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슬픔이나 두려움, 죄책감 같은 감정은 쉽사리 잘라낼 수 없으니 그 감정이 솟아난 부분을 찾아내어 보듬어주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 하셨지요. 우리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세요.일단 분노나 슬픔같은원치않은 감정이 찾아들 때, ‘아, 이러면 안되지’라는 식으로 나를 강제하지 마세요. 그저‘아, 내가 화를 내고 있구나’‘이놈의 질투 또 시작되었네’하는 식으로 담담하게 바라보세요. 바꾸려 하지 말고요. 재미있는 건 이런 불청객 같은 감정이 그냥 존재하게 내버려두면, 저절로 수그러든다는 점이지요. 그러니 잠시 머물다 가도록 놓아두세요.
“사과 묘목은 자라서 꽃을 피웠지만 단 한번도 열매를 맺지 않았다. 우리는 낙담하고는 이내 포기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달콤한 사과가 풍성하게 열렸다. 그 중 가지에서 저절로 떨어진 사과는 천상의 맛이었다.”(1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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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에서 저절로 떨어진 사과가 지금껏 먹어본 사과 중 가장 맛있었다는 글귀에 눈길이 갑니다. 그 순간 당신은 무엇을 느꼈습니까? 제가 맛본 그 사과는 그 순간 충만하게 존재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나무는 사과가 떨어졌다고 슬퍼하지 않고 사과 역시 아쉬워하지 않았겠지요. 그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원래 무언가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믿었기에 수확하고 남은 채소가 땅에 남겨둔 마지막 파편들을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믿고 떠나보내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탄생과 사그라짐, 양지와 음지, 만남과 이별은 한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그러자 텅빈 땅이 더이상 저를 불안하게 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유혹적이었지요. 저는 텅빈 땅의 힘을 믿게 되었어요. 대지는 그 자체로 생동하며 앞으로 무엇이든 틔워낼 가능성을 품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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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은 후 죽음에 대한 관점도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당신은 죽음을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아이를 잃기 전까지 죽음을 지켜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죽었을 때, 뭐랄까, 도둑맞고 사기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차츰 죽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생명의 반의어가 아닌, ‘댄스파트너’같은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깨달음은 붓다의 이야기 속 여인에 빗대어 설명할 수있습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비통에 잠겨 붓다를 찾아왔습니다. 붓다는“누군가 죽은 적이 한번도 없는 집을 찾아가 겨자씨를 받아오면 아이를 되살려주겠다”고약속합니다. 물론 그런 집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요. 그리고 그어머니는 깨달음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저 역시 아이의 죽음이 제게만 주어진 특별한 고통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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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왼쪽 당장이라도 꿈틀거리며 앞으로 다가설 듯한 자세를 취한 뱀 조형물. 알린이 흙으로 만든 작품이다. 오른쪽 호박
2. 왼쪽 가운데 오른쪽 텃밭에서 나는 농작물. 각각 마늘, 이탈리아산 보랏빛 아티초크, 로마네스코 브로콜리.
3. 젊은 시절의 번스타인 부부. 포도원에 테이블을 마련해 점심 식사를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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