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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특집_소박한정원]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박홍규 교수 방만하고 잡다한 지식인의 정원
휴대전화도 자동차도 없는 자연인, 자연을 벗 삼아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교수님, 방만하고 잡다하게 학문을 연구하는 지식인이자 소박한 자유 정원을 꿈꾸는 아나키스트. 영남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 중인 박홍규 씨는 법학자이지만 예술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다양한 분야의 평전과 역서를 펴낸 인물이다. 한살림 운동이 시작되던 1990년대 초반, 생태와 먹을거리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시골로 내려가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수풀이 무성하고 벌과 곤충이 왱왱대는 그의 ‘방만하고 어지러운 정원’에서 자연을 가꾸는 일의 의미를 되새겨보았다.

제 연구실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저는 정리가 잘 안 되는 사람입니다. 좋게 말하면 자유롭고 나쁘게 말하면 방만하고 잡스러우며 어지러운 사람이죠. 제가 하는 학문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부분의 학자가 일관된 의식으로 평생 한 가지 주제만을 다루죠. 가령 역사학자가 특정 시대의 제도사나 정치사, 경제사를 다루면서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내고, 그것을 학문이라고 부릅니다. 한 우물을 파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는 그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19세기만 하더라도 철학자나 지식인이 세상의 모든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발언했습니다. 르네상스인 혹은 전인全人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죠. 저는 그런 사람들이 좋습니다. 방만하고 잡스러운 얘기들이 저한테는 아주 일목요연하게 다가옵니다.

제가 책을 통해 소개하는 사람 중에도 그런 이가 많습니다. 루이스 멈퍼드(1895~1990년) 같은 사람이 대표적이죠. 그는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평생 어떤 학위를 받은 적도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가 한 우물만 판 학자들보다 지식이 얕다고 할 순 없습니다. 오히려 더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공부한 사람이죠. 역사, 문학, 사상, 예술, 건축, 도시학을 망라한 아나키스트로, 때로는 도시학자, 역사학자, 문예 비평가로 제 역할을 하다 간 사람입니다. 자유와 자치, 자연을 존중하고 삶의 본질에 관해 연구하면서 말입니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흘러갔습니다만, 정원이라는 것, 아니 정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저는 싫어합니다. 그럼 뭐가 좋을까요? ‘뜰’ 정도가 가장 적합할 듯합니다. 아무튼 그런 것에 관해 이야기하려다 보니 서두가 길어졌지요.

(왼쪽) 박홍규 교수는 자전거로 출퇴근한다. 학교까지 40분 정도가 걸린다고.

아마 오늘 저희 집에 와서 좀 놀랐을 겁니다. <행복>에서 원하는 정원을 갖춘 집은 아니죠. 화려하거나 관리가 잘되어 있거나. 그런데 이게 바로 제가 정원을 가꾸는 방식입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하나도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제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지요. 한때 외국의 정원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중국의 정원을 다 가봤죠. 나무들 딱딱 줄 세우고 같은 모양으로 머리를 ‘이발’시키고, 너무 인위적이에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의 정원은 권위주의의 상징이죠. 정원을 ‘꾸미기’ 위해 수십 명의 정원사를 동원하고 왕은 그걸 내려다보고 있죠. 제 눈에는 그것이 아름답기보다는 고통스러워 보입니다. ‘행복’이 있는 정원이 아니라 ‘불행’이 있는 정원이죠. 제일 좋은 정원은 가난한 일반 백성들이 자신의 집 근처에 몇 평 안 되는 마당을 가지고, 채송화도 심고 봉숭아도 심고 그걸 틈나는 대로 가꾸는 재미를 즐기는 곳입니다. 조그만 텃밭이 있어서 열심히 가꾼 채소를 수확해 먹을 수 있다면 더 이상적일 테고요.

제가 이 집에 산 지 14년 정도 됩니다. 1990년대 초반, 한살림 운동이 막 시작되던 즈음이었죠. 농촌이 산업화되고 유기농업이 발달하면서 생명과 생태에 대한 가치를 보존하자는 목소리를 높던 때죠. 하지만 결과적으로 유기 농작물을 먹는 사람들은 극히 제한적이었어요. 비싸니까요. 생태 운동을 위해 유기 농법을 지원했더니 결국 계급화된 사회를 초래한 꼴이되었죠. 대부분의 노동자는 유기 농작물을 못 사 먹는데, 진보적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말로는 평등을 외치면서 비싼 유기 농작물을 먹고 있던 거죠. 그런 모순이 너무 혐오스러웠어요.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까 생각하다 자급자족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죠.

(오른쪽) 털털한 남편과 꼼꼼한 아내가 꾸민 정원은 소박하고 자연스럽다.

단순히 개인적 문제에서 벗어나 동료나 학생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서울의 아파트에 살면서 농촌 걱정하지 말고 진짜 농촌이 걱정되면 농촌에 와서 농사지어라.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12년 전 시골에 내려와 이 집으로 이사를 했고, 근처에 밭도 조금 샀습니다. 딸아이가 시집가서 지금은 아내와 둘이 사는데, 이 집이 약 20평 정도 됩니다. 주택기구가 발표한 1인당 평균 생활 공간인 4평을 기준으로 한다면 좀 큰 편이죠. 밭은 6백 평입니다. 우리나라 국토 면적이 22만km2인데, 그걸 7천만으로 나누니까 1인당 3백 평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아내와 제 몫으로 6백 평을 산 것입니다. 그렇게 농사를 짓게 된 거죠.


1 달걀도 자급자족.
2 들꽃을 보기 위해 이 부부는 정원을 가꾼다.

3 탐스럽게 열린 복숭아는 맛도 최고.
4 비 온 뒤 마당 풍경.


정원의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저희 집 마당에는 큰 감나무 한 그루가 있고 튤립도 있습니다. 사실 저희한테 더 큰 의미는 6백 평 밭을 가꾸는 일입니다. 유기농으로 짓다 보니 거의 ‘반타작 농사’죠. 유기 농법이라는 게 제초제 안 뿌리고 비료 안 치고 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 아닙니까. 자연에다 씨를 뿌려서 농작물을 키운다는 건데, 이게 잡초와의 전쟁입니다. 열심히 잡초를 뽑지만 한계가 있죠. 농사를 지어본 사람만 압니다. 뭐, 더 이상 생태 문제를 설명하는 건 의미가 없을 테고, 결국 이것이 자기 문제로 귀착되어야 소용이 있겠지요.

먹는 문제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의미에서 유기농, 자연농, 청정농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세상입니다. 도시의 큰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에서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식품이 어디 제대로 된 것이겠습니까? 결국 생명의 문제, 생태의 문제, 자연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정원 문화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자기 직장과 가까운 지역을 선택해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식물이나 농작물을 가꾸는 것, 그것을 정원이라고 불러도, 뜰이나 텃밭이라고 해도 상관없죠. 단 한평이라도 나만의 소박한 자유 정원을 갖는 것, 그렇게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중요할 뿐입니다.

구술 박횽규 정리 정세영 기자 사진 임민철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1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