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新 전원일기- 귀촌사례]영화 <땅의 여자>의 주인공 소희주·강선희·변은주 씨 친구와 함께 농심에 살어리랏다!
농과대학 졸업생이 농사꾼 되는 것을 이상히 여기는 나라에서 ‘의대 졸업하면 의사 되고, 교대 졸업하면 선생님 되는데, 농대는 왜?’라고 반문하면서 농촌으로 시집온 세 여성이 있다. 20년 전 농촌으로 시집오기 위해 공부하고 농촌 봉사활동을 다녔던 소희주・강선희・변은주 씨가 그들이다.

<땅의 여자> 주인공 소희주 씨와 딸 단비, 강선희(위), 변은주(소희주 씨 왼쪽) 씨를 중심으로 모여 가족사진을 찍었다. 맨앞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하린, 김승환, 남상진 군과 변은주 씨의 남편 김창수 씨. 김한범, 딸 기쁨 양을 안고 있는 남성민 씨, 그리고 김민환 군(맨앞 오른쪽).

소희주・·강선희·변은주 씨는 부산 동아대 농과대학 동창생. 나이로 치면 1989년에 대학에 입학한 강선희 씨가 언니이지만 그가 반농사꾼이므로 농사 경험에서 앞선 두 살 어린 소희주·・변은주 씨가 언니이다. 세 명은 대학 시절 농과대학 재학생이라는 인연으로 함께 농활을 다녔고, 그러다 농촌으로 시집까지 오게 되었다. 오는 9월 9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땅의 여자>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세 여성 농사꾼을 진주, 합천, 창녕에서 만났다.

귀농 8년 만에 ‘내 집’ 지은 소희주 씨 소희주 씨는 남편 남성민 씨와 함께 2001년 ‘안’씨 성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으로 귀농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이었다. 농민회에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을 통해 빈집을 구해 신접살림을 차렸다. 동네 어르신들은 앞날 창창한 이 신출내기 부부에게 이렇게 꼭 말씀하셨다. “꼭 돈 벌어서 나가라. 성공해서 나가라”라고. 동네 어르신들의 조언은 2009년 두 사람이 집과 우사를 지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빚을 얻어 지은 집이지만 이들에게는 ‘방(3개)도 많고 샤워도 할 수 있는’ 최고의 안식처이다.
“내는 귀농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오고 싶어서 시골에 왔거등요. 그란디 다른 사람들이 내를 보고 귀농이라 카는 기예요. 그라고 내도 살아 보니 제가 귀농을 한 거이 맞드라고요.(웃음)”
동네 ‘어무이’들은 그 집을 지날 때면 결코 지나치는 법 없이 꼭 들러 ‘어떻게 사는지’ 살림을 살폈다. 그분들은 간장이며 된장 같은 먹을거리를 살뜰하게 챙겨주었고, 일손이 부족할 때면 일손을 나눠주었다.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더군다나 아무것도 없이 시작하는 사람에게 품앗이만큼 고마운 제도도 없을 것이다. 올바른 농사꾼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옆에서 봐주고, 도와주고, 기다려주는 심성보다 아름다운 덕스러움도 없을 것이다. 그렇게 2~3년을 지낸 후 소희주 씨 부부는 비로소 독립 행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지매들은 정말로 헌신적으로 일하세요. 조금도 안 쉬려고 하시죠. 적당 적당 눈치 보면서 해도 될 일도 그렇게 하시는 법이 없어요. 또 제가 70~80대 아지매들 일하시는 속도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세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이며, 진주여성농민회 사무국장으로 밤낮없이 바쁜 소희주 씨. 씩씩하고 쾌활한 듯 보이지만 좋은 토마토를 수확하면 환금성 먼저 따지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알뜰살뜰한 엄마’다.

(오른쪽) 토종 종자를 보존하려고 파종한 메주콩밭에서 김매기를 하는 소희주 씨.


1 소희주 씨가 사는 경남 진주시 지수면에서 나는 찰옥수수.
2 김창수 씨 가족이 수확한 마늘. 사진 속 마늘은 내년 농사에 쓰려고 쪽을 낸 것들이다.


결혼 9년 만에 시댁에서 분가한 변은주 씨
변은주 씨가 처음 귀농을 결심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우연히 친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결혼하지 못해 자살한 농촌 총각’을 보도하는 뉴스를 시청했고, 그때 ‘내가 농촌 총각 한 명의 생명을 구하리라’라고 다짐했단다. 그리고 그 바람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현실이 되었다.
반면 변은주 씨의 남편 김창수 씨는 일찍이 농사일의 고단함을 알았기에 절대 농사짓지 않으리라 결심한 인물. 그러나 ‘농사꾼의 아내’가 되겠다는 여자 친구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결국 창녕에 계신 부친 곁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배웠다.
변은주 씨 부부는 영화 <땅의 여자>에서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9년 동안 의견을 피력한 끝에 6백 평짜리 본가에서 20평짜리 아파트로 분가하기까지의 과정(특히 부부싸움)이 그대로 공개되고, 이들이 ‘아버지의 아들 가족’이 아니라 ‘김창수 가족’으로 독립하는 이야기도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변은주 씨 부부는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에피소드 공개도 허락했다. 영화감독 권우정 씨가 3년 이상 농사일을 도우며 촬영한 것도 갸륵했지만, 삼고초려하며 허락을 구하는 정성에 지고 만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분가할 때 부모님께 허락을 구하는 방법이 미숙했던 것 같아요. 방법적으로 잘 풀 수도 있었는데…. 분가를 한 후 서로 거리감을 갖고 지내면서 부모님과 함께 살 때는 몰랐던 서로의 소중함과 귀중함을 알게 되었고, 또 서로 조심하는 부분도 생겼어요.”영화에서 ‘초라하고 우유부단하게’만 보이는 남편 김창수 씨는 실제 주변 사람들이 ‘완전 농사꾼’이라고 부를 정도의 훌륭한 농사꾼이다. 귀농 초기부터 재배한 수박, 요즘 짓는 마늘에 이르기까지 농사에 헌신하고 공부하며 얻은 값진 수확물이다.
“농심은 베푸는 마음인 것 같아요. 땡볕 아래에서 일하고 육체적으로 도 힘이 드니까 일할 때는 입에서 막 욕이 나와요. 그때는 누가 와서 ‘하나 도라(주라)’이라믄 ‘내가 니 줄라고 이라는 줄 아나!’라고 내뱉지만 나중엔 다 주잖아요.”
갓난아이 키우듯이 농사를 짓는 농부의 땀과 노고와 정성과 마음을 본다면 우리 농산물 값에 대해 결코 ‘비싸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3 소희주 씨 부부가 키우는 수소들.

귀촌 13년 차에 농사일 시작한 강선희 씨 활짝 웃는 얼굴이 일품인 강선희 씨는 귀촌으로 시골살이를 시작했다. 그녀가 정착한 합천은 남편의 고향. 1995년 11월 귀촌하여 1996년부터 농사를 지으며 농민 운동을 하던 남편과 결혼했다. 귀촌 후 강선희 씨는 여성농민회 ‘언니’들의 자녀들을 위한 공부방을 열고 사교육을 시작했는데 그 결과가 매우 좋았다. 그 공부방은 뒷날 초등학교와 중학생 전교생을 위한 방과 후 교육센터인 ‘꿈꾸는 어린이집’으로 확대되었다. 그는 지금 이곳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흔히 농사에서 사람이 하는 일은 10%가 안 된다고 얘기해요. 90%는 하늘이 짓는 거죠. 저는 작년에 첫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사꾼인데 농사를 짓다 보면 실제로 자연에 대해 고마워하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요. 배울 수 있는 게 참 많죠.”
아이들을 가르치던 강선희 씨가 농사를 본격적으로 짓게 된 건 어느 날 갑자기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남편 때문이다. 남편이 떠날 때 남긴 유산은 유기농 땅뙈기와 소들. 남편이 7년 동안 아글타글 정성스레 가꾼 유기농 땅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땅에 농약을 칠 게 분명해 스스로 농사짓는 것을 택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 승환 군이 농사를 짓겠다고 나서지만 그래도 당분간은 그녀가 유기농 농사꾼으로 살아야 할 운명이다.
“이렇게 어려운 숙제를 남기고 가다니 (남편) 욕을 마이(많이) 합니다. (남편이 키우던) 소도 처분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준비해둔 짚가리가 너무 많아서 계속 키우게 됐고요. 소를 처분하지 못해서 주변의 도움을 받아 새로 축사를 지었어요. 그 전 축사에서는 거름 치기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렇게 강선희 씨는 ‘당신’ 뜻에 따라 ‘땅의 여자’가 돼가는 중이다.

세 주인공에게 영화 <땅의 여자>는?
“<땅의 여자>는 저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해준 영화입니다. 영화에 제 장단점이 다 나오는데 그걸 보면서 ‘건강하고 밝게 열심히 살아가는 여성 농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장점도, 단점도 다 똑같은 나의 일부라고 수용할 수 있게 됐고, 자신감도 갖게 됐죠.” _ 소희주 씨
“<땅의 여자>는 농촌 여자들이 자기 삶을 찾아가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얼굴이 화면에 나오니까 억수로 계면쩍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지만 영화를 통해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또 하나는 개인적으로는 영화 속에서나마 (생전의) 남편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아요.”_ 강선희 씨
“여성으로서 농촌에 사는 것의 어려움을 조금 보여준 영화. 개인적으로는 저를 되돌아보게 된 영화. 전에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닦달하는 엄마, 남편 탓을 많이 하는 아내였다면 지금은 그게 좀 줄었어요. 하하하!”_ 변은주 씨


김선래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0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