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동물이 모두 이로운 자연 속 목장
해발 850m의 태기산 자락에 자리한 설성목장. 추위가 매서운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너른 초지에서 5백여 마리의 소를 방목한다. 이곳을 한 번 둘러보는 데만도 수십 분이 걸리지만, 설성목장의 조태철 대표는 강아지 두 마리와 함께 쉴새 없이 초지를 살핀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스물일곱 살 청년은 소 열 마리를 구입해 경기도 이천의 설성면에 작은 목장을 지었다. 1970년대 우리나라에 아직 한우도 많지 않고, 축산 기술이나 환경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때였으니 책에서 배운 것과 실제 환경이 달라도 너무 다르던 것. ‘축산업을 제대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해 7년 뒤엔 더욱 청정한 환경을 찾아 강원도 횡성 태기산 자락에 넓은 부지를 매입해 목장을 만들었다. 위생적인 사육 시설을 갖추고, 초지에 한우를 방목하며 친환경 농장을 운영하며축산의 꿈을 펼쳤다.
“일교차가 큰 곳에서 좋은 농산물이 많이 나는 것처럼, 소도 일교차가 뚜렷한 곳에서 사육하면 마블링이 촘촘하게 박히고 감칠맛이 납니다. 그뿐 아니라 횡성은 산간 지역이지만 논농사가 발달해 볏짚 같은 소먹이를 구하기도 쉽지요. 이천과 횡성은 소를 키우기에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입니다.” 설성목장의 조태철 대표는 일주일에 이틀은 이천 목장에, 나머지 시간엔 횡성에 머무른다. 이천의 설성목장에는 1천5백 마리의 비육우肥肉牛가, 횡성의 설성목장에는 5백 마리의 번식우와 6개월 미만의 송아지가 산다. 머릿수로만 보자면 이천이 훨씬 큰 규모로 느껴지지만, 부지도 횡성이 훨씬 넓을뿐더러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송아지와 출산을 앞둔 어미 소들이 있어 조 대표는 주로 횡성에 머물며 목장을 관리한다.
두 곳의 설성목장은 모두 친환경 인증을 받은 것은 물론, 올가 홀푸드의 동물 복지 인증 지정 목장이기도 하다. 유기 재배가 보편화된 농산물과 달리 축산은 조태철 대표가 농장을 시작한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사육 환경, 사료 등에 ‘친환경’이라는 개념이 아직 정립되지 않았다. “양돈, 양계 부문만 해도 일부 농가에서는 유기 사료를 수입해 사용하기도 하는데, 축산 쪽은 형편이 그리 발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저 제가 키우는 동안만이라도 깨끗하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에게 좋은 먹거리로 전해지려면 일단 소가 행복하게 자라야겠다 싶어 자연 친화적 목장을 만든 것이 오늘에 와 친환경 지정 목장으로 인정받은 것이지요.”
매일 만드는 신선한 육제품을 판매하는 델리
1 태어난 지 일주일 된 송아지. 출산을 앞둔 소, 갓 출산한 어미 소와 송아지는 별도의 축사로 옮겨 보살핀다.
2 유산균ㆍ곡물ㆍ맥주밥(맥주 부산물) 등을 넣어 발효시킨 발효 비료, 건초, 옥수수, 보리 등 수십 가지 재료를 섞어 만드는 이곳만의 배합 사료.
목장을 운영하며 1989년에는 포장육을 생산하는 공장을 설립해 쇠고기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부위별로 포장된 고기를 구입하는 일이 일반적이지만, 그 시절만 해도 모두 시장 정육점에 가서 필요한 만큼 구입했으니 유통하기도 쉽지 않았고 당연히 수요도 적었다. 포장육 판매 여건이 성숙되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수만은 없어 지역 축협을 통해 판매하는 대신 햄과 소시지, 베이컨 등 가공육 제조로 사업을 확장했다. 유럽이나 미국 등지의 정통 제조법으로 제대로 된 맛을 내기 위해 식품연구소까지 갖추며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였고, 백화점과 마트 진열대는 물론 수십여 외식업체에 납품하고 세계 시장에 수출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현재는 ‘에쓰푸드’라는 이름의 육가공 대표 기업으로 성장하여 경기도와 충청도에 공장 세 곳을 운영하고 있다.
“국산 브랜드의 돼지고기를 구입해 가공ㆍ판매하는 형식이다 보니, 횡성과 이천의 한우 목장처럼 직접 돼지도 사육하는 양돈 목장을 갖추면 더욱 안전한 식재료를 안정적으로 공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제는 양돈 쪽도 공부 중입니다. 위생적이고 안전한 사육 환경과 사육 방식은 그저 목장만 깨끗하게 짓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 다방면의 전문가를 만나며 자료를 모으고있습니다.” 외국의 주요 식재료다 보니 해외 전문가에게 노하우를 전수받는 일도 필수. 1990년부터 독일과 미국의 육가공 전문가들과 함께 새로운 기술 도입과 제품 개발을 진행했고, 여세를 몰아 유럽 등지의 델리처럼 매장에서 직접 만든 다양한 육제품을 판매하는 델리 숍 ‘존쿡델리미트’를 오픈했다. 15℃ 미만의 콜드 팩토리, 핫 팩토리와 핫 키친, 콜드 키친 등 매장보다 더 넓은 주방에서 생햄과 콜드컷 햄, 베이컨, 소시지와 매장에서 맛볼 수 있는 샐러드, 샌드위치, 바비큐 메뉴를 만들어낸다. 전문 셰프에게 육제품을 활용한 일상 요리부터 파티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쿠킹 클래스도 진행하고, 이곳에서 장을 봐 식탁을 차릴 수 있도록 함께 곁들이는 하몽이나 치즈, 빵과 관련 조리 도구까지 구입할 수 있는 신개념 매장을 선보였다.
목장에서 식탁까지 건강하게, 설성한우
3 설성한우의 안심살. 촘촘하고 치밀한 마블링이 특징이다.
4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와 칠면조 고기 등으로 만든 육제품과 소시지, 바비큐, 베이컨, 살라미, 하몽 등을 판매하는 존쿡델리미트 시그너처.
에쓰푸드, 존쿡델리미트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냈으니 이제 목장 주인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해 2년 전 은퇴했고, 다시 횡성으로 돌아온 조태철 대표는 처음 목장을 시작하며 꿈꾼 ‘목장에서 식탁까지’ 건강한 쇠고기를 전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 “30여 년 전과 달리 요즘 소비자는 내가 먹는 식재료가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자라고 어떤 과정을 거쳐 식탁에 오르는지에 민감합니다. 이제는 횡성과 이천에서 건강하게 자라는 설성목장의 한우를 소개하기에 알맞은 때가 된 것이지요. 축협을 통해 출하하는 것을 당장 그만둘 수는 없지만 점차 출하량을 줄이고, 설성한우라는 브랜드로 백화점이나 유기 농축산물 전문 유통 숍에서 판매하는 일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설성목장의 한우는 횡성 목장에서 태어나 6개월간 너른 대지에서 자란다. 번식우와 어린 송아지들을 초지에서 방목하는 까닭은 자유롭게 뛰어놀며 스트레스 없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데다 건강한 골격을 형성하고 외부 바이러스나 질병에 견딜 수 있도록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우량 송아지를 생산하기에도 제격이며, 송아지에게 평생 유지해야 할 면역력의 기틀을 다지는 것. 그뿐 아니라 이곳 한우가 육질 조직이 치밀하며 육즙이 달고 감칠맛 나는 비결이기도 하다. 8만 5천 평의 이천 농장에서는 생후 28~32개월, 도축하기 전까지의 소를 키운다. 좋은 쇠고기는 단연 우량 종자여야 하며 위생적인 환경에서 자란 건강한 소여야 함은 물론이지만 소가 무엇을 먹고 자라느냐도 매우 중요해 육성기, 비육전기, 비육후기로 나눠 사료의 양과 영양 비율까지 따져 관리한다. 일반 사료 외에도 직접 수확한 옥수수, 호밀, 귀리, 보리 등과 손수 만든 발효 사료를 배합해 소의 먹이로 쓴다. 어린 송아지에게는 부드러운 사료에 좋은 풀 을 먹이고, 비육전기에는 살을 만드는 단백질을 집중적으로 공 급하며, 비육후기에는 촘촘한 마블링을 낼 수 있도록 옥수수와 보리 등을 더하는 식이다.
“한우는 외국 소와 지방산(지방을 구성하는 요소)의 구성에 차이가 있어 맛이 독특합니다. 외국 소는 마블링이 거칠고 큰 입자가 드문드문 박혀 있는 반면, 한우는 조밀하고 촘촘하게 박혀 있는 것이 특징이지요. 그렇지만 한우라고 다 마블링이 촘촘한 것은 아닙니다. 고기 속 지방 함유량에 따라 1++, 1+, 1등급, 2등급, 3등급 등 다섯 가지로 구분하는데 1++ 등급의 소는 태어나면서부터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개선할 수 있습니다.”
과학적 사료 배합과 단계별 육질 개선 등 30여 년 전부터 마련한 시스템과 노하우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다는 조태철 대표는 이곳 쇠고기 맛을 널리 알리기 위해 존쿡델리미트에 설성한우를 활용한 메뉴를 선보이고 직매장을 운영할 계획도 세웠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존쿡델리미트 시그너처에서는 설성한우의 참맛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메뉴가 곧 첫선을 보일 예정이다. “설성한우는 육즙이 달고 풍부하며 식감이 좋아 스테이크로 즐기기 제격입니다. 특히 감칠맛이 뛰어나 소금과 후춧가루,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에 로즈메리 등의 허브만 더해 구워도 부족함이 없습니다.” 존쿡델리미트의 김경태 총괄 셰프는 스테이크 외에도 샌드위치, 바비큐 등 다채로운 메뉴를 선보이기 위해 식품연구소와 이곳의 마이스터와 함께 메뉴 개발에 한창이다.
조태철 대표는 설성한우의 비전은 ‘비프드림’이라고 했다. 더욱 맛있고 좋은 쇠고기를 선보이기 위해 30여 년을 꾸려오고도 “이제 10~20년 더 열심히 하면 좋아지겠지” 하며 목장 일에 매진하는 그의 열정은 여전히 청춘이다.
촬영 협조 설성목장(1577-1393), 존쿡델리미트 시그너처(02-514-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