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만 맛볼 수 있어 더욱 귀하다
제철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사시사철 식재료가 넘쳐나는 시대에 살다 보니 오히려 딱 한 철에만 맛볼 수 있어서 더욱 특별하다. 과메기 이야기다. 최고 기온이 20℃ 아래로 떨어지는 11월부터 구룡포는 마치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활기가 넘친다. 이때부터 음력설까지가 한 해 중 가장 바쁜 시기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코 뜰 새 없이 꽁치를 손질해 말려 전국 각지 ‘과메기 계절’만 기다려온 이들의 식탁으로 보낸다. 한데 과메기를 언제 부터 이렇듯 즐겨 먹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자. 생긴 것 하나만 놓고 보면 수백 년은 된 한국인의 솔soul 푸드를 연상시키지만, 포항에 뿌리를 두지 않은 이들이 과메기를 즐겨 먹은 건 불과 십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
과메기라는 말은 관목청어貫目靑魚에서 시작했다. 꼬챙이로 청어의 눈을 뚫어 말렸다고 한 데서 유래한 말이다. 조선시대 문헌에도 그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데,조선시대에는 임금에게 진상하던 귀하디귀한 음식이었다. 그러다 1960년대 청어 어획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1970년대 이후부터 꽁치의 주산지이던 구룡포에서 청어를 대신해 꽁치를 널어 말려 과메기를 만들었고, 1990년대 중반 과메기가 구룡포의 특산물로 지정되며 꽁치가 과메기의 대명사가 되었다. 구룡포 과메기 협동조합이 구성되고, 2013년 15회째 개최한 구룡포 과메기 축제가 전국에 알려지면서 전 국민이 즐겨 먹는 대표적 겨울 식품이 되었다.
과메기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11년 되었다는 ‘최가네 구룡포 과메기’의 대표 최호등 씨는 구룡포에서 나고 자랐다. 평생 어업에 종사하던 그의 부모님이 1996년 과메기 덕장을 차리고, 일손이 부족해 대구에 나가 지내던 최호등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나흘 머물다 다시 대구로 돌아올 생각에 고향에 내려온 그가 지금은 ‘구룡포 과메기 청년 사업가’로 통한다. 하필 과메기가 인기를 얻고 있을 무렵부터 구룡포 앞바다에 흔하디 흔하던 꽁치가 저 멀리 쿠릴 열도 지역으로 옮겨갔다. 꽁치는 차가운 바다에 사는 어종인데,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올라가 동해보다 수온이 낮은 북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한 것. 2000년 이후부터는 원양산 꽁치가 동해산 꽁치를 대신해 과메기의 재료가 되었다. 덕분에(?) 일본발 세슘 걱정 없이 과메기를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모이는 곳
최호등 씨의 한 해는 9월에 시작한다. 원양어선에서 조업한 가을 꽁치가 들어오는 9월, 직접 부산으로 가 물량을 확보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꽁치는 사철 잡히지만, 꽁치의 지방 함유량이 높은 9~11월이 가장 맛이 좋다. 그는 이때 조업한 꽁치 중에서도 150g 이상 되는 ‘투 라지’ 등급의 꽁치만 들여온다. 매 해 그의 덕장으로 들여오는 꽁치 2톤을 고르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한 해 물량을 확보한 다음에는 구룡포 과메기 협동조합원이 모두 모여 ‘과메기 농사’ 일정을 계획한다. 11월에야 본격적으로 과메기 철에 접어들지만, 과메기 작업은 매해 10월10~20일 즈음부터 시작한다. 올해는 10월 20일에 꽁치를 널어 말리기 시작했다고. 미리 샘플링을 해보며 꽁치 상태와 날씨를 체크한다.
단골 몇몇은 이때부터 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첫 과메기를 맛보게 해달라고 조르기도 한단다.“구룡포는 백두대간을 넘어온 겨울철 북서풍이 영일만을 거치며 습기를 머금은 찬 바람이 부는 지역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모이는 데다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과메기가 꾸덕꾸덕하게 잘 마르지요. 과메기는 산바람과 바닷바람, 적당한 햇볕과 습기, 신선한 꽁치, 작업 기술이 한데 어우러져야 맛있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메기를 겨울에 먹을 수밖에 없는 건 꽁치에 제맛이 드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여름에는 햇볕이 강한 데다 건조해 과메기가 꼬들꼬들하게 마르기 전에 산패해버려요.
강렬하던 햇볕이 누그러지고, 건조하기만 하던 바람이 물기를 머금는 것도 그저 여름이 지나야 가능한 것이지요.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하며 매년 자연의 신비에 감탄해요. 참 신기하지 않나요?” 바람이 워낙 거센 탓에 모래나 먼지, 벌레가 거의 없기도 하지만 더욱 위생적인 환경을 마련하고자 지난여름에는 산바람과 바닷바람이 모이는 산 아래에 덕장을 새로 지었다. 낮에는 건물이 사방을 둘러싸도록 지어 바람은 모이고 먼지는 최소화했다. 덕장 마당에는 이동이 가능하도록 바퀴를 단 건조대 차를 만들어 햇볕이 이동하는 대로 수시로 차를 옮긴다. 쉴 새 없이 바람이 불어 사나흘이면 고동빛을 띠면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꾸덕한 과메기가 완성된다.
1 내장을 제거한 꽁치는 배를 갈라 바닷물에 두 번, 민물에 다시 한 번 세척한다. 이 과정을 거쳐야 짠내가 나지 않는다.
2 속살이 연한 꽁치에 바람과 햇볕이 닿으면 차츰차츰 붉은색을 띄다가 검은빛이 더해지며 꾸덕꾸덕 마른다.
제대로 말려 ‘골이 난’ 과메기
전날 밤 냉동 창고에서 꺼내 처마 밑에 내놓은 꽁치는 새벽 5시부터 손질 작업을 시작한다. 밤이면 날씨가 뚝 떨어지니 새벽에 덕장에 돌아와도 녹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일반적으로 영하 18~20℃로 보관하는 데 반해, 그는 냉동 창고를 영하 30℃로 맞춘다. 육질을 더욱 탄탄하고 쫄깃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억지로 해동시키거나 완전히 녹은 후 작업하면 살이 흐물거리고 핏내가 나 밤새 실온에 꺼내두었다 쓰는데, 아직 단단한 꽁치의 대가리를 제거하고 머리부터 꼬리 쪽으로 반 갈라 내장과 뼈를 제거한 뒤 세척한다. 바닷물에 두 번 씻고 민물에 한 번 더 세척한다. 바닷물에만 씻으면 짠내가 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손질을 끝내면 이제 건조대에 가지런히 널어 앞마당으로 옮긴다. 그러면 나머지는 자연이 알아서 한다. 꽁치의 속살에 찬 바람이 스치고 따뜻한 햇살이 비추면 차츰 불그스름해지다 고동빛으로 변한다. 자연에 널어 제대로 말린 것은 속살 안쪽에 좁은 홈이 생긴다.
이를 ‘골이 난다’고 표현하는데, 건조기에 넣어 인공적으로 말리면 홈이 생기지 않는다. “내장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말리는 ‘통마리’는 얼었다 녹았다 해야 제맛이 든다지만, 배를 갈라 만드는 편과메기인 ‘배지기’는 얼면 안 돼요. 살에 탄력이 없어 맛이 떨어집니다. 통마리는 좋은 짚을 구해 몸통 가운데를 짚으로 엮어 한 달 가까이 말려야 하는데, 지구온난화 탓에 이제는 통마리 만들기에 적합한 날씨도 아닐뿐더러 소비자 입맛도 변해 찾는 이도 거의 없어요. 올해부터는 통마리 작업은 하지 않고, 배지기만 만듭니다. 전통 방식이 없어지니 아쉽기는 하지만, 어쩌겠어요. 이제 제대로 꽁치를 엮을 줄 아는 기술자도 거의 없고, 그 맛을 즐기는 이도 없으니 시대의 변화에 따라야지요.”사나흘이 지나 완성된 과메기는 은회색빛 껍질을 벗겨내 손질 과메기로 포장해 소비자에게 팔려 나간다. 껍질을 손질하지 않은 것은 대부분 식당이나 도매상에게 전해진다.
최 대표는 처음 과메기 사업을 시작한 1996년부터 매일 자정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가 노량진 수산시장, 가락시장을 발로 뛰며 찾은 거래처에 꾸준히 과메기를 납품해오고 있는데, 이는 그가 만든 과메기의 맛도 맛이려니와 ‘사람 좋은’ 그의 호탕한 성품 때문이기도 하다. 여름이면 일본의 수산 시장이나 농수산물 박람회도 찾아보고, 수십 권의 마케팅 관련 서적도 독파한단다. 구룡포 에 과메기 덕장만도 수백에 이르니 과메기 품질 말고도 남다른 브랜딩 전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최호등 씨 덕장에서 한나절을 머무는 동안 그는 한시도 앉아 있는 법이 없었다. 꽁치를 옮기고, 과메기 건조대 차를 끌고 다니다 포장한 과메기를 배달하는 일까지 도맡아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는 것도 그의 몫이다. 체력 관리의 비법을 물으니 ‘과메기’라는 현답이 돌아온다. 고추장과 간장을 함께 섞어 과메기에 발라 구워 소주 한잔 곁들이는 것이 그에게는 최고의 만찬이란다. 비릿하면서 고소한 그 맛이 떠올라 절로 식욕이 동한다.
3 아버지가 운영하던 덕장을 물려받아 올해로 11년째 과메기를 만드는 최호등 씨.
4 손질한 과메기에 쌈 채소와 김, 다시마, 마늘, 쪽파 등 곁들이 채소를 함께 구성해 가정용 과메기 세트도 판매한다.
- 최가네 구룡포 과메기 겨울바람이 완성한 백미白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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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생김새가 호랑이를 닮았다면, 포항은 호랑이 꼬리쯤 되겠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차디찬 바닷바람에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해마다 첫 일출을 보려고 수십만 인파가 몰려드는 이곳과 제일 잘 어울리는 계절을 꼽으라면 단연 겨울이다. 첫 일출만큼 미식가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겨울의 백미 과메기도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말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4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