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드 가든은 채굴이 끝난 석회석 광산에 꾸며진 정원이다. 황폐한 채석장의 환경을 그대로 활용해 아름답게 변모시켰다. 정원 뒤쪽으로 공장 굴뚝이 보인다.
꽃과 늦바람난 남자 나이 마흔을 불혹이라 했던가? 자신의 얼굴에 책임질 나이, 어떤 것에도 의혹되지 않고 살아가야 할 나이가 바로 마흔이다. 그러나 공자의 이 말씀을 뒤집어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혹惑할 수 있는’, 그러니까 쉽게 현혹될 수 있는 나이이므로 정신 차리고 살라는 뜻 같기도 하다. 나는 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이제까지 쌓은 것을 더 다지고, 조금만 더 참고 가면 보다 평탄할 길이 열릴 수 있는 나이에 ‘이민’이라는 미혹에 빠져버렸다.
서울 생활 20년, 종로와 광화문 통에서 보낸 직장 생활 12년. 아스팔트 길을 걸어 출퇴근을 하고 빌딩 숲에 들어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심신의 ‘파워 게이지’는 방전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이민을 결행하기 전, 아내와 작은아들을 이곳 캐나다 빅토리아에 사전 답사 겸 둘러보고 오라고 한 달 정도 보냈다.
나를 가장 혹하게 했던 것은 “여기는 수돗물을 그냥 마시고 비가 와도 사람들이 그냥 다 맞고 다녀”라는 아내의 말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사방이 초록빛이라 눈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라는 말은 결정타와도 같았다. 안정된 직업이나 보장된 수입원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막연히 자연과 좀 더 가까이 지내고 싶은 마음이 앞서 짐을 쌌다.
이민자 상담센터에서 “정원사든 어부든,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든 좋겠다”고 했더니 부차드 가든Butchart Gardens을 소개해줬다. ‘열심히 하겠다’ ‘잘 할 수 있다’는 의욕만으로 덤벼든 면접에서 다행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 뒤 나는 정원사라는 직함을 달고 꽃과 나무와 소통하며 새들과 벌, 나비와 동무가 되어 4년째 지내고 있다. 그사이 우리 집 정원은 부상당한 화초들의 대피소로 변해버렸다.
(왼쪽) 색의 향연이 펼쳐진 봄 정원.
(오른쪽) 나무와 관목, 잔디와 꽃이 핀 화단이 조화롭다.
정원을 개인적으로 돌봐주는 집에서 죽어가는 진달래와 목련을 버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아직 반쯤은 살아 있는 이들을 차마 버리지 못하고 집에 가져와 죽은 가지를 잘라 좋은 거름흙에 물을 준 뒤 화단 한쪽에 심어두었다. 해가 지날수록 새로운 가지도 생겨나고 건강한 잎새를 틔우더니 올봄에는 예쁜 꽃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대신 건넸다. 부차드 가든에서 데려온 친구들도 더러 있다. 다년생 화초를 포기나누기할 때 생기는 몇 가닥의 뿌리들, 다년생이지만 일년생으로 취급당해 어쩔 수 없이 퇴비청으로 실려가야 하는 꽃들이 내 단골이다. 로벨리아, 꿩의 비름, 투구꽃, 플록스 등등. 이들을 퇴근길에 가져와 우리 집 화단에 심었다. 안 그래도 좁아서 미어터지는 곳에 군식구가 생겼다고 불평하는 토박이 꽃들의 아우성이 들리는 듯하지만 나는 조금만 자리를 양보하라며 들고 온 꽃들을 기어이 심고 만다. 오죽하면 내 상사가 “너의 집 정원을 부차드 가든으로 만들 셈이냐?”고 말할 정도다. 그래도 난 여전히 숨이 붙어 있는 꽃이나 나무가 날 바라보는 모습이 애처로워 집으로 데려오는 일을 멈추지 못하고 있다. 그래야 마음이 놓이고 행복해지니, 늦바람이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바람난 내가 일하는 부차드 가든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아직도 시멘트 공장의 굴뚝이 역사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고 석회석이나 진흙을 실어 나르던 무개화차無蓋貨車는 예쁜 꽃들을 품고 있는 커다란 화분으로 변신했다. 그런가 하면, 설립자 제니 부차드 여사가 1920년대 중반부터 씨앗을 구해 심기 시작했던 블루 포피Blue Poppy, 텃밭에 심었던 스위트 피Sweet Pea는 오늘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정원이 나에게 더 값져 보이는 것은 광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모았던 부차드 부부가 다시 그 돈을 투자해서 1백 년이 지나도 1천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을 유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줬다는 데 있다. 막 개발이 시작됐던 신대륙의 산자락 하나를 헐어 돈을 챙기고 훌쩍 떠나버렸으면 그만이었을 텐데 말이다. 게다가 지금도 그들의 증손녀 클라크Clarke 여사가 이 정원을 소유하고 또 가꾸고 있으니 이젠 3대째 내려오는 가업이 된 셈이다. 부차드 가든으로 들어오는 길의 이름은 벤베누토Benvenuto. 이탈리아 말로 ‘환영합니다’라는 말로 부차드 부부가 직접 붙인 이름이다. 오늘도 이 길을 따라 세계 각지에서 친구끼리, 가족끼리 또는 연인들이 이 정원을 찾아오고 있다.
(왼쪽) 철갑상어 조각들을 이용한 분수.
채석장 터에 꾸며진 정원 내가 일하고 있는 선큰 가든Sunken Garden은 부차드 가든의 심장이다. 채굴이 끝난 석회석 광산에 꾸며진 정원이다 보니 움푹 패인 큰 구덩이처럼 보인다. 이 구덩이 속에 크고 작은 나무들과 화단을 꽉 채운 아름다운 색의 향연이 펼쳐진다. 무심결에 이 정원 입구에 들어선 이들은 잠시 숨을 죽인다. 상상의 범위를 넘어선 엄청난 비경에 순간 말을 잊는 것이다. 곧이어 쏟아지는 탄성 소리. 유럽에서 온 사람들이든, 아시아나 호주에서 온 사람들이든, 가까운 미국에서 건너온 이들이든 내뱉는 소리는 비슷하다. 만국 공통어인 감탄사 ‘와!’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이 탄성을 자아내는 모습을 먼발치에서 가끔씩 올려다보며 나는 여전히 바쁜 일손을 놀린다. 정원 입구에서 계단을 타고 내려온 관람객들은 이번엔 일하고 있는 정원사들에게 이런저런 말을 붙인다. “당신들은 천국에서 일을 하고 있네요” 같은 부러움 섞인 말부터 “이곳에서 정원사로 일하려면 돈을 얼마나 기부하면 되죠?”라는 시샘 섞인 농담까지 다양하다.
내가 선큰 가든을 처음 봤을 때도 이들 관람객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곳이 정말 채석장이었나 싶을 정도로 황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며 하나씩 발견해낸 이 정원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황폐한 채석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활용해 보석처럼 다듬어 놓은 것에 있었다. 잘려 나간 산허리의 깎아지른 절벽에는 폭포가 자리 잡았고, 깊이 패인 곳은 수련이 피어나고 버드나무가 긴 줄기를 드리우는 멋진 호수가 됐다. 그런가 하면, 철광석이 너무 많이 함유돼 채굴을 포기하고 버려졌던 바위산은 선큰 가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대로 탈바꿈했다. 진흙을 채굴했던 질척한 터에는 습지 정원이 들어섰고, 바닷가와 가까운 채굴 터는 화려한 물줄기가 하늘로 치솟는 분수로 변신했다.
조망대로 오르는 관광객들.
세계적 정원이자 캐나다 정부가 지정한 역사 유적인 부차드 가든. 이 정원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움의 원천이 나무와 꽃들,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서 비롯됨을 발견할 수 있다. 자생종인 미송, 삼나무,아르부투스 같은 아름드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벚나무, 단풍나무, 포플러가 사람의 손으로 심어졌다. 이 나무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철쭉, 수국, 마취목 같은 아담한 크기의 관목들이 조성된 화단의 뒷자리에 들어서 있다. 이들 속에서 봄에는 튤립, 수선화, 데이지가, 여름에는 해바라기, 달리아, 금잔화, 베고니아 같은 화려한 색의 주인공들이 자리를 잡는다.
여기에 살짝 가미된 인공물들도 정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선큰 가든에 있는 두 개의 인공 폭포, 달팽이나 철갑상어 조각인 말부터 “이곳에서 정원사로 일하려면 돈을 얼마나 기부하면 되죠?”라는 시샘 섞인 농담까지 다양하다.
내가 선큰 가든을 처음 봤을 때도 이들 관람객들과 다르지 않았다. 이곳이 정말 채석장이었나 싶을 정도로 황홀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일하며 하나씩 발견해낸 이 정원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황폐한 채석장의 모습을 고스란히 활용해 보석처럼 다듬어 놓은 것에 있었다. 잘려 나간 산허리의 깎아지른 절벽에는 폭포가 자리 잡았고, 깊이 패인 곳은 수련이 피어나고 버드나무가 긴 줄기를 드리우는 멋진 호수가 됐다. 그런가 하면, 철광석이 너무 많이 함유돼 채굴을 포기하고 버려졌던 바위산은 선큰 가든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조망대로 탈바꿈했다. 진흙을 채굴했던 질척한 터에는 습지 정원이 들어섰고, 바닷가와 가까운 채굴 터는 화려한 물줄기가 하늘로 치솟는 분수로 변신했다. 세계적 정원이자 캐나다 정부가 지정한 역사 유적인 부차드 가든.
(왼쪽) 이탈리아 정원.
(오른쪽) 유달리 색깔이 유혹적인 부차드 가든의 장미.
이 정원을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그 아름다움의 원천이 나무와 꽃들, 자연과 인공의 조화에서 비롯됨을 발견할 수 있다. 자생종인 미송, 삼나무,아르부투스 같은 아름드리를 병풍처럼 두르고 벚나무, 단풍나무, 포플러가 사람의 손으로 심어졌다. 이 나무들을 든든한 배경으로 철쭉, 수국, 마취목 같은 아담한 크기의 관
목들이 조성된 화단의 뒷자리에 들어서 있다. 이들 속에서 봄에는 튤립, 수선화, 데이지가, 여름에는 해바라기, 달리아, 금잔화, 베고니아 같은 화려한 색의 주인공들이 자리를 잡는다.
여기에 살짝 가미된 인공물들도 정원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선큰 가든에 있는 두 개의 인공 폭포, 달팽이나 철갑상어 조각들을 이용한 크고 작은 분수,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연못은 마치 대자연에 기대어 서 있는 소품처럼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며 정원의 운치를 더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황폐한 채석장 터로 버려졌을 이곳이 1백여 년이 지난 지금은 연간 1백만 명 가까운 관람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인간을 위한 개발과 건설이라는 명분으로 잘려나간 산허리가 다시 사람들의 손에 의해 더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공간이 된 셈이다.
나를 꿈꾸게 하는 정원 “굿 모닝, 마이클!” “굿 모닝, 상현!” 오늘도 어김없이 한 손에 지팡이를 든 마이클이 아침 인사를 건넨다. 관람객들을 위해 부차드 가든이 문을 여는 시간은 아침 9시. 이 시각 즈음이면 정원의 잠을 깨우는 알람 시계처럼 그가 나타난다. 여든셋이라고 하기엔 매우 정정한 모습이다. 올해로 벌써 8년째, 그는 아침마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이곳을 산책하고 있다. 을씨년스럽게 내리는 초겨울의 가랑비도, 거세게 불어오는 섬 지역 특유의 바람도 이른 아침마다 정원을 산책하는 그의 발걸음을 막지 못한다. 때때로 부인과 함께 오순도순 정원을 돌아보기도 한다. 공군 전투기 비행사로 30년을 근무한 마이클은 은퇴한 뒤 크고 작은 병을 훈장처럼 달고 살았다. 특히 비행사의 직업병이라고 할 수 있는 무릎 관절염과 허리 통증에 시달릴 뿐 아니라 소화가 잘 안되고 때때로 잠을 쉽게 이룰 수도 없었다. 부차드 가든까지 자동차로 10여분 거리에 있는 동네로 이사를 온 뒤 그는 연간 회원권을 사서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그리고 조금씩 건강을 되찾아가고 있다. “산책을 시작한 초기엔 숨도 차고 다리도 아파서 정원의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힘이 들었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 이렇게 정원을 좋아하는 마이클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
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빈센트 반 고흐가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 그에게 편안한 휴식을 주고 나아가 예술가의 길로 이끌어주었던 공간도 바로 정원이다. 전업 작가 시절 고흐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정원이 나를 꿈꾸게 합니다”라고 했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삶이 다른 데가 아닌 정원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그다지 슬프지 않다”고 했다. 이 같은 고백처럼 그는 정원에서 화가로서의 영감을 얻었고 상처 난 영혼에 위로를 받았다. 또 정원은 육신의 기운을 새롭게 회복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해바라기>나 1987년 소더비 경매에서 약 60억 원에 낙찰된 <아이리스>도 그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잉태된 작품들이다.
건축 분야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건축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수상자인 피터 줌토르Peter Zumthor는 “건축의 배경을 생각할 때 항상 정원을 먼저 상상한다. 정원은 마술과 같은 장소다”라고 했다. 그에게 건축물이란 그 정원 속에 살포시 얹는 최소한의 인공물인 셈이다. 그의 정원에 대한 찬미는 이렇게 이어진다. “젊었을 때는 자연을 당연하게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풀과 꽃을 보며 내가 자연의 일부임을 깊이 깨닫고 있다.” 자연 속에서 인간이 그 일부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설계하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당연히 그의 설계 속에선 건축물이 주인공이 아니라 꽃과 햇빛으로 채워진 정원이 주인공이다.
누군가에게 ‘굿 모닝’을 선물하는 공간, 누군가를 꿈꾸게 하는 공간, 상처 난 영혼을 위로하는 공간, 그리고 불혹의 남자를 바람나게 하는 공간. 나는 독자 여러분들이 한 번쯤은 이 정원이라는 미혹에 빠져보길 ‘강추’한다. 자연과 소통할 수 있는 주파수를 찾아나가고, 그러는 사이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자연으로부터 왔음을 조금씩 알아간다면 당신은 이미 훌륭한 정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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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차드 가든 정원 부문 본부장이 추천하는 세계의 정원 5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정원은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볼 수 있었던 곳에 한정된 것이다. 아직까지 내가 가보지 못한 수많은 정원이 있으니 아직 이 목록은 완성된 것이 아니며 가까운 장래에 바뀔 수 있다. 소개는 알파벳순으로 하겠다.
1 쾨켄호프 정원. ⒸKeukenhof Garden.
2 챈티클리어 정원. ⒸChanticleer Garden.
3 아다치 미술관 정원. ⒸAdachi Museum of Art.
4 시싱허스트 성의 정원. ©National Trust
아다치 미술관의 정원(Adachi Museum of Art), 일본 시네마
교토는 전형적인 일본식 정원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 정원은 교토가 아닌 곳, 시네마 현에 의심할 여지없이 홀로 우뚝 선 정원이다. 관리와 유지 측면에서 꼼꼼하기 그지없고 당신의 넋을 빼놓을 정도로 뛰어난 예술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곳이다.
챈티클리어 정원(Chanticleer Garden), 미국 펜실베니아
자신들 스스로를 ‘기쁨이 넘치는 정원’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정원 애호가들에게 기쁨을 만끽하게 해주는 곳이다. 이 정원은 ‘폐허 정원’ 같은 아주 독특한 형상을 갖추고 있으며 훌륭한 디자인과 뛰어난 관리가 돋보이는 곳이다.
쾨켄호프 정원(Keukenhof Garden), 네덜란드 리세
그 색깔이나 꽃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백만 송이의 구근(튤립, 수선화, 히아신스 등) 꽃들이 전시되는 곳이다. 봄철 구근식물을 사랑하는 이라면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다. 불행하게도 이곳은 매년 봄철 약 두 달 정도만 문을 여는 ‘봄 정원’이다.
롱우드 정원(Longwood Gardens), 미국 펜실베니아
이 정원을 정원 그 자체가 뛰어나서 소개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 수준의 이 정원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온실 전시 공간을 갖춘 곳이다. 이 온실 전시 공간을 가을과 크리스마스 즈음에 가봤는데, 한마디로 세계에서 이곳과 견줄 만한 곳이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시싱허스트 성의 정원(Sissinghurst Castle Garden), 영국 켄트
아주 특별한 느낌을 떠올리게 하는 정원이다. 매력적으로 잘 설계된 정원 디자인과 함께 국제적으로 조합된 다양한 로맨틱한 요소들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