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지인을 따라 황매산 모산재에 등산 왔다가 산 좋고, 물 좋고, 공기 좋아 한눈에 반해버린 손진기ㆍ박귀전 씨. 이런 자연환경이야말로 인생 2막을 시작할 수 있는 곳이라는 강한 첫인상을 받고, 2000년 당시 건강이 좋지 않은 장모를 위해 이곳에 집을 짓고 드나들다가 장모가 세상을 뜨자 자신들의 살림을 이 집으로 옮겨왔다. 사업하던 손씨는 은퇴 후 이곳에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기업체 연수원을 짓는 중이고, 등단 시인인 아내는 정성으로 정원을 가꾸고 시 詩밭을 일군다. 어느 날 손 씨 집에 부부 동반 모임차 놀러왔던 이들 중 하룻밤 머물고는 아름다운 산세에 반해 당장 땅을 구하고 집을 지은 이들이 있는데 허공마ㆍ한징자 부부와 이선구ㆍ남정숙 부부가 그들이다. 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퇴직한 이병석ㆍ이정순 부부는 이곳에 사시던 어머니를 뵈러 오랫동안 오가다 보니 정이 든 경우. 도시와는 결이 다른 시골 바람, 집 옆으로 흐르는 실개천에 마음을 빼앗겨 10년 전 귀촌했다. 현재 마산문화원 원장인 임영주ㆍ고말순 부부는 본인의 고향으로 되돌아온 귀향 3년 차다. 아직은 아이들도 어리고 직장 생활 때문에 마산 집과 이곳에서 이중 살림을 하고 있지만 서서히 삶의 중심을 옮겨오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한 집 한 집 연결돼서 지금은 죽고 못사는 이웃사촌이 됐다(이들 외에도 공무원, 사업가, 치과의사, 대학교수 등을 지내고 이곳에 터를 잡은 다섯 부부가 더 있는데 사정상 이날 촬영에는 함께하지 못했다).
이들은 노래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 낮에는 각자의 논, 밭, 정원에서 개미처럼 땀 흘려 일하고, 밤이면 다같이 모여 베짱이처럼 즐긴다.
(왼쪽)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 걸리는 저수지 둘레길을 함께 산책하는 황매산 사람들. 행복한 전원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이웃이라고 입을 모은다.
10여 년 전 황토 벽돌로 지은 집 앞에 선 손진기ㆍ박귀전 씨 부부. 이들을 구심점으로 귀촌한 이웃이 늘어나 현재 열 쌍의 부부가 재미나게 살고 있다. 이날 박귀전 씨가 정성껏 가꾼 앞뜰에는 그가 좋아하는 장사익의 ‘동백 아가씨’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고교 교사를 하다 퇴직하고 10년 전 귀촌한 이병석ㆍ이정순 부부. 주위 노인들께 묻고 인터넷으로 공부하며 무농약 벼농사를 짓는 진짜 농부다. 논 1마지기에서 쌀 3가마니를 생산하는데, 1년 내내 부부가 먹고 가족과 이웃들 나눠줄 정도는 된단다. 논도, 고추밭도, 콩밭도 부부의 정성을 먹고 자라 잎들이 반질반질하다.
6백50평의 채마밭에 블루베리, 포도, 고추, 콩, 옥수수 등을 기르고, 30여 개의 항아리에 장을 담가 밤낮으로 정성껏 관리하는 허공마ㆍ한징자 부부. 자신들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며 이곳으로 귀촌을 결정했다. 좋은 물, 좋은 공기 마시며 자연과 어우러져 산 이후 건강을 되찾아 오히려 병원 갈 일이 없어졌다.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자연과 더불어 숨 쉬고 흙을 만지며 노동하면서 땅의 생기를 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마음 맞는 이웃과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60대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는 이들은 먼 유년 시절의 추억을 통해 자연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이해하는 세대이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밭일, 논일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다. 논 1마지기를 온전히 부부의 두 손만으로 짓는다는 이병석 씨는 “생산에 큰 목적을 두고 전문적으로 하면 그리 못할 텐데 가족, 이웃과 나눠먹는 재미로 짓는 거니까 하죠. 논 1마지기에서 쌀 3가마니 소출하는데, 1년 내내 우리 두 내외 먹고 주위에 조금씩 나눠주는 정도지요”라며 말갛게 웃는다. 사업을 하던 허공마 씨는 50년간 잊고 산 꿈을 되찾은 경우다. 중2 때 초원의 집 모양의 나무 저금통을 보며 키운 꿈을 바삐 살면서 잊고 지내다가 손씨 집에 하룻밤 머물면서 유년 시절의 꿈이 되살아되살아났다. 그의 아내 한징자 씨는 전통 장 사랑이 유별난데, 평소 볕 좋은 곳에서 장을 짜지 않고 맛있게 담가 먹기를 염원했다. 그도 산골에 들어와 그 꿈을 이뤄 매일같이 30여 개의 장독을 반질반질 닦고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한 번 맛보면 누구라도 칭찬하는 장맛에 보람을 느끼며, 역시 녹색 파워를 실감하는 중.
이선구ㆍ남정숙 씨 부부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쉰일곱 살에 귀촌했다. 10년 넘게 집 지을 땅만 보러 다녔다는 이들은 ‘시야가 백 리’라는 말에 이곳을 점찍고 잘나가던 직장 생활을 과감히 접었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집을 지어 4년 전 이사했다. 화초 가꾸듯 채소를 가꾸고, 약초 공부, 염색 공부 열심히 하는 멋쟁이 부부.
현 마산문화원 원장인 임영주ㆍ고말순 씨 부부는 고향에 터를 잡고 집을 지은 귀향 3년 차. 전원에 예쁜 집 짓고 사는 게 오랜 꿈이었다는 남편이 손수 설계하고 직접 시공을 감독하며 공들여 지은 덕에 합천의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됐다. 집 앞 묘목밭에서 풀과의 전쟁을 치르는 고말순 씨. 평일이라 아쉽게도 혼자다.
전 신용보험지점장 이선구 씨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쉰일곱 살에 귀촌했다. 1997년부터 집 지을 땅만 열심히 보러 다녔다는 그는 단 하룻밤 만에 이곳을 점찍고 잘나가던 직장 생활을 과감히 접었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집을 지어 4년 전 이사했다.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도시에 독립시키고 이곳엔 부부만 산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도시에 살면서 직장 생활을 했다면 지금보다 행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왕 시골에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오세요.” 아내 남정숙 씨의 말이다. 현 마산문화원 원장인 임영주 씨와 학원을 운영하는 고말순 씨의 집은 고향에 예쁜 집 짓고 사는 게 오랜 꿈이던 임씨가 손수 설계하고 직접 감독해 지은 야심작이다. 15년 동안 아토피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던 아내는 3년 전부터 주말마다 이곳에 머물며 증상이 완화돼 해마다 병원 진료 차트가 얇아지더니 급기야 올해는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은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고. 이정순 씨는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 주변에서 가장 걱정했던 게 병원 문제”였다고 말한다. 나이 들수록 병원 다니기 편한 데 살아야 된다고들 하는데, 이런 산골에서 괜찮겠느냐고. 한데 막상 시골에 들어와 살다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해져서 되레 병원 갈 일이 별로 없더란다. 이들의 증언대로라면 비염과 알레르기 완치는 기본, 노안으로 잔글씨가 안 보였는데 지금은 안경 안 끼고 신문을 읽게 됐고, 대실염 수술에 탈장 수술에 평생 장이 안 좋아 고생했는데 좋은 물을 마시고 장이 정상인처럼 좋아졌다니, 자연만 한 만병통치약이 없는 듯하다.
모든 걸 돌고 돌게 만드는 자연은 그 자체로 교과서이자 말 없는 스승이다. 철저하게 자연에 순응하면서 흐르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니 불편함마저 잊게 된단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제아무리 예쁜 꽃도 열흘이면 지는 법. 피고 지는 꽃을 보면서 인생을 되새기게 되었다.하지만 낯선 곳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산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기만 할까.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는 토착 주민들과의 관계였다. 가장 좋은 땅은 의당 논이어야 마땅한 기존 농민들 눈에는 논이었던 자리에 잔디를 깔고,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는 이들이 좋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몇십 년을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왔으니 문화와 사고에서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손진기 씨는 “이곳에 뿌리를 두고 사시는 분들과 유대 관계를 가지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저 멀리 계셔도 일부러 큰 소리로 불러서 몇 번이고 인사합니다. 좋은 먹을거리가 생기면 어른들께 먼저 가져다드리고요. 동네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성의를 보이지요.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지요. 나중에 들어온 치과의사는 집 안에 치과 기구를 들여놓고 정기적으로 동네 어른들을 대상으로 무료 치과 진료를 하고요”라며, 그래도 한계는 분명히 있어 그 아쉬운 부분을 이 이웃들과 어울리며 공감한다고 덧붙인다.
이들은 저녁이면 한집에 모여 별빛 아래서 차를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정보와 마음을 공유한다. “전화 벨소리만 듣고도 손 회장님이 차 마시러 오란 소린가 보다 하죠. 옆집 불이 켜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외출했다 들어오면 이웃들이 손 흔들며 큰 소리로 반겨주는데, 이분들 아니면 누가 이렇게 반겨주겠어요? 외출했다 동네 어귀 들어서는 고개만 넘으면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요.”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아름답고,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박혀 있으며, 새벽이면 짙은 운무가 깔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는 곳. 허공마 씨 부부를 비롯, 이들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며 이곳에 들어왔다. 생로병사로 흐르는 인생,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몸과 마음의 준비를 서서히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오늘 이 순간!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이렇게 이웃과 둘러앉아 신선놀음을 하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그리는 모습과 가장 유사한 그림이 아닐는지.
“쉴 사이 없이 돌고 도는 / 봄 여름 가을 겨울 살얼음판 위에서 / 지난 후회도 다가올 염려도 버려둔 채 / 지금 이 시간만을 빌려서 산다 // 돌 탁자 만들어 / 풀 반찬 올려놓고 / 산새들 지친 날개 쉬었다 가게 하는 좋은 길동무 되어 / 힘에 겨운 세상사는 잠시 비켜놓은 채 / 오직 소꿉놀이 오늘 하루에만 / 열중하고 있다 // 석양이 비낀 노을 아래 / 어스듬이 깔리는 저녁 무렵 / 누군가 내 이름 석 자 호명하면 / 하던 일 그대로 둔 채 미련 없이 떠나야 할 이 세상 / 방두깨미(소꿉질의 사투리) 산다.” (박귀전 시집 <영혼의 향기> 중 ‘산다는 것’)
이 아름다운 산골마을 취재는 이동협(SBS아트텍 전략사업팀장) 씨의 소개로 이뤄졌습니다. 조경 공사가 아닌, 제대로 정원을 가꾸고 아끼는 이를 애타게 찾던 박귀전 씨에게 합천군청의 직원이 이동협 씨를 연결해준 것이죠. 이들의 정원은 내년 봄 다시 찾아 취재할 예정입니다.
이들은 노래 가사처럼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산다. 낮에는 각자의 논, 밭, 정원에서 개미처럼 땀 흘려 일하고, 밤이면 다같이 모여 베짱이처럼 즐긴다.
(왼쪽) 한 바퀴 도는 데 30분 정도 걸리는 저수지 둘레길을 함께 산책하는 황매산 사람들. 행복한 전원생활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좋은 이웃이라고 입을 모은다.
10여 년 전 황토 벽돌로 지은 집 앞에 선 손진기ㆍ박귀전 씨 부부. 이들을 구심점으로 귀촌한 이웃이 늘어나 현재 열 쌍의 부부가 재미나게 살고 있다. 이날 박귀전 씨가 정성껏 가꾼 앞뜰에는 그가 좋아하는 장사익의 ‘동백 아가씨’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고교 교사를 하다 퇴직하고 10년 전 귀촌한 이병석ㆍ이정순 부부. 주위 노인들께 묻고 인터넷으로 공부하며 무농약 벼농사를 짓는 진짜 농부다. 논 1마지기에서 쌀 3가마니를 생산하는데, 1년 내내 부부가 먹고 가족과 이웃들 나눠줄 정도는 된단다. 논도, 고추밭도, 콩밭도 부부의 정성을 먹고 자라 잎들이 반질반질하다.
6백50평의 채마밭에 블루베리, 포도, 고추, 콩, 옥수수 등을 기르고, 30여 개의 항아리에 장을 담가 밤낮으로 정성껏 관리하는 허공마ㆍ한징자 부부. 자신들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며 이곳으로 귀촌을 결정했다. 좋은 물, 좋은 공기 마시며 자연과 어우러져 산 이후 건강을 되찾아 오히려 병원 갈 일이 없어졌다.
이들이 행복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 첫째, 자연과 더불어 숨 쉬고 흙을 만지며 노동하면서 땅의 생기를 몸으로 체득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마음 맞는 이웃과 끈끈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60대 초반부터 후반에 이르는 이들은 먼 유년 시절의 추억을 통해 자연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이해하는 세대이지만 난생 처음 해보는 밭일, 논일에 시행착오도 많이 겪는다. 논 1마지기를 온전히 부부의 두 손만으로 짓는다는 이병석 씨는 “생산에 큰 목적을 두고 전문적으로 하면 그리 못할 텐데 가족, 이웃과 나눠먹는 재미로 짓는 거니까 하죠. 논 1마지기에서 쌀 3가마니 소출하는데, 1년 내내 우리 두 내외 먹고 주위에 조금씩 나눠주는 정도지요”라며 말갛게 웃는다. 사업을 하던 허공마 씨는 50년간 잊고 산 꿈을 되찾은 경우다. 중2 때 초원의 집 모양의 나무 저금통을 보며 키운 꿈을 바삐 살면서 잊고 지내다가 손씨 집에 하룻밤 머물면서 유년 시절의 꿈이 되살아되살아났다. 그의 아내 한징자 씨는 전통 장 사랑이 유별난데, 평소 볕 좋은 곳에서 장을 짜지 않고 맛있게 담가 먹기를 염원했다. 그도 산골에 들어와 그 꿈을 이뤄 매일같이 30여 개의 장독을 반질반질 닦고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관리하고 있다. 한 번 맛보면 누구라도 칭찬하는 장맛에 보람을 느끼며, 역시 녹색 파워를 실감하는 중.
이선구ㆍ남정숙 씨 부부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쉰일곱 살에 귀촌했다. 10년 넘게 집 지을 땅만 보러 다녔다는 이들은 ‘시야가 백 리’라는 말에 이곳을 점찍고 잘나가던 직장 생활을 과감히 접었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집을 지어 4년 전 이사했다. 화초 가꾸듯 채소를 가꾸고, 약초 공부, 염색 공부 열심히 하는 멋쟁이 부부.
현 마산문화원 원장인 임영주ㆍ고말순 씨 부부는 고향에 터를 잡고 집을 지은 귀향 3년 차. 전원에 예쁜 집 짓고 사는 게 오랜 꿈이었다는 남편이 손수 설계하고 직접 시공을 감독하며 공들여 지은 덕에 합천의 아름다운 집으로 선정됐다. 집 앞 묘목밭에서 풀과의 전쟁을 치르는 고말순 씨. 평일이라 아쉽게도 혼자다.
전 신용보험지점장 이선구 씨는 비교적 이른 나이인 쉰일곱 살에 귀촌했다. 1997년부터 집 지을 땅만 열심히 보러 다녔다는 그는 단 하룻밤 만에 이곳을 점찍고 잘나가던 직장 생활을 과감히 접었다. 그러고는 1년 동안 집을 지어 4년 전 이사했다. 아이들은 학교 때문에 도시에 독립시키고 이곳엔 부부만 산다.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해요. 계속 도시에 살면서 직장 생활을 했다면 지금보다 행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이왕 시골에서 살기로 결정했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오세요.” 아내 남정숙 씨의 말이다. 현 마산문화원 원장인 임영주 씨와 학원을 운영하는 고말순 씨의 집은 고향에 예쁜 집 짓고 사는 게 오랜 꿈이던 임씨가 손수 설계하고 직접 감독해 지은 야심작이다. 15년 동안 아토피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던 아내는 3년 전부터 주말마다 이곳에 머물며 증상이 완화돼 해마다 병원 진료 차트가 얇아지더니 급기야 올해는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은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고. 이정순 씨는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 주변에서 가장 걱정했던 게 병원 문제”였다고 말한다. 나이 들수록 병원 다니기 편한 데 살아야 된다고들 하는데, 이런 산골에서 괜찮겠느냐고. 한데 막상 시골에 들어와 살다 보니 마음이 편안하고 몸이 건강해져서 되레 병원 갈 일이 별로 없더란다. 이들의 증언대로라면 비염과 알레르기 완치는 기본, 노안으로 잔글씨가 안 보였는데 지금은 안경 안 끼고 신문을 읽게 됐고, 대실염 수술에 탈장 수술에 평생 장이 안 좋아 고생했는데 좋은 물을 마시고 장이 정상인처럼 좋아졌다니, 자연만 한 만병통치약이 없는 듯하다.
모든 걸 돌고 돌게 만드는 자연은 그 자체로 교과서이자 말 없는 스승이다. 철저하게 자연에 순응하면서 흐르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니 불편함마저 잊게 된단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 제아무리 예쁜 꽃도 열흘이면 지는 법. 피고 지는 꽃을 보면서 인생을 되새기게 되었다.하지만 낯선 곳에 들어와 터를 잡고 산다는 게 어디 말처럼 쉽기만 할까. 풀어야 할 가장 어려운 숙제는 토착 주민들과의 관계였다. 가장 좋은 땅은 의당 논이어야 마땅한 기존 농민들 눈에는 논이었던 자리에 잔디를 깔고, 집을 짓고, 텃밭을 일구는 이들이 좋게 보였을 리 만무하다. 몇십 년을 다른 생활 방식으로 살아왔으니 문화와 사고에서 차이가 나는 건 당연하지만 그 간극이 생각보다 훨씬 컸다.
손진기 씨는 “이곳에 뿌리를 두고 사시는 분들과 유대 관계를 가지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저 멀리 계셔도 일부러 큰 소리로 불러서 몇 번이고 인사합니다. 좋은 먹을거리가 생기면 어른들께 먼저 가져다드리고요. 동네 행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성의를 보이지요.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 지금은 많이 가까워졌지요. 나중에 들어온 치과의사는 집 안에 치과 기구를 들여놓고 정기적으로 동네 어른들을 대상으로 무료 치과 진료를 하고요”라며, 그래도 한계는 분명히 있어 그 아쉬운 부분을 이 이웃들과 어울리며 공감한다고 덧붙인다.
이들은 저녁이면 한집에 모여 별빛 아래서 차를 나누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정보와 마음을 공유한다. “전화 벨소리만 듣고도 손 회장님이 차 마시러 오란 소린가 보다 하죠. 옆집 불이 켜지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외출했다 들어오면 이웃들이 손 흔들며 큰 소리로 반겨주는데, 이분들 아니면 누가 이렇게 반겨주겠어요? 외출했다 동네 어귀 들어서는 고개만 넘으면 벌써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지요.”비 오면 비 오는 대로, 눈 오면 눈 오는 대로 아름답고, 밤하늘에는 별이 쏟아질 듯 박혀 있으며, 새벽이면 짙은 운무가 깔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는 곳. 허공마 씨 부부를 비롯, 이들은 ‘아름다운 마무리’를 생각하며 이곳에 들어왔다. 생로병사로 흐르는 인생, 흙에서 났으니 흙으로 돌아갈 몸과 마음의 준비를 서서히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오늘 이 순간! 하루의 노동을 끝내고 이렇게 이웃과 둘러앉아 신선놀음을 하니 이 얼마나 행복한가! 낭만적인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그리는 모습과 가장 유사한 그림이 아닐는지.
“쉴 사이 없이 돌고 도는 / 봄 여름 가을 겨울 살얼음판 위에서 / 지난 후회도 다가올 염려도 버려둔 채 / 지금 이 시간만을 빌려서 산다 // 돌 탁자 만들어 / 풀 반찬 올려놓고 / 산새들 지친 날개 쉬었다 가게 하는 좋은 길동무 되어 / 힘에 겨운 세상사는 잠시 비켜놓은 채 / 오직 소꿉놀이 오늘 하루에만 / 열중하고 있다 // 석양이 비낀 노을 아래 / 어스듬이 깔리는 저녁 무렵 / 누군가 내 이름 석 자 호명하면 / 하던 일 그대로 둔 채 미련 없이 떠나야 할 이 세상 / 방두깨미(소꿉질의 사투리) 산다.” (박귀전 시집 <영혼의 향기> 중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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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름다운 산골마을 취재는 이동협(SBS아트텍 전략사업팀장) 씨의 소개로 이뤄졌습니다. 조경 공사가 아닌, 제대로 정원을 가꾸고 아끼는 이를 애타게 찾던 박귀전 씨에게 합천군청의 직원이 이동협 씨를 연결해준 것이죠. 이들의 정원은 내년 봄 다시 찾아 취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