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갛게 익은 산딸기는 과육이 부드럽고 단맛이 뛰어나다. 김해시 상동면에서는 국내 최초로 품종 등록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빨간 맛 궁금해, 산딸기
어릴 적 할아버지 댁 근처 뒷산에는 산딸기가 가득했다. 때때로 아버지는 난을 캐러 산에 갔다 산딸기가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오시곤 했다. 한 개 먹으면 두 개 아니 세 개가 순식간에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텅 비어버린 바구니가 무색할 정도로 산딸기는 보드랍고 맛있었다. 지금은 산딸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맛과 향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안타깝게도 다른 과일과 달리 산딸기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기관이 없어 정확한 기원조차 추측하기 어렵다. 하나 오래전부터 한반도 숲속에는 서양 딸기와 엄연히 다른 재래종 산딸기가 존재했다. 먼 길을 부지런히 오가는 나그네에게는 배고픔을 달래주는 간식이었고, 모내기를 끝낸 농부에게는 새참을 마무리하는 달콤한 후식이었다. 맛만 좋은 줄 알았는데, 산딸기는 약용식물로도 인기가 높다. <동의보감>에서는 산딸기를 남성의 정력을 강화하는 약재로 소개한다. 과거 허약한 사내아이가 산딸기를 먹고 오줌 줄기가 세져 요강이 뒤집힐 정도로 건강해졌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이에 엎어질 복覆, 요강 분盆, 아이 자子를 써서 산딸기를 복분자라고도 불렀다(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검보랏빛 복분자는 장미과 산딸기속 식물로, 정확히 복분자딸기라 부르는 게 맞다. 복분자의 줄기는 하얗고 넝쿨성인 데 비해 산딸기 줄기는 곧게 자란다).
예나 지금이나 산딸기의 주산지는 김해시 상동면 일대다. 낙동강이 흐르고 비옥한 충적토와 풍부한 일조량 등 생육 조건이 좋아 곡창지대로 명성을 떨쳤고, 원예 사업도 덩달아 발달했다. 산딸기나무도 그중 하나. 김해시농업기술센터 특산작물팀 김승욱 주무관의 말에 따르면 산딸기는 1960년대 상동면의 한 농부가 산기슭에서 자라던 나무를 옮겨 심어 판매 목적으로 재배한 것이 상업적 재배의 시초다. 그 후 1994년 한현우라는 농부가 우연히 재래종끼리 자연 교배된 산딸기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인근 농가로 퍼져나가 주요 품종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 현재 산딸기의 품종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연구 결과가 없는 탓에 상동면과 농가에서는 이 품종을 ‘왕딸’이라 통용하고 있다. “상동면은 전국 산딸기 생산량의 약 70%를 담당합니다. 농가 대부분의 주 수입원이 산딸기예요. 연간 생산액은 1백 50억 원에 달하지요.” 이곳 토박이이자 30여 년 동안 산딸기를 재배하며 작목반 회장을 맡고 있는 오원환 농부는 이 지역에서 인정받는 산딸기 농사꾼이다. 그는 4헥타르의 밭에서 연간 약 3800kg의 산딸기를 생산한다. 샛노란 바구니를 힙색처럼 둘러멘 그가 내민 새빨간 산딸기는 달고 새큼하고 연하고 통통한, 어릴적 그 맛 그대로다.
제주도와 순천, 고창, 제천 등 각 지역의 농가에서 공수해 온 우리 베리.
5월 초부터 비가림막을 씌운 비닐하우스에서 키운 산딸기를 수확한다. “바구니에 줄을 끼워 허리에 매고 따자마자 담는 것이 제일 편합니다.” 오원환 농부가 맨 노란 바구니는 상동면에서 인기 있는 힙색이다.
낙동강의 붉은 보석
“산딸기는 크게 세 가지 방식으로 재배합니다. 밭에 묘목을 심어 생산하는 노지 재배가 있고, 비가림막을 만들어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하는 방식 그리고 비닐하우스에 불을 때 키우는 가온 재배가 있습니다. 수확 시기는 가온 재배가 3월 중순, 비가림 재배가 5월 중순, 노지 재배는 5월 말부터 6월 중순까지예요. 저는 비닐하우스와 노지에서 친환경으로 산딸기를 키웁니다. 당연히 노지 산딸기가 빛깔도 맛도 향도 훨씬 뛰어나요. 비닐하우스 산딸기와 비교했을 때 당도가 약 2브릭스 정도 차이 납니다.” 수요가 늘어나는 반면 제철 산딸기를 즐길 수 있는 기간은 너무 짧고,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니 가온 재배와 비가림 재배를 활용해 수확 시기를 앞당기는 농가가 늘고 있는 추세다. 특히 3월 말에 생산하는 산딸기는 1kg당 3만~4만 원을 호가하니 지역 내에서도 산딸기 농사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
오원환 농부를 따라 비닐하우스로 들어서자 더운 공기와 향긋한 향이 동시에 훅 밀려왔다.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살짝 잡아당기니 모자가 벗겨지듯 쏙 빠진다. 매일 새벽 5시에 시작해 정오까지 수확한 물량은 신선한 상태 그대로 서울로 올라가 유기농 매장으로 향한다. 이미 농가마다 전 물량 계약이 끝난 상태. 특히 오원환 농부의 산딸기는 다른 농가보다 품질이 뛰어나 ‘특딸’이라 불리며 배로 높은 가격에 팔리기도 한다. 비닐하우스 근처 노지에는 채 익지 않은 푸르뎅뎅한 열매가 가득하다. 6월 초부터 수확을 앞두고 있으니 막바지 준비가 한창이다. “산딸기는 양지바르고 바람이 잘 드나들며,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잘 자랍니다. 1년생으로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베어내 분쇄한 뒤 거름으로 활용하죠. 뿌리가 아래로 뻗지 않고, 옆으로 길게 사방으로 뻗어 스스로 줄기를 내어 집단을 형성해요. 이를 이듬해 산딸기로 키워나가죠.” 오원환 농부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터득해 땅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젤라틴ㆍ키틴 분해 미생물(GCM)에 광물성 미네랄인 켈비등을 섞어 유기농 퇴비를 만든 뒤 산딸기밭에 뿌린다. 덕분에 남보다 크기가 크고 맛도 좋다.
입말한식가 하미현과 오원환 농부는 수확한 산딸기를 서울로 보내기 위해 분류하는 작업을 함께 했다.
재래종끼리 자연 교배된 이곳 산딸기는 크기가 크고 당도가 매우 높다.
소담스러운 우리 베리의 매력
산딸기를 비롯해 국내에는 다양한 베리가 존재한다. 국립수목원의 정수영 박사는 베리를 “과육 부분에 수분이 많고, 조직이 연한 열매”라고 정의한다. 오디와 댕댕이, 버찌, 보리수 등이 베리에 포함된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6월이 제철이며, 검붉은색을 띤다. 포도처럼 살과 즙이 많아 <본초강목>에서는 오디를 갈아 체에 걸러 즙액만 모아 꿀을 넣고 달여 약용으로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순천의 한 농가에서 찾은 버찌(물앵도라는 재배명으로 키우고 있지만, 산림청에 의뢰한 결과 벚나무 열매인 버찌류로 밝혀졌다)는 알이 작고 새콤하다. 댕댕이나무의 열매인 댕댕이는 타원형으로 길게 생긴 모양이 특이하다. 속이 꽉 차고 팽팽하다는 뜻에서 댕댕이라 부른다. 붉은빛이 돌며 과육이 젤리처럼 통통하게 생긴 보리수는 보리수나무의 열매로 9~10월이 제철이다. 기침과 천식에도 효능이 있어 열매와 줄기, 뿌리 모두 약용으로 사용했다. 부쩍 길어진 해가 산허리에 걸린다. 풀숲 사이로 붉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아! 산딸기의 달콤함이, 오디와 버찌의 새콤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그 맛을 충분히 음미하기에 이 여름은 너무나도 짧다.
입말한식가 하미현이 제안하는 베리 맛
댕댕이 단맛이 살짝 돌면서 시고 쓴맛이 강하다. 올리브처럼 소금에 절여 먹거나 신맛을 보완해주는 탄산수와 잘 어우러진다.
버찌 새콤달콤한 맛과 탱글탱글한 식감, 향미의 균형이 완벽하다. 생과로 먹기 좋으며, 젤리나 화채로 추천.
산딸기 달고 새콤한 맛과 알알이 씹히는 식감이 좋아 생으로 먹는 것이 가장 좋다. 요구르트를 곁들인 스무디나 케이크에 활용해볼 것.
오디 경상도 지역에서는 주로 식초로 담근다. 단맛이 강해 신맛과 새콤한 맛을 지닌 과실과 함께 먹으면 맛있다.
보리수 달고 시고 떫지만 특유의 향미가 있다. 블루치즈처럼 풍미가 강한 치즈, 산딸기나 오디처럼 단맛의 과실과 궁합이 좋다
기획과 취재를 함께 한 입말한식가 하미현은 사라져가는 토종 식재료와 이를 재배하는 농부를 발굴하고, 입말로 전해지는 음식을 기록하는 일을 한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내림 음식의 원형을 ‘과거의 맛’으로 재현하고 , 현대에 맞는 레시피를 개발해 ‘지금의 맛’으로 풀어낸다.
- 경남 김해시 상동면 곱구나 고와! 우리 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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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붉다. 새빨간 저 열매를 보니 괜스레 가슴이 울렁거린다. 6월이 되면 알알이 붉은 열매로 물드는 김해시 상동면은 산딸기 주산지다. 오원환 농부는 이곳에서 남다른 재배 기술로 크기와 당도, 향이 뛰어난 산딸기를 재배한다. 그가 전하는 산딸기 이야기부터 오디와 보리수, 버찌 등 우리 베리의 매력을 살펴본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