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 높은 자연산 생선을 쉽게 구할 수 있어 육지에서는 구워 먹고 조려 먹는 고등어와 갈치를 회로 먹는 곳이 제주도다. 전복도 탱탱하다 못해 오독오독 씹는 맛이 뛰어나고 해녀들이 건져 올린 신선한 해삼과 소라도 흔하다. 또 섬이 아니고서는 구경조차 못할 신기하고 낯선 생선도 많다. 구문쟁이(능성어를 이르는 제주 방언), 붉바리, 벵에돔, 돌돔, 꽃돔, 참돔, 쥐치 등. 그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생선이 다금바리다. 회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천상의 맛을 내는 횟감’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 생선, 다금바리를 떠올리니 공항에서 50여 분, 사계리 포구의 진미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조바심이 났다. ‘얼마 전 들어왔다는 대물 大物 다금바리가 그 사이 팔린 것은 아니겠지.’ 터프하게 잘생긴 다금바리를 만날 생각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사계리 포구. 동쪽으로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돌덩어리 모양의 산방산이 머리에 구름을 이고 점잖게 서 있다. 그 줄기에서 뻗어 나온 ‘용머리’가 해안 절경을 이루는데, 용머리는 화산 폭발로 생긴 기암절벽으로 사계리 포구를 대표하는 관광지다. 고깃배 서너 척이 한가롭게 떠 있는 포구의 방파제 끝으로 빨간색 등대가 보인다. 남쪽으로는 바다에서 솟은 듯 바닷가에 인접한 송악산이 있다. 그 중앙에 그림처럼 자리 잡은 어촌 마을이 사계리다. 이름난 식당이 많기로 유명한 어촌 마을 골목 어귀를 돌아 진미식당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다가 까만 돌담 사이에 소담하게 핀 노란 유채꽃에 시선이 멎었다. 새벽 일기예보에서 유채꽃이 피기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는 터였다.
바다호랑이라는 별명의 생선 다금바리 상큼한 유채꽃 향기와 바다 비린내가 기분 좋게 버무려진다고 느낄 즈음 진미식당 앞에 다다랐다. 예상보다 꽤 요란한 대문이 우리를 반긴다. 지방의 맛집들이 표창장처럼 내세우는 ‘○○방송 △△프로그램 선정 맛집’식의 휘황찬란한 현수막은 없다. 대신 ‘다금바리회 대한민국 발명특허 제1호’라는 글귀와 2006년 세계슬로푸드대회에 초청받았던 초청장, 참여했을 당시의 기념사진, 사람 키만 한 다금바리를 힘껏 들고 있는 강창건 대표 그리고 그가 아들 강경석 씨와 나란히 함께한 사진들이 대문짝만 하게 걸려 있다. 대단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다행히 날씨가 좋네요.”
사람 좋은 웃음으로 다가온 그가 육지에서 온 우리를 반기며 명함을 건넨다. 두 장이 포개진 명함 전면엔 대문과 마찬가지로 본인과 아들의 사진이 크게 프린트되어 있다. 안쪽에는 연도별로 빽빽하게 정리된 그의 이력과 함께 글귀 하나가 적혀 있다.
“편안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정성을 다하여 음식을 조리하면 드시는 사람 역시 편안함을 미소로 느낄 것이며, 성급한 마음에서 거친 성격으로 음식을 조리하면 드시는 사람 역시 거칠어질 것이다.”
사전 취재를 위한 전화 통화에서 ‘수족관에서 생선을 일일이 꺼내 촬영할 수는 없다’고 못 박던 그였다. ‘뜰채가 수족관에 들어갈 때와 건져서 촬영하는 동안 생선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러면 다음에 오시는 손님이 스트레스 받은 물고기를 드시게 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저희 집은 생선을 잡을 때도 그냥 건지지 않아요. 생선이 스트레스 받지 않게 하려고 뜰채를 넣는 방향까지 고려하죠.”
유난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의 조심성은 다금바리의 까다로운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음식 평론가 고형욱 씨는 다금바리를 호랑이에 비유했다. 무리 지어 생활하는 사자와 달리 삼림에서 외톨이로 다니는 호랑이처럼 다금바리 역시 바다 절벽의 동굴처럼 움푹 팬 곳에서 혼자 산다. 야행성이며 성격이 포악하다는 점도 호랑이와 비슷하다. 또 육식 어종으로 반드시 신선한 먹잇감만 먹는데, 잡아다가 수조에 넣어둔 다금바리도 신선한 생선이 아니면 한번 물었다가 다시 뱉어버린다고 한다.
“얼마나 예민한지 몰라요. 손님상에서 버려진 생선을 먹으면 좋잖아요. 그런데 절대 안 먹어요. 살아 있는 한치 같은 걸 잘라주면 먹는데, 그것도 다른 생선 잡으려고 수조에 뜰채 한 번 넣으면 도로 뱉어버린다니까요. 낚시로 포획할 때도 미끼로 자연산 고등어를 매달아야 잡혀요. 양식 고등어는 거들떠보지도 않아서 허탕이에요.”
(왼쪽) 진짜 다금바리(왼쪽)와 구문쟁이. 몸통의 무늬가 불규칙하고 좀 더 터프하게 생긴 것이 다금바리다. 회를 뜨면 껍질 쪽에 붉은색이 아닌 진줏빛이 돈다.
참 까다로운 녀석이다. 무리 지어 다니지 않기 때문에 그물로 포획하는 것보다 낚시로 잡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루에 잡히는 양도 적을뿐더러 일정치도 않다. 그래서 다금바리 횟집을 하려면 좋은 다금바리를 많이 확보하고, 수조에 가둬 잘 보관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다금바리는 찬물에서 살고, 또 찬물에 있어야 맛이 좋거든요. 더우면 냉각기 틀어주고 추우면 난방을 해 수조 온도를 유지시켜요.”
가장 비싸고 가장 귀한 생선 다금바리 맛이 좋으니 당연히 값도 비싸다. 다금바리 1kg에 20만 원이라 했다. 비싸다는 자연산 복어회도 1kg에 10만 원 선인 것을 생각하면 가격을 듣고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생선회의 귀족’이란 수식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지 싶은데, 제주에는 1kg당 10만 원을 넘어서는 횟감이 많다고 하니 그 또한 놀랍다. 진미식당의 메뉴를 보니 구문쟁이 14만 원, 돌돔 17만 원, 다금바리가 20만 원이었다. 인근 시세가 모두 그렇다고 한다.
“잘 잡히지 않으니 비쌀 수밖에요. 저희 집에 오실 때도 반드시 전화로 확인한 다음에 오셔야 해요. 다금바리가 없는 날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육지에, 심지어 서울까지 제주산 다금바리가 흔하죠? 제주에도 없는 다금바리가 어떻게 거기까지 가겠어요. 다금바리가 아닌 구문쟁이를 가져다 놓고 다금바리라고 속여 파는 경우가 있어요. 구문쟁이가 다금바리보다 30% 정도 저렴하거든요.” 강창건 씨는 제주까지 내려온 김에 다금바리와 구문쟁이의 구별법을 꼭 배워 가라며 스트레스 받을까 함부로 건지지도 못한다던 다금바리와 구문쟁이를 기꺼이 꺼내 비교해주었다. “다금바리를 잘 보세요. 무늬가 불규칙하죠. 껍질을 벗기면 껍질과 닿았던 살 쪽이 진주 빛에 가까워요. 회 색깔도 그렇고요. 이빨을 보면 호랑이처럼 송곳니가 선명하죠. 구문쟁이는 몸통에 세로선이 보여요. 등에서 배까지 선명하게 일곱 줄이죠. 껍질을 벗기면 껍질과 닿았던 면이 빨갛죠. 붉은 선이 보이고요. 이빨은 좁쌀이빨이고 송곳니가 선명하지 않아요.” 설명은 쉬운 듯한데 눈앞에 두고도 확실한 차이를 짚어내기가 어려웠다. 초보 눈에는 진짜 다금바리가 구문쟁이보다 좀 더 터프하게 생겼다고 할까. ‘바다호랑이’라는 별명처럼 거칠고 늠름하게 생긴 쪽이 진짜 다금바리였다.
(오른쪽) 위부터 간, 날개 등의 다금바리 특수 부위, 비늘을 고아 만든 묵, 다금바리회. 부위별로 32가지 각각 다른 맛을 내는 다금바리는 버릴 것이 없다.
부위별로 32가지 다양한 맛을 내는 다금바리 무게는 2~5kg 정도가 흔하지만 가끔은 30kg이 넘는 다금바리가 잡힐 때도 있다고 한다. 작은 다금바리는 11개 부위로 나누지만 3kg만 넘으면 32개 부위로 나눠도 그 맛의 차이가 확연하단다. 몸통, 볼, 날개, 배, 위, 목, 혀, 입술, 쓸개, 눈 등으로 해체하고, 껍질은 데쳐서 먹고, 뼈는 탕 끓이고, 벗겨낸 비늘도 푹 고아 묵을 쑤니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때론 그 명성만으로도 훌륭한 맛을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다금바리회 역시 짐작과 다르지 않았다. 회는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비린 맛이 없으면서도 적당히 기름지고 담백한 풍미를 지녔다. 껍질은 살짝 데쳐서 나오는데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으니 쫄깃하고 고소한 맛이 별미다. 볼살은 쫄깃하고 뱃살은 기름져 감칠맛이 일품이다. 뱃살 또한 다금바리 크기에 따라 두세 부위로 나눠서 썬다.
“입술 살은 뱃살보다 기름지고 날개 살보다 쫄깃해요. 목 부위도 드셔보세요. 담백하고 쫄깃한 것이 아주 맛있지요.”
말은 유창하게 이어가지만 강창건 대표도 다금바리를 자주 먹진 못한다. 주인이라 해도 가격을 생각하면 쉽게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우리 주방에서는 내가 껌도 못 씹게 해요. 비싼 회 축낸다고 손님이 오해하시면 곤란하거든요.(웃음) 그러고 보면 옛날이 좋았네요. 그땐 다금바리가 지금처럼 비싸지 않았어요. 하루에 한 마리씩 잡아서 회 치는 연습도 하고 먹기도 하고 그랬는데 말이죠.”
(왼쪽) 지느러미와 껍질까지 훌륭한 요리로 탄생한다. 왼쪽부터 다금바리 지느러미 튀김, 살짝 데친 껍질, 꼬리뼈 김말이.
어깨너머로 배워 특허권을 따고 세계슬로푸드대회에 초청받은 셰프 너무나 가난해서 결혼했노라 했다. 일찌감치 결혼해서 둘이 열심히 일하면 그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날 줄 알았단다. 그런데 결혼 1년 반 만에 해녀였던 아내가 배 스크루에 다리를 크게 다쳤다. 막막하고 답답하고 속상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집사람 간호해야지, 일도 해야지, 많이 어려웠죠. 지금 이 자리에 테이블 세 개 놓고 시작했어요.” 처음엔 자장면도 팔고, 삼겹살도 팔았다. 허름한 식당에서 잡다한 메뉴를 내놓으니 장사가 될 리 없었다.
“한 달도 못하고 생선회를 제외한 모든 메뉴를 없앴어요. 주방장도 한 달 치 월급 주고 나가달라 했지요. 제가 직접 해야겠다 결심하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공부했어요.”
공부라고 해봐야 야간 고등학생 시절 채소 장사를 하던 누님 심부름으로 고급 식당에 채소 배달과 수금을 다녔는데 그때 훔쳐본 기억을 더듬어가며 혼자 연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 시절에는 회라고 하면서도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떠서 내던 시절이었어요. 와사비(고추냉이) 같은 것도 몰랐으니까요. ‘와사비는 일본 된장이다’ 그랬다니까요. 계속 그렇게 장사해서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돈만 생기면 손님을 가장해서 고급 횟집에 갔어요. 최고급 일식집에 가서 다치 있잖아요, 주방이 보이는 카운터 자리, 거기 앉아서 주방장들 일하는 거 머릿속에 기억하고, 팁 주면서 슬쩍 물어도 보고, 그리고 집에 와서 밤새 연습하고 그랬죠. 그때는 생선이 쌌거든요. 다금바리도 많이 잡히고요. 그러다가 1990년에 ‘한국의 맛을 내는 사람들’에 뽑혀 서울에 초청을 받아서 갔지요.”
독학한 실력이 상당했는지 장사가 꽤 잘되었다. 돌아가신 백파 홍성유 선생이 진미식당을 맛집으로 선정했고, 한 잡지사에서 선정된 맛집 대표들을 서울로 초청했다. 그 자리에서 <조선일보> 이규태 고문의 강연을 들었는데 그 내용이 강창건 대표의 가슴에 들어와 박혔단다.
(오른쪽) 제주 진미식당의 강창건 셰프.
(왼쪽) 고깃배 서너 척이 한가롭게 떠 있는 사계리 포구의 방파제 끝으로 빨간색 등대가 보인다.
(오른쪽) 사계리 포구 동쪽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한 돌덩어리 모양의 산방산이 자리 잡고 있다.
“돌아가신 이규태 선생님이 ‘일본은 사시미로 세계를 주름잡았다. 마구로(참다랑어)라는 생선을 브랜드화해서 부위별로 나눠 비싸게 받는다. 우리 외식 업계도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고 하셨어요.”
그 길로 돌아와 다금바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내장이나 껍질까지 모두 맛을 보고, 칼 쓰는 법을 연구했다. 그 과정에서 다금바리를 부위별로 나누고 칼 방향을 달리하면 맛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강창건 대표는 연세대학교에서 외식산업 고위자 과정을 수료했다. 제주에서 서울까지 비행기로 통학하면서 한 번도 지각이나 결석을 하지 않은 ‘악바리’였다.
“그때 즈음 제가 매스컴을 자주 탔어요. 그런데 방송을 보고 다른 식당들이 제 방식을 흉내 내잖아요. 심지어는 저희 사진을 가져다 자기들 홈페이지에 올리고요. 그래서 상표등록을 결심했지요.”
그를 만난 변리사는 상표등록보다는 특허권을 받는 것이 좋겠다고 했고, 2000년에 결심한 특허를 출원하기까지 6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 시절도 공부의 연속이었는데 이번엔 특허권을 받기 위해 매일 다금바리를 잡아 기록하고 표준화하며 연구에 몰두했다. 음식에 ‘특허’를 낸다는 것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특허법 제29조 ‘특허 요건’에는 특허권을 부여받기 위해 만족시켜야 할 세 가지 요건이 열거되어 있다. 첫째, 산업상 이용이 가능할 것, 둘째 누구나 알고 있는 공지의 사실이나 간행물에 기록된 것이 아닌 신규 내용일 것, 셋째 해당 기술 분야에서 통상의 기술을 가진 자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 식품 가공 기술의 경우 특허권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많다. 하지만 음식을 조리하는 방법, 특히 생선회 관련 특허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강창건 대표가 받은 특허권 제목은 ‘다금바리 회 조성물 및 제조 방법’이다. 살아 있는 다금바리를 뇌사시키고 피 빼는 과정, 살과 껍질을 분리하는 법, 각종 특수 부위를 조리하는 방법이 각각 특허 청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회 뜨는 게 무슨 특허냐’는 주위의 냉소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특허권을 따게 된 것이다.
“다금바리의 비린내를 없애는 방법과 씹는 맛을 더욱 좋게 하는 기술은 특허 대상이 돼요. 저를 따라 했던 식당들이 내놓는 모양은 같아도 맛은 같지 않다는 점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이 특허권이 발판이 되어 2006년에는 슬로푸드 세계운동본부 주최로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06년 세계 음식의 향연(Terra Madre 2006)’에 초청받기도 했다.
(왼쪽) 위풍당당한 진미식당 입구.
(오른쪽) 진미식당에서 실제 맛볼 수 있는 4인용 상차림.다금바리 회와 특수 부위 등을 맛본 뒤 지리나 매운탕을 주문해 먹을 수 있다.
“이탈리아 슬로푸드 세계운동본부에 특허권 사본과 신청서를 보냈더니 대회에 참석할 수 있냐고 묻더군요. 그래서 무조건 간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처음에는 ‘1천 명의 쿠커’로 초청장이 오더니 다시 연락이 왔어요. 특허권과 함께 신문, 방송에 나간 자료를 모두 보내줄 수 있냐고요. 그래서 열심히 준비해서 보냈더니 그때 다시 초청장이 왔어요. 슬로푸드대회에서 시연할 수 있는 ‘1백 명의 셰프’로 선정되었다고요.”
슬로푸드 세계운동본부는 맛을 표준화하고 전통 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의 진출에 대항하여 식사, 미각의 즐거움, 전통 음식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느림의 철학을 강조하기 위해 만든 단체다. 2006년 대회에는 세계 각국에서 1천여 명의 조리장을 초대했고, 그 가운데 특별히 조리 시연을 하는 ‘요리 거장(Great Chef) 1백 명’을 초청했는데 그 1백 명에 강창건 씨가 뽑힌 것이다.
“칼, 도마, 복장을 그대로 재현해달라 해서 그렇게 했어요. 다금바리를 직접 가지고 갈 수 없으니 참치를 준비해놓겠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가보니 참치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걸로 안 된다고 했더니 이탈리아 셰프가 수조로 데려가더군요. 거기에 붉바리가 있었어요. 시칠리아산 7.5kg짜리. 붉바리는 제주에도 있는데 다금바리만큼 귀한 생선이에요. 내장은 사용하지 못하게 해서 28가지 부위를 맛보였는데 생선회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이 맛을 보면서 ‘뷰티풀’을 연발하는 거예요. 시연이 끝나고 나자 전 세계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됐어요. 그때 제게 주어진 시간이 30분이었어요. 시연하고 나니 시간이 없잖아요. 그래서 질의응답은 어렵다고 했더니 기자들이 외치기 시작하더군요. “롱타임! 롱타임!” 그래서 슬로푸드본부에서 풀 타임을 줬어요. 1시간 20분을 줬는데 남은 시간 내내 기자들과의 질의 응답이 이어졌죠.”
세계 언론과 미식가들의 호평을 받는 순간이었다. 그때의 기억은 지금 생각해도 뿌듯하기만 하다. 세계슬로푸드대회에 다녀온 뒤로 강창건 사장의 꿈은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의 행보가 ‘다금바리는 제주 강창건’이라는 인식을 심는 것이었다면 이제는 다금바리 창작 요리를 개발해 다금바리를 고급 코스 요리로 선보이고 싶다.
모두 강창건 셰프가 만든 다금바리 창작 요리다. 지금 당장 진미식당에서 맛볼 수는 없지만 언젠가 코스 요리로 선보일 계획이다.
(왼쪽) 다금바리 숯불구이.
(오른쪽) 삼색 양념을 발라 구운 다금바리 스테이크와 수프.
(왼쪽) 향신료를 넣은 간장에 재워 만든 다금바리 절임.
(오른쪽) 색색의 채소를 곁들인 다금바리 훈제. 그릇 협조 정소영의 식기장(02-541-6480)
“제 아들이 대학에서 조리를 전공했어요. 아들과 함께 다금바리를 명품화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아들 강경석 씨는 제주관광대학에서 호텔조리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와 함께 진미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는 조리복도 흰색을 입지 않고 미색을 입으세요. 눈부신 흰색은 사람들의 마음이 반사될 수 있으니 마음을 흡수할 수 있는 미색 조리복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하시죠. 조리복에도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이 일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분이에요. 제가 아버지의 뜻을 잘 받들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해서요.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죠.”
아들은 자신을 낮추고 아버지에게 많은 것을 배우려는 마음가짐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아들이 대견하다. 아버지 강창건 대표는 본인이 기반을 닦아놓았으니 이제 아들의 지식과 실력이 아버지의 지혜의 반석 위에서 쭉쭉 뻗어나가길 바랄 뿐이다.
인생사 모두 ‘살 맛’과 ‘죽을 맛’ 사이에 오가는 일이란 말이 있다. 다금바리 덕에 ‘살 맛 나게 사는’ 강창건 씨는 요즈음 아들과 함께 ‘한국의 맛’이 물씬 풍기는 소스를 개발하며 다금바리를 재료로 한 창작요리 삼매경에 푹 빠져 더 ‘살 맛’이 난다고 했다. 제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진미식당을 기억해두자. 미식가라면 생선의 스트레스까지 고려하는 셰프가 썰어낸 회 한 점 맛보기 위해 제주 여행을 결심해볼 만도 하다. 운이 좋다면 30kg이 넘는 대형 다금바리를 구경할 수도 있겠다. 보너스로 한번 들은 강연 내용을 가슴 깊이 새기며 일생을 다금바리 연구에 바친 뚝심 깊은 제주 사내 강창건 대표와의 대화도 꽤 맛있다. 다금바리의 뛰어난 맛만큼 강창건 씨의 인생 역전 스토리도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문의 064-794-3639