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뱅이라고도 불리는 토하를 잡아 젓갈을 담그는 탐진미가의 윤대식 대표(왼쪽)와 한국적 재료를 모던 한식으로 풀어내는 도사 바이 백승욱의 총괄 셰프 제이슨 오.
고백하건대 토하젓에 본격적으로 궁금증이 생긴 건 소설가 황석영의 산문집 <밥도둑>을 읽고 나서다. 토하란 1급수에서만 서식하며 손톱만 한 크기에 갈색을 띠는 민물 새우를 말하는데, 이를 염장한 후 양념장에 버무린 것을 토하젓이라 한다. 황석영은 그의 산문에서 토하젓에 얽힌 추억을 이렇게 회상한다. “젓갈이 콤콤하겠지 같잖게 향내라니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토하젓을 집어 씹어보면 몸이 탁탁 터지면서 향긋한 흙냄새가 난다. (중략) 이 토하젓을 한 젓가락씩 집어다 밥에 살살 비벼 먹으면 기가 막힌데, 얼른 먹어야지 비벼서 잠깐 놓아두면 밥알이 삭아버린다.” 후배가 선물한 토하젓이 얼마나 맛있었길래 미식가만큼이나 까다로운 황석영의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조선시대에는 왕에게 진상할 만큼 귀한 음식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고봉밥을 뚝딱 해치울 만큼 밥도둑이라고 하니 어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나. 자칭 젓갈 마니아이자 도사 바이 백승욱의 총괄 셰프인 제이슨 오와 함께 진짜배기 토하젓을 맛보러 전라남도 강진군 칠량면에 다녀왔다.
수확철이 되면 웅덩이의 물을 방류하고 밥상보를 변형해 개발한 수확망으로 토하를 잡는다. 얕은 웅덩이에 놓아둔 수확망을 건져 올려 나뭇가지를 털면 토하만 남는다.
해발 300m에서 잡는 토하
서울에서 다섯 시간을 넘게 달려 강진군 칠량면에 있는 탐진미가에 도착하자 윤대식 대표가 우리 일행을 반겨주었다. 토하는 어디 있냐는 질문에 그는 먼 산을 가리키며 “저기 보이는 저 산을 넘어가야 한다”고 답했다. 취재진을 자신의 사륜구동차에 태우더니 수풀이 우거져 길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산비탈을 거침없이 올라갔다. 내장같이 구불구불한 산길을 한참 올라가더니 부용산에서도 깊은 산골짜기인 모재골에 다다랐다. 어림잡아 해발 300m쯤 되는 고지대에 내리자 윤 대표가 크고 작은 웅덩이 몇 군데를 가리킨다. “여기가 토하 서식장입니다. 토하는 주로 물 맑고 흙이 깨끗한 논두렁에 서식하는데 예부터 전라남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물 새우였어요. 어릴 적엔 벼농사가 끝나면 논두렁에 있는 토하를 잡아다 젓갈을 담가 먹곤 했지요. 옛 맛이 그립기도 하고 내가 부양하는 가족을 위해 수입원이 확실한 농사를 찾다 보니 토하가 좋겠다 싶었어요.”
농사짓기가 어려워 물만 채워놓은 논에서 어릴 적 즐겨 먹던 토하를 발견한 것이 이 일을 시작한 계기였다. 윤대식 대표는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40년 동안 버려진 계단식 논밭을 개간했다. 1만 1천 평에 이르는 땅을 판판하게 다져 토하 서식장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을 것, 물이 깨끗할 것, 흙이 좋아야 할 것. 토하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깊은 산골짜기에 있는 이곳은 토하를 위한 천혜의 환경을 갖춘 셈이죠. 흙 토土 자에 새우 하鰕 자를 써서 토하라고 불리며, 일반 민물 새우와 달리 땅을 기어 다니며 흙 속의 미생물과 플랑크톤을 먹고 살아요.”
윤 대표는 자체 개발한 배수 시스템을 통해 토하의 먹이나 다름없는 토질과 수질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배수 시스템은 산에서 흘러 내려오는 맑은 물이 웅덩이로 유입되도록 돕고, 강수량이 많아 물이 불어나면 웅덩이 밖으로 방류한다. 주변 환경을 최대한 해치지 않고 오염 물질을 막아 토하가 자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것이다. 그 결과 환경오염으로 사라진 토하가 다시 돌아왔다.
일반 민물 새우와 달리 1kg당 10만~15만 원에 거래되는 토하. 갓 잡은 토하를 입에 넣어 씹으면 흙 향이 진하게 올라온다.
밥상보를 변형해 수확망을 만들다
야심 차게 도전했지만 토하를 잡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저수지처럼 넓은 웅덩이로 걸어 들어가면 흙탕물이 번지기 일쑤였고, 그물망으로 건져 올려도 흙인지 토하인지 구분하기조차 어려웠다. 과거 어르신들의 말씀대로 솔가지를 웅덩이에 담가놓고 토하가 달라붙으면 건져서 탈탈 털어도 봤지만, 밥공기 하나 겨우 채우는 정도였다. 토하와 흙을 구분하는 작업만 꼬박 하루가 걸렸고, 먹지 못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뜰채도 사용해보고 그물망으로도 잡아봤지만 번번이 실패했어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다 밥상보를 보고 아이디어가 떠올랐지요. 일반적으로 밥상보는 아랫면이 뚫려 있고 덮개가 씌워져 있잖아요. 반대로 덮개를 걷어내고 아랫부분에 그물망을 설치했어요. 이렇게 완성한 수확망 위에 나뭇가지를 올려 물빠진 얕은 웅덩이에 넣어봤어요. 몇 시간 뒤 수확망을 건져 나뭇가지를 털자 펄떡거리는 토하만 남더군요. 본래 토하는 은폐물 사이로 숨어드는 특성이 있는데, 수확망에 놓인 나뭇가지를 집으로 착각하고 숨어든 거지요.” 윤 대표는 더 이상 뜰채를 들고 토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지않는다. 5년이나 걸려 개발한 수확망을 이용해 흙과 뒤섞이는 일 없이 토하만 깨끗하게 건져 올린다(수확망 한 개당 토하 약 3kg). 그는 매년 12월부터 2월까지 600~700kg의 토하를 수확하며, 약 1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맨 아래 놓인 토하를 염장하면 백자에 담긴 토하처럼 붉게 변하는데, 이를 염장 토하젓이라 부른다. 염장 토하젓을 갖은양념장에 버무리면 갈색 옹기 속 양념 토하젓이 완성된다.
염분과 흙 맛을 줄여 현대화하다
“전통 방식의 토하젓은 짜고 흙 맛이 강하게 납니다. 이 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토하젓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는 현대인의 입맛을 고려해야 했어요. 토하젓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예요. 천일염으로 최소 3개월 염장해 먹는 염장 토하젓과 갓 잡은 토하를 염장하지 않고 돌확에 넣고 갈아 갖은양념에 버무려 먹는 벼락젓이 있지요. 저는 염장한 새우를 직접 만든 양념장에 버무린 양념 토하젓을 만들고 있어요.” 염장한 토하는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갈색에서 빨간색으로 변하고, 염도가 두 배로 증가하는 게 일반적. 하지만 윤 대표는 수많은 방법을 시도한 끝에 염장 토하젓에 자신만의 비법 식재료를 넣어 염도는 줄이고 당도는 높이는 방법을 고안했다. 토하를 버무릴 양념장도 허투루 만들지 않는다. 양념장 속에는 다진 생강과 마늘, 찹쌀밥, 고춧가루, 파 등이 들어가는데, 그는 찹밥을 지을 때 다시마, 표고, 대파, 양파 등을 우려낸 육수를 넣어 감칠맛을 더함으로써 화학조미료 문제를 해결했다.
양념장에 토하를 버무려 2~3일 정도 놔두면 완전히 삭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진다. 이렇게 완성한 토하젓을 먹어보니 그 맛에 감탄이 절로 난다. 전통 토하젓과 달리 짠맛이 약하고, 뒷맛이 깔끔하다. 황석영 작가의 말처럼 향긋하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온다. 토하젓에는 영양 성분도 풍부한데, 소화가 잘되지 않을 때 토하젓 한 숟갈을 먹으면 싹 낫는다고 하여 일명 소화젓이라고도 불렸다. 과거 지리산에 숨어 살던 빨치산들은 응급약으로 토하젓을 옆구리에 차고 다녔다고. 또한 DHA 성분을 풍부하게 함유해 어린이 지능 발달에 도움을 주고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효과도 뛰어나다.
제이슨 오 셰프는 말려서 곱게 빻은 곡물과 토하젓을 활용해 접시 위에 정원을 표현했고, 푸아그라의 느끼함을 잡아주는 소스로 토하젓을 사용했다.
감칠맛이 살아 있는 밥도둑
“서식장에서 갓 잡은 토하를 먹었을 때 흙 맛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갈색 토하가 톡톡 터지면서 흙 향이 진하게 올라오더군요. 그런데 토하젓에서는 완전히 다른 맛이 느껴졌어요. 흔히 젓갈 하면 짠맛부터 떠오르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젓갈을 담글 때 채소(양념 토하젓의 비법 식재료라 안타깝게도 밝힐 수가 없다)를 활용해 염도를 낮춰요. 양념 토하젓을 먹으면 고소하면서도 담백하고 입안에서 감칠맛이 폭발하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흰밥이 절로 떠오릅니다.” 제이슨 오는 아키라 백으로 잘 알려진 백승욱 셰프의 라스베이거스와 뉴델리 레스토랑에서 실력을 쌓은 뒤 작년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열네 살 때 한국을 떠나 인생의 절반을 해외에서 보냈지만, 그가 여전히 제일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젓갈과 장류다. 도사 바이 백승욱에서도 젓갈과 전통 장류에 상상력을 더해 모던 한식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여정에서 그는 염장한 토하젓과 양념 토하젓을 활용해 독특한 요리를 제안했다.
완성한 토하젓은 유리 병에 담아 직거래 또는 택배로 판매한다.
“현재 도사 바이 백승욱의 메뉴 중 갖가지 식재료로 하나의 정원을 표현한 ‘서울 가든’이라는 음식이 있어요. 여기에 탐진미가의 토하젓을 더해봤어요. 현미와 아몬드, 캐슈너트, 먹물빵을 말려 곱게 간 후 접시에 담아 미니 래디시와 양상추, 튀긴 토하젓을 곁들였지요. 곡물과 채소가 한데 어우러지는 맛이 좋고 튀긴 토하젓으로 감칠맛을 더했어요.” 그의 두 번째 요리는 푸아그라. 감자 크로켓 위에 구운 푸아그라를 올리고 양념 토하젓과 튀긴 염장 토하젓을 곁들였다. “푸아그라는 특유의 느끼함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음식이기도 해요. 평소 푸아그라의 느끼함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주로 초장을 사용합니다. 초장 대신 젓갈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인데, 양념 토하젓이 떠올랐지요. 양념 토하젓으로 김치나 겉절이를 담근다든지 샐러드드레싱으로도 활용해볼 생각이에요.” 토하로 젓갈을 담그는 윤대식 대표. 그리고 미감을 충족시키는 요리를 개발하는 제이슨 오 셰프.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사람들에게 ‘진미’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만은 같다. 자연 속에서 펄떡거리는 토하가, 옹기 속에서 숙성되는 토하젓이, 그 토하젓으로 만든 요리가 계속해서 뇌리에 맴돈다.
요리 제이슨 오(도사 바이 백승욱 총괄 셰프, 02-516-3672) 취재 협조 탐진미가(010-3642-7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