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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6월 내일의 情

우리 집에 강아지 ‘콩이’가 온 지 2년이 넘었다. 참 귀엽다. 전엔 햄스터 두 마리를 키운 적이 있고, 여럿이 살다가 이제 딱 한 마리 남은 외로운 물고기도 어항 속에서 잘 살고 있다(그런데 마지막으로 안부를 확인한 게 언제였더라?). 아내가 물을 주며 보살펴 키우는 화초도 있다. 나는 화분에 뿌리내려 옴짝달싹 못하는 화초보다는 물고기가, 물고기보다는 햄스터가, 그리고 햄스터보다는 강아지 콩이에게 훨씬 더 정이 간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뿐 아니라 사람들이 다 비슷하다. 횟집 수족관에서 살아 헤엄치는 광어를 가리키며 “저걸로 할게요” 하곤 즐겁게 먹어치우고, 접시 위 꿈틀대는 낙지를 보며 입맛을 다신다. 그러던 사람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의 커다란 눈망울을 보며 눈물이 고인다. 식물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에 한참 못 미쳐, 시금치무침을 먹으며 불쌍해하거나 절인 배추에게 미안해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없진 않다. 그런 특이한 친구가 주변에 딱 하나 있었으니까).

채소든 낙지든 쇠고기든 사람이 입에 넣기까지 다 생생하게 살아 있던 생명인데도, 우리는 특정한 생명체를 더 가깝거나 멀게 느낀다. 보편적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가깝게 느끼는 생명체들을 순서대로 한 줄로 늘어놓아보자. 진화 계통도와 꽤 비슷해질 것이다. 현재 인간이 끝에 놓인 ‐ 미래에는 사람 이후로 계속될 수도, 아니면 사람을 마지막으로 멈출 수도 있는 ‐ 진화의 가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최근에 인간과 갈라진 생명체일수록 더 가깝게 느낀다는 이야기다. 강아지 콩이와 햄스터, 물고기, 화초라는 ‘정情’의 순서란 다름 아닌 진화의 계통도에서 인간의 위치와 가까운 순서가 아닐까?

나는 ‘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미운 정, 고운 정’이라는 말이 있듯이 정은 꼭 좋아하는 감정만 일컫는 것은 아니다. 난 정이 사랑보다 공감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함께 느낀다는 뜻의 ‘공감’은 둘 사이의 깊은 ‘관계’가 없다면 불가능하다. 사람의 다른 말 ‘인간人間’에서 알 수 있듯이 사람(人)은 사람들 사이(間), 혹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정의되는 존재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관계를 맺는다. 관계의 지속 시간이 길수록 정도 더 깊이 들게 마련이다. 세상에 수많은 강아지가 있지만 우리 집 콩이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당연히 내가 콩이와 함께한 시간이다.

시간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처럼, 나는 하루 중 많은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며 보낸다. 그런 시간이 콩이와 함께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길지만 나는 컴퓨터 자판에 정을 주지도, 또 자판에 이름을 붙여 쓰다듬지도 않는다. 콩이가 내게 특별한 이유는 함께한 시간뿐 아니라, 콩이와 내가 양방향으로 밀접하게 소통하기 때문이다. 잠깐만 집 밖에 나갔다 와도 콩이는 참 반갑게 맞아준다. 말 못 하는 동물이지만, 누가 봐도 진심이 느껴지는 반가움이다.

주인을 만나 반갑게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분은 행복할 때 사람 뇌에서 활성화되는 부분과 같은 곳이라는,어찌 보면 당연한 뇌 과학 연구 결과도 있다. 강아지가 기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기뻐한다는 뜻이다. 아내는 콩이를 키우기 전에는 강아지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밖에서 산책을 하다가도 작은 강아지가 다가오면 질겁하며 내 등 뒤로 숨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한 침대에서 콩이랑 같이 잠들 정도가 되었다. 가끔 놀아주는 것 말고는 별로 하는 일이 없는 나보다, 매일 먹이 주고 변을 치우고 함께 산책하는 아내가 콩이에게 정이 더 든 것이다.

어쩌면 그 대상이 꼭 생명체일 이유도 없다. 로봇 청소기가 이리저리 움직이며 열심히 청소하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문득 귀엽다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바닥에 놓인 전선줄에 걸려서 어떻게든 넘어보려 애쓰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심지어 엉뚱한 곳을 향해 가는 것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가지 마” 하고 말한 적도 있다. 사람과 소통해 정서적으로 적절하게 반응하는 인공지능이 가장 먼저 장착될 곳은 로봇 청소기처럼 집에서 늘 사용하는 가전제품일 거다. 사람과 소통하고 반응하는 인공지능 로봇 청소기들이 강아지 콩이처럼 이름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집 싹싹이는 글쎄 어제 시키지도 않았는데 욕실을 청소했지 뭐예요.” 머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거라는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바둑 최고수를 가볍게 이길 정도니,평범한 우리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요? 하지만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는 막연한 불안 대신 인공지능을 적용한 가전제품과 정서적으로 가까워질 흥미로운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 재직 중인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는 물리학 이론으로 사회와 경제, 생명 현상을 설명하려 합니다. 작년 그가 쓴 책 <세상물정의 물리학>은 그 시도를 구체화한 결과물이지요. 학창 시절 물리라면 질색하던 분들에게도 기꺼이 권할 만한 책입니다. 복잡한 세상을 바라보는 물리학자 김범준 교수의 시선은 이 글처럼 새롭고 흥미로우며 따뜻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