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먹었니?” “밥 한번 먹자.”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안부 인사를 나누는 민족. 수천 년 동안 쌀로 밥을 지어 먹은 민족.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쌀과 밥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쌀은 귀한 양식이었고, 힘들 때면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절로 떠오를 만큼 정서적 위안을 주는 존재였다. 이렇듯 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고, 우리 조상은 벼를 재배하며 좋은 품종을 선택해 정성껏 길러왔다.
1911년에 편찬한 <조선도품종일람>에 따르면 과거 한반도에서 자라던 토종 벼의 종류는 무려 1천4백51종. 그러나 현재 토종 벼는 찾아보기조차 힘들뿐더러 그 맛을 기억하는 이도 드물다. 획일화된 품종을 재배하는 사이 정작 진짜 우리 쌀 맛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동안 자취를 감춘 토종 쌀을 몇 년 전부터 고양시 덕양구 벽제동에 있는 우보농장의 이근이 농부를 비롯해 의식있는 농부들이 되살려내고 있다. 이근이 농부는 2010년 단 세 평 논에 토종 볍씨 20종을 심었다. “‘농부는 굶어 죽어도, 씨앗은 베고 죽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배가 고파 죽을지언정 농사를 위해 종자를 남겨놓는다는 뜻이죠. 그만큼 농사의 기본은 씨앗이고, 다양성을 위해 소중히 다뤄야 합니다. 제가 토종 볍씨에 탐닉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올해 그는 1천 평의 논에 1백여 종의 토종 볍씨를 심었다. 농사를 통해 순환하는 삶을 강조하기 위해 전통 농법, 즉 생태 농법을 고수한다.
도시 농부들과 함께 손으로 모내기를 하고 낫으로 직접 벼를 벤다. 기계가 아닌 홀태로 탈곡하는 이유는 다양한 품종의 쌀이 서로 섞이는 것을 방지하고, 손수 농사짓는 가치와 즐거움을 알리기 위해서다. 벼를 수확하고 남은 부산물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퇴비도 만든다. 사라져가는 지역 음식을 찾아내고 기록하는 ‘입말한식가’ 하미현. 그는 평생 쌀밥을 먹어왔지만 우보농장을 통해 난생처음 새로운 쌀을 발견했다. 그 쌀 맛을 더 많은 이에게 전하기 위해 이근이 농부와 하미현 씨가 뜻을 함께했다. 농부가 선보인 열두 가지 토종 벼와 입말한식가가 지은 열네 가지 밥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