> <여자전> <삶은 천천히 태어난다>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안동 장씨 4백 년 명가를 만들다> 등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