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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간동 와인바, 두가헌 100년 전 조선 왕가의 기품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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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을 중심으로 한옥 가꾸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한옥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현대 생활에 맞게 내부를 수리함으로써 ‘한옥은 불편한 곳’이라는 기존의 선입견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상업 공간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어가면서 한옥의 새로운 붐이 일고 있다.
 
photo01 지난가을, 노란 단풍이 예쁘게 물든 사간동 길을 걷다가 우연히 ‘어처구니 있는 집’을 발견했다. 한옥에서 어처구니란 지붕 위에 있는 토우土偶(흙으로 만든 인형) 장식을 가리킨다. 잡상雜像 혹은 상와像瓦라고도 하는 이 ‘어처구니’는 집주인이 원한다고 해서 임의로 만들어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궁궐이나 사대부 집 등 지체 높은 가문의 지붕 위에만 올릴 수 있었던 것. 원래 원불교 재단이 소유하고 있었던 이곳은 30년간 아무 용도로도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갤러리 현대가 인수하여 지난해 11월, 와인 바 ‘두가헌斗佳軒’으로 새롭게 선보였다. 툇마루 모퉁이의 경첩 모양 장식이라든지 팔八자형으로 펼쳐진 지붕선과 어처구니 등에서 품위가 느껴지는 이곳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인 영친왕의 생모가 기거했던 집이다. 1910년대에 지어진 ‘ㄷ’자형 한옥 맞은쪽에는 러시아식 붉은 벽돌 건물이 서 있는 독특한 환경이다. 한 울타리 안에 한옥과 양옥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니 조선시대 말에서 근대 사회로 넘어가는 당시의 시대상을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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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등 어처구니 장식물은 <서유기>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어처구니를 지붕 위에 세워두는 것은 악귀나 악마가 집안을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주술적인 뜻을 담고 있다. 어처구니의 수는 3, 5, 7, 9 등 홀수로 한다.
3. 2 수령 2백 년은 족히 되는 암수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마당 한가운데와 대문 바로 옆에 각각 서 있다. 아마 있던 나무를 해치지 않고 집을 짓느라 이렇게 애매한 위치에 자리 잡게 된 것이리라. 선인들의 삶의 태도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3 툇마루 모퉁이의 쇠장식은 한옥이 세워지던 당시 만들어진 것이다.
 
photo01 1백여 년이 지난 지금, 카페이자 와인 바로 변한 이곳의 내부는 현대적인 스타일로 꾸며져 있다. 깔끔한 디자인의 갈색 테이블과 의자, 와인잔이 나란히 줄지어져 놓여 있는 유리 선반…. 그렇지만 서까래와 기둥 등 한옥 원래의 모습을 변형시키지 않은 까닭에 전통미가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다. 내부 인테리어를 맡은 최욱 소장(원오원One O One 디자인 대표, 02-739-6363)은 좌식 생활 위주로 맞춰진 요소들을 입식 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의 변화만 주었을 뿐 한옥 자체의 문화적 가치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그래서 테이블에서 전통주가 아닌 와인을 마시고, 한식이 아닌 이탈리안&프렌치 요리를 먹으면서도 사람들은 한옥의 정감을 느낄 수 있다.
“이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어요. 결국 와인 바를 택하게 된 것은 와인이 예술과 가장 가까운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빛깔을 보고, 향을 느끼고, 맛을 음미하는 와인을 흔히 오감으로 즐기는 음식이라고 합니다. 한 번에 들이켜지 않고 느긋하게 마시면서 와인 생산지, 빈티지 등을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문화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죠”라고 박현진 대표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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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해질 무렵이면 운치를 더하는 이곳, 1백 년 된 한옥에서 수십 년간 숙성된 와인을 마시는 느낌은 어떠할까? 두가헌은 별채에 있는 지하 창고를 와인 셀러로 사용하고 있는데, 와인 리스트에는 품종별로 와인을 구분한 후 다시 지역별로 구분해놓아 자신이 좋아하는 와인을 찾기 쉽게 해놓았다. 원하는 경우 이곳의 소믈리에가 음식과 어울리는 와인을 추천해주기도 하므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망설여진다면 조언을 구해도 좋을 듯하다. 문의 02-3210-2100
 
photo01 근대식 서양 건물, 갤러리 두가헌
한옥과 마주하고 있는 러시아식으로 지어진 붉은색 2층 벽돌 건물은 미술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실내 공간의 폭이 2m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작고 아담한 이곳에는 2호~4호 크기의 작은 그림이나 생활 소품 등이 전시된다. 지금까지 장욱진 화백 회고전, 우리 옛 전통 소반전, 재독 작가 이영재 도자기전 등 갤러리 현대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 위주로 선보여왔다. 앞으로도 판매 목적의 상업적인 갤러리가 아닌 쉽게 볼 수 없는 작품을 ‘보여주는’ 갤러리로 운영할 예정이다.
 
1. 1‘매우 아름다운 집’이라는 뜻의 두가헌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씨가 지어준 이름이다.
2. 2 케이준 스타일로 매콤하게 맛을 낸 이탈리아식 왕새우구이. 자극적인 양념을 사용하지 않고 재료 그대로의 맛을 살린 음식을 선보인다. 과일 하나까지 최상의 재료를 쓰는 것으로 이미 정평이 나 있기도 하다. 3 번잡한 도심을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면 고즈넉한 정취가 느껴지는 이곳을 찾아와도 좋을 듯. 돌과 잔디가 어우러진 조형물은 조각가 이영학 씨의 작품.
 
정지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