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유명 관광지인 ‘신비의 도로’ 옆에서 버섯 농장을 운영하는 김상민 대표(오른쪽)와 그의 단골 고객 신동민 셰프.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찾아낸 버섯
셰프는 학자이며 탐험가 못지않다는 것을 신동민 셰프를 보며 깨달았다. 신동민 셰프가 운영하는 레스토랑 이름인 미코(味行)는 ‘맛을 찾는 여행’이라는 뜻으로 그의 요리 철학을 가장 잘나타내는 단어이기도 하다. 신동민 셰프는 맛있는 한 접시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건강한 식재료를 찾아내 많은 이에게 소개하는 것 역시 자신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식재료와 건강 관련한 학회에도 기회가 닿을 때마다 참석하며, 전국 각지는 물론 틈틈이 미식 여행을 떠나곤 한다. 일본에서 요리 공부를 하던 시절 접한 버섯 때문에 원산지인 브라질을 방문한 적도 있단다. “일본의 한 버섯 농장에 갔다가 양송이를 닮은 버섯이 있기에 먹어봐도 되냐고 물으니 엄청 비싼 거라며 선심 쓰듯 하나 주더라고요. 단백질 함량이 높고 항암 효과가 있는 데다 재배하기가 무척 어려워 값비싼 식재료거든요. 식감은 새송이버섯처럼 쫀득쫀득하고 풍미가 독특했는데, 고소하면서도 향긋한 진한 향이 좋아 그 자리에서 구입했습니다. 생으로는 보관하기 어려워 건조한 형태로만 판매하더군요. 원산지인 브라질에서도 해마다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다고 해 실제로 보고 싶어 브라질까지 직접 갔다 왔지요.”
이 버섯의 이름은 아가리쿠스. 브라질의 산악 지대인 피아다테가 원산지로, 고목이나 풀숲 사이에서 자라는 여타 버섯과 달리 말의 축분에서 발아하는 특징이 있다. 북아메리카와 중남미 일부 지역에서 자생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야생마가 급감하며 브라질에서도 생산량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신동민 셰프는 간혹 브라질에 간다는 지인이 있을 때마다 아가리쿠스버섯을 부탁해 요리에 사용하다 수소문 끝에 아가리쿠스버섯을 재배하는 김상민 대표를 만났다. 김 대표는 경기도 양주와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여섯 개의 버섯 농장을 운영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아가리쿠스버섯을 ‘신령버섯’ ‘생명버섯’ ‘흰들버섯’이라고 부르는데, 일본에서는 송이버섯을 뜻하는 마쓰다케에 공주나 귀한 여인을 뜻하는 히메를 붙여 ‘히메마쓰다케’라고 부릅니다. 그만큼 귀하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영농 후계자로 선진 농업 현장 견학으로 가게 된 일본에서 이 버섯을 보고 재배하게 되었습니다.”
그간 김상민 대표에게 버섯 재배법을 배우겠다고 찾아온 이가 5백 명이 넘는다는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아가리쿠스버섯을 재배하는 사람은 그가 유일하다니 아가리쿠스가 얼마나 예민하고 까다로운 생명체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1 아가리쿠스버섯을 틔우는 말똥에 십수 가지 재료를 섞어 발효시키면 악취도 없는 신기한 흙이 된다.
2 수확을 앞둔 아가리쿠스버섯. 습도, 온도, 산소량이 조금이라도 맞지 않으면 바로 죽어버리는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성질을 지녔다.
면역력 향상을 돕는 신비의 버섯
아가리쿠스버섯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다. 브라질에서는 잉카제국 시대부터 원주민이 식용했다고 전해지는데, 브라질 원주민이 유독 장수한 이가 많고 성인병 발병률이 낮다는 점을 주목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 대학에서 아가리쿠스버섯의 성분 연구를 실시해 항암 효과를 입증했다.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인 레이건이 대장암을 치료하기 위해 이 버섯을 먹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일본 국립 암센터에서도 아가리쿠스버섯이 암세포를 잡아먹는 면역 세포를 활성화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버섯 성분을 추출해 항암제로 사용해왔고, 1992년부터 인공 재배해 시판 중이다. 중국 남부에서는 노지에서도 아가리쿠스를 채취한다고 하는데, 그 약리성과 안전성은 입증된 바 없다.
“버섯이 건강식품으로 꼽히는 건 면역력 향상을 돕고 열량이 낮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중 몇몇 버섯은 항암 식품으로 분류합니다. 영지버섯, 차가버섯, 상황버섯, 운지버섯, 아가리쿠스버섯 등이지요. 이들이 항암 효과를 내는 것은 베타글루칸β-glucan 성분 때문입니다. 버섯에는 대부분 베타글루칸이 함유되었고, 귀리나 보리 등 곡류에도 있지만 항암 효과를 낼 만큼 함량이 높지 않을뿐더러 식이섬유로만 작용해 면역 증강 작용을 하지는 못합니다. 베타글루칸은 암세포를 직접 죽이는 것은 아니지만 암 환자의 면역력을 높여 암세포의 활동을 억제합니다.” 김상민 대표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의 버섯에 관한 지식이 연구원 못지않은데, 수많은 책과 학술 논문까지 뒤적이며 십수 년간 버섯 공부에 매진한 결과다.
건강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 요즘에는 건강 식재료에 관심이 많은 이도 아가리쿠스버섯을 구입하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김상민 대표의 주 고객은 암 환자가 대부분이었다. 워낙 고가인데다 아픈 사람들이 찾아오니 책임감을 느껴 가장 자연에 가깝게 재배하기 위해 무던히도 연구하고 노력했다고. 그가 제주에 내려온 것도 바로 말똥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서는 말똥을 구하는 것이 쉽지 않고 운반비도 무시할 수 없어 계분 등을 활용했는데, 제주에서는 하루에 서너 시간씩 걸으며 말을 키우는 농가를 일일이 찾아다녔다. 말똥에 사탕수수, 볏짚 등 십수 가지 재료를 섞어 한 달간 발효시켜 단단하게 굳힌 뒤 비닐하우스 내 균상으로 옮기고 여기에 버섯 종균을 고루 뿌린다. 20여 일쯤 지나 버섯균이 하얗게 모습을 드러내면 수분과 공기 투과율이 좋은 복토를 얹어 균이 흙 위로 옮겨지도록 한다. 그런 다음 하우스 온도를 뚝 떨어뜨리면 갑자기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려고 균으로 있던 포자가 드디어 버섯을 터뜨린다. 준비 작업부터 수확할 때까지 6개월이나 걸리는데, 수확하는 건 이틀이면 가능하다. 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산소량이 느타리버섯에 비해 네 배나 높아 온종일 보일러를 틀고, 균상 밑으로 열선을 깔아둔 하우스는 수시로 환기도 해주어야 한다. 밤새 자면서도 세 번씩 일어나 일일이 하우스를 환기해주고 균상을 손으로 만져가며 수분을 공급한다. 20년쯤 재배하다 보니 손의 감촉만으로도 흙의 습도를 감지하는 공력이 생긴 김상민 대표다.
“버섯을 수확한 즉시 동결건조 시설로 옮깁니다. 생아가리쿠스버섯은 단백질 함량이 40%에 육박해 금세 썩거든요. 서늘한 곳에 둔다고 해도 사흘을 넘기기 힘들어요. 아가리쿠스는 야행성이라 밤새 자라는 속도가 아주 빨라 새벽에 수확해 바로 동결 건조합니다.” 그가 판매하는 건 동결건조 아가리쿠스버섯. 간혹 물량이 얼마 되지 않을 때는 열 건조하기도 하지만 이는 물에 넣고 끓여 마시는 것밖에는 쓸데가 없다. 열 건조하면 영양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 물로 씻어도 영양 성분이 다 빠져버려 수확한 버섯은 손으로 일일이 흙을 털어낸다. 물로 씻을 수 없고 수작업으로는 흙을 완벽하게 떼어내기가 불가능해 일반 농가에서는 환이나 분말 등 건강 기능 식품으로 제조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3 영하 42℃에서 동결건조한 아가리쿠스버섯(앞쪽)과 열풍으로 말린 것(뒤쪽). 육안으로 보아도 차이가 분명하며, 열 건조한 것은 영양도 현저히 줄어든다.
4 신동민 셰프가 선보인 쇠고기 아가리쿠스버섯 덮밥. 간장에 재료를 재운 뒤 센 불에서 가볍게 볶았는데, 버섯이 요리에 풍미를 더한다.
얼마나 좋은지는 먹어보아야 안다
신동민 셰프는 제주에 내려올 일이 있을 때마다 이곳에 들러 생아가리쿠스버섯을 구해서 간다. 선도 문제로 생버섯은 절대 판매하지 않는 김상민 대표는 수년간 인연을 맺은 신동민 셰프에게만 특별히 조금씩 내준다. 운이 좋다면 신동민 셰프의 레스토랑 미코에서 아가리쿠스버섯 사시미를 맛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상민 대표는 동결건조한 버섯을 하루에 한 개씩 과자처럼 먹는 방법을 추천한다. 그의 농장을 방문하는 이에게는 열건조한 것이나 동결건조 버섯을 포장하는 과정 중 부스러진 것을 차로 끓여 대접한다. 차로 끓여도 금세 상해 하루를 넘기지 않는다. 마시고 남은 차는 모두 김상민 대표의 몫. 예순을 바라보는 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탱탱한 피부를 유지하는 비결도 아가리쿠스버섯 덕분이란다.
셰프는 버섯의 흡수율을 높이려면 약간의 염분이 필요하다며 요리에 활용하는 것도 좋다고 조언한다. 신선한 버섯은 결대로 찢어서 그대로 내기도 하지만, 육수를 끓인 뒤 불에서 내리자마자 아가리쿠스버섯을 넣어 감칠맛을 더하기도 한다. 오래 끓이면 영양소가 모두 파괴되므로 조리 시간을 최소화해야 한다.얼마 전 출시한 ‘셰프 신간장’에 아가리쿠스버섯과 채소, 쇠고기를 재운 뒤 센 불에서 채소와 쇠고기를 볶고 버섯도 재빨리 볶아 덮밥으로 내기도 한다. 아가리쿠스버섯은 탱글탱글한 식감이 좋아 씹는 맛도 일품이다. 아가리쿠스를 요리로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다는 김상민 대표는 버섯을 재워둔 간장만 찍어 먹어보고도 그간 맛보아온 간장과는 다른 깊은 감칠맛에 놀라며 신동민 셰프에게 레시피를 적어달라고 할 정도였다.
김 대표는 제주에 내려와 두 아들과 함께 버섯 농장을 운영하면서 엄두도 내지 못하던 꿈을 하나 둘 꺼내고 있다. 혼자 운영할 때는 버섯을 키우는 것만도 힘에 부쳤는데 말이다. 건강에 소홀하기 쉬운 젊은 층에게 아가리쿠스버섯을 알리기 위해 체험 농장을 만들고 버섯을 활용한 비누 등의 제품도 선보일 계획인것. 이름만 들어도 귀한 줄 아는 송이나 송로버섯처럼 아가리쿠스버섯도 귀하게 대접받을 날을 위해 김상민 대표는 힘이 다하는 날까지 버섯 농장을 지킬 예정이다.
요리 신동민(미코, 02-3446-1227)
- 쉬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 귀한 식재료 아가리쿠스버섯
-
브라질의 피아다테 지역 원주민의 장수 비결로 알려진 아가리쿠스버섯은 브라질에서도 ‘신의 버섯’ ‘태양의 버섯’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항암 효능이 탁월하다고 알려져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이 버섯을 우리나라에서도 만날 수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6개월을 기다려야 모습을 드러내는 아가리쿠스버섯을 20년째 재배하는 버섯 박사를 제주에서 만났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