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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물탱크 부지, 라운지로 탄생하다 AJA 파빌리언
인도 뭄바이 변두리에 있는 한 아파트 단지에는 독특한 라운지가 있다. 유리 벽 너머로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이곳은 건축사 사무소 아브라함 존 아키텍츠가 버려진 지하수 관정 물탱크 부지를 활용해 만든 AJA 파빌리언이다. 퀴퀴한 냄새로 진동하고 축축했던 관정 시설이 아이러니하게도 편안하고 쾌적한 라운지로 재탄생했다.

아무도 찾지 않던 외딴 장소에 들어선 AJA 파빌리언. 아브라함 존 아키텍츠는 버려진 지하수 관정 물탱크 부지를 활용해 아늑한 라운지로 변신시켰다. 
세계 곳곳에서는 하루에도 수백 채의 신축 건물이 들어서고, 반대로 무수히 많은 건물이 쓰임을 다한 채 버림받는다. 불이 꺼지고 모든 게 멈춰버린 빈 공간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람의 손길을 그리워하며 고요히 잠들어 있다. 최근 이러한 공간을 활용한 재생 건축이 화두다. 재생 건축이란 옛 건물의 원래 골조를 활용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시대상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존재해온 건축물에는 그곳을 거쳐간 이들의 추억과 이야기가 켜켜이 얽혀 있어 신축 건물이 흉내 낼 수 없는 시간과 세월의 흔적이 농밀하게 담겨 있다. 인도 뭄바이에서도 재생 건축이 유행이다. 아라비아 해를 끼고 있는 제1 항구도시로서 일찍 번창한 덕분에 인구가 밀집하고 고층 빌딩과 공동주택이 빼곡히 들어서서 다른 도시에 비해 유독 노후한 건축물이 많다. 재생 건축을 향한 자연스러운 흐름에 아브라함 존아키텍츠도 합류했다. 1967년 설립한 종합 건축&인테리어 사무소이자 존과 알란 부자父子가 함께 운영하는 이곳은 하이엔드 레지던스와 오피스, 병원, 산업 프로젝트는 물론 재난 대비시설까지 경계 없는 건축&인테리어 프로젝트를 진행하는데, 최근엔 ‘재생’을 주제로 한 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라운지 내부 전경. 외벽 대신 통유리를 설치해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다. 천창 밖으로 주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과 나무, 유리로 지은 미니멀 라운지
사무소의 이니셜을 따서 이름을 붙인 AJA 파빌리언은 뭄바이 외곽 지역의 아파트 단지에 자리 잡고 있다.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아담한 라운지로 이곳 주민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아브라함 존은 이번 프로젝트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스스로 미니멀리스트임을 내세우는 부자父子 건축가는 나무 기둥과 서까래 하나도 군더더기 없이 직선으로 재단했다. 
“눈에 보이는 모습 그대로예요. 라운지는 사방의 건물과 담장에 가로막혀 햇볕이 잘 들지 않고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외진 공간에 있죠. 원래는 지하수 관정 물탱크가 있던 자리였어요. 뭄바이는 인도의 다른 도시보다 물이 풍부한 편이긴 했지만 지하수를 끌어와 사용하는 동네가 많았어요.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네요. 수도 설비가 널리 보급되면서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지하수 관정 물탱크가 셀 수 없을 만큼 많거든요. 여기도 그 일부죠. 이 부지를 주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굉장히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벽 앞에 돌담을 러프하게 쌓아 올려 원초적 자연의 느낌을 들였다.
AJA 파빌리언은 모든 구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길을 따라 작은 정원을 지나면 나오는 ‘최소의 라운지’는 1인용 소파 두 개와 3인용 소파 하나, 조명등과 테이블, 바 스툴 두 개만으로 간결하게 꾸몄다. 뒤로는 단지 외벽을 등지고 있고 정면과 우측에는 벽 대신 통유리를 설치해 정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이사이 구조물을 지탱하는 나무 기둥과 서까래, 외벽 앞으로 낮게 쌓아 올린 돌담, 천창 너머로 올려다보이는 바라밀나무와 이따금 보이는 높은 하늘까지 라운지는 자연 요소와 모던한 건축이 조화를 이룬다.

나무로 만든 문손잡이에서도 미니멀한 감성을 느낄 수 있다.
“AJA 파빌리언의 건축 테마를 한 단어로 정의하면 ‘내추럴 팔레트Natural Palette’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소재를 적용했지요. 나무와 돌이 지닌 고유한 질감과 색감, 그들이 지닌 원초적 아름다움을 좋아합니다. 하지만 표현 방식은 완벽한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해요.우리의 다른 작업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는데, 유난히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하죠. 이들로 선과 면을 만들고, 자연 소재로 레이어드하는 것이 우리의 작업 방식입니다.”

자연과의 공존을 중요시 여기는 건축가는 라운지 주위로 열대식물을 심어 작은 정글을 꾸몄다.
알란 아브라함의 말대로 그들은 장식 요소의 하나로 직선을 택했다. 반듯한 유리 벽 너머로 목재를 촘촘히 연결해 만든 파티션을 설치하고, 돌계단과 석재 타일도 네모반듯하게 다듬었다. 라운지 안에 배치한 업홀스터리 소파와 아름다운 나뭇결의 원목 스툴(철제 프레임으로 미니멀함을 한 번 더 강조했다)은 내추럴한 인테리어를 완성해준다. 라운지 옆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돌길을 따라가면 노란색으로 페인트칠한 공간 하나가 나온다. 본래는 각종 설비를 보관하던 공간인데, 지금은 이를 개조해 창고로 활용 중이다. 색깔이 다른 두 공간이 한데 모여 있으니 건축물이 한층 다채롭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직 밝히지 않은 한 가지 비밀이 있다. 나란히 서 있는 라운지와 창고 사이의 한뼘 공간은 천장을 의도적으로 없앴다. 물탱크를 짓기 훨씬 전부터 그곳에 자라던 바라밀나무 한 그루와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이 사이로 친구처럼 나란히 자라고 있다.

라운지와 창고 사이의 한 뼘 공간에는 천장이 없다. 원래부터 그곳에 있던 나무 두 그루와 공생하기 위한 배려다. 
자연에 한발 양보하면 그 이상의 힐링을 선물 받는다. 라운지를 관통한 바라밀나무가 시원한 그늘과 멋진 풍경을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진정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이런 게 아닐는지! 이렇게 완성한 AJA 파빌리언은 이제 지은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마치 처음부터 그곳에 존재한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아파트 단지 주민에게는 자랑하고 싶은 공간일 터. 누군가는 자신의 아이에게, 그 아이가 훗날 자신의 아이에게 이렇게 얘기하지 않을까?

“아주 오랜 옛날, 저 자리에는 커다란 물탱크가 있었단다. 그때는 없으면 안 될 중요한 곳이었지만 어느샌가 쓸모없어져버렸지. 뭄바이에는 이런 공간이 아주 많단다. 대부분은 폐허로 남았거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그들과 달랐어.우리의 소중한 기억을 담아 더욱 멋진 공간을 만들었지. 우리를 위한 공간말이야.”

재생 건축은 이렇듯 저만의 스토리와 감동을 머금고 새로운 현재를 살아간다. 그리고 담담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쉽게 짓고 허물면서 죄책감 없이 환경을 파괴하는 기존 건축을생각하면 반성하는 마음이 절로 들 수밖에 없다.



사진 알란 아브라함Alan Abraham 디자인과 시공 아브라함 존 아키텍츠(www.abrahamjohnarchitects.com)

글 이새미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