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밀짚모자를 쓴 손기홍 사장, 조두원 대리, 김경희 고문, 강신승 팀장, 김대현 팀장, 정연재 부장, 그 아래 김중원 대리, 권혁철 팀장, 김철호 회장,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
사과로 찾은 인생 2막
“여러분은 지금까지 사과를 몇 번이나 봤어요? 천 번? 만 번? 백만 번? 틀렸어요.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오래오래 보면서 사과의 그림자도 관찰하고, 이리저리 만져보면서 뒤집어도 보고 한 입 베어 물어도 보고 사과에 스민 햇볕도 상상해보고 그렇게 보는 게 진짜로 보는 거예요. 무엇이든 진짜로 보게 되면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이 있어요.”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 속 김용택 시인의 말이다. 이처럼 애플카인드의 김철호 회장이 사과를 이리저리 보면서 깨달은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더불어 사는 삶이었다.
김철호 회장은 특목고 입시 학원의 신화나 다름없는 G1230(구글맥학원)을 30년 동안 운영하다 복잡하고 경쟁이 치열한 도시를 벗어나고 싶어 5년 전 강원도 인제군으로 귀촌했다. 평화로운 삶을 살기에 더없이 좋았지만 젊은 친구는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는 농촌의 현실도 동시에 마주하게 됐다. 인근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초등학교가 폐교되자 생각보다 심각한 상황에 눈과 귀가 뜨였다는 것.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 농촌으로 온 젊은이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뜻깊은 농사, 그래서 청년들이 넘쳐나는 농촌을 만들고 싶었단다. 그 시작이 사과였다. 사과 농사 모임에서 만난 15년 차 베테랑 농사꾼 손기홍 사장과 의기투합해 2016년 3월 2일 애플카인드를 설립했다. 공기 좋고 땅이 비옥한 곳을 찾아다니다 지대가 높고 DMZ와 가까우며 산 능선이 남과 북을 가르는 펀치볼에 자리 잡았다.
“농촌에 와서 살아보니 농약 문제도 심각했어요. 사과 농사를 시작할 거면 제대로 건강하게 하고 싶어 6만 평 부지에 사과나 무를 심고, 퇴비장을 만들었지요. 현재 사과 산업 1위 국가는 일본입니다. 사과 특산지인 아오모리에서는 순수 사과 매출만 1조 원이 넘어요. 약 10%는 해외로 수출하고요. 저 역시 전문 기술력을 바탕으로 농장을 성장시키는 것이 목표에요.”
땅심으로 키운 건강한 사과
애플카인드는 ‘행복한 농부, 행복한 사과, 행복한 세상’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맛있고 건강한 사과를 생산한다. 그러한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사과나무를 심기 전부터 땅심(농작물을 길러낼 수 있는 땅의 힘)을 강화하는 데 집중했다. 이 일을 가능하게 만든 일등 공신은 누가 뭐래도 손기홍 사장이다. “제가 어릴 적엔 자연이 주는 것만으로 농사를 지었어요. 어느 순간 화학비료 사용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수확물은 증가했지만, 품질은 현저하게 떨어졌죠. 땅이 죽은 건 말할 것도 없고요. 좋은 사과는 건강한 땅에서 나오고 건강한 땅을 만들기 위
해서는 유기물이 풍부한 퇴비가 필수입니다. 1천 평에 달하는 땅에 퇴비장을 만든 이유지요.”
이곳 사과 맛의 핵심과도 같은 퇴비 만들기를 공개하자면 이러하다. 먼저 탄소량이 풍부한 목재를 잘게 부순 뒤 미생물의 먹이 역할을 하는 쌀겨(미강), 발효를 촉진하는 무항생제 친환경계분, 키토산을 함유한 게 껍데기, 골분, 전분 등을 한데 섞어 퇴비장에 넣어준다. 여름에는 1백5일, 겨울에는 1백20일 동안 다섯 번 뒤집으며 발효시킨다. 이후 최소 6개월 동안 후숙 과정을 거쳐야 제대로 된 퇴비가 완성된다. 사과나무 심을 자리를 1m 깊이로 판 뒤 퇴비를 충분히 넣고 흙으로 덮는다. 그 후 나무를 심은 길을 따라 매년 10cm씩 퇴비 쌓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땅이 자생력을 갖추도록 돕는다.
“1월에는 전정 작업을 해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냅니다. 봄에 꽃눈이 맺히면 꼼꼼하게 확인해서 좋은 열매가 맺힐 꽃눈만 우선적으로 선별해요. 이곳의 대표 품종은 약 다섯 가지입니다. 7월에서 8월은 극조생종인 쓰가루(아오리), 8월부터 9월 중순까지 홍로, 9월 말부터 10월 중순에는 감홍과 시나노 스위트, 10월 말에는 만생종인 후지 사과를 순차적으로 수확해요.” 정성을 다해 키운 만큼 애플카인드의 사과는 새콤한 맛이 일품이다. 과육은 단단하고 과즙은 풍부하다. 사과를 구입한 소비자는 “옛날 사과 맛이 난다” “아삭하고 맛이 참 달다”라는 후기를 보내왔다. 한데 올해 첫 수확 철인 8월에는 예상치 못한 난제를 만났다. 지난 6월 갑자기 쏟아진 우박 탓에 아오리 사과가 심각한 피해를 입은 것. 당도도 높고 먹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표면에 흠집이 생겨 판매하기는 어려웠다. 고민한 끝에 수확한 사과를 모두 주스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사과는 단맛과 신맛이 적절하게 섞여 있어 착즙 방법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곳은 최적의 착즙 비율을 찾아냈고, 그 어떤 첨가물 없이 주스의 당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애플카인드는 독자 인증 시스템도 구축했습니다. 생산자 두명, 유통업자 세 명, 소비자 두 명, 전문가 두 명으로 구성해 사과 생산부터 출하까지 검증하고 있어요. 누구보다 건강하게 사과를 먹을 권리가 있는 소비자를 위해서지요!”
와이너리 포도밭처럼 줄맞춰 식재한사과밭. 나무 주위에 자란 잡초를 그대로 두는 것 또한 공생하며 해충이 사과나무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친환경 농법으로 키우고 수확한 애플카인드의 사과. 첫 수확한 아오리 사과는 우박 피해를 입어 전량 주스로 만들었는데, 당도와 색, 향이 모두 빼어나다.
영국 디자인 회사 빅피시와 함께 작업한 애플카인드의 사과 박스.
1천 평의 땅 위에 지은 퇴비장. 유기물이 풍부한 이 퇴비는 발효를 시작하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온다.
사과의 가치, 디자인으로 높이다
식재료만큼은 믿고 안심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농산물을 제대로 브랜딩해 선보이는 일, 이는 애플카인드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김철호 회장은 집을 지을 때 인연을 맺은 가든 디자이너 오경아 씨에게 디자인 자문을 요청했다. 오경아 씨는 브랜딩이 잘된 농산물을 역추적해 영국 유명 디자인 회사인 빅피시Bigfish를 찾았고, 김철호 회장에게 소개했다. “우리의 가치관을 잘 이해하는 곳과 일하고 싶었어요. 화상 통화로 진행한 첫 미팅에서 빅피시는 ‘왜?’라는 질문을 집요하게 하더군요. 그래서 사과로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 했어요. 농사라는 것이 단기간에 끝나는 일도 아니고,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이잖아요.”
한국과 영국을 오가며 진행한 미팅을 통해서 ‘사과 종족, 사과에 몰두한 사람들’이라는 뜻을 지닌 애플카인드가 탄생했다. 제품을 내놓아도 소비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소비자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패키지도 필요했다. 사과 박스에 꽃과 나비, 잎사귀, 빨간 사과 위에 올라탄 소녀를 그려 넣었다. 박스를 열면 한 손에 사과를 쥔 농부가 행복하게 웃고 있으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절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애플카인드는 오경아씨와 함께 농장 내 경관도 천천히 아름답게 다듬어갈 계획이다.
“최근에는 농사를 짓는 것 자체가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경관 농업’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 사우스티놀은 유럽 최대의 사과 생산지예요. 생산 자체에 목적을 두고 있지만 더불어 사과꽃 필 무렵이나 수확시기에 축제를 열어요. 이곳을 찾은 수많은 사람이 사과밭의 아름다운 풍경에 취하지요. 애플카인드도 이를 염두에 두고 사과를 심었습니다.” 오경아 디자이너의 말처럼 사무실에서 내려다본 사과 농장은 유럽의 어느 와이너리못지 않은 경관을 선사한다.
청년들의 보금자리로 거듭나다
애플카인드의 궁극적 미션은 ‘청년들이 행복한 꿈을 꿀 수 있는 농촌’이다. 김철호 회장은 이를 위해 청년 다섯 명을 농촌으로 불렀다. 그중 김철호 회장의 아들 세 명은 회사의 비전을 듣고서는 자발적으로 사과 농사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다. 첫째 아들 김대현 팀장은 천연 우드 칩 퇴비와 액비를 만들며, 사과나무 6천 그루를 심은 이스트 팜을 책임진다. 사과를 통해 사람들과 나눌 행복이 기대된다고. “밤 10시가 되면 대치동 학원가에서 수많은 아이가 쏟아져요. 저마다 자신의 꿈을 위해 무언가를 배우려 애쓰고 있지요. 그런 아이들에게 삶의 방향에는 여러 갈래가 있고,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을 알려주고 싶어요.” 판매와 마케팅은 둘째 조두원 대리와 셋째 김중원 대리가 도맡는다. 조두원 대리는 작년 첫 수확한 사과를 알음알음 팔았는데,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 “사과가 어쩜 이렇게 맛있냐? 친환경인데 어떻게 이런 맛이 나냐”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사과라면 해볼 만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김중원 대리는 올해 8월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애플카인드에 합류했다. “캐나다에 있는 프리미엄 식료품점에서 다섯 가지 사과 주스를 마셔보며 비교했습니다. 색과 당도, 향 어느 것 하나 뒤떨어지는 요소 없이 우리 제품이 탁월하게 빼어났어요. 그때 확신이 생겼어요.” 형제는 애플카인드가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새로운 판로를 확보해나갈 계획이다.
첫 공채 직원이나 다름없는 권혁철 팀장과 강신승 팀장은 애플카인드에서 새로운 꿈을 찾았다. LG화학을 다니던 권혁철 팀장은 김철호 회장의 이야기를 들으며 경관 농업이 주는 낭만을 발견했다고. “제가 맡고 있는 노스 팜에는 약 5천 그루의 사과나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어요.사과를 올곧게 키우기 위해서는 파이프 작업을 해야 하는데, 제 손이 닿지 않은 파이프가 없을 정도예요. 일반 회사와 다른 성취감이 분명히 있어요.” 도시 생활을 벗어나고 싶던 강신승 씨는 아내를 설득해 애플카인드에 합류했다. “경쟁에서 벗어나 자연이 주는 풍족함이 좋았습니다. 살기 좋은 농촌, 그 가능성을 애플카인드를 통해 본 것이지요. 제아이도 자유로운 삶을 살면 좋겠어요.” 이러한 꿈을 믿고 모여든 청년들은 애플카인드의 새로운 자산이 되지 않겠는가! 사과나무 한 그루가 전성기에 도달하려면 족히 7~8년은 걸린다고 한다. 김철호 회장을 비롯해 애플카인드의 모든 직원은 10년 후를 내다보며 느리지만 천천히 한 걸음씩 농사를 해나갈 생각이다. 마음이 행복한 농부가 행복한 땅을 만들고, 행복한 사과를 키우고, 이웃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그래서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것. 애플카인드가 사과를 보고 확신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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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의 마지막 봉우리인 가칠봉加七峰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화채 그릇을 닮았다고 해서 펀치볼이라 불리는 강원도 양구군 해안분지亥安盆地. 공기가 청정하고 땅이 비옥한 이곳은 건강한 사과가 자랑거리다. 다디단 사과에 차별화한 브랜딩 전략을 더해 새로운 농촌의 미래를 그려나가는 애플카인드 이야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