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에서 재배하고 있는 육쪽마늘은 속껍질에 보랏빛이 살짝 돌고 대개 여섯 쪽으로 나뉘며 단맛과 매운맛의 조화가 좋다.
위대한 유산
마늘 한 쪽 껍질을 까다 알맹이를 입에 넣었다. 아삭아삭. 매운 향이 나더니 혀끝에 아린 기운이 퍼진다. 아, 맵다! 우리나라에서 마늘이 들어가지 않는 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김치찌개에도, 고기를 양념할 때도, 나물을 무칠 때도 약방의 감초처럼 마늘이 들어간다. 잘 챙겨 먹으라며 엄마가 보내준 택배 상자에도 늘 다진 마늘 한 통이 들어 있다. UN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평균 1인당 연간 마늘 섭취량은 0.8kg. 반면 한국인의 1인당 마늘 섭취량은 약 7kg에 달한다. “열서너 살 때부터 아버지를 도와 육쪽마늘 농사를 지었습니다. 할아버지 때부터 마늘 농사가 끊긴 적이 한번도 없으니 마늘밭도 얼추 1백 년이 넘었네요.” 마늘 밭 옆 자그마한 집에서 태어난 이은자 씨는 서산시 인지면 화수리에 살던 박용웅 씨에게 시집갔다. 이래저래 복잡하던 생에 치여 돌고 돌아 45년 전 아버지의 마늘밭으로 돌아왔다. 태어날 때부터 마늘과 함께였다는 그의 말처럼 온난한 해양성기후와 비옥한 토양을 갖춘 서산 지역 일대는 예부터 육쪽마늘로 유명했다. <연산군일기> 1504년 4월 12일자 중 “전라도에서 진상한 마늘보다 충청도 마늘의 품질이 우수하다”는 기록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 마늘 없이 못 살아
마늘은 부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분류하며 원산지는 중앙아시아와 이집트로 추정한다. 우리나라에는 고조선 즈음에 중국을 거쳐 전래되었는데, <삼국사기>에도 마늘과 관련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한반도 내 마늘 재배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을 알 수 있다. 마늘연구소의 박영욱 연구사에 따르면 고조선 때부터 각지역으로 퍼져 재배된 것을 통상 ‘재래종’이라 칭하는데 토질과 기온, 강수 등 환경적 요인으로 제각기 다른 형질과 특성을 띠게 됐단다. 마늘은 크게 한지형과 난지형으로 구분한다. 한지형은 우리나라 내륙 및 고위도 지방에서 가꾸는 품종으로 서산과 의성, 진천이 여기에 속하며 대개 육쪽마늘이다. 난지형은 가을에 심어 뿌리와 싹이 어느 정도 자라나서 일찍 수확하는 것으로 고흥과 제주, 남해 등에서 재배하며 대개 쪽수가 8~10개 혹은 그 이상이다. 1980년대부터 스페인에서 수입해 품종화한 마늘(대서마늘)과 중국 상하이 지방에서 재배하던 마늘(남도마늘)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난지형 마늘의 재배 면적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박영욱 연구사는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마늘은 꽃이 피지 않기 때문에 교배가 되지 않으며 종자가 맺히지 않는다(마늘은 알뿌리인 구근으로 번식한다). 즉 마늘은 영양 번식 작물로 하나를 심으면 여섯이나 열 쪽밖에 생기지 않아 하나의 종이 여기저기로 옮겨지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는 지역마다 마늘의 형태와 맛이 제각기 다른 이유기도 하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이러하다. 육쪽마늘의 대표 주자 서산 재래종은 쪽이 크고 크기가 일정하다. 대개 수염 뿌리가 길며 속껍질은 자주색으로 흰 줄무늬가 많다. 의성 재래종은 인편鱗片에 세로로 골이 진 주름이 있고 끝이 뾰족하다. 토질이 좋아 과거 마늘 농사가 잘되는 지역이던 진천 재래종은 다른 마늘보다 크기가 월등히 작고 향긋한 향이 뛰어나다. 현재는 알이 작은 탓에 재배하는 농가를 찾아보기 힘들다. 제주 재래종은 쪽수가 많으며 동글동글하게 생겼고, 저장성이 뛰어나다. 남해 재래종은 해풍의 영향을 받아 모양이 고르지는 않지만 조직이 치밀해 알이 굵고 단단하다. 고흥 재래종은 속껍질이 매우 선명한 적색이며, 인편 조직이 억센 편이다.
서산을 비롯해 의성, 진천, 남해, 제주, 고흥의 각 지역 농가와 농부에게서 공수해온 재래종 마늘.
지난 6월 초, 입말한식가 하미현은 이은자 씨와 함께 육쪽마늘을 수확했다. 뽑은 다음에는 밭에 일렬로 눕혀 일주일 정도 말리는 작업을 한다.
박용웅 씨는 볏집으로 마늘을 엮는 솜씨가 뛰어나다. 요즘은 힘에 부쳐 노끈으로 묶기도 한다. 볏짚으로 엮은 마늘을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 말리면 1년 내내 사용할 수 있다고.
엎어 심어야 잘 크제
이은자 농부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마늘 심는 법을 배웠고, 그의 남편 박용웅 씨 역시 장인어른에게 호되게 농사법을 익혔다. “그 시절에는 비료라고 할 것이 있었나요. 소나 돼지도 함께 키웠으니 그 거름을 받아 잘 발효시켜 마늘밭에 뿌렸지요. 소 거름만큼 좋은 것도 없었어요. 지금도 우리는 옛 방식대로 친환경 농법으로 농사를 짓습니다. 장인어른은 이 지역에서 마늘 농사로 아주 유명했습니다. 마늘 심은 밭은 함부로 밟지도 못하게 하셨어요.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셨지요. 마늘은 땅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아요. 토질이 좋아야 알이 크고 단단하며, 매운맛도 좋아지지요.” 박용웅 농부는 올해 비가 많이 와서 마늘이 크지 않아 아쉽다고 했다. 그는 인편보다 주아(여러 싹 중에서 으뜸이 되는 싹을 말한다. 마늘을 심으면 마늘 종대 윗부분에 마늘 쪽과 비슷하게 생긴 주아가 생기는데, 마늘 수확 전에 완전히 여문 주아만 채취해 서늘한 곳에 보관해 다음 해 밭에 심는다)로 마늘을 재배하면 튼실한 종구를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남쪽은 8월부터, 내륙은 9~10월에 심는데, 그는 이은자 농부와 함께 9월 말쯤 작년에 보관해둔 주아를 일정한 간격으로 촘촘하게 심는다. 이때 마늘 쪽의 끝이 아래로 향하도록 엎어 심는 것이 중요하단다. 그래야 마늘통이 예쁘게 자라며 줄기도 곧게 올라온다는 것. 날씨가 서서히 추워지기 시작하는 12월이 되면 짚으로 마늘밭을 덮어준다. 수확 직전까지 잡초를 제거하고 주기적으로 퇴비를 공급하며 5월 말부터 마늘을 캔다. 최근에는 손을 덜기 위해 트랙터로 수확하는 농가도 많아졌지만, 두 농부는 여전히 손으로 일일이 마늘을 캐서 수확한다. 채취한 마늘은 밭에 그대로 놔둔 채 일주일 정도 말린다. 비가 오면 비닐하우스에 들여놓기를 반복한 뒤 1백50개씩 짚으로 묶어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둔다. 몇 년 전부터 딸들의 도움을 받아 직거래를 시작했고, 수익 면에서도 훨씬 나아졌다. 나이가 들수록 뼈마디가 아프니 마늘 농사를 포기하고 싶어질 때도 많단다. “올해는 그만해야지…”라며 고민하다가도 마늘밭만 보면 왜 그리 아버지 생각이 나는지…. 초여름 바람에 이파리가 흔들거린다. 이미 수확을 시작한 밭 한편에는 일렬종대로 놓인 마늘 뿌리가 햇볕을 받으며 말라가고 있다. 5백 평 남짓 남아 있는 마늘밭은 두 농부에게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위대한 유산일 것이다.
입말한식가 하미현이 제안하는 마늘 맛
서산 재래종 아삭한 식감, 단맛과 알싸한 매운맛의 조화가 좋다.
진천 재래종 한국 마늘 중 크기가 가장 작다. 매운맛이 약해 생으로 먹어도 부담이 없고, 단맛도 살짝 난다. 마늘장아찌로 적합하다.
남해 재래종 톡 쏘는 매운맛이 강한 반면 여운이 길지 않다. 알이 굵고 수분이 많아 통구이나 찜, 소스 등을 요리할 때 쓴다.
고흥 재래종 알이 굵은 반면 조직은 성글어 식감이 부드럽고, 12~15쪽 정도 달린다. 마늘조청이나 피클용으로 추천한다.
의성 재래종 매운맛, 단맛, 향 등이 모두 조화롭다. 칼칼한 끝맛이 느껴져 마늘 향이 중요한 알리오 에 올리오로 요리하면 좋다.
제주 재래종 수분이 많고 아삭한 식감, 마늘 특유의 풍미가 좋다.
기획과 취재를 함께 한 입말한식가 하미현은 사라져가는 토종 식재료와 이를 재배하는 농부를 발굴하고, 입말로 전해지는 음식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내림 음식의 원형을 ‘과거의 맛’으로 재현하고 , 현대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해 ‘지금의 맛’으로 풀어낸다.
- 충청남도 서산 마늘과 함께한 알싸한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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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와 살을 나눠준 아버지. 막내딸에게 한 가지를 더 남겼으니 서산시 예천1동에 있는 마늘밭이다. 45년 전 고향 집으로 돌아온 이은자 씨는 아버지의 육쪽마늘밭에 섰다. 그렇게 아버지의 농사법대로 정성껏 재래종 마늘을 키워 좋은 것만 골라 이듬해 농사를 위해 종구를 보관했다. 마늘과 함께한 알싸한 세월이 벌써 70여 년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