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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닝 트렌드] 가든 디자이너 안상수 씨 내가 만난 최고의 정원은 서울이다
70여 대의 TV가 꽃이 된 정원, 백사장에 돌 하나 놓은 정원…. 안상수 씨의 정원은 우리가 쉽게 떠올리는 것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이 세상 최고의 정원은 다름 아닌 ‘서울’이라고 말하는 그가 디자인한 그린 스타일을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안상수 씨가 들려주는 ‘마음을 비워야 보인다’는 정원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자.

지난 가을 백남준 아트센터에서 만난 ‘TV 정원’.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비디오 화면과 푸른 잎사귀들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70여 대의 TV가 꽃이 된 정원이다. 인공적인 비디오 설치 작품을 따뜻하게 감싸 안은 초록 숲을 만든 이는 바로 가든 디자이너 안상수 씨. 그는 이 외에도 16개의 객실마다 각기 다른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한 한옥 호텔 라궁, 술이 주인인 공간을 콘셉트로 한 배상면주가의 조경을 디자인했고, 얼마 전에는 시청 앞 서울광장을 가득 메우는 초대형 플라워 카펫을 설계하기도 했다.
범상치 않은 그의 작업처럼 안상수 씨의 이력은 조금 독특하다. 대학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했으나 졸업 후 요리, 인터페이스 프로그램 개발, 신문사 홍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력을 쌓았다.

조경 디자이너의 길로 들어선 것은 2004년 정원석을 수입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문득 자연을 집 안에 들이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에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친분이 생긴 고객의 집을 더 적극적으로 방문했다. 돌이 놓일 가장 아름다운 위치, 정원에 대한 색다른 연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서 소소한 얘기를 나누다 보니 사람의 마음이 찬찬히 읽히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무나 풀을 ‘소유’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해 어떤 마음의 상태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마음은 개개인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그것은 단순히 식물을 심는 것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순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를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스쳤다. 표현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본격적으로 가드닝 실무를 배웠고, 지금은 가든 디자인 회사 ‘마실누리’를 운영하며 가든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있다.

(왼쪽) 지난해 문을 연 백남준아트센터 내에 설치된 ‘TV 정원’. 백남준 씨의 비디오 설치 작업이 안상수 씨의 초록 정원과 함께 2008년 전혀 다른 모습으로 태어났다.

안상수 씨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을 물었다. 그는 세상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모두 제쳐두고 “한 점잖은 노인이 칠순의 아내를 위해 정원을 만들고 싶다며 찾아왔습니다. 백합 양식업을 하는 무뚝뚝한 시골 양반이 아내에게 처음으로 내비친 속 깊은 애정 표현이었겠지요. 할아버지는 수십 년 만에 외풍이 심한 집을 수리했고, 바다와 모래사장이 평화롭게 펼쳐진 집 앞마당을 가리키며 그곳에 정원을 만들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집 주위로 소나무 몇 그루를 심었고, 바다가 바라보이는 앞마당에 호수석 湖水石을 하나 놓았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른쪽) 삼성물산이 새로운 주거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 마련한 전시 <래미안 스타일> 중 안상수 씨가 연출한 여름 정원. 황금빛 모래와 돌을 조합한 정원이다.


(왼쪽) 시청 앞 서울광장 플라워 카펫 설치도. 총 36만 본의 꽃으로 이루어질 플라워 카펫은 대한문(현 덕수궁 정문)에 사용한 여섯가지 컬러를 사용, 단청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경주시 보문단지 내에 자리한 신라 밀레니엄 파크의 토우공원은 토우가 주인공이 되는 조경을 계획한 것.


호수석은 자연적인 마모로 만들어진 웅덩이 모양에 물이 고여 그 모습이 마치 평원에 펼쳐진 호수처럼 보이는 돌. 안상수 씨는 대청마루에서 가장 잘 보이는 위치에 평화로운 바다를 배경 삼아 호수석 하나를 오롯이 놓았다. 밀물 때마다 새로운 바닷물을 품는 호수석은 고요한 바다와 함께 노부부의 더없이 아름다운 정원이 되었다.
“제가 생각하는 현존하는 최고의 정원은 바로 서울입니다. 북한산, 남산, 한강 등 세계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 수려한 자연이 있고, 모든 길이 삼거리에서 만나 부드럽게 흘러갑니다. 조선시대 한양의 모습은 더욱 완벽합니다. 수려하지만 겸손하게 자리한 자연, 궁궐, 집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베르사유 정원이 신을 위한 정원이라면, 완벽한 배산임수 背山臨水의 형상을 하고 있는 조선의 한양은 백성을 품는 온화하고 너그러운 정원이지요.”

(오른쪽) 천주교 예비 신자 교육 중 영감을 얻은 정원, 카디널 가든의 스케치 초안이 그려진 예비자 교리서.

안상수 씨는 사람들이 정원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마음의 위안이라고 말한다. 호수석이 노부부의 마음을 어루만져준 것처럼, 조선의 한양이 백성을 품은 커다란 정원이 된 것처럼…. 하지만 그러한 위안은 정원을 제대로 들여다볼 때 얻을 수 있다. 안상수 씨는 정원을 온전히 느끼려면 우선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하듯 마음속 잡념을 내려놓으라고 한다. 늘 시간에 쫓기는 조급함을 잠시 내려놓고 부드러운 바람과 청명한 하늘을 떠올려보자. 그러면 당신의 심장 뛰는 소리와 함께 시시각각 조금씩 다른 빛깔과 향기를 발하는 정원의 변화가 눈에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서울리빙디자인페어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후,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마침 천주교 예비 신자 교육을 받는 중이었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게 되었죠. 거기서 해답을 얻었습니다. ‘카디널 Cardinal 가든’. 카디널은 고 김수환 추기경의 칭호입니다. 인간에게 무한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 자연을 신앙의 의미로 표현한 정원입니다. 카디널 가든에 머무는 동안 자연이 주는 평화를 얻고, 또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가 생각하는 그린은 단순히 하나의 색이 아닌 마음이 평정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카디널 가든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숨 가쁜 일상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묵상 공간을 만나게 된다. 사람이 자연을 통해 얻고자 하는 위안을 정원으로 표현하는 가든 디자이너 안상수 씨. 그가 새롭게 해석한 ‘그린’을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디자이너스 초이스 전시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왼쪽) 경주에 위치한 최초의 한옥 호텔, 라궁.
한옥은 그 자체로 자연이 느껴진다. 한지로 만든 창에는 따스한 햇살이 스미고, 그윽한 나무 냄새가 느껴진다. 안상수 씨에게 주어진 정원 공간은 아주 작은 것이었다. 한옥이 지닌 담담한 멋을 그르치지 않는 풍경이 되어줄 배롱나무와 인동초를 심었다. 16개 객실의 창마다 오롯이 놓인 자연은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성정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9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