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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명미 우리 같이 놀아요

이명미 작가는 1950년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및 동 교육대학원을 졸업했다. 1977년 그로리치 화랑에서 진행한 <놀이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20여 회의 개인전과 40회가 넘는 단체전에 참가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대구문화예술회관, 부산시립미술관, 홍익대학교 박물관 등 다수의 기관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블랙&화이트,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낸 이명미 작 가는 군더더기 없는 옷매무새만큼이나 간결하고 분명한 어법과 유머로 순식간에 좌중을 압도했다. “대구는 처음이지요? 대구에 왔으면 이것 도 먹어보고 저것도 먹어보고 구경도 좀 하고 가야 하는데 아깝네.” 이 명미 작가는 대구 출신으로 1970년대 중반부터 대구를 거점으로 자신 만의 예술 세계를 펼쳐온 작가다. 지난 2015년에는 대구미술관에서 40 여 년간의 활동을 망라하는 대규모 회고전 <말해주세요(Tell Me)>를 열기도 했다. 그는 모노크롬 회화가 주류를 이루던 1970년대 화단에서 도 구상과 추상을 넘나드는 형상과 화려한 색감을 거침없이 사용하며 한국 현대미술계에서 독보적 행보를 펼쳐왔다. 박서보, 하종현 작가의 1대 제자이기도 한 이명미 작가는 이미 1979년에 여성 작가로는 아주 드물게 도쿄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기꺼이 고향인 대구에 정착해 꾸준 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외야수’라고 말한다. “예 술가는 초식동물처럼 집단으로 몰려다니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외롭고 고독하게 야수로 남아 자신의 존재를 지켜야 하지요.” 

지난 3월 말부터 한 달간 대구 갤러리분도에서 개최한 개인전 <그리다그림>에서 작가는 신작 스물여덟 점을 선보였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 라면 화면이 예전에 비해 훨씬 간결하고 단순해졌다는 것. 물감과 붓만 으로 회화의 기본기에 충실했다. 이번에도 역시 예전부터 화면에 등장해 온 화분, 꽃, 의자 등 일상의 사물이 주인공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하는 것들이고, 선이 단순해서 그리기 좋아요. 잡티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벽하게 화장한 여자 얼굴이 매력 없듯, 최선을 다해 여백 없이, 비움 없 이 빽빽하게 화면을 채운 그림은 숨이 막혀요.” 다채로운 원색에 더해 형 광색도 화면에 끌어들였다. “1970년대에는 오일 페인팅으로 그렸기 때 문에 똑같은 핑크 컬러를 써도 지금보다 좀 더 무겁고 가라앉는 느낌이 났지요. 당시는 화려한 색채를 금기시하는 화단의 분위기도 있었고요. 1985년부터 아크릴물감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화면 속 컬러가 한층 밝아졌어요. 그러다 1990년대부터는 형광색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림 자체가 주는 인상이 훨씬 가볍고 경쾌해졌지요.”  

‘화분 그리기’, 캔버스에 아크릴, 130.3×162cm, 2016
표지작 ‘동물 그리기’(2017) 역시 이러한 작가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작 품이다. 작가는 이미 1980년대에 동물 그리기를 선보였는데, 그때는 화 폭 안에 동물을 그린 뒤 ‘늑대’ ‘토끼’ ‘HORSE’ 식으로 글자를 써넣은 작 품이 대부분이었다. 그에 비해 신작은 서양화 특유의 입체감, 볼륨, 원 근감을 깡그리 생략한 채 면・선・색 등 오로지 ‘붓 맛’으로 표현한 작품 이다. “그냥 휙, 아무렇게나 그린 것 같지만 선에 굉장히 공을 들였어요. 추사의 글씨에는 무기교의 기교가 녹아들어 있지요. 내가 지향하는 것 도 바로 그런 거예요. 예술가의 몸속에서 피처럼 돌아 한 방에 툭 튀어나온 것은 무엇이든 예술이 돼요. 형용사와 미사여구가 많 은 것은 촌스러운 거예요.” 최근 다시 그리기 시작한 인물 화 소품도 눈에 띈다. “이 나이가 되니 다시 사람에 관심 이 생겨요. 인간은 식물, 동물과 달리 텍스트가 필요 없 지요. 형상과 표정 자체로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으니까 요.” 작가는 20대 시절부터 ‘놀이하듯 하는 예술’을 추구해왔 다. 재료를 갖고 놀겠다는 마음 하나로 40여 년 동안 작 업에 임했다는 이명미 작가. “그림 그리는 과정에 집중하 고, 그 행위의 결과가 그림이 되든 안 되든 상관없다는 마 음으로 캔버스 앞에 섰어요. 그러다 최근 들어 장난기를 줄이고 회화적인 고민을 더했지요. ‘늘 회냉면만 먹다가 심심한 물냉면 한번 먹어볼까’ 하는 그런 기분이에요”라 고 농담처럼 말한다. 늘 한 가지 맛만 고집하는 것이 아 니라 다양한 소스도 넣어보고, 생전 안 쓰던 향신료를 사용해 이국적 맛의 요리에 도전하듯 그림도 그러한 ‘가 능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그림 철학. “바로 그 러한 가능성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그림은 경계 가 없어야 하지요.” 이명미 작가의 작품 중에는 보들레르 의 시 ‘여행에의 초대’의 한 구절이나 김건모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의 가사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너를 찾아 떠나갈 거야”, 나미가 부른 ‘슬픈 인연’의 가사 “그러나 그 시절에 너를 또 만나서 사랑할 수 있을까” 같은 텍스트만으로 화폭 전체를 채운 작 품도 있다. 모두 3~4년 내에 그린 최근작이다.

문방구에서 파는 아이들 장난감이나 스티커를 이용해 화폭 안에 가사를 형상화하거나, 낙서처 럼 사물의 일부를 표현하기도 했다. “무엇이든 그림이 될 수 있잖아요. 스치는 풍경, 어느 순간 내 귀에 확 꽂힌 노래 가사도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지요. 작가는 무조건 자기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야 해요.” ‘밝을 명明’에 ‘아름다울 미美’. 예술가를 명명하는 것으로 이보다 더 멋 진 이름이 있을까? 일흔을 앞둔 나이에도 시종일관 유쾌하고 재미있게, 한편으로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속 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예술을 고집하는 이명미 작가. 물감 냄새로 가득한 작업실에서 그 와 마주 앉아 세 시간을 보낸 후, 예술이란 심오하고 어려운 것만이 아 님을, 즐겁고 사랑스럽고 행복한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남이 안 하는 짓을 하고 살라고 하느님이 나를 세팅하셨어요. 나는 1970년대 화가잖아요. 하지만 미래 세대에게도 ‘먹혀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흐, 고갱, 세잔 등 서양 미술사에 굵직하게 이름을 남긴 예술가를 보면 하 나같이 멋, 맛, 영양가를 후세에 고루 전한 사람이에요. 늘 다음이 궁금 한 사람, 유니크한 화가로 남고 싶어요.”

글 유주희 기자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