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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맛있다 제주의 맛
과거에 제주는 물과 가뭄, 바람에 시달리는 삼재三災의 섬이었다. “돼지 한 마리 잡는 데 물 한 허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척박한 환경 탓에 제주 아낙들은 아끼고 아껴서 꼭 먹을 만큼만 음식을 만들었다. 투박하고 서민적이지만 자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제주 음식, 전통식 vs 현대식으로 소개한다.


(왼쪽) 해녀의 도시락
바다는 제주 해녀들의 밭이다. 해녀들은 집 안 텃밭을 들여다보듯 바다의 속사정에 훤하지만 크게 욕심부리지 않는다. “칠성판을 등에다 지고, 혼백상자를 머리에 이고” 바다에 들어간다고 할 만큼 고되고 위험하기 때문에 해녀들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간다. 끼니를 때우는 도시락도 단출하다. 조리법이 단순하고 양념도 최소량만 해 재료 본연의 맛을 최대한 살린다. 특히 된장을 많이 사용하는데, 특이하게도 제주에서는 날된장 자체를 하나의 요리로 즐길 만큼 밥상이나 도시락에서 빠지지 않는다. 반면 다른 지역과 달리 나물류와 저장 음식은 다양하지가 않다. 기온이 높은 탓에 김치나 젓갈, 장아찌 등 발효 음식이 빨리 시기 때문이다. 예외적으로 자리젓과 멜젓(멸치젓)이 단백질을 공급하는 원천이었다.
톳밥, 자리젓, 된장, 양하(양애)장아찌, 쌈 채소 등으로 단출하게 차린 건강식.

(오른쪽) 바다의 섬
제주 출신의 문충성 시인은 시집 <제주 바다>에서 “제주 사람이 아니고는 진짜 제주 바다를 알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하지만 해녀 이모(아주머니, 언니의 제주 방언)들이 제주의 바다에서 당일 잡은 것이라 하여 ‘당일바리’라 하는 해산물과 해조류는 계절마다 바뀌는 제주의 진한 바다 맛을 제대로 느끼게 해준다.
제주 바다를 담은 해초비빔밥
전복(100g)은 솔로 문질러 깨끗이 씻은 후 1시간 동안 찌고, 돌문어(100g)는 소금으로 문질러 씻은 후 끓는 물에 보라무(80g)와 함께 40분간 삶아 먹기 좋게 썬다. 성게알(100g)은 살짝 데쳐 물기를 없애고, 생미역(80g)과 모자반(80g), 톳(80g), 다시마(80g) 등 해초는 먹기 좋게 손질해 다진 마늘(4큰술)과 소금으로 밑간한 후 달군 팬에 기름을 둘러 볶는다. 우묵(40g)은 채 썰고 돌나물은 다듬는다. 그릇에 밥을 담고 손질한 재료를 보기 좋게 올려 담는다. 물고기가 그려진 접시와 볼은 제주요 제품.



(왼쪽) 모진 땅의 섬
바다가 거친 만큼 제주의 땅도 척박하고 모질다. 토양이 푸석하고 거칠어 농사를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논이 적어 밭에서 수확한 잡곡이 주식이나 다름없다. 메밀은 제주도의 대표 잡곡으로, 재배 기간이 1백 일을 넘지 않고 가뭄에 강하며 높이가 1m도 되지 않으니 바람이 거세고 메마른 제주 땅에서 자라기 적합하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는 강인한 속성이 제주 사람들의 삶을 닮았다.
토속적으로 만든 빙떡
빙떡은 메밀가루에 물을 섞어 장시간 치대야 찰기가 생긴다. 옛날에는 달군 무쇠 솥뚜껑에 돼지비계 기름을 두른 뒤 메밀 반죽을 얇게 부친 다음 삶은 무, 당근 등을 소로 넣어 돌돌 말아 양쪽을 꾹 눌러 만들었다.


(오른쪽) 거친 땅을 이겨낸 제주의 솔 푸드, 빙떡
메밀은 쌀이 귀한 제주에서 쌀을 대신해 떡을 만드는 재료로도 많이 활용했는데, 그 가운데 한 가지가 바로 빙떡이다. 빙떡은 슴슴한 맛이 매력으로 처음에는 그 맛을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하지만 빙떡에 자반 생선을 곁들여 맛을 보면 처음 먹어본 이들도 십중팔구 반한다. 특히 잘 말린 옥돔을 구워 그 쫄깃한 살코기 한 점을 빙떡 위에 얹어서 한 입 베어 물면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옥돔구이를 곁들인 빙떡말이
메밀가루(8큰술)는 물에 풀어 반죽한 뒤 고운체에 걸러 달군 팬에 전병을 부친다. 무(500g)는 곱게 채 썰어 엷은 소금물에 살짝 절이고, 생옥돔(250g)은 살을 포 떠서 가시를 제거하고 1×2cm 크기로 썬 후 팬에 굽는다. 숨이 살짝 죽은 무를 물에 한 번 헹군 뒤 다진 파(1작은술)와 다진 마늘(1작은술)을 넣고 볶은 다음 식혀 메밀전병으로 돌돌 만다. 3~4cm 길이로 썰어 구운 옥돔과 같이 낸다. 꽃을 모티프로 한 접시와 흑자류는 모두 제주요 제품.



(왼쪽) 곶자왈의 섬
신비의 숲, 곶자왈은 ‘덩굴과 나무, 암석 등이 뒤섞여 숲을 이룬 곳’을 가리키는 제주 방언으로, 오름과 연결되어 한라산까지 이어지는 제주도의 허파다. 마치 빗물을 빨아들이는 거대한 스펀지 같다. 어수선한 숲이지만 한 줌의 흙이 쌓인 돌 틈에서 용케 강인한 뿌리를 내린 한라산 먹고사리와 왕에게 진상하던 초기(표고버섯의 제주 방언)도 이곳에서 난다.
전통 영양식 초기죽과 간단한 차례 음식 느르미전
쌀에 표고버섯을 넣고 끓인 초기죽. 실파와 고사리를 반 줌씩 늘어놓고 달걀물로 지져낸 느르미전은 제주의 전통 ‘전’ 중 하나다.


(오른쪽) 숲 속 표고버섯과 한라산 먹고사리
버섯은 자연과 환경 보전 상태의 정도를 알아보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제주도에서 자생하는 버섯이 약 7백 종에 이르는데, 한라산의 특산물인 표고버섯 중에서 최고의 상품은 ‘백화고’라고 부른다. 겨우내 움츠려 있다 천천히 자라 이른 봄에만 생산된다. 형상은 그 육질이 두꺼우며 갓 모양이 거북 등처럼 갈라져 있으며 색상은 흰 부분이 많다. 즉 추위를 견딘 버섯이 더 차지고 상품 가치가 높다는 것. 한라산 먹고사리는 굵으면서도 중심이 비어 있어 보기와 달리 굉장히 부드럽고 씹히는 식감이 매우 좋을 뿐만 아니라 특유의 독특한 향이 있다. 그래서 고사리는 제주의 봄나물, 제주의 산나물로 제주의 독특한 자연환경이 만들어낸 최상의 자연식품이 될 수 있었다.
표고버섯과 고사리의 환상 궁합, 흑돼지 오겹살볶음
흑돼지 오겹살(400g)은 3×4cm 크기로 썬 뒤 팬에 노릇하게 볶으면서 간장소스로 간한다. 고사리(50g)와 숙주나물(100g)은 깨끗이 손질하고, 표고버섯(50g)은 1cm 두께로 썰고, 아스파라거스(4대)는 껍질을 제거한 뒤 7~8cm 길이로 썬다. 팬에 손질한 채소를 모두 넣고 볶다가 간장소스로 간한 후 볶은 오겹살을 넣어 함께 볶는다. 흑자 접시는 제주요 제품.



(왼쪽) 제주 서민의 건강식, 낭푼 밥상
제주의 전통적 상차림은 독특하다. 찬마루나 찬방 바닥에 밥상을 차리고 나무나 유기로 된 큰 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 상 한가운데 놓고 가족 수대로 국과 수저를 놓은 후 빙 둘러앉아 함께 밥을 떠먹었다. 이때 밥을 담은 그릇의 이름을 따서 ‘낭푼 밥상’이라 부른다. 낭푼은 ‘양푼’의 제주 방언으로, 양푼은 ‘음식을 담거나 데우는 데 쓰는 놋그릇’을 가리키지만, 대개는 나무 바가지인 ‘남박’을 사용했다. 제주 여인들은 쉴 새 없이 일에 쫓겨 살아야 했기에 끼니마다 아낙네들이 물질을 나가고 없더라도 남은 식구들이 국만 떠서 식사를 해결할 수 있게 한 것. 여름엔 보리, 겨울엔 조·메밀·콩 등을 많이 넣어 반지기밥을 하고, 보릿고개엔 고구마ㆍ 감자 등을 섞기도 했다. 잡곡 위주의 ‘거친 밥상’이다 보니 국은 필수로 빠지지 않았다. 여기에 반찬 수가 적어 보기에는 초라할 수 있지만 싱싱한 제철 해산물과 우영팟(텃밭)에서 캔 신선한 채소를 곁들인다. 조리법이 간단하고 양념을 과하게 사용하지 않아 재료가 지닌 고유한 맛을 살리니, 건강을 지키는 데는 제주 음식만 한 것이 없다.
봄철의 전통 낭푼 밥상
주식인 보리가 모자라는 보릿고개를 무사히 넘기게 해준 ‘차조고구마밥’은 별미로도 좋다. 제주의 대표적 생선조림인 ‘우럭콩조림’은 간장으로 조리면서 콩을 첨가하는데, 주재료와 조리법 모두 그야말로 제주식이다. 여기에 콩국, 유채나물, 마농지 장아찌, 자리젓, 된장, 바닷물로 절인 제주식 김치, 쌈 채소(배추, 쪽파)를 곁들였다.


(오른쪽) 우영팟의 섬
제주도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돌이 많은 화산토의 척박한 농업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영팟(텃밭)을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우영팟에서는 채소류만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귤나무, 갈옷을 위한 감나무, 죽제품을 위한 대나무도 심었다. 그래서 제주 사람들은 우영팟에서 힘을 기른다고 한다. 바다를 식량 창고로 두고, 우영팟에서 거둔 신선한 채소를 늘 낭푼 밥상에 올린 것이 제주 사람들의 건강 비결로, 제주도가 장수의 섬인 이유다.
현대적으로 차린 낭푼 밥상
보리콩밥, 갈치속젓, 산삼장아찌, 흑돼지구이, 전복조림으로 구성했다. 이 중 별미인 전복조림은 솔로 깨끗이 손질한 전복(4마리)에 칼집을 내 1시간 정도 찐다. 조림소스(간장·맛술 1큰술씩, 물엿 1작은술, 고추장·다진 마늘 1/2작은술씩, 물 1컵)를 만든 후 전분물로 농도를 맞춘 다음 전복 찐 것에 넣고 조린다. 그릇은 모두 제주요 제품.


어시스턴트 윤호준 요리&도움말 김지순(제주 향토 음식 명인, 김지순요리제과전문학원 원장), 이동훈(제주신라 호텔 ‘천지’ 주방장) 그릇 협조 제주요(064-748-0121)

진행 신민주 기자 | 사진 김정한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2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