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전남 장흥에서 고대미를 재배하는 한창본 농부, 줄라이 오세득 셰프.
토종 쌀, 프렌치 식당의 재료가 되다
전국 각지의 식재료가 가득한 줄라이의 메뉴판은 오세득 셰프가 식재료 탐험에 얼마나 열심이며 바지런한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고대미를 처음 접한 건 1년 전 슬로 푸드 대회에서다. 한 화장품 회사가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며 몇 년 전부터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고대미는 우리나라 토종 벼 품종을 이르는 말이다. “붉은색ㆍ녹색ㆍ흑색 쌀알의 고운 자태에 첫눈에 반했지요. 입안에서 톡톡 터지는 식감은 더욱 매력적이었습니다.
고대미를 가져와 밥을 지어 먹어봤더니 차지면서도 쫀득하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어요. 질감이 크리미하면서도 잘 퍼지지 않아 알단테 식감을 내기에도 좋겠다는 생각에 리소토를 만들어 보았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습니다. 그길로 한창본 농부를 만나러 전남 장흥으로 내려갔습니다.” 전라남도 해남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니 서울에서 제일 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곳을 수차례 오간 뒤, 그는 한창본 농부가 재배하는 고대미와 그 쌀겨를 먹고 자라는 유기 한우 ‘적토우’를 줄라이의 여러 메뉴로 탄생시켰다.
유기 재배해 안심할 수 있는 점도 좋았지만, 고대미는 일반 쌀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영양 성분을 담고 있다는 점이 그의 구미를 당긴 것. 대표 메뉴는 리소토로, 그밖에도 다양한 서양 요리에 우리 쌀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한창본 농부의 적토우를 레드 와인에 조린 찜에 고대미를 곁들인 요리는 소의 부산물을 퇴비로 활용하고, 탈곡한 쌀겨를 소에게 먹이는 순환 농법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유기농업을 이해할 수 있는 한 접시’라 하겠다.
우리나라 토종 벼를 복원하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고대미는 2천7백여 종이라고 합니다. 그중 많은 수가 일본으로 건너가 개량종으로 발전했지요. 영양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고시히카리도 우리 고대미를 개량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토종 쌀 품종을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게 농부의 한 사람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저라도 한번 재배해봐야겠구나 싶었지요.”
한창본 농부는 일본자연농법연구회를 통해 토종 쌀 종자를 구해다 작목반을 만들어 우리 쌀 복원 작업을 시작했다. 농약과 화학비료 일절 없이 농사를 지으려니 만만찮은 작업이었다. 일반 벼보다 키가 큰 고대미는 약한 바람에도 쉽게 쓰러지고 해충에도 취약했다. 물이 부족한 척박한 땅에서 잘 자란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실전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수확량은 이전 농사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데다 손은 곱절로 더 들었다.
고된 노력 끝에 한창본 농부가 재배한 고대미는 일반 쌀보다 항산화 작용과 혈액 정화와 혈당 조절을 돕는 폴리페놀이 풍부하고 아이의 성장 발육에도 도움이 되는 영양 만점 쌀이다. 고소하고 깊은 맛은 물론 윤기가 자르르 돌아 고대미만으로 밥을 짓거나 현미와 7:3 비율로 섞어 먹어도 좋다고. “고대미를 널리 알리는 것이 다음 목표입니다. 지금도 폐교를 구입해 체험관으로 쓰고 있지만, 접근성이 떨어져 읍내에 방앗간 자리를 구입해 ‘쌀 카페’도 열었어요. 고대미를 활용한 메뉴도 소개할 예정입니다. 햅쌀 맛을 보러 장흥에 꼭 한번 들러주세요.”
촬영 협조 줄라이(02-534-9544), 장흥고대미쌀가게(061-860-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