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스튜디오에서 마시는 커피는 ‘드립 커피’가 아니라 핸드메이드로 ‘끓이는 커피탕’이다. 화덕 숯불 위 프라이팬에서 볶은 커피콩을 다시 화덕 냄비에 넣고 물을 부어 팔팔 끓인다. 커피콩을 분쇄하지 않아 풍미가 맑고 개운하다.
“효재야,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어느 날 걸려온 선생님의 전화 한 통으로 제천살이가 시작되었다.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2014년 10월 18일이다. “예” 하고 따라나서 차에서 잠이 들었는데, 도착해 눈을 떠보니 주변은 온통 쌀가루를 흩뿌려 놓은 듯 구절초가 하얗게 피어 있었다. 그 순간 “이런 곳에 산다면 좋겠구나” 했다. 선생님은 “그럼 다른 생각 하지 말고 여기서 살아보렴” 하고 응원하셨다. 해서 눌러앉은 곳이 충북 제천 백운면이다. 소나무 아래 구절초가 어찌나 좋았던지. 바람기 많은 남자가 한양으로 과거 시험 보러 갔다가 마음 맞는 주막집에 그냥 눌러앉아 살았다더니, 이 모양이었겠구나 싶었다.
제천에 새 터를 잡고 살면서 곧 헐어버릴 집을 보고 “아니, 저 집을 헐면 시끄럽고 돈도 들 텐데 목 축이는 우물가처럼 찻집 만들면 어떻겠어요?” 하고 말했다가 덜컥 자수방을 꾸몄고, 난방은커녕 비까지 새는 둥근 양은 집을 근사한 화덕이 있는 요리 스튜디오로 만들게 되었다. 제천의 효재 공간, ‘코끼리 집’과 ‘달 스튜디오’다.
외국에 나갈 때마다 내게 주는 선물로 현지의 장화를 산다. 빨간 건 런던에서, 리본 달리 건 일본에서, 쑥색 장화는 파리에서 구입했다. 꽃무늬 장화는 동네 양품점에서 1만 8천 원 주고 샀다. 신지 않을 때는 탈취제를 넣어놓고 레이스로 덮어둔다.
제천 집과 서울 성북동 집을 오가며 어미 새가 모이 나르듯 이삿짐을 날랐다. 성북동 살림을 덜어내어 제천에 만든 공간은 나의 30년 살림 컬렉션으로 이뤄낸 또 다른 즐거운 곳이다. 담쟁이넝쿨 집이 있고 추억을 수놓는 자수방과 다도 수업을 진행하는 다도방이 있으며, 장작불 화덕에서 약초 밥상 짓는 스튜디오도 마련한 이곳의 일상은 삶이 곧 풍류놀이 자체다. 그럼에도 제천 생활이 더없이 행복한 이유 한 가지만 먼저 꼽으라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주는 정다운 이웃부터 떠오른다. 한번은 검은 콩, 누룽지, 삶은 고구마가 든 봉지를 버스 선반에 놓고 내렸다. 한 달 뒤쯤 터미널을 나오는데 기사 한 분이 반기며 검은 봉지를 건네주시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이게 효재 선생 거 같다며, 고구마는 썩어서 버렸고 남은 것만 보관하다 이제 만나게 되어 준다며 봉지를 내미시는데 “어머, 감사합니다” 하고 받았다. 세상에나, 언제 적 걸 이제까지 버리지 않으셨다니….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한동안 그 따뜻한 단상이 서울 생활의 위로가 되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고속버스에 올랐더니 현금으로 내야 한단다. 뜨거운 여름날, 길치인 내가 은행을 찾아다녔다. 마침 택시 기사를 하시는 동네 분이 차창을 내리고 인사를 하시기에 얼른 5천 원을 꾸어서 “열두달밥상 가서 받으세요” 하고 서울로 올라갔다. 며칠 뒤 제천으로 돌아오니 동네 친구 식당 열두달밥상에 농사지은 고구마 한 박스를 맡겨놓고 가셨다. 장날 버스에서 만나는 할머니들과는 동무 삼아 내내 수다를 떤다. 내리시면서 귤 하나를 쥐여주고 가신다. 어느 날은 사탕 한 알, 어느 날은 통 크게 삶은 달걀 한 꾸러미….
시골에서는 돈의 단위가 다르다. 적은 돈으로도 풍요롭다. 나는 백운면 장날의 ‘큰손’이다. 식재료와 지역 막걸리와 손두부를 서울로 나르며 이웃들과 나누니 나도 좋고, 남도 좋고, 모두가 좋다. 이런 소소한 풍경에 마음이 순해진다. 그러니 어찌 서울과 시골을 오가는 이중생활이 힘들 수 있으랴. 오도이촌 생활이 1년 넘었건만, 마음은 늘 제천에 가 있다.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익숙한 그 모습들이 반가워 나는 요즘도 시골살이의 인연들을 부지런히 서울로 실어 나른다. 또 제천에서 맛볼 수 있는 살림 풍류 역시 지인과 함께 할 생각에 하나 둘 늘려간다. 혼자 누리기엔 어쩐지 아까워서.
1 이른 봄 감동을 주는 꽃떡
꽃이 피는 봄이 오면 (나는) 화전 대신 꽃떡을 찐다. 하얀 백설기 위에 수놓듯 꽃 한 송이를 붙이는 작업이 좋아서, 또 꽃떡을 먹어야 봄을 맞이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계절엔 마당의 제비꽃이 남아나지 않는다. 꽃을 올리고 나면 마음이 순해져 내 입에 들어오기보다 남주기 바쁘다.
2 꽃 한 송이 마주한 라면 전용 젓가락 받침
손님이 많이 오는 우리 집에서는 라면을 끓이는 일도 많다. 이때 라면 대접하는 자리도 황홀한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꽃 한 송이 꽂아 받쳐낸 전용 젓가락 받침이다. 라면을 먹으며 다들 꽃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워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도 예뻐들 하여 집들이 선물로도 자주 애용하고 있다.
3 다구를 담은 여행용 차 바구니
코앞 마당에서 차를 마실 때도 항상 여행용 차 바구니를 챙겨 나온다. 바구니 안에는 다호며 다관, 숙우 등의 다기는 물론, 보온병과 찻상보까지 들어 있다. 한 번에 정리되도록 바구니 사이즈에 맞춰 칸막이 있는 사각 정리함을 만들어 넣은 것이 특징으로, 양쪽을 손으로 집어 쑥 들어내 펼치면 즉시 찻자리가 마련된다.
4 자연 담은 화투에 옷을 입힌 화투 담요
열두 달 자연을 노래하는 화투는 ‘놀이’다. 어느 날 일상에서 하찮게 여기는 화투에 옷을 입혀야겠다고 생각해 화투 담요를 고안했다. 재미있는 놀이를 좀 더 격 있게 즐길 수 있도록 담요 앞뒤의 배색을 달리하고, 모서리에는 복주머니 모양의 돈주머니도 달았다. 이 담요는 매듭 단추를 달아 망토로도 걸칠 수 있으니, 어떤 물건이든 다 쓰기 나름이다.
5 초록 마당을 물들이는 빨간 땡땡이 피크닉 깔개
제주도에서 우연히 자투리 원단집을 발견하고 이곳의 수많은 원단 중 유독 눈에 확 들어온 빨간 땡땡이 원단을 끊었다. 옷을 짓고 남은 자투리로 만든 피크닉 깔개는 초록 마당을 마치 루주를 바른 것처럼 화사하게 만들어준다. 습기가 올라오지 않게 먼저 비닐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애지중지하는 깔개를 펼쳐서 나만의 영화를 찍는다.
자료 제공 스타일북스(02-3789-02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