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에, 삶에 여백의 미가 깃들다 몇 해 전 이영섭 씨는 고달사 옆 인적 없는 집을 버리고 산자락 끝 인가로 다시 내려왔다. 밥 먹는 것도 귀찮아하던 그가 이제는 요리도 곧잘 한다. 매년 4월 말경이면 지천에 돋아나는 두릅을 따다가 두릅 파티를 열기도 한다.
작품도 한층 경쾌해졌다. 역발상逆發想을 반기고 새로운 시도를 즐긴다. 표면에 드러난 장식물의 재료도 달라지고 있다. 처음에는 천 년 넘은 기와 조각이나 냇가에 있는 옛 석조 다리 파편을 넣길 좋아했다. 사라진 것들을 재생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요즘엔 철사나 타일, 보석, 유리 등을 쓴다. 현대적인 소재도 이영섭식의 풍화 작용을 거치면 그윽해진다. 그렇지만 첫 발굴 작업부터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난 여백의 미는 여전히 눈에 띄는 매력이다. “어딘가는 비어 있고 세부 묘사가 생략된 곳도 많지요. 보는 이가 자기의 감정을 포함시켜서 볼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었습니다. 한국 미술의 특징이기도 하지요.”
학문과 덕을 닦아 한 단계 한 단계씩 심화시키는 과정을 비유한 성어成語 ‘절차탁마切磋琢磨’. 이는 ‘톱으로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며 숫돌에 간다’는 뜻으로 원래 장인이 옥이나 돌 등을 다스리는 과정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이영섭 씨는 20여 년간 스스로를 절차탁마해왔으면서도 돌을 절차탁마하지 않는 조각가다. “냇가에 구르는 돌이 제게는 풍화된 모습 그대로 작품입니다. 자연의 기운을 고이 담고 있거든요. 얼굴처럼 보일 때는 살짝 눈, 코, 입을 그려주기만 합니다.” 그는 신라의 석공이 탑을 절차탁마하여 ‘완전평면’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라 말한다. “보아서 편안한 느낌, 만져서 따스한 상태가 평면이었겠지요.” 그렇다면 요즘 사람들이 보아서 평온한 작품은 무엇일까. 이영섭 씨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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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영섭 씨의 신작 ‘의자’. 2, 3 작품 표면을 장식한 유리 조각과 조약돌. 풍화된 느낌을 내기 위해 소주병이나 와인병 조각을 일일이 불로 녹여 모서리를 닳게 만들었다. 4 땅에서 꺼낸 뒤 물로 씻어보아야 작품의 ‘생사 여부’를 알 수 있다.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있다. 이때는 깨부순다. 실루엣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연장을 대면 작품은 기운을 잃고 말기 때문이다. 연장은 눈, 코, 입 등을 그릴 때만 사용된다. 5 계곡에서 주운 주홍빛 돌이 이영섭 씨 가슴에 수줍은 소녀의 얼굴로 다가왔다. 혹은, 이영섭 씨가 그녀에게 다가갔거나. 6‘생각하는 이영섭’의 이런 표정은 그가 홀로 작품을 구상할 때 주로 나타난다. 사람들 속에 있을 때는 연신 수줍은 듯한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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