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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남서부 빅토리아 황무지에 구현한 지상 낙원 '부차트 가든'
캐나다 남서부에 위치한 우아한 도시 빅토리아를 여행한다면, 반드시 부차트 가든을 둘러봐야 한다. 누가 이곳을 보고 원래 석회암 채굴장이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부차트 씨 부부가 전 세계의 꽃과 식물을 수집하여 정원을 꾸민 곳. 그 어떤 예술 작품과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눈부신 자연의 컬러에 매료당할 수밖에 없는 곳이다.

1 부차트 가든의 하이라이트 정원인 선큰 가든. 석회암 채굴로 인해 움푹 파인 공간이 아름다운 꽃대궐로 변모해 원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캐나다 빅토리아 출장 스케줄이 잡혔을 때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일정에 부차트 가든 Butchart Gardens이 포함돼 있는지 여부였다. 세계에서 아름답기로 소문난 정원을 꼽을 때 우선순위에 드는 곳이기도 하려니와 최근 만난 취재원이 꼭 한번 가봐야 한다며 강력 추천한 곳이 바로 부차트 가든이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그 말을 들은 뒤 꼭 한 달 만에 예기치 않은 선물처럼 기회가 찾아왔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남단의 밴쿠버 섬 빅토리아 시에서 북쪽으로 23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부차트 가든. 봄에서 여름으로 고개를 넘는 길목, 대기는 방금 물로 닦아낸 유리창처럼 투명하고 보송보송하다. 파스텔 톤의 튤립을 조화롭게 배색해 심은 꽃밭은 곧이어 펼쳐질 꽃대궐의 서막을 알리고, 꽃구경하러 태평양까지 건너온 방문객의 기대감은 여기서부터 한 템포씩 빠르게 부풀어오른다. 빨간 장미 로고에 적혀 있는 것처럼 ‘1백 년 넘게 꽃이 지지 않은(over 100years in bloom)’ 이곳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다섯 개의 테마 정원을 순서대로 둘러볼 수 있도록 동선이 짜여 있다.
기대감을 더욱 부추긴 건 이곳이 과거 시멘트 사업을 위한 석회암 채굴장이었다는 사실이다. 채굴장과 정원,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대조적인 두 이미지. 물 고인 웅덩이, 흩어진 바윗덩이로 가득 찬 거칠고 투박하며 생명력 없는 채굴장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변모했다는 반전 스토리는 극적이기까지 하다. 시멘트 사업을 하던 로버트 핌 부차트 Robert Pim Butchart(1856~1943)는 1904년 이곳에서 석회석 광산을 발견했고, 육지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토드 포구가 시멘트 공장을 세우기에 최적의 조건임을 알았다. 정원의 출발은 부차트의 아내 제니 부차트 Jennie Butchart(1866~1950)가 석회암 채굴로 인해 생긴 웅덩이에 스위트피와 장미 몇 송이를 가꾸면서부터였다. 그것이 훗날 이렇게 아름다운 걸작이 되리라곤 그녀 자신도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2 세계 각국에서 개발한 2백50여 종의 장미가 한데 어우러진 장미정원은 여름에 가장 인기 있는 곳. 형형색색의 장미꽃이 낭만가들의 마음을 흔든다.


3 부차트 씨의 손자인 이언 로즈 Ian Rose 씨가 개장 60주년을 기념해 1964년에 조성한 로즈 분수. 27m까지 물줄기가 힘차게 솟아오르며 웅장한 장관을 연출한다.

제니의 제안으로 황폐한 채석장을 정원으로 가꿀 결심을 한 이후 부차트 씨 집과 공장 주변에는 다양한 테마 정원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거대한 웅덩이에서 소박하게 시작한 선큰 가든 Sunken Garden(지면보다 한층 낮은, 움푹 파인 정원)은 이후 부차트 씨 부부가 수집해온 꽃과 식물로 인해 점점 확장되었다. 그 무렵 이 부부에 관한 이야기는 정원의 변화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세상에 퍼져 친구들과 지인들, 심지어는 모르는 이들까지 제니의 화려한 원예술을 구경하러 오곤 했다. 겸손하고 온화한 성품의 제니는 모든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며 호의를 베풀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1915년 한 해에만 무려 1만 8천여 명의 손님에게 차를 대접했다고 한다. 부차트 부부는 자신들의 정원이 다른 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시멘트 사업이 번창해 큰 부자가 된 이들은 ‘자연의 도움으로 큰돈을 벌었으니 뜻있는 일로 그 빚을 갚자’는 생각으로 1928년 사유 정원을 세상에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정원은 발전을 거듭했고, 부부는 겨울마다 새로운 식물을 수집하기 위해 해외여행을 떠났다가 봄이 되면 돌아오곤 했다. 이들의 딸이 기록한 여행 일지에는 “어머니는 긴 겨울 여행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정원에 나가 12시간을 쉬지 않고 즐겁게 일했다”라고 적혀 있다.
꽃으로 뒤덮인 약 22만㎡의 정원은 연중무휴로 열려 있다. 50명이 넘는 정원사가 1년 내내 아름다운 정원을 유지하기 위해 땀 흘려 일하며, 매년 1백만 그루가 넘는 꽃식물이 3월부터 10월까지 연달아 꽃을 피운다. 11월부터 2월까지는 각양각색의 베리류와 관목, 나무의 자태를 즐길 수 있다. 매년 1백만 명 가까운 방문객이 이곳을 찾았고, 그 결과 부차트 가든은 2004년 캐나다 국가 역사 유적지로 지정되었다.

본격적으로 부차트 가든을 구경해보자. 계단 위에서 내려다본 선큰 가든은 현재 원색의 아름다운 꽃들이 조화를 이루며 숨 막히는 정경을 연출한다. 전 세계에서 온 방문객들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화려한 원예술에 매료돼 탄성을 내지른다. 두 그루의 키 큰 측백나무가 산책길 양옆으로 서 있고, 흐드러지게 핀 색색의 꽃들은 꽃 무덤을 이루며, 정원의 가파른 오른쪽 절벽에는 담쟁이덩굴이 드리워져 있다(담쟁이는 부차트 부인이 작업 의자에 매달려 갈라진 바위틈에 심은 것이다). 이곳 가드닝의 특징 중 하나는 철두철미하게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지금껏 지켜오고 있는 것. 두 그루 측백나무는 처음 있던 자리에 그대로 서 있고, 정원사들은 부차트 부인이 즐겨 하던 대로 대부분의 화단 가장자리를 파란 꽃으로 장식하며, 튤립은 물망초 무리 사이에 심는다.
선큰 가든을 지나면 개장 60주년을 기념해 만든 로즈 분수가 27m 높이까지 시원하게 물줄기를 뿜어 올린다. 한때 방치되었던 또 다른 채석장을 탈바꿈시킨 것으로, 해가 지면 색색의 조명이 더해져 더욱 아름답게 춤을 춘다. 로즈 분수의 춤사위를 감상한 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야외 음악당과 잔디밭, 달리아 꽃밭을 지나면 장미정원으로 어어진다. 세계 각국에서 개발한 다양한 색깔, 모양, 향기를 지닌 2백50여 종의 장미로 가득한 장미정원은 여름에 가장 인기 있는 곳이다. 장미정원을 한 바퀴 돌아 일본 전통 문인 붉은색 토리문을 지나면 작은 냇물이 이끄는 일본 정원으로 연결된다.

4 나뭇가지에 핀 꽃뿐 아니라 잔디밭에 떨어진 꽃송이마저 이곳에서는 작품이 된다.


1 부차트 가든 1백 주년을 기념해 조각한 토템 기둥. 두 개의 토템 기둥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불꽃놀이가 펼쳐지는 공간을 내려다보며 서 있다.
2 꽃밭 사이에 마련한 강아지 전용 식수대가 눈길을 끈다. 애완동물은 반드시 목줄을 매고 동반해야 한다.



3 부차트 가든에서는 꽃밭 디자인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잔디밭에 깊게 뿌리 내린 고목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싼 꽃밭이 지나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다.

고즈넉한 일본 정원은 적갈색과 금빛으로 물드는 10월에 아름다움이 최고조로 무르익는다. 태평양 건너 북미 대륙,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가든에서 일본 정원을 만나는 기분은 한마디로 ‘묘하다’. 놀라운 것은 1906년부터 일본 조경 전문가의 도움으로 가꾸기 시작해 장미정원이나 이탈리아 정원보다 먼저 조성됐다는 사실이다. 어디 그뿐인가. 부차트 씨가 일본에서 구입한 5백66그루의 벚꽃나무를 1.6km가량의 진입로에 심어 봄에는 눈부신 벚꽃길을 연출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모든 방문객을 맞는다. 솔직히 시샘 반 부러움 반인 마음으로 일본 정원을 통과하면, 과거 부차트 부부가 이용하던 테니스장을 개조해 조성한 이탈리아 정원이 펼쳐진다. 직사각형 연못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연못에는 수련이 고고하게 떠 있다. 아름답게 잘 가꾼 정원 곳곳을 거닐다 보면 꽃과 나무만이 표현할 수 있는 절대 색상에 매료되어 저절로 선글라스를 벗게 된다.


4 작은 냇물이 흐르는 아기자기한 일본 정원. 1906년부터 일본 조경 전문가인 기시다 이사부로 씨의 도움으로 조성했다. 나무다리와 석등, 이끼가 동양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부차트 가든에는 식물에 이름표가 달려 있지 않다. 사유 정원의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대신 원예학에 관한 각종 궁금증은 개화 시기, 색깔, 이름과 학명, 성장 환경, 식물 높이 등을 상세히 기록한 가이드북을 참고하거나 식물 식별 센터 직원 또는 정원사에게 질문하면 친절히 답해준다. 아름다운 정원을 둘러보고 나면 대부분 다음의 증상 중 하나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갑자기 꽃을 가꾸고 싶은 의욕이 솟구친다거나, 평소에는 유치하게만 보이던 꽃무늬가 예뻐 보인다거나, 동행하고 싶은 누군가가 생각난다거나…. 그럴 때는 꽃을 소재로 한 갖가지 기념품과 꽃씨 등을 구입할 수 있는 기프트 스토어로 향하면 된다.
부차트 가든이 매년 1백만 명 이상의 전 세계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데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큰 몫을 한다. 여름에는 잔디에서 콘서트가 열리고, 7월과 8월 매 토요일 밤엔 화려한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으며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겨울에는 아이스링크와 수천 개의 전구로 꾸민 아름다운 장식물로 크리스마스 시즌의 유쾌함을 선사한다. 한 번 왔다 가면 더 이상 구경할 것 없는 정원이 아니라 계절마다 다시 와서 온 가족이 함께 즐기고 싶은, 언제 가도 지루하지 않은 정원인 것이다. 아름다운 꽃과 나무에 취해 누구라도 낭만가가 되고 서로의 마음이 열리는 곳, 이곳이 바로 지상에 구현된 천국 아니겠는가.

5 부차트 가든의 봄은 파스텔 톤 튤립의 향연으로 눈부시다. 그 옛날 제니 부차트 부인이 그러했던 것처럼 튤립은 물망초 무리 사이에 심는다.

부차트 가든 찾아가기
빅토리아 시에서 북쪽으로 23km, 밴쿠버 시와 빅토리아를 왕래하는 페리 터미널인 스와츠 만에서 남쪽으로 20km 떨어진 브렌트우드 만에 있다. 입장료는 28캐나다달러.주소 Box 4010Victoria BC Canada 문의 250-652-5256, www.butchartgardens.com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