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브로너스’ 하면 대부분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용할 수 있는 올인원 액상 비누 제품 매직 솝과 영어 문자가 한가득 쓰여있는 라벨 디자인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혹시 그 라벨에 쓰인 문장을 읽어본 적이 있는가? 라벨에 적혀 있는 글은 일반 화장품이 그러하듯 제품의 효능이나 성분이 전부가 아니다. 제품 전면에 인쇄된 3만 개 이상의 단어는 닥터 브로너스의 기업 철학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어지는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우리 모두 인종과 종교를 떠나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우리 모두가 몸담고 있는 환경 역시 존중해야 한다.” “건설적 자본주의란 우리가 벌어들인 이익을 함께 일한 노동자들과 그것을 가능하게끔 한 자연과 공유하는 것이다.” 이처럼 직접적으로 소비자에게 사회적 메시지를 주장하는 것부터 여러 가지 활동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노력해온 닥터 브로너스. 우리나라에도 뚜렷한 마니아층이 존재하지만, 국제적 명성에 비해 아직 덜 알려져 있는 게 사실이다.
1, 2 팜 열매를 수확해 손질하는 가나 여인들과 코코넛을 수확하는 케냐의 농부 모습. 닥터 브로너스는 이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학교, 병원 건립 등을 통해 지역사회의 발전을 돕는다. 3 ‘모두가 하나(All-One)!’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기업 철학을 내세운 창립자 엠마뉴엘 브로너. 4 닥터 브로너스는 친환경 작물이자 유효 성분이 풍부한 헴프시드에서 추출한 오일의 지방산을 이용해 비누를 제조한다.
아직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해 설명하자면, 닥터 브로너스는 5대째 가업을 이어오는 1백58년 전통의 천연 비누 제조 기업이다. 독일에서 비누 마스터 자격증을 딴 독일계 유대인인 1세대가 리퀴드 비누의 창시자로, 그만의 비법으로 만든 비누는 독일의 국민 비누로 성장했다. 그러다 닥터 브로너스 가문의 3세대인 엠마뉴엘 브로너는 1929년에 미국으로 이주해 미국 화장품 회사의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1948년 본인의 이름을 딴 닥터 브로너스 매직 솝이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 엠마뉴엘 브로너는 자신의 가족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로부터 학살당한 뒤 인류의 평화에 대해 강의하기 시작했고 강의를 들으러 온 사람들에게 답례품으로 선물한 페퍼민트 비누가 ‘한번 쓰면 절대 잊을 수 없는 비누’라는 애칭으로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가면서 그의 철학이 담긴 브랜드 캐치프레이즈인 ALL-ONE!이 탄생! 오늘날까지 무려 16년 연속 미국 유기농 보디 케어 시장 점유율 1위 브랜드로 성장했다.
베스트셀링 매직 솝.
현재보다 미래를 위해
닥터 브로너스는 미국 농무부 유기농 식품 기준에 준하는 유기농 원료를 사용해 제품을 만든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를 화학성분과 원료에 뿌린 살충제로부터 보호하는 것뿐 아니라 다음세대에 물려줄 토양과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의지다. 특히 주목한 부분은 온난화 현상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다시 흙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닥터 브로너스는 헴프 재배를 비롯해 세 가지 활동으로 지원하고 있다.
헴프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다시 토양으로 되돌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잘 자라는 친환경 작물. 닥터 브로너스는 이 헴프시드에서 추출한 헴프시드 오일의 지방산을 이용해 비누를 제조하며, 2010년 5월 처음 시작한 ‘헴프 히스토리 위크’의 메인 스폰서로 활동하고 있다. 이 운동은 미국 전역의 헴프 경작을 좀 더 활성화하고, 헴프가 지니는 환경적ㆍ경제적 가치에 대한 교육 활동을 본격화하는 데 취지를 두고 있다.
또 환경을 해치지 않는 방법으로 팜유를 재배한다. 우리나라에서 중국발 미세 먼지가 골칫덩어리인 것과 마찬가지로 동남아 국가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 날아오는 공해와 헤이즈 haze로 고통받고 있다. 이 헤이즈는 전 세계에서 가장 수요가 많은 팜유를 재배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열대우림을 불태우면서 생기는 환경 오염물. 이렇게 불태워지는 열대우림은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대기오염과 그곳에 서식하는 수많은 동식물을 죽이고 있다. 따라서 닥터 브로너스는 경제적 효율성 대신 윤리적으로 더 옳은 팜유를 선택했다. 가나 아우숨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수십 년간 팜을 재배하고 있는 농부들과 협업하고 있으며, 기존 재배 방식에서 유기농 재배 방식으로 전환하고 공정 무역을 도입해 지역 주민에게는 가나의 최저임금보다 약 두 배 높은 임금을 지불하고 있다. 또한 팜나무 외에 무화과, 바나나 등 다종재배를 통해 토양의 질을 높이고 있으며, 이 지역에 약 7만 그루의 팜 모종을 심어 5~10년 후까지 내다보는 안목으로 늘어나는 수요를 맞추고 있다.
오늘날 많은 곡물은 알게 모르게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씨앗으로 재배하고 있다. 유전자를 변형한 씨앗은 해충으로부터 작물을 보호하고 흉작의 원인인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비할 수 있으나, 씨앗 주변의 토양에 심각한 오염을 일으키는 문제도 함께 야기한다. 일반적으로 비가 오면 가뭄을 대비해 토양이 빗물을 머금고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오염된 토양은 비가 와도 수분을 간직하지 못하고 다 흘려보내기 때문에 오히려 흉작을 유발할 수 있는 것. 또 해충도 점차 GMO 농작물에 내성이 생기다 보니 점점 더 강력한 해충제를 사용해야 하고, 그로 인해 환경오염은 물론 작물을 먹는 소비자에게도 해를 끼치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이에 닥터 브로너스는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유전자 조작 식품 표시 의무화를 도모하고자 다양한 방법으로 노력해왔다. 제품 라벨에 유전자 조작 제품 표시 의무화를 주장하고 있으며, GMO 표시제를 지지하는 워싱턴주민 발의 522(판매되는 음식과 곡물에 ‘유전자가 가공됐다’는 표시 의무화) 법안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전역에 유통되는 전 제품을 회수해 ‘GMO 표시제’ 찬성 투표를 권고하는 메시지를 담은 라벨로 교체하기도 했다.
1 닥터 브로너스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를 토양으로 되돌리는 친환경 작물 헴프 재배를 적극 지원한다. 2 머드 축제, 음악 축제 등 야외 행사에 거품 샤워를 제공하는 ‘매직폼 익스피리언스’를 즐기는 닥터 브로너스 가족. 3 닥터 브로너스가 후원하는 국제 동물 보호 단체인 휴메인 소사이어티 사무장 폴 샤피로. 4 노동자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캠페인으로, 공정 임금에 관한 메시지를 제품 라벨에 적은 한정판 패키지를 판매해 수익의 일부를 기부했다.
세상의 약자를 가족처럼
닥터 브로너스는 종종 ‘고군분투하는 비누 회사’로도 불리곤 하는데, 이는 믿고 실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위해서는 그 어떤 지원도 아끼지 않기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먼저 ‘닥터 브로너스 재단’을 설립해 세계적으로 그 활동 영역을 넓혀 멕시코 치아파스 지역에 학교를 설립했고, 아이티와 중국에 소년원을 세웠으며, 샌디에이고의 청소년 지원 센터인 보이스 앤 걸스 클럽에는 무려 1백50만 평의 땅을 기부했다. 이 외에도 유기농 농장 설립 프로젝트 및 샌디에이고 지역의 각종 자선단체를 후원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또 닥터 브로너스는 모든 주원료를 공정 무역을 통해 공급받고 있다. 주로 에콰도르, 가나, 케냐, 인도, 이스라엘, 멕시코, 팔레스타인, 스리랑카, 잠비아 등에서 공정 무역을 실행하고 있는데, 이는 단순히 농부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그 농부가 속한 지역사회가 성장할 수 있는 성장 동력을 후원한다. 전 세계를 통틀어 약 1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닥터 브로너스가 구축한 공정 무역 공급망으로부터 직접적 혜택을 받고 있으며, 해당 지역사회의 학교 건축, 우물 건설, 의료 장비 지원, 병원 건립 등을 통해 그들이 지속적으로 자생할수 있게끔 힘을 실어주고 있는 것.
더불어 동물 보호에도 앞장서고 있다. 동물 실험을 반대하는 것은 물론이요, 농장에서 사육하는 동물들을 비윤리적 대우와 고통에서 구제하기 위해 약 10만 달러를 동물 복지 재단에 기부 했다. 또 대표인 데이비드 브로너는 오랜 기간 동안 채식주의자로 살아왔으며, 닥터 브로너스의 제품들은 미국의 ‘비건 액션 Vegan Action’과 영국의 ‘비건 소사이어티Vegan Society’ 같은 채식 관련 비영리단체의 정식 인증을 받았다.
또 닥터 브로너스는 최저임금 인상을 주장한다. 대표인 데이비드 브로너가 받고 있는 임금은 회사 내 가장 낮은 임금의 다섯배를 넘지 않으며, 본인 부담 금액을 최소화한 건강보험을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일반 기업의 CEO가 평균적으로 노동자의 8백95배에 달하는 월급을 받는 구조 아래 경영 되는 것과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이다. “전 세계의 많은 노동자가 임금의 불공정성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상위 1%가 모든 수익을 거두고 나머지는 죽도록 일하면서도 치솟는 물가를 따라잡지 못하는 고통을 받고 있지요. 최저임금은 주로 유색인종과 여성에게 해당하며, 이는 임대료 및 생필품 수급의 어려움 등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해 ‘더 나은 삶’으로의 변화를 막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가 본인과 가족의 생계를 스스로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은 큰 사회문제이며, 이는 결국 사회 전반 시스템에 허점이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대표의 철학이다. 미국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뜨거운 이슈인 현재, 닥터 브로너스의 전 직원은 캘리포니아 최저임금에서 최소 25% 이상의 연봉을 받고 있다. 이처럼 닥터 브로너스는 지구의 생명체가 불평등 구조에서 벗어나 더 나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힘쓰며, 더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 제공 닥터 브로너스(02-3414-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