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가족의 행복한 웃음이 오후 햇살 속에 환하게 부서진다. 왼쪽부터 정문섭 이사, 서미자 대표, 정아름 실장.
2 하늘호수의 로션과 크림 재료들. 모두 독성 없는 순수한 천연 재료로 만든다.
정성을 다해 빌면 한 가지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불교인들의 성지, 갓바위 부처로 유명한 관봉석조여래좌상(보물 431호)이 있어 외지인의 발걸음이 잦은 팔공산 자락 아래 그림처럼 들어앉은 통나무집이 눈에 띈다. 언뜻 보면 한적한 카페처럼 보이는 이곳은 천연 한방 화장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곳이다.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된 ‘신기한 물’로 생명을 구한 서미자 대표가 그 물로 빚은 화장품을 만드는 꿈의 터전, 경북 경산의 ‘하늘호수’ 전시장에서 꿈을 향해 열심히 뛰는 가족을 만났다.
내 생명을 구한 물, 세상에 전해보자
서울에서 4시간이 넘는 거리. ‘하늘호수’라는 간판을 확인하면서 마당에 들어서자 서미자・정문섭 부부가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는 인사를 건넨다. 부부가 함께 살면 닮는다더니, 이 부부 역시 인생살이의 모진 풍파와는 멀게만 보이는 선한 부처상이다. “결혼한 지 벌써 30년이 다 되었네요. 안사람은 제 사촌 형수와 친구였어요. 형수 소개로 세종문화회관 앞에 있는 다방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제가 좀 늦었죠. 다방에 들어서니 뒷모습까지 얌전한 아가씨가 있더라고요. 첫눈에 반해서 바로 결혼하자고 졸랐어요.”
30년 전 서울 체신부에서 근무 중이던 아가씨는 친구의 소개로 한 청년을 만났다. 멀리 대구에서 왔다는 청년은 만나자마자 ‘결혼하자’고 했다. 청년의 눈에는 아가씨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로 보였다. 정문섭 씨의 적극적인 구애를 받아들인 서미자 씨는 곧바로 직장을 그만두고 대구로 내려가 결혼한 뒤, 딸과 아들을 낳았다. 동화 속 이야기라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났을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곤고했다. “저이가 참 착한 남자예요. 그래서 엄청난 효자이기도 하고요. 시할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성정이 여간 까다로운 분이 아니셨어요. 제 성격이 좀 답답한 면이 있어서 시집살이를 슬기롭게 헤쳐나가지 못했죠. 자주 아팠고, 속상하기만 했는데, 그게 결국 큰 병이 된 것 같아요.”
참는 자에겐 복이 아닌 병이 올 수도 있다. 불만이 있어도 겉으로 터뜨리지 못하고 참기만 한 서미자 씨의 속앓이가 몸을 괴롭혔다. 결혼 생활 내내 병약했고, 결국 암에 걸려 지난 2000년 유방암 수술을 했다. 수술 후 체력은 나날이 떨어져 항암제는커녕 밥 한술도 넘기기 어려웠다.
“물만 먹어도 게워내고 움직이지도 못했어요. 주사는 물론 양약, 한약도 먹을 수가 없었죠. 밥을 못 먹어 치료도 못하고 있을 때 이 하늘호수 물을 알게 된 거예요.”
당시 한지 공예 강사이던 그가 동료 강사들을 만나 괴로움을 토로하고 있을 때였다. 옆에 있던 한 아저씨가 ‘한방 증류수’라는 물을 건네며 먹어볼 것을 권유했다. 암이라는 거대한 병마와 싸우며 체력을 회복하기 위해 별별 음식과 약을 다 시도해봤지만 소용없던 터였다. 서미자 씨는 그 때 ‘사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받아 마셨다’고 회고한다.
3, 4 갓바위에 오르려는 외지인의 발걸음이 잦은 팔공산 자락 아래에 있는 하늘호수 전시장에서는 오미자차, 평심차, 하늘호수차, 국결차 등 다양한 차를 즐길 수 있다. 가장 인기가 좋은 평심차(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준다)는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을 수 있도록 재료도 판매한다.
“물만 마셔도 괴롭던 몸이 그 ‘한방 증류수’를 마시니까 멀쩡한 거예요. 온몸에 독소가 싹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면서 입맛이 돋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그 물을 구해 마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그분이 저에게 한방 증류수 제조법을 알려주시면서 ‘직접 효과를 봤으니 제대로 개발해서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어떠냐’고 하시더군요. 그 말씀을 하신 후 그분은 어디론가 떠나셨어요.” 그때만 해도 사업을 시작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다. 열심히 마셔서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생각만 간절했다. 그런데 직접 만들어보니 제조법이 생각보다 매우 까다로웠다. 우선 눈꽃동충하초, 산수유, 오가피, 뽕잎, 백복령, 작약, 천궁, 당귀, 칡, 매실, 감초, 황기, 밤, 대추, 박하, 사철쑥, 해초류, 둥굴레 등 18가지 한약재를 전통 옹기에 숙성시킨다. 숙성이 끝나면 먼저 만들어둔 한방 증류수로 온갖 약재를 깨끗하게 씻고, 전통 소주 내림 방식으로 끓이면서 한 방울, 한 방울 증류수를 받아 만들어야 한다.
“한약은 약재를 직접 달여서 먹기 때문에 진맥이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이 물은 숙성시킨 약재를 증류수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체질이나 건강 상태에 관계없이 마실 수 있어요. 직접 만들어 마시면서 몸이 많이 좋아졌어요. ‘아! 하늘에서 내 몸을 건강하게 하려고 내린 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하늘호수 물’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만드는 법을 숙달하자 양이 제법 되더군요. 남은 물을 몸에 바르니 각질이 없어지고, 벌레 물린 부위도 쉽게 가라앉더라고요. 그래서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5 경상북도 경산의 하늘호수 전시장 주변에는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전시장 안에 놓은 화분에는 만첩홍매화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6 경북 경산의 하늘호수 전시장에서는 화장품 외에도 서미자 대표가 손수 만든 한지 공예 제품과 천연 영지버섯, 홍화씨 등을 구입할 수 있다.
취미로 화장품을 만들기 시작한 서미자 대표는 완성한 화장품과 한방 증류수를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는데, 사용해본 사람들의 반응이 상당히 좋았단다. 돈을 낼 테니 더 만들어달라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한방 화장품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2002년에 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어요. 화장품을 좀 더 제대로 만들기 위해 한의학자의 자문을 구하고, 대구대학교 산학협력단에 들어가 연구를 계속했죠. 대구대학교와 함께 2003년에 열린 경주 엑스포에 참석했는데 관람객의 호응이 대단했어요.”
제품의 효능을 검증하고자 대구대학교 식품영양학과 박영숙 교수와 함께 제품의 성분과 효능을 연구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연구 결과 보고서에 “하늘호수 화장수가 피부 재생과 보습 등에 효과가 있으며 한방 증류수의 경우 면역력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적고 있다. 이 같은 연구 결과로 제품의 공신력을 갖게 된 하늘호수의 한방 증류수와 화장품을 가지고 경주 엑스포에 참석한 것이다. 전시회에서 샘플을 사용해본 사람들의 주문이 이어졌고, 입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이 하늘호수 물과 화장품을 원했다. 화장품으로는 처음으로 대구지방식품의약품안정청에서 허가를 받았고, 2004년에는 약재의 배합 비율과 숙성 과정을 담은 ‘한방 화장품 제조 방법’을 특허 출원해 경상북도 벤처 농업인(신기술 가공 분야)으로 지정되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키워나가기 위해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서 수업도 받았다. 숨 가쁘게, 거침없이 달리는 동안 서미자 씨의 병은 깨끗하게 나았고, 사업은 날로 번창하기 시작했다.
1 서미자 대표는 ‘좋은 제품은 패키지도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널리 알리기 위해 팩 제품을 ‘독도 사랑 한방 마스크 팩’이라 이름 짓고 패키지 앞면에는 독도 사진을, 뒷면에는 독도의 역사를 실었다.
2 대구대학교와 함께한 연구 끝에 ‘헬리코박터파이로리균을 60% 이상 억제함과 동시에 면역 성분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기능성 음료 ‘하늘호수 순’. 하늘호수 화장수와 화장품에는 모두 이 물을 사용한다.
화장품도 신토불이, 내 땅에서 난 것으로 먹을 수 있게 만든다
서미자 대표는 먹어도 탈이 없을 정도로 순수한 천연 성분으로만 화장품을 만든다. 한약재, 오일 등도 모두 우리나라 제품을 사용하려고 노력한다. 화장품 제조 과정이 궁금해 그가 직접 아이크림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온갖 재료를 넣고 중탕으로 녹이고 젓기를 두어 시간 반복하자 아이크림이 완성되었다.
“천연 밀랍이 주원료로 들어가요. 이게 벌집에서 나오는 건데, 처음 화장품을 만들었을 땐 밀랍을 너무 많이 넣어 화장품을 바르고 밖에 나가면 벌들이 따라오곤 했어요. 로션, 영양크림, 아이크림 등에는 이 천연 밀랍과 각종 오일이 들어가는데, 오일 역시 되도록 우리나라 것을 사용하려고 애써요.”
로션과 크림류를 개발하면서 화장품용 천연 오일이 필요했다. 그런데 구할 수 있는 오일은 모두 외국산이었다. 우리나라 오일을 사용하고 싶어 전국 각지에서 천연 오일을 공수해 시험해보았고, 유채 오일과 동백 오일이 외국산보다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유채 오일, 동백 오일, 참깨 오일 등을 주로 사용해요. 오일과 한약재 모두 100% 독성 없는 원료를 구해 쓰고, 화장품에 들어가는 물은 한방 증류수를 이용하죠. 그러니 직접 먹어도 탈이 없어요. 몸에 바르는 것이니 먹어도 안전할 정도로 깨끗하고 좋은 재료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주문량이 늘면 좋을 줄만 알았는데 원료 수급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독성 없는 깨끗한 원료만 사용하기 위해 직접 농사도 짓고, 생협 등을 통해 믿을 수 있는 농가에서 약재를 공급받고 있지만 그 양이 많지 않아 규모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중국 심양의 성보백화점에서도 판매 중이고, 일본이나 유럽으로 수출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어요. 국내 판매 역시 꾸준히 늘고 있고요. 그런데 생산량이 주문량을 따라가지 못하니까 몹시 속상해요. 그래서 요즘에는 주변 농가를 설득하고 있어요. 이곳을 약재 재배 특구로 만들자고요. 재배한 약재는 제가 100% 수매한다는 조건을 걸고 있는데, 워낙 과수 농사를 오래 지은 분들이라 망설이고 계시네요.” 국내 판매를 넘어 세계무대로의 진출을 꿈꾸고 있다는 서미자 대표의 포부를 듣고 놀라움이 앞섰다. 사실 천연 화장품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은 서미자 대표 외에도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하늘호수처럼 큰 사업을 하고 있지는 않다. 무엇이 그를 사업가로 만들었을까. 그것이 궁금했다.
3 한방 증류수와 화장수만으로 시작한 하늘호수가 클렌징 파우더, 천연 한방 비누, 로션, 비비크림까지 갖춘 브랜드로 성장했다.
4 하늘호수의 인기 아이템인 아로마 비누를 숙성하는 모습. 천연 비누는 완성 후 2개월 이상 숙성해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늘호수 전시장 곳곳에는 숙성 중인 비누가 가득하다. 아기용, 아토피 보습용, 트러블용 세 가지로 역시 한방 증류수와 치자 분말, 아로마 에센셜 오일 등을 넣어 손으로 만든다.
좋은 원료, 정직한 운영, 가족의 도움이 재산이다
“좋은 제품을 널리 알려서 모두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사용해보니까 참 좋아요. 제 딸도 한방 화장품을 사용한 뒤로 시중에서 판매하는 일반 화장품은 못 쓰겠다고 하더군요. 피부는 오장육부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어요. 먹는 것만큼이나 피부에 바르는 것도 중요하죠. 요즘 주부들은 유기농 식품, 제철 재료를 먹으려고 애쓰죠. 전 피부에 바르는 것도 먹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데, 사실 저 혼자 힘으로 하는 것은 아니에요. 남편과 아이들의 도움이 정말 크죠.”
하늘호수의 대표인 서미자 씨와 함께 남편 정문섭 씨는 이사로, 딸 정아름 씨는 홍보실장으로 일하고 있다. 아들은 중국에 머물며 중국 백화점 판매 및 신제품 개발에 도움을 주고 있단다.
“혼자 하려니 너무 힘들어 직장에서 회계 관리 부서에 근무했던 남편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지요. 남편과 함께 일하니 의지가 되고 좋은 면도 있지만 자주 다투게 되더라고요. 우리 부부를 조율해줄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할 수 없이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던 딸에게 매일 전화를 걸어 일 년 내내 설득했어요. 제발 내려오라고요.” 딸 정아름 씨는 홍익대학교 미대를 졸업했다. 무대미술 감독의 꿈을 안고 직장에 들어가 활발히 활동하고 있을 무렵 매일 하소연과 설득으로 이어지는 어머니의 전화가 반가울 리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 이 일을 한 지 일 년이 좀 넘었어요. 처음에는 내려오기 싫었는데 요즘엔 정말 신나게 일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제가 노력한 만큼 성과가 나타나는 점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몇 년간 열심히 사업을 키워서 홍대 앞에 코즈메틱 카페를 오픈하는 것이 꿈이에요. 그곳에서 하늘호수 제품도 팔고, 미술 작품도 전시하고 싶어요.”
1 과수 농사를 주로 짓는 마을, 하늘호수 전시장 주변에 살구꽃과 복숭아꽃이 그득하다.
2 통나무와 황토를 주재료로 너와집의 이미지를 재현한 하늘호수 전시장. 서미자 대표는 이곳에서 한방 화장품으로 세계를 제패할 큰 꿈을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딸의 합류로 좌청룡 우백호를 든든하게 둔 서미자 대표의 행보는 한결 힘차다. 좋은 원료를 찾는 일도 셋이 함께 하고, 젊은 감각을 지닌 딸의 도움을 받아 신제품도 개발하고, 홈페이지와 제품 패키지 디자인도 바꿀 수 있었다. 일사천리였다. 하늘호수는 현재 한방 증류수인 ‘하늘호수 심신수’와 스킨, 클렌징 파우더, 비누, 로션, 영양크림, 아이크림, 한방 팩, 비비크림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한방 마스크 팩의 경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포장 디자인에 독도 사진을 쓰고 독도의 역사도 기록했다. 이제 앞으로 더 나아갈 일만 남았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고민할 때가 있어요. 그냥 여기서 멈출까. 앞으로 더 나아가는 게 현명한 선택일까 고민하죠. 하지만 사명감이 들어요. 제 생명을 구한 계기로 시작한 일인데, 그 좋은 것을 어찌 저 혼자 알고 사용하겠어요. 정직하게 더 좋은 제품을 많이 만들어서 판매하는 일은 제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중국, 일본, 독일 등에서 열린 박람회 참여 결과가 좋아 세계 진출을 꿈꾸고 있다는 서미자 대표. 이미 여러 기업과 수출을 협의 중이라는 그의 꿈이 이뤄질 날이 머지 않아 보였다. 그의 꿈과 함께 우리나라 한방 요법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도 널리 알려지길 기대해본다.
3 주문량이 늘어나면 무조건 좋을 줄 알았건만, 좋은 재료를 수급하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서미자・정문섭 부부. 일부라도 자급자족하기 위해 하늘호수 전시장 부근 땅에 직접 한약재 농사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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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의 고향을 찾아서’는 한국벤처농업대학 설립자이며 현재 농림수산식품부 제 1차관으로 재직 중인 농업경제학자 민승규 박사와 함께 기획・구성한 마음의 고향, 건강의 고향을 찾아 떠나는 여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